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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연두 순시] 장관 '목숨' 걸렸던 '대통령 연두 순시'.. 브리핑 준비에 한 달.. 호텔서 합숙도

뚝섬 2018. 1. 21. 06:05

1960~1970년대 대한민국의 고위 공직자들은 새해 초에 잠을 편히 잘 수 없었다. 1월 중순부터 시작되는 대통령 연두 순시 때 보고할 내용을 준비하기 위해 '비상'이 걸리기 때문이었다. 호텔방을 잡아 놓고 브리핑 준비에 한 달 이상을 쏟는 일도 많았다. 그동안 다른 업무는 거의 스톱됐다.

1964
년부터 시작된 대통령 연두 순시는 각 부처와 지방 관서가 치러야 하는 행사 중 첫손 꼽혔다. "장관과 도지사들의 ''이 계속 붙어있을지 여부를 가르는 시험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각 분야 통계 수치까지 줄줄 꿰고 있던 박정희 대통령은 순시 때 장관들에게 "우리나라 전력 수요가 1년에 얼마씩 늘어나느냐" "어선 중 동력선 비율이 어떻게 되느냐" 같은 질문을 불쑥 던져 진땀을 빼게 만들었다. 기습 질문은 해당 부처의 정책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10월 유신의 기본 이념이 뭐냐"고 묻는가 하면, 문교부 국장에게 "국민교육헌장 전문을 외워 보라"고 했다.

 

1975 1 31일 박정희 대통령이 건설부를 연두 순시하기 위해 차지철(왼쪽에서 둘째) 경호실장, 김재규(맨 오른쪽) 건설부 장관과 함께 정부 종합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오른쪽 그림은 대통령 연두 순시 때 기관장들의 지나친 저자세를 풍자한 신문 삽화(조선일보 1981 9 9일 자).

 

1965년 공보부 순시 땐 대통령이 과장에게 "정부 시정목표 달성을 위한 3대 실천 강령이 뭐냐"고 물었다. 정답은 '근면, 검소, 저축'인데 그 과장은 둘째까지는 맞혔으나 셋째를 "양심!"이라고 잘못 말해 대통령의 실소를 자아냈다. 화가 난 장관은 대통령이 떠난 뒤 그 직원에게 잉크병을 집어던진 것으로 알려졌다(동아일보 1991 1 18일 자).

박 대통령은 연두 순시 때 자신의 측근인 이른바 '실세 장관'들에게 어려운 질문을 더 많이 던졌다. 브리핑 잘하는 유능한 공무원들은 눈여겨보고, 그들을 키웠다. 장관들은 'D데이' 며칠 전부터 순시장을 꾸며 놓고 2~3일씩 예행연습을 하며 대사를 외웠다. 고위 간부들은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을 만들어 시험 앞둔 학생들처럼 달달 외웠다.

정부 부처들은 연두 순시 때의 대통령 지시를 녹음까지 해가며 실천했다. 1976년 대통령이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세관의 직원은 체력이 있고 용모가 단정한 사람으로 배치하라"고 지시하자, 김포세관은 그해 7월 입국검사장 근무 직원 84명 전원을 장신(長身)으로 교체했다. 그때의 '장신' 기준은 ' 1m70㎝ 이상'이었다. 1973년 병무청은 연두 순시 직후 한동안 매일 일과를 시작할 때마다 모든 직원이 일어서서 대통령 지시 내용을 복창하는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조선일보는 "연두 순시 때문에 장관이 너무 자질구레한 구석까지 신경 쓰다가 큰 문제에 소홀하게 되는 폐단이 있었다"고 지적했다(조선일보 1981 9 9일 자
).

이제 대통령 연두 순시는 사라진 지 오래됐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장의 연두 순시는 요즘 한창 진행 중이다. 올해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재선에 도전하는 일부 시장·군수 등이 연두 순시를 한다며 읍·면·동을 찾아 자기 업적을 홍보하고 선심성 발언을 남발하고 있다고 한다. 옛 시절 대통령 연두 순시는 너무 권위적이어서 비판받았으나 나라 발전을 위해 관료 사회에 자극을 주겠다는 공적(公的)인 뜻이 깔려있었다. 오늘 일부 단체장들의 '홍보성 연두 순시'엔 자신의 선거 승리를 위해 표를 미리 다져야겠다는 이기적 계산 외엔 읽히는 게 없는 것 같아 씁쓸하다.

 

-김명환 前 조선일보사 사료연구실장, 조선일보(18-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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