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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특사단, 그 후] [한국민은 북핵 인질에서 벗어나는 건가, 또 속는 건가] ["잘못된 報告가 나라를 그르쳤다"]

뚝섬 2019. 3. 13. 08:15

최악의 특사단, 그 후

 

세상은 비핵화 아니라는데 정권은 비핵화라 한다
세상은 제재를 말하는데 정권은 협력을 말한다
잘못에 잘못을 더한다… 의도적이다

 

작년 3 7일 자() 이 코너에 '잘못된 보고가 나라를 그르쳤다'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 글을 쓴 6일은 대북 특사단이 돌아와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다"고 발표한 날이다. 처음엔 '최악의 특사단'이란 제목을 붙였는데 "지나치다"는 선배 조언에 따라 고쳤다. 대북 특사단을 그렇게 말한 건 아니다. "일본에서 전쟁의 정세를 보지 못했다"고 보고해 국란을 키운 임진왜란 직전 대일 통신사를 가리켰다. 대북 특사단도 428년 전 통신사처럼 잘못된 보고로 나라를 망치는 '실보오국(失報誤國)'의 잘못을 저지르지 말라는 취지였다.

이후 세상은 특사단이 깔아놓은 융단 위에서 움직이는 듯했다. 겨울이 봄으로 변했다. "당신이야말로 현실을 잘못 읽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북한이 변한다는데 부정하는 근거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학자들은 북한이 말했다는 비핵화가 예전엔 주한 미군 철수였고 지금은 핵 동결을 뜻한다고 처음부터 지적했다. 남북이 정의하는 비핵화 문맥이 다르다는 것이다. 특사단은 차이가 없다고 했다. 하노이 미·북 회담에서 안개가 걷힐 때까지 대북 특사단의 '실보(失報)'에 나라가 휘둘렸다고 생각한다.

각도가 전혀 다른 반응도 접했다. 학봉(鶴峰) 김성일 선생의 후손이 보낸 장문 편지였다. 학봉은 "일본에서 전쟁의 정세를 보지 못했다"고 보고한 통신사였다. 대일 통신사 일행 중 그렇게 말한 이는 그뿐이었다. 후손이 보낸 편지 요지는 이랬다. 학봉 선생은 못 본 것을 못 봤다고 진실을 고했고, 진실을 고한 것은 동요하는 민심을 진정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후손 처지를 반영해 글을 고치면서 생각했다. 대북 특사단도 민심을 진정하기 위해 들은 것을 들은 대로 전했을 뿐 아닐까. 외교관의 지혜가 얼마나 중요한지 느꼈다.

후손의 편지를 계기로 학봉을 공부하면서 기회가 있으면 쓰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다. 최악의 특사단, 그 후 이야기다.

학봉이 고한 적정(敵情) 보고를 수용하느냐 하는 판단은 임금 몫이었다. 그런데 전쟁이 터지자 임금은 학봉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워 파직하고 국문하려고 했다. 그러다 가까스로 구제돼 경상도 초유사(招諭使·난리 때 백성을 결집하는 관직) 임명을 받은 학봉이 당시 임금에게 올린 보고서가 전해진다. '신은 만 번 죽어도 마땅한데 특별히 천지 같은 재생의 은혜를 입어… 명을 받고 감격하여 하늘을 우러러 눈물을 흘리면서 왜적들과 함께 살지 않기로 맹세하였습니다.' 그가 쓴 '臣罪當萬死(신죄당만사)'란 한문이 비장하다. 학봉은 격정적 초유문과 포용적 지도력으로 관군과 의병을 하나로 결집해 진주성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이 전투는 이순신의 해전과 함께 영남 일부와 호남 전부를 사수한 대표적 승전으로 꼽힌다. 학봉은 승전 직후 전장에서 병으로 사망했다. 그의 공()은 과()의 수십 배다. 학문적 공까지 합치면 수백 배에 이른다.

당시 조선은 무능했지만 책임감이 있었다. 지금은 무능한 데다 뻔뻔스럽다. 이런 세태를 상징하는 인물이 통일부 장관까지 지냈다는 정세현씨다. 2002년 북한이 노골적으로 핵을 개발할 때 그는 통일부 장관 신분으로 "북핵은 남() 공격용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공격용이니 안심하자'는 말과 다름없다. 북핵을 두둔하고 동맹을 해쳤다. 학봉의 자세를 생각하면 그토록 두둔하던 북한이 핵실험을 할 때 풍계리에서 풍찬노숙하면서 몸으로 막았어도 충분치 않다. 북한이 연평도에 대포를 날릴 때 몸으로 포탄을 받겠다며 달려가고, 천안함이 폭침당했을 때 장병을 구하겠다며 먼저 바다에 몸을 던져야 했다. 그것이 인간의 책임감이다. 그런 인물이 지금껏 살아남아 미국 협상단을 향해 "인디언을 죽이는 백인 기병대장" "재수 없는 사람" 운운하며 북한을 두둔하고 동맹을 때린다. 이 정권 주변 인물의 처세법이 대개 이렇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그는 정말 심하다.

특사단과 대통령에게 '신죄당만사'를 외치는 것은 아니다. 반성이 필요하다고 말해야 듣지도 않을 것이다. 문제는 지금 정권이 무슨 이유인지 '실보' '실보'를 더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상은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를 비핵화가 아니라고 하는데 대통령은 국민에게 계속 비핵화라고 한다. 세상은 대북 제재를 이야기하는데 대통령은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재개를 말한다. 눈앞의 개를 두고 양이라고 한다. 정권 주변의 나팔수들도 양이라고 한다.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이다. 언젠가 그 내막이 밝혀질 것이다.


-선우정 부국장 겸 사회부장, 조선일보(19-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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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18-03-07)-

한국민은 북핵 인질에서 벗어나는 건가, 또 속는 건가

 

남북이 4월 말 판문점 남측 구역인 평화의 집에서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고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6일 밝혔다. 대북 특사로 김정은을 만나고 돌아온 정 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북측은 북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백히 했다"고 말했다. 이어 "북측은 비핵화 문제 협의 및 북미관계 정상화를 위해 미국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용의를 표명했다"고 했다. 남북은 또 정상 간 핫라인을 설치키로 했다. 북은 대화 기간 핵·미사일 도발을 중단하고, 핵무기는 물론 재래식 무기를 남측을 향해 사용하지 않을 것임을 확약했다고 한다.

이 합의에는 평가할 부분이 적지 않다. 김정은이 정상회담 장소를 판문점 남측 지역으로 받아들인 것은 상징적 차원의 의미가 없지 않다. 김정은은 한미 훈련과 관련해 4월에 예년 수준으로 진행하는 것을 이해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역시 전례가 드문 것이다. 남북 정상이 언제든 전화기를 들고 대화하는 시스템을 마련한 것도 오해에서 빚어질 수 있는 충돌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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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문제, 북이 핵을 포기할 의사가 있느냐는 물음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김정은이 말한 비핵화의 전제 조건인 '군사 위협 해소' '체제 안전 보장'은 만약 그것이 '미·북 수교'를 요구하는 것이라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북이 핵을 포기해 미국·일본과 국교를 맺고 하루빨리 국제사회의 정상적 일원으로 나오는 것은 온 민족이 바라는 일이다. 그러나 북은 수십만 주민을 굶겨 죽이고 경제를 황폐화시키는 대가를 감수하고 핵을 개발해 왔다. 그걸 포기한다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없다. 실제 북한 보도기관들은 이번 합의 후에도 '비핵화'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 이런 북의 비핵화 언급엔 진심이 조금이라도 담겨 있는가.

 

'군사 위협이 해소되고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것은 북한이 핵 개발 사실이 외부에 알려졌던 1990년대부터 해왔던 말이다. 북은 '군사 위협 해소' '체제 안전 보장' '평화체제'라는 명분 아래 한미동맹 파기와 주한미군 철수의 동의어로 사용해 왔다.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이 발표한 '정부 대변인 성명'비핵화의 전제로 주한미군 철수를 분명히 하고 있다. 김정은은 한국이 주한미군 철수를 받아들이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을 것이다. 실현 불가능한 조건을 내거는 것은 핵을 포기할 뜻이 없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이 합의를 마치 비핵화에 큰 진전이나 있는 듯 발표하고 있다. 과거에 적어도 문면상으로는 이보다 훨씬 더 의미 있는 합의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2005 9·19 합의에서 북은 심지어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약속하기도 했다. 그래놓고 불과 1년만에 첫 핵실험을 저질렀다. 당시 9·19 합의문을 다시 읽어보면 아직까지 북한 비핵화가 안 된 것이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 모든 것은 속임수였다. 이번에 김정은이 밝혔다는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라는 것도 김정일이 국제사회를 기만할 때 써먹던 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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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북이 미국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용의를 표명했다고 했지만 이 역시 앞뒤 맥락이 빠져 있다. 정부는 평창올림픽 당시 김여정과 김영철이 방문했을 때도 "북한이 미국과 대화할 뜻이 있다고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로는 '핵보유국 지위를 갖고 미국과 대화하겠다'는 것이 북한의 언급이었다. 북이 이번에도 핵보유국으로서 인정받은 상황에서 한미동맹 폐기 및 주한미군 철수와 자신들의 핵 폐기를 맞바꾸자고 나오는 것이라면 결국 핵무력 완성의 시간을 벌자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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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7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많은 기대를 하지만 마음이 급한 것 같다" "우리 속담으로 하면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라고 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당시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으로 '미·북 비핵화 대화'를 제시했다. 정부는 곧 대미 특사단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내 미·북 대화를 설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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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이 정도 수사로 미국이 대화에 나설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다만 현재 우리 정부의 태도가 문 대통령 언급과는 정반대로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것 같다. 지금 급한 쪽은 우리가 아니라 김정은이다. 김정은은 김정일과 달리 남측 특사단을 기다리게 하는 쇼를 하지 않았다. 신변 공포를 무릅쓰고 판문점 남측까지 오겠다고 했다. '진지한 대우를 받고 싶다'고까지 했다 한다. 궁지에 몰린 것이다. 대북 제재가 이대로 이어지면 결국 체제 위협이 되고, 미국이 실제 군사 공격을 해오면 과정이 어떻든 결과는 자신의 몰락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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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심각한 위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북핵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이때 우리 정부가 조급증에 빠져서 원칙을 버리면 자칫하면 김정은에게 숨을 돌릴 수 있는 여유를 주게 된다. 우리 정부가 핵무장을 완성하고자 하는 김정은의 방패막이가 돼주는 일은 결코 있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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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공은 미국으로 넘어갔다. 미국 정부가 탐색적 차원이라도 미·북 대화에 나서게 되면 김정은은 미국의 공격 압박에서 벗어나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대북 제재를 이완시키려 나설 것이다. 북이 핵을 포기할 의사가 전혀 없는 가운데 이런 국면이 이어지면 한국민과 국제사회는 또 한 번 북에 속아 넘어가게 된다. 이번에 그 결과는 핵무장의 완성이다.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다. 만약 미·북이 '북핵 사실상 인정' ' ICBM 포기'를 맞바꾸게 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우리 국민에게 최악의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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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는 수많은 합의가 있었다. 그때마다 우리 정부는 '마침내 평화의 길이 열렸다'는 식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국민 앞에 닥친 것은 핵과 미사일이다. 이번 합의로 한국이 북핵 인질에서 벗어나는 길이 마침내 열릴 것인지, 아니면 지난 25년간 그랬던 것처럼 또 한 번 북의 기만전술에 말려들 것인지는 국민에 달려 있다. 5100만 한국민이 눈을 부릅뜨고 가짜와 진짜를 가려내야 한다.

 

-조선일보(18-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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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정 사회부장, 조선일보(18-03-07)-

"잘못된 報告가 나라를 그르쳤다"

 

북한은 핵무기를 남측에 쓰지 않는다는 저들의 慈悲를 한국 특사단이 발표했다
편견, 당파, 비겁… 失報誤國은 옛말이 아니다

 

427년 전 일본에 파견된 조선통신사(通信使)만큼 한국사에서 오래 욕을 먹는 특사단이 없다. '실보오국(失報誤國)'이 가장 혹독한 평가인데, '잘못된 보고(報告)가 나라를 그르쳤다'는 뜻이다. 임진왜란을 다루는 사극엔 빠짐없이 나오는 유명한 장면이 있다. 임금이 돌아온 사신들을 불러 물었다. "반드시 전쟁이 일어난다"는 의견과 "(전쟁의) 정세를 보지 못했다"는 의견으로 갈렸다. 조정은 평화론을 지지했고 임금도 이를 택했다. 그러다 무방비로 일본에 당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전쟁 가능성을 부인한 쪽이 죄인이 됐다. 특사단의 부사(副使)로 참여한 학봉(鶴峰) 김성일이다. 그에 대한 문책은 당대로 끝나지 않았다. 정세를 오판한 무능력자로 지금까지 손가락질 받는다. 하지만 학봉은 유능한 학자이자 관료였다. 의병장으로 진주성을 지킨 말년의 맹활약에서 보듯 비겁과 거리 멀었다. 이 때문에 그의 오판은 한국사의 대표적 미스터리로 꼽힌다.


우리에겐 당시 일본은 지금 북한과 비슷했다. 정보가 거의 없었다. 조선이 일본에 사신을 파견한 건 147년 만이다. 규슈 지역 영주들을 상대하다가 일본 중앙 정권의 새 실권자가 호전적이란 얘기만 듣고 갔다. 실권자의 본성이 소문보다 훨씬 호전적이란 것도 지금 북한과 비슷할지 모른다. 악명 높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다. 훗날 일본은 얼굴이 험악한 도요토미 앞에 납작 엎드린 모습으로 특사단을 묘사했다. 사실이 아닌 듯하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특사단 접견은 치례(致禮)가 간소하고 자유로웠다. 도요토미가 어린 아들을 안고 있다가 오줌 세례를 받는 장면도 나온다.

학봉은 이런 풍경을 '방약무인(傍若無人)'하다고 봤다. 상종 못 할 상것들이란 것이다. 그는 완고한 유학자였다. 게다가 예학을 중시했다. 중국 중심 세계관 탓에 현지에서 보고 들은 일본의 무력을 '개돼지의 허장성세'로 표현했다. 똑같은 장면을 본 정사(正使) 황윤길은 도요토미에 대해 "눈이 반짝이고 담력과 지략이 있다"고 했다. 학봉은 "눈이 쥐와 같으니 두려워할 만한 위인이 못 된다"고 했다. 그가 민심 동요를 우려해 본심과 다른 의견을 말했다는 기록도 있다. 하지만 그건 학봉의 지성을 말해주는 것일 뿐 그의 보고에 따른 참혹한 결과를 바꾸는 건 아니다. 편견은 이렇게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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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당파성도 나라의 운명을 비틀었다. 특사단이 일본으로 떠날 때 조선은 서인(西人) 집권기였다. 서인이 정사, 동인(東人)이 부사를 맡았다. 서인 권력이 이어졌다면 조선은 서인인 정사의 전쟁론을 택했을 것이다. 방어에 힘을 기울여 조금이라도 백성의 피해를 줄였을지 모른다. 그런데 1년 뒤 돌아왔을 때 조선은 정변이 일어나면서 동인 시대로 변했다. 동인인 부사의 평화론이 선택된 데엔 이런 당파성이 작용했다. 국가 운명을 당파의 이해에 내맡겼다. 물론 최종 결정권자인 임금이 전쟁을 두려워했으니 결국 그리로 갔을 것이다. 특사의 편견, 조정의 당파, 임금의 비겁이 어우러져 이듬해 왜선이 부산 앞바다를 꽉 메웠을 때 부산진을 지키는 장수는 영도에서 사냥 중이었다. 한국사는 중요한 순간에 운이 좋은 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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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토미는 '정명향도(征明嚮導)'를 요구했다. 명나라와 승부를 볼 테니 조선은 길 안내나 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1년도 지나지 않아 일본은 명과 협상해 조선 팔도 절반을 먹겠다는 '정한(征韓)'으로 목표를 바꾼다. 사실 원래 목표가 이랬다. 북한은 "우리 핵 주먹 안에 미국이 있다"며 큰소리다. 그러면서 "우리는 하나"라며 한국에 손짓한다. '정미향도(征美嚮導)'를 떠드는 것이다. '정미' '정명' 못지않은 개꿈이다. 북한도 안다. 그들의 목표는 한국을 미국행 길잡이로 만드는 것이다. 미국과 핵 담판으로 미국을 묶고 그다음 한국을 먹겠다는 것이다. 북한은 이 목표를 포기한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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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돌아온 특사단이 여섯 가지 남북 합의 사항을 발표했다. 그중 북측은 핵무기는 물론 재래식 무기를 남측을 향해 사용하지 않을 것임을 확약했다는 다섯 번째 항목에서 비애(悲哀)를 느낀다. 길잡이를 잘하면 죽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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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특사단은 비슷한 세계관·역사관의 공유자들이다. 북한에 대한 장밋빛 편견도 비슷하다. 김정은의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명령을 받고 일한 사람이 그 결과를 보고하는 것을 '복명(復命)'이라고 한다. 대북 특사단의 복명은 옛 대일 특사단의 복명만큼 역사적으로 중요하다. 어제 밝힌 그들의 복명은 학봉의 평화론보다 시대착오적이다. 특사단의 평화론에 솔깃하는 것도 그 옛날처럼 암울하다. 편견, 당파, 비겁. '실보오국(失報誤國)'은 옛말이 아니다.


-선우정 사회부장, 조선일보(18-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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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수 정치부 기자, 조선일보(18-03-07)-

깜깜이 방북


"더 이상 평양 소식 없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지난 5일 밤 114분 청와대는 대북 특별 사절단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만찬 결과 브리핑을 취소했다. 밤늦게까지 청와대를 지키던 기자들은 허탈한 표정으로 짐을 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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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청와대는 "밤늦게라도 브리핑을 하겠다"는 방침이었다. 만찬이 오후 6 30분에 시작했으니 오후 10시쯤이면 관련 보고가 들어올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밤 11시가 넘도록 만찬 결과는 고사하고 만찬 종료 여부도 알 수 없었다. 특사단과 김정은이 무슨 논의를 했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깜깜이 상황'이었다.


온종일 청와대 입만 바라보는 일은 6일에도 반복됐다. 아침 청와대 대변인 브리핑 이후 저녁 8시까지 언론은 아무것도 취재할 수 없었다. 북한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 등 북 언론의 일방적 보도만 보고 상황을 짐작할 뿐이었다.

이번 특사단 방북엔 국내외의 관심이 집중됐다. 한반도 정세를 좌우할 비핵화 대화와 남북 정상회담 등 굵직한 현안을 놓고 담판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외 언론의 동행 취재는 원천 봉쇄됐다. 1 2일 방북 동안 평양에서 특사단이 보내는 팩스만 기다려야 했다. 청와대 발표 전에 북한 매체들이 제 입맛대로 선수(先手)를 치는 일이 계속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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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9~11일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방한 당시와 비교해 형평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왔다. 당시 북 대표단에는 북한 취재진이 동행해 김여정 일행을 밀착 취재했다. 청와대는 이번 특사단이 김여정 방한에 대한 '답방'이라고 했는데, '언론 동행 취재'에는 상호주의 원칙을 적용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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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정부는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이 평창 동계올림픽 폐회식 참석차 방한했을 때도 모든 일정을 비공개에 부쳤다. 김영철은 우리 당국자들과 다섯 차례 공식 접촉했지만 정부는 짤막한 사후(事後) 보도 자료만 냈다. 사진·영상도 전혀 공개하지 않았다. 1월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이 공연 시설 점검차 방한했을 때도 정부는 취재를 제한했다. 언론의 항의가 쏟아지자 뒤늦게 마지막 일정(국립극장 답사)만 딱 3분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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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연초부터 북한의 평창올림픽 대표단 파견으로 시작된 남북 화해 분위기를 어떻게든 살리고자 총력을 쏟고 있다. 설익은 합의나 민감한 내용이 공개돼 남북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까 봐 언론 취재를 일부 제한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번 같은 '깜깜이 방북'이나 '비밀주의' "정부가 북한 눈치를 본다"거나 "입맛에 맞는 정보만 공개한다"는 지적을 낳을 수 있다. 국민 안위가 걸린 비핵화 대화와 남북 정상회담을 두고 정부가 김정은과 무슨 얘기를 했는지 국민은 속 시원하게 알 권리가 있다.


-이용수 정치부 기자, 조선일보(18-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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