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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월급쟁이들은 포니2와 강남 아파트 입성을 꿈꿨다]

뚝섬 2018. 4. 1. 07:14

1950년 전후 세대의 이주
1
단계, 마포구·성북구 등 사대문 밖 전셋집서 시작
2
단계는 부천·인천·광명 서울 바깥에 내 집 마련
포니2 굴리는 부장돼서야 강남 아파트 입성 꿈 이뤄


 

1986 30대 중반의 대졸 영업사원 K씨는 드디어 집을 마련한다. '미아리에서 화곡동으로, 화곡동에서 다시 쌍문동으로', 넓디넓은 서울에서 외곽으로만 빙빙 돌던 셋방살이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부천시의 열여덟 평짜리 연립주택이 K씨가 만삭의 아내, 칠순의 노모, 어린 딸과 살아갈 새 보금자리였다. 대학 진학과 함께 상경한 K씨에게 '서울에서 희망이란 집과 같은 뜻'이었다. 하지만 서울 집값은 그의 가족이 단번에 뛰어넘기에는 너무 높은 장벽이었다. 그나마 서울 바깥에서 우회로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서울의 전세금이면 부천의 연립주택 구입이 가능하다는 아내 동창의 귀띔 덕분이었다.

작가 양귀자의 연작소설 '원미동 사람들'의 초입에 등장하는 K씨의 사연은 1950년 전후로 태어난 봉급 생활자의 전형적인 이주 경로를 보여준다. 1983년에 처음 출간된 이후 여러 차례 재판을 거듭한 뿌리깊은나무의 '한국의 발견: 서울'을 보자. 이 책에서 1952년생 고도원 기자는 서울 월급쟁이들의 이삿짐을 뒤쫓다 보면 어렵지 않게 하나의 큰 흐름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

그에 따르면 이들의 이주 경로는 다음과 같은 식으로 패턴화되어 있다. 첫 단계, 이들은 주로 서대문구·마포구·성동구·동대문구·성북구의 셋방이나 전셋집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한다. 아직 자녀가 없는 이들에게 도심 직장과의 거리가 가장 중요한 거주지 결정 요인이다. () 안이 최상의 거주지이지만 문 안의 삶을 감당할 경제적 여력이 없다. 그래서 이들은 문밖이되 문 안이 코앞인 문밖 지역을 택한다
.

두 번째 단계는 자녀가 태어나고 약간의 경제적 여력이 생긴 후 서울 바깥에 집을 장만하는 것이다. K씨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부천을 비롯해 인천·광명·성남·의정부의 중소 평형대 아파트가 이들이 전세 보증금에 재형저축 만기 금액을 보태 '내 집 마련'을 시도할 수 있는 선택지였다. 물론 서울에서 떠밀려 나지 않아도 되는 대안도 있었다. 강서구나 양천구 등지의 신흥 주택가가 그것이다. 이 주택가 태반은 집장사들이 몰려들어 몇 달 만에 집 한 채씩 뚝딱뚝딱 지어내면서 삽시간에 만들어진 동네였다
.

'
한번쯤 거쳐 가는 곳'으로 이런 동네를 선택한 이들 상당수는 강남의 아파트 단지를 최종 목적지로 염두에 두고 있었다. 실제로 이들 일부가 강남에 진입하는 시점은 대략 포니2 정도의 자가용 승용차를 굴릴 수 있게 될 즈음이었다. 부장의 눈치를 살피는 사원이 아니라 상무의 심기를 헤아릴 줄 아는 부장이 된 이후에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선택지였다
.

흥미로운 것은 1980년대 중·후반 양천구 목동과 노원구 상계동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월급쟁이들'의 이주 경로에 커다란 변화가 생긴다는 점이다. K씨의 바로 아랫세대는 결혼 후 이주의 두 번째 단계에서 신시가지에 거처를 마련할 기회를 손에 쥘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원미동 사람들' K씨가 실행하고 고도원 기자가 정리한 이주 경로는 강남 개발과 목동·상계동 개발 사이에 애매하게 낀 세대에 해당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포니' '포니 엑셀' 사이에 놓인 '포니 2'와 같은 처지였다고나 할까.


-박해천 동양대 디자인학부 교수, 조선일보(18-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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