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노인 下노인]
['보수'는 늙은 사람들의 전유물인가]
上노인 下노인
법적 노인 연령인 만 65세 이상도 ‘경로당 가는 상노인(上老人)’과 ‘카톡창 여는 하노인(下老人)’으로 활동성의 차이가 크다는 보도가 나왔다. 최근 대한노인회는 현행 65세인 노인 기준 연령을 매년 1년씩 높여서 75세까지 상향하자고 정부에 제안했다.
▶”내가 늙어 머리가 빠지면 넌 여전히 생일 축하 인사와 와인을 보내줄까? 내가 64세가 되어도 여전히 나를 필요로 하고 나를 돌봐줄까?” 비틀스의 1967년 음반에 실린 ‘내가 64세가 되면(When I’m Sixty-Four)’의 한 구절이다.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가 작사·작곡한 이 노래는 영국 남성의 평균수명이 69세, 여성이 75세이던 시절에 지은 곡이다. 몇 년 전 영국의 대학 연구팀이 노화를 묘사한 대중가요 76곡을 분석했는데 늙어감을 부정적으로 묘사해서 노인들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대표곡으로 이 곡을 꼽았다.
▶그로부터 22년 뒤인 1989년, 영국에서는 사회학자 피터 라슬렛이 인생 4단계 분류법을 제시하면서 60대를 완전히 새롭게 정의했다. 태어나서 교육받는 시기(제1기), 취업해서 가족을 책임지는 시기(제2기)를 지나면 퇴직해서 건강하고 자율적으로 살아가는 인생 3기(Third Age)가 펼쳐진다는 것이다. 그게 60대다. 그만큼 젊고 활력 있는 고령층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65세 노인’ 기준은 19세기 말 독일이 국가 연금 수급 연령을 65세로 정한 것에 연원을 두고 있다. 이제는 도저히 노인이라 부를 수 없는 ‘젊은 65세’ ‘팔팔한 70대’가 대거 등장하고 있다. 그래서 서구권에서는 60대 이상도 연소 노인(young-old), 중고령 노인(middle-old), 고령 노인(old-old)이라 나누기도 하고, 65~74세 ‘영 올드’와 75세 이상 ‘올드 올드’로 나누기도 한다. ‘경로당 가는 상노인’과 ‘카톡창 여는 하노인’은 ‘올드 올드’와 ‘영 올드’의 우리식 표현인 셈이다.
▶65세 이상 인구가 1000만명을 돌파해 인구 5명 중 1명이 ‘법적 노인’이다. 하지만 경제활동에서는 60대 취업자가 50대, 40대, 30대, 20대보다도 더 많다. 길어진 수명만큼 오래 일할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60대 노동력을 생산적으로 활용해서 저출생으로 부족한 노동력을 메우고 청년 세대 부담도 덜어줘야 하는 것이 국가적 과제이기도 하다. 달라진 현실에 맞춰 과거에 만든 ‘노인 기준’도 바꿀 때가 됐다.
-강경희 논설위원, 조선일보(24-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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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는 늙은 사람들의 전유물인가
"집회와 시위는 자유시민이 하는 것
제발 軍服 입지 말고 軍歌도 틀지 말고
성조기나 트럼프 사진을 흔들지 않았으면…"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욕 얻어먹을 작정으로 이 글을 쓴다. 얼마 전 노재봉 전 총리, 박관용 전 국회의장 등이 '대한민국수호 비상국민회의' 창립대회를 열자 보수 언론에서는 비중 있게 보도했다. 명망 있는 인사들이 참여했고, '정권을 떠받치는 광범위한 좌파 세력이 사회 전반에 걸쳐 체제 변혁과 국가 파괴를 진행하고 있다'라는 입장에 얼마간 동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리멸렬한 보수 진영의 구심 축이 됐으면 하는 바람도 투영됐을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을 수호하겠다'는 이 국민 기구의 20명 가까운 공동대표들이 두세 명 빼고는 70대 중반에서 80대다. 각 개인으로 보면 경륜과 체력, 인품 면에서 하나 손색이 없다. 충분히 이런 역할을 맡고도 남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떨어져서 보면 이런 인적 구성의 기구는 '보수는 늙은 사람들의 전유물인가'라는 인상을 또 한 번 주게 된다. 이 기구가 실제로 어떤 역할을 얼마나 할지 모르나 이런 경로당 이미지로 인해 보수의 폭(幅)을 좁히는 손실이 더 크다고 본다. 차라리 이분들이 나서서 아끼는 후배나 제자들을 설득해 이런 비상기구를 만들게 했다면 '보수가 잘하면 살아날 수 있겠다'는 기대를 걸어볼 수 있었는지 모른다.
회사는 물론이고 어떤 조직도 젊은 세대를 공급받지 못하거나 길러내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 보수의 가장 큰 고민은 젊은 세대에게 매력을 주지 못하고 끌어들이지 못한 것이다. 보수 진영에서 어떤 조직이나 단체가 만들어지면 역할의 성격과 상관없이 전직 경력이 화려한 노인들이 제일 앞줄의 감투를 차지한다. 나이와 과거 관직 순에 의해 위계질서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80대 노인이 지시하고 50, 60대는 애 취급받으며 움직이는 시스템이 된다.
보수가 정말 나라 걱정을 한다면 후배들을 키우고 그들을 무대의 주인공으로 세워야 한다. 자신은 뒤에서 경제적·정신적으로 지원하는 형태가 돼야 보수 조직은 세상의 변화와 함께 가고 성공할 수 있다. 누구보다 이런 이치를 잘 알고 있을 텐데, 막상 매스컴에 소개되는 조직이 만들어지면 자신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지난 좌파 정부 시절 어떤 보수 단체는 소위 나라를 지키기 위해 아스팔트에서 열심히 싸워왔다. 그 단체를 결성한 분은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회장직을 맡고 있다. 그 자리가 '벼슬'처럼 되고 만 것이다. 단체 구성원들도 그와 함께 덩달아 늙었고 수는 줄어들었다. 이러면 보수가 세상 흐름과 감각을 따라잡는 게 어려워진다.
지금 보란 듯이 독주하는 정권에서 보수의 견제 역할은 더욱 요구되지만, 현실에서 보수는 더욱 고립되고 있다. 한 달 반 전 조선일보독자권익위원회의 외부 참석자 사이에서 이런 대화가 오갔다.
"지난 3·1절 때 난생처음으로 태극기 집회에 참가했다. 정말 많은 사람이 서울역과 광화문 광장 등에 운집했는데 언론에서 거의 보도하지 않았다. 촛불집회 때는 실시간 보도한 것과 비교되어 언론 보도의 공정성에 문제가 있어 보였다."
"언론이 태극기 집회를 보도하지 않는 것은 대중적 인기가 없고 흥미가 없어서 아닌가. 쓸모없는 집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둘 다 정확한 지적이다. 여전히 주말마다 서울 도심에는 태극기 집회가 열리고 있지만 언론에서는 이미 관심을 끈 지 오래됐다. 지나가는 젊은이들과의 승강이, 취재진에게 욕설, 경찰들과의 다툼 등 불미스러운 사건만 일부 인터넷 매체에 보도되고, '폭력 행위가 반복돼 경찰이 대응책을 놓고 골머리 앓고 있다'라는 식의 제목이 달려있다.
이런 잊힌 보수 집회 현장에 간혹 나가보면 마음이 짠할 때가 많다. 살아온 경험에서 비롯된 이들의 나라 걱정이 왜 누구에게도 전달되지 않는가. 왜 이들은 자신들끼리 고립되는가. 주최 측은 현재의 집회 방식과 행태에 훨씬 많은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 한마디만 참견하겠다. 보수 집회에 제발 군복(軍服)을 입지 말았으면 한다. 군복을 입고서 손자 또래 경찰과의 실랑이를 보는 것도 마음이 편치 않다. 집회와 시위는 자유(自由) 시민이 하는 것이다. 군은 정치 중립이고, 군복도 그런 선에서 대접해줬으면 한다. 군가(軍歌)도 가능한 한 틀지 말았으면 한다. 차라리 트로트 유행가를 틀고 한바탕 흥겹게 했으면 좋겠다.
보수 집회에 성조기나 트럼프 사진을 제발 흔들지 않았으면 한다. 한·미 동맹을 위해서 그런 것이지만 젊은 세대에게 보수는 마치 주권 의식이 없는 사대주의자처럼 비친다. 요즘은 이스라엘기까지 등장하고 있다. 태극기로도 충분하다. 이런 집회를 통해 보수가 배타적이고 완고한 노인 집단으로 비치면 나라를 위한 그 충정은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는다. 그게 너무 안타깝다.
-최보식 선임기자, 조선일보(18-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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