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바꿀 수 있는 땅의 기운을 다룬 영화 ‘명당’. /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시대마다 광기가 있다. 노동을 통해서가 아니라 부동산 투기로 치부를 하려는 것은 이 시대의
광기이다. 19세기에도 그러한 광기가 있었다. 묘지 풍수였다. 전봉준은 언젠가 지관(地官)을 초치하여 "크게
왕성할 자리가 아니면, 아예 후사가 끊길 자리를 잡아 달라"고
부탁한다. 왜 후손이 끊길 자리인가를 묻자 "오랫동안
남의 밑에서 살면서 구차하게 성씨를 이어가느니 차라리 후사가 끊어지는 것이 낫다"고 답한다.
흥선군은 "날마다
장동 김씨네 문 앞에서 옷자락 끌며 얻어먹고 구차하게 살기보다 폭사(暴死)를 당하더라도 한 번쯤 크게 될 명당에 선친을 모시자!"고
형님들을 설득한다. 그는 2만냥이란 거금을 마련하여 충남
가야산의 절을 사서 불태우고, 절 뒤 탑 자리에 무덤을 쓴다. 이때가 1846년이다. 2명의 천자(임금)가 나올 자리라는 말을 듣고서였다.
흥선군보다 풍수에 더 열을 올린 세도 가문이 있었다. 김좌근은 아버지 김조순 묘를 1832년
여주 효자리에 장사지냈으나, 1836년에 백석동으로, 1841년
이천 가좌리로 이장하였다. 장동 김씨 권력을 천년만년 이어가고자 함이었다.
19일 개봉한 '명당'은 명당을 둘러싼 권력투쟁을
다룬 영화이다. 영화 속 갈등은 두 가지로 전개된다. 하나는
흥선군(지성)과 김좌근(백윤식) 집안 사이의 명당을 둘러싼 싸움, 다른 하나는 두 지관 박재상(조승우)과 정만인(박충선) 사이의 갈등이다. 정만인은 두 명의 천자가 나올 땅을 흥선군에게
소개하는 반면, 다른 지관 박재상은 이를 적극 말린다. 두
명의 천자가 나오겠지만, 이후 나라가 망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영화 속 내용 모두가 역사적 사실은 아니나, 분명한 것은
19세기를 살다 간 권력자·지식인·부자도 길지를 찾아 조상 무덤을 썼다는 점이다. '명당'은 그러한 시대상을 바탕으로 조선 풍수사(風水史)에 등장하는 유명 사건들에서 소재를 취하였다. '장손이 끊어질 자리에
임금의 무덤 자리를 잡았다'는 내용은 세종 당시 유명한 노비 풍수 목효지를 연상시킨다. 세종의
세자빈(단종의 어머니)이 죽어 안산에 장지를 정했는데, 목효지가 몰래 가서 그 자리를 보고 세종에게 상소를 올린다. 목효지는
그 공로로 노비에서 풀려났지만, 수양대군(훗날 세조)의 미움을 사서 결국 교수형을 당한다.
선왕의 능이 흉지라는 지관의 말에 왕이 능을 파보게 하자 뱀이 나오는 장면이 있다. 풍수에서는
사변(蛇變)이라 부른다. 인조의
무덤(장릉)에서 뱀이 나와 천릉을 한 사건을 연상시킨다(1731년). 또 하나 소재는 암장(暗葬)이다. 남의 무덤 한쪽을 파고들어가 자기 조상 유골을 묻는 것을 말한다. 장동
김씨가 왕릉에다 암장을 한 장면은 부정한 명당 취득 방법 가운데 하나였다.
김좌근도 흥선군도 모두 길지를 찾아 선친을 이장하였다. 그런데 왜 흥선은 성공하였고 장동
김씨는 몰락하였을까? 영화 '명당'은 답하지 않았다. 땅만이 전부가 아니다. 흥선군은 문정왕후가 묻힌 태릉을 지키는 참봉 자리까지 자청한다. 조대비가
태릉을 자주 참배한다는 사실을 알고서였다. 흥선군은 자연스럽게 조대비를 만날 수 있었다. 훗날 조대비로 하여금 흥선의 아들을 왕위에 오르게 한 인연의 시작이었다. '명당' 발복(發福)은 단지 좋은
터를 잡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발복을 위한 적극적 행동이 전제된다.
추석 연휴와 어울리는 작품이다. 덧붙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지도예찬'이란 지도 전시가 10월 28일까지 열리고 있다. 박재상이 장동 김씨가 숨겨 놓은 묘지도(명당도)를 찾아 김좌근 수장고에 잠입하는 장면은 땀을 쥐게 한다. 묘지도의 구체적인 모습을 이 전시회에서 볼 수 있다.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조선일보(18-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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