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표기 논쟁 하나. 스페인입니까, 아니면 에스파냐입니까.
입장 하나. 스페인 공식 명칭은 에스파냐 왕국입니다. 동경
대신 도쿄, 북경 대신 베이징으로 쓰는 게 대세라면, 스페인과
에스파냐의 주도권 싸움도 불문가지(不問可知)죠.
반대쪽 입장을 볼까요. 우선 통용 빈도에서 스페인이 압도적입니다. 복합어에서도 스페인과 조합된 경우가 더 많죠. 에스파냐 축구 국가대표팀이라고는
쓰지 않잖아요. 뿐입니까. 스페인어지, 에스파냐어인가요? 대사관도 그래요.
스스로가 스페인 대사관이라고 간판을 걸었습니다.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봐도 'Korea'이지, 'Han Guk'은 아니잖아요.
이상은, 위키백과 표제어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 중 하나입니다.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진주완·정철·류철
지음·사계절 刊)에 등장하는 사례죠. 위키백과, 즉 위키피디아는 주지하다시피 인터넷 백과사전. 누가 이겼는지 여부는
잠시 미뤄두고, 지은이 이야기를 해보죠.
2년 전 정철(42)씨를 판교에서 인터뷰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그는 IT기업 카카오의 사전 담당 기획자. 요즘
표현으로 비유하자면 '성덕'이었습니다. 성공한 덕후, 좋아하는 일이 직업으로 연결된 경우죠. 딱지·지우개·우표를 편애하던 초등생의 수집벽은 음반으로 확장됐고, 급기야 1만 장의 소장 LP를 국가·장르·알파벳 등의 기준으로 분류하고 정리했죠. 다음 도전은 사전. 2002년 새로운 웹사전 기획안을 들고 네이버를
찾아갔고, 취미는 이제 직업이 됩니다.
다시 위키피디아로 돌아옵니다. 2001년 이 인터넷 백과사전이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위키피디아는 놀림받았죠. 움베르토 에코(1932~2016)는 공개적으로 조롱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문화라고
부르는 건 선별과 여과의 오랜 과정인데, 위키피디아는 신뢰도 면에서 낙제점이라고요. 그로부터 17년. 다시
서두로 돌아옵니다. 승자는 누구였을까요. 무려 한 달 이상
계속된 토론 끝에 참여자들은 결국 투표에 돌입했고, 결과는 20대11, 스페인의 승리였답니다. 물론 지금도 정보의 불확실성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지만, 위키피디아 검증의 태도만큼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네요. 격세지감(隔世之感). 덕후의 덕입니다.
-어수웅·주말뉴스부장, 조선일보(18-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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