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펜젤러 목사가 이 나라에 첫 근대식 중등학교인 배재학당을 열었는데, 그는 "우리 배재학당 배재학당 노래합시다" 하는 교가까지
지었다. 배재고 출신들은 졸업한 지 수십 년이 돼도 이 교가를 들으면 가슴이 뛴다. 안 그런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학교 졸업 40주년 기념 모임에 갔던 한 사람은 "교가 제창 순서가
됐는데 신기하게도 그 가사가 모두 생각났다"고 했다. 교가는
그런 노래다.
▶역사가 오랜 학교일수록 교가는 당대 최고 시인이 가사를 쓰고 유명 작곡가가 멜로디를 붙였다. 영남에
통영 출신 유치환이 작사한 교가가 많고 호남 학교에 고창 태생 서정주의 노랫말이 많은 것도 그런 이유다.
1906년 문을 연 휘문고 교가는 서울 출신 최남선이 노랫말을 붙였고, 올해 개교 100주년을 맞는 전주고 교가는 서정주가 지었다.
▶전교조가 "친일 인사의 동상·기념관이 있거나 교가를 친일 인사가 지은 학교"라며 서울 초·중·고교 113곳을 지목했다. 당장 기념물을 철거하고 교가를 바꾸라고 요구했다. 3월까지 말미를 주고 안 바꾸면 '행동'에 돌입하겠다고 한다. 이들이 말하는 친일파는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실린 사람들로, 안익태·홍난파·서정주·김동인·최남선·현제명 같은 이름이 포함돼 있다. 지목된 학교에는 서울고·휘문고·숙명여고·창덕여고처럼 광복 전부터 있던 명문들이 들어 있다.
▶일제 때 개교한 탓에 몇몇 교가 중엔 일본식 멜로디를 따오거나 일제가 붙인 지명을 노랫말에 넣었다가 광복 후 폐기한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낙인찍은 친일 인명사전을 토대로 학교 교가를 하루아침에 없애라니 폭력 아닌가. 서울 성북구청도 '인촌로'라는
도로명을 없앤 뒤 만세 삼창을 하기로 했다고 한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때에도 없던 교가 공격, 도로명 공격이 벌어진다.
▶지금 우리 학교 교가에 일제(日帝)를 찬양하는
내용이 어디 있겠나. 교가 가사를 지은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교가를 없애라면 그 교가를 가슴에
품고 학창 시절을 기억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추억은 어떻게 되나. 한국 최고 권력기관이라는 전교조가 '없애라'고 하면 교가까지 없애야 하나. 100년 가까이 불러온 교가를 당장 없애야 한다면, 일제 적산 가옥을
보존해 관광 자원으로 써야 한다는 국회의원에 대해서는 할 말 없는가. 전국에 우후죽순으로 생기는 일본식
다다미방 카페와 교토풍(風) 술집, 라멘집, 이자카야는 어떻게 할 건가. 유치한 발상에 할 말을 잊는다.
-한현우 논설위원, 조선일보(19-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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