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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도 변함없는.. ‘지포라이터’] [모양의 힘] ....

뚝섬 2023. 12. 23. 05:34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는… ‘지포라이터’서 보수의 가치를 떠올리다] 

[모양의 힘] 

[조태권 화요 회장]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는… ‘지포라이터’서 보수의 가치를 떠올리다

 

[박찬용의 물건漫談]

 

선진국의 저력은 다양성과 더불어 지킬 건 지키는 보수성
주식 상장 없이 90년째 그 자리… 무료 수선·교체도 여전
美 본사엔 한글 지포라이터도… ‘퐁, 치익’의 손맛 그리워

 

영화 ‘서울의 봄’에는 담배 피우는 장면이 많다. 1980년 결핵협회가 집계한 한국 남성 성인 흡연율이 79.4%였음을 생각하면 일리 있다. 영화 속 장군들은 아무 라이터나 안 쓴다. 주인공 전두광은 자기가 불을 붙이지도 않는다. 담배를 물면 옆 사람이 불을 붙여준다. 불을 붙일 때 끽연가라면 익숙할 소리가 들린다. 뚜껑을 열 때 퐁, 불을 붙일 때 치익. 지포 라이터 소리다.

 

지포 라이터가 나오는 장면을 보고 나는 ‘영화가 소품 고증에 공을 기울였구나’라고 생각했다. 일국의 장군들이 반란을 하려고 모였는데 플라스틱 1회용 라이터로 불을 붙이면 그림이 안 맞는다. 그렇다고 당시 한국 경제 수준을 생각하면 뒤퐁이나 카르티에 같은 고급 라이터도 적합하지 않다. 안 싸지만 너무 비싸지는 않고, 거센 바람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지포 라이터가 잘 어울린다. 실제로도 지포 라이터의 역사와 위상은 미국 군대와 깊은 연관이 있다.

 

지포 라이터가 군대와 함께 큰 이유는 두 가지다. 일단 튼튼하다는 점이다. 지포는 고장 난 라이터를 미국 필라델피아주 브래드퍼드의 본사로 보내면 모두 무료로 고쳐주거나 신품으로 바꿔줄 정도로 품질에 자신감을 보인다. 둘째는 전쟁이다. 내구성 덕에 지포는 미국의 국제 전쟁에 함께했다. 미국 최초 대규모 국외 파병은 1941년의 제2차 세계대전이다. 이때부터 미군의 주요 소지품이 훗날 남성 패션 상품군에 큰 영향을 미쳤다. 남성 캐주얼 곳곳에 각종 미군 군복의 발상과 외형이 남아 있다. 서울의 봄에서 장군들이 입은 육군 동근무복도 미군 전차병의 ‘바머(bomber) 재킷’과 비슷하다. 지포 라이터 역시 전장의 담배 수요와 함께 세계의 전선으로 퍼졌다. 베트남전쟁 참전 미군의 지포 라이터는 아직 비싸게 거래된다.

 

지포와 전쟁은 필연적으로 한국과 만난다. 나는 한미 동맹과 지포의 관계를 보여주는 물증을 만난 적이 있다. 나는 2015년에 당시 일하던 잡지 기자 자격으로 지포 라이터 본사를 취재했다. 본사 건물 옆 박물관에는 아예 전쟁 섹션이 따로 만들어져 지포 라이터와 군에 관련된 전시물이 있었다. 그 사이에 한글이 각인된 지포 라이터가 보였다. 1966~67년 당시 주월 한국군 사령관 중장 이세호의 라이터였다.

 

‘서울의 봄’에도 지포 라이터를 비롯한 미국의 흔적이 숨어 있다. 국방부 장관이 도망치는 곳은 한미연합사령부 벙커다. 그가 도망갈 때 타는 차는 미국차 포드다. 뇌물로 건네는 화폐도 미국 달러다. 전두광의 하나회가 시작되는 육사 11기는 육사 최초로 4년제 과정 교육을 받은 기수다. 그 커리큘럼도 미국 육군사관학교 웨스트포인트의 것을 차용했다. 어느 진영이든 자신이 오늘날의 멋진 한국을 만들었다고 주장하지만, 한국 현대사의 가장 큰 상수이자 변수가 미국임을 암시하는 증표들이다.

 

시간이 지나도 지포는 변함없다. 지포는 1932년 문을 연 뒤 본사를 옮긴 적이 없다. 주식시장에 상장하지도 않았다. 라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제조업 이상의 업종으로 진출한 적도 없다. 창사 90년이 넘은 지금까지 필요 이상으로 튼튼한 품질도 똑같고 뭐든 받아주는 수리 정책도 변함없다. 나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저력이 다양성과 함께 하는 보수성이라 본다. 모두가 변하지 않을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지만, 변함없이 지켜지는 게 어디서나 조금씩은 필요하다.

 

반면 ‘서울의 봄’에 나온 것들은 굉장히 많이 변했다. 한국은 그 후 쿠데타가 없다. 영화 속 등장인물의 실제 모델이 된 사람들은 세상을 떠났다. 미군은 용산을 떠났다. 공도 과도 당시 이해 당사자의 정치적 사정에 따라 변했다. 흡연 가능 구역도 변해서 이제 공공장소는 물론 술집까지 금연이다. 이제 ‘서울의 봄’처럼 담배 연기가 자욱한 실내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 별로 없다. 나는 이 극단적 역동성 역시 한국의 힘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한국인이 담배를 떠나고 있다. 1980년 남성 흡연율이 79.4%였는데 질병관리청이 집계한 2021년 남성 흡연율은 31.3%에 불과하다. 영화 속 전두광은 초반에 일갈한다 “바뀐 거 하나도 없습니다. 세상은 그대로야.” 사실은 바뀐 게 더 많다. 바뀌지 않은 건 지포 라이터 정도다. 그 손맛. 퐁, 치익, 하는 그 소리.

 

-박찬용 아레나 옴므 플러스 피처 디렉터, 조선일보(23-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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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양의 힘

 

[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모양은 물체나 공간의 경계가 만드는 생김새다. 언어나 문화의 장벽을 넘어서 소통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주변에 모양의 독특함으로 기억되는 대상이 적지 않다. 나이키나 애플, 맥도널드와 같은 유명한 회사 로고들도 있지만, 그보다는 제품이나 건축물의 이미지가 훨씬 강렬하다. 윤곽을 따라 시선이 흐르면서 3차원적 움직임을 느끼고, 또 그 안에 있는 내용물과의 관계를 상상하게 되기 때문이다.

 

뉴욕의 타임스 스퀘어에 자리 잡은 코카콜라 전광판에서는 병의 모양을 응용한 애니메이션을 선보이고 있다./박진배 뉴욕 FIT 교수·마이애미대 명예석좌교수

 

그중 대표적 제품이 코카콜라 병이다. 주름치마를 입은 여인의 몸매를 상징하여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양적으로는 커 보이고, 손에 잡았을 때 형용하기 어려운 묘한 느낌을 주는 디자인이 특별하다. 뉴욕의 연말연시, 타임스스퀘어에 자리 잡은 코카콜라 전광판에서는 병의 모양을 응용한 애니메이션을 선보이고 있다.<사진>

 

이탈리아 스쿠터 베스파(Vespa)

 

오렌지색 손잡이로 알려진 피스카스(Fiskars) 가위나 이탈리아의 스쿠터 베스파(Vespa), 지포라이터 역시 그 특유의 모양으로 인식된 제품들이다.

 

기하학적으로 모서리가 잘려 있는 샤넬 No.5 향수병의 추상적 형태도 유명하다. 1959년부터 뉴욕의 현대미술관(MOMA)에 영구 소장되었고, 앤디 워홀의 실크스크린 작품의 소재가 되기도 하였다. 향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뉴욕의 록펠러센터에 설치된 조각은 외관의 윤곽만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인지하는 것, 이것이 모양의 힘이다.

 

지포(Zippo) 라이터/향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뉴욕의 록펠러센터에 설치된 샤넬 No.5 향수병 조각상은 외관의 윤곽만을 가지고 있다.

 

어떤 물체에 시각적인 정체성을 부여한다는 건 쉽지 않다. 색은 선택과 조합이지만 모양은 창조다. 한번 만들면 바꾸기도 어렵다. 모든 제품의 모양이 다 이렇게 인지되어 호강을 누리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제품이건, 건축이건, 그래픽이건 모양은 이미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변하지 않는 모양 그대로 간직되면서 오랜 기간 사람들에게 인지되는 지속성 또한 중요하다. 모양의 힘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흉측한 모양, 못생긴 형태를 보고 있는 건 괴롭다. ‘미(美)’는 인간이 추구하는 중요한 가치 중 하나다.

 

-박진배 뉴욕 FIT 교수, 마이애미대학교 명예석좌교수, 조선일보(22-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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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권 화요 회장

 

"병 디자인 세련되게 바꿔도 酒稅 더 붙어... 국산 술은 '싸구려'로 전락"

주세 개편 목놓아 부르짖는 '그는 미쳤다'… 조태권 화요 회장

 

술을 일찍 배웠고 지금까지 마시고 있지만 주세법까지 알아야 될 줄은 몰랐다. 증류식 소주 제조 업체인 '화요'의 조태권(71) 회장에게 "술 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고 나라의 미래를 위한 일에 왜 관심을 갖지 않으냐"며 보름 넘게 시달렸다.

"현행 주세법으로는 질 좋은 원료를 쓰거나 병 디자인을 세련되게 바꿔도 출고가가 올라 세금이 더 붙는다. 이러니 어느 누가 세계시장에 진출할 가치 있는 술을 만들려고 하겠나. 국산 술이 '싸구려 술'로 전락한 게 이 때문이다. 우리처럼 술 제조원가 등에 비례해 세금을 매기는 '종가세(從價稅)'를 하는 나라는 전 세계 네 나라뿐이다."

 

조태권 회장은 "국산 시장에만 안주해온 기득권 주류 업체는 어떤 변화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주세 개편이 이슈가 된 것은 편의점에서 수입 맥주를 '4캔 1만원'으로 팔기 시작하면서다. 국산 맥주의 주세는 '제조원가+판매관리비+이윤'을 합친 과세표준액의 72%다. 여기에 교육세와 부가세를 합쳐 출고가는 1690원대다. 반면 수입 맥주는 임의로 정한 신고가에 주세 등이 붙어 출고가는 850원대다. 애초에 경쟁이 안 되는 것이다. 2012년 시장 점유율 3.9%였던 수입 맥주는 작년에는 22.6%까지 올라갔다.

국산 맥주 회사들이 "현행 주세법 때문에 다 망하게 됐다"며 들고일어나자, 정부는 "주세 개편안을 (언제까지) 마련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 시점이 다가오면 발표를 미루곤 했다. 이달로 예정됐던 발표도 또 연기되자 조태권 회장이 참지 못한 것이다. '4캔 1만원' 수입 맥주의 충격이 있기 훨씬 전인 2013년부터, 그는 알코올 도수와 용량을 기준으로 한 '종량세(從量稅)'로의 개편을 '목놓아 부르짖어온' 인물이다.

"증류식 소주 '화요'는 희석식 소주보다 원료와 생산 단가가 훨씬 높다. 이 높은 제조 비용에 비례해 세금을 매기니 소주 시장에서 가격 경쟁이 안 됐다. 내가 '희석식 소주와는 원료와 제조 과정이 전혀 다른데 왜 같은 주세율을 매기느냐'고 따지자, 정부 관계자는 '소주는 다 똑같은 소주'라고 했다. 아예 희석식과 증류식을 따로 구분하지 않는다는 주세법 조항을 신설했다.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내가 귀찮은 존재였던 것이다. 이때부터 진로 소주병에 붙어있던 '희석식(稀釋式)' 표지가 사라졌고, 화요에는 '증류식' 표지를 못 붙이게 했다. 기계가 아닌 손으로 만들었는데도 '수제품' 표시는 안 된다는 격이었다. 이게 말이 되나."

증류식은 우리 쌀을 증류하는 전통 소주 제조법이다. 희석식은 주정(酒精)에 감미료 등 첨가물을 넣고 물로 조절하는 방식이다. 주정은 쌀·보리·고구마 등에서 추출된 녹말 전분을 연속 증류해 만들어진다.

"현행 '종가세'에서는 세금을 낮추기 위해 싸구려로 만들 수밖에 없다. 희석식 소주 업체는 값싼 원료 75%를 수입해 가공한다. 소주 업체를 수입 가공 업체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세계시장에서 경쟁해보겠다는 국산 고급 술의 개발과 수출 가능성을 막아버렸다. 주류 제조에 드는 모든 비용, 고급 용기와 포장 비용까지 세금이 붙으니 어떻게 좋은 술을 만들 수있겠나. 외국 고급 술과는 디자인 품격 면에서 경쟁이 어렵다. 이 때문에 국산 술은 서민적이고 저렴하고, 외국 술은 고급문화이고 값비싼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그는 2013~2017년 동안 종량세 개편을 위해 각 정부기관에 모두 40여 차례 민원을 냈다. 그럴 때면 담당 공무원은 '충분히 검토하겠다'는 회신을 보내준다. 통상 이런 선에서 정리되지만 그는 예외다. 회신을 받으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검토하겠다는 건가. 질문과 상관없는 항상 똑같은 모호한 답변의 반복이기에 다시 한 번 질의한다. 만약 종가세를 고수하겠다는 입장이면 왜 그런지 논리적인 답변을 부탁한다'고 다시 민원을 제기한다.

담당 공무원이 '이러이러해서 종가세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회신하면, 그는 조목조목 반박하는 민원을 다시 보낸다. 그 공무원은 다른 보직 발령을 받았을 때 아마 만세를 불렀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 그 자리에 오는 공무원이 그의 상대가 돼야 한다. 재작년 3월 10일 그가 기획재정부에 보낸 민원 내용은 이렇다.

'2013년 이후 12회에 걸쳐 같은 내용의 민원을 지속적으로 제기하였으나 귀 기관은 4년이 지난 지금까지 검토 또는 참고하겠다는 회신으로 일관하고 있다. 다시 한 번 사안의 중요성을 환기해 실효성 있는 법 개정 추진을 요청드리고자 한다.'

그렇게 시작해 뒷부분에 가서는 행정 관료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국내 주류 시장을 반세기 이상 지배해온 현 주세법의 과세표준 체계인 종가세가 기득권 세력(주류 업체)의 카르텔에 의해 굳건히 자리 잡고 있으며 이런 상황에 오랜 기간 익숙해진 선배 관료들의 암묵적인 지시와 눈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현 행정 관료의 의도적 방치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자유 경쟁의 원칙에 위배되고 국익을 저해했다.'

민간기업은 관(官) 앞에서는 작아지는 법인데, 조 회장처럼 하고 싶은 말을 이렇게 다 하는 경우는 처음 봤다.

"국가란 제도로 움직이고 이 제도를 움직이는 것은 행정 관료다. 이들 중에는 국가 경제의 근본적인 취약성을 고치려고 하기보다 현재에 안주하려고 한다. 개인의 영달에 유리한 근시안적 정책 마련에 힘쓰고 있다. 행정 관료라면 누구보다도 나라의 장래를 우선 생각해야 하지 않나."

그의 열정과 집념은 경외의 대상인데도, 담당 행정 관료들에게는 통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40여 차례 주세 개편 민원은 좌절됐다. 하지만 바로 그 뒤 터져나온 '4캔 1만원' 수입 맥주가 주세 개편을 사회적 이슈로 만들었다. 그러나 앞서 서술한 대로 정부의 개편안 발표는 세 차례 연기돼 다시 표류(漂流)하게 됐다.

주세법의 기본 취지는 일반 국민에게 음주를 절제시키고 보건 향상에 기여하려는 것이다. 물론 현실은 취지와는 다르다. 1949년 주세법을 처음 제정할 때만 해도 양곡이 부족한 시절이라 밀주 방지와 곡물 절약이 목적이었다. 그때는 종량세였다. 1967년부터는 주세 세수 증대를 위해 종가세 체제로 바꿨다. 이제 종량세로 개편하면 주세 감소가 예상된다. 재정 확대를 위해 증세(增稅) 카드를 만지고 있는 현 정권이 술에서 세금이 적게 걷히는 걸 받아들이겠나?

"우리나라에 산업이 없던 시절에는 주세가 전체 세수의 15%를 차지했다. 지금은 1.1%(3조원)에 불과하다. 술은 더 이상 크게 비중 있는 세원이 아니다. 또 종량세로 개편한다고 해서 세수 감소는 거의 없는 걸로 나온다."

일부 음식점에서 소주와 맥주 각 1병 주문해도 1만원이다. 이런 상황에 종량세로 개편하면 '서민의 술'인 소주 가격이 또 인상되지 않겠나? 주세 개편을 연기한 데는 아마 이 문제가 가장 컸을 것이다.

"소주 값 인상이라는 단순 논리를 퍼뜨려 주세법 개정을 막으려는 것이다. 한 달 전 정부 관계자가 소주 업체 대표들과의 간담회에서 '세율을 조정해 21도 미만 소주는 현재의 세금으로 묶어놓겠다'고 했다. 세금으로 인한 소주 가격 인상은 없을 것이라는 뜻이었다."

 

정부 관계자가 왜 소주 업체 대표들 앞에서 그런 발언을 했나?

"이번 정부 관계자는 '술 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위해 주세 개편은 꼭 필요하다'는 의지를 갖고 있었다. 그는 종량세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소주 업체 대표들에게 '세금 인상이 없으면 걱정할 게 없지 않으냐'고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업체 대표들은 '왜 빨리 하려고 하느냐. 천천히 검토한 뒤에 하자'고 했다. 이 업체들 중에서 '주세가 개편되면 소주 값이 오른다'는 소문을 흘리고 있다. 당초 개편안 발표 예정일을 앞두고 진로하이트 측이 '참이슬' 가격을 기습 인상했다. 마치 주세 개편으로 가격이 오르거나 오를 수 있다는 것처럼 비치게 했다."

정부 관계자에게 직접 확인해보니 "소주에 대한 세금은 절대 안 올린다"고 말했다. 그런데 왜 소주 업체들은 종량세에 반대하나?

"2017년 국내 소주 시장 점유율은 하이트진로('참이슬') 48%, 롯데칠성음료('처음처럼') 18%, 무학('좋은데이') 11%이다. 이들의 독과점 구조다. 국내시장에만 안주해온 이 업체들은 어떤 변화도 원치 않는다. 종량세로 개편되면 가격 경쟁력이 생긴 증류식 소주로 시장 판도가 바뀔까봐 겁내는 것이다. 과거에 일본이 주세법 개정으로 그렇게 됐다. 내가 '당신네는 자금력과 유통망을 갖춘 대기업인데 이제 질 좋은 증류식 소주를 만들어 세계와 경쟁해야 되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정부가 개편안 발표를 또 연기한 것은 이들의 로비 때문으로 보나?

"어떤 식으로든 있겠지만 담당 부처인 기재부는 술 산업의 경쟁력을 위해 이번 기회에 주세 개편을 해야 한다는 쪽이다. 반면 청와대와 여당에서는 부정적이라고 들었다. 박근혜 정부가 담뱃값 인상으로 지지율이 크게 떨어졌던 것처럼, 주세 개편으로 만에 하나 소주 값이 인상되면 내년 총선에서 망한다고 보는 것이다."

눈앞의 표(票)만 계산하면 무슨 개혁이 되겠나?

"몇 년 전부터 차별적인 맛과 품질의 수제 맥주 업체들이 부쩍 생겨났다. 모두 중소 상공인이다. 하지만 현행 종가세로는 가격 경쟁이 안 돼 살아남을 수 없다. 세계 주류 시장 규모는 1600조원인데 국내시장은 4조4000억원에 불과하다. 한국 술의 세계 경쟁력이 전혀 없다는 뜻이다. 기존 주류 업체들은 우리 술을 수출해 번 돈은 몇 푼 안 되고, 오히려 수입 양주·맥주를 들여와 많은 이윤을 남기고 있다. 현 정권이 이런 기득권 대기업을 두둔할 이유가 무엇이 있나."

10년 전 한식의 고급화를 부르짖던 그를 인터뷰해 '그는 미쳤다'는 제목으로 쓴 적이 있었다. 그의 말이 백번 옳았다.

한국인 남성은 연간 16.7L 술을 마신다. 소주병으로는 273개, 캔맥주로는 668개다. 남성 100명 중 12명이 술과 관련된 질환이나 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여성의 술 섭취량은 남성의 4분의 1이다.

-최보식 선임기자, 조선일보(19-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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