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가벗은 여인을 훔쳐보는 이들의 위선
한 여인이 끔찍한 죽음과 지옥의 마귀 사이에 서 있다. 왕관을 쓰고 샌들을 신었으되 몸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그녀는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살피느라 바로 옆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는 '허영'의 상징으로, 세속적 욕망에 사로잡힌 영혼이 닿을 곳은 지옥뿐이라는 '메멘토 모리', 즉 죽음을 기억하라는 교훈을 담고 있다.
한스 멤링, 허영심, 1485년경, 나무판에 유채, 각각 22x15, 스트라스부르 미술관 소장.
한스 멤링(Hans Memling·1430년경~1494년)은 당대 문화의 중심지였던 벨기에 브루게 최고의 화가였다. 필사본 삽화의 전통을 이어 마치 돋보기로 들여다본 듯 치밀하게 묘사한 세부와 서정적 풍경의 조화는 종교화뿐
아니라 초상화에서도 빛을 발했다. 브루게는 물론이고 이탈리아와 멀리 스페인에서도 고객들이 찾았던 덕에
멤링은 1480년 브루게 부호 875명의 명단에 들어갈 정도로
부를 쌓았다. 이 작품 역시 볼로냐의 정치적 실세였던 로이아니가(家)의 주문을 받은 것이다.
노트 한 면보다도 작은 이 그림들은 경첩으로 연결되어 눈앞에 펼쳐두고 혼자서 명상과 기도를 하기 위한 개인 용도의 제단화처럼 사용됐다. 그런데 이토록 아름다운 젊은 여인의 나체를 손에 들고 기도가 잘됐을지는 의문이다. 1972년 영국의 평론가 존 버거는 저서 '다른 방식으로 보기'에서 이 그림을 두고 자기의 쾌락을 위해 벗은 여자를 그려 놓고 거울 하나를 쥐여준 다음 허영이라고 비난한다며
보는 이들의 위선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실제로 이 그림은 누드화의 역사에서도 이례적일 정도로 신체 묘사가
자세하다. 과연 여인을 낱낱이 발가벗기고 부정하다며 손가락질하면서 정작 훔쳐보는 즐거움에 빠졌던 이들이
지옥을 피해 갈 수 있을까.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조선일보(19-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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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인물] 2011년 5월 30일 고혹적 누드화의 작가 김종하 별세
2011년 5월 30일
고혹적 누드화의 작가 김종하 별세
김종하 화백의 ‘여인의 뒷모습’.
머리를 틀어올리고 앉아 선 고운 뒤태를 드러낸 여인의 누드, 여명(黎明) 속에서 스타킹을 신고 있는 알몸의 여인….
고혹적이면서 품격 있는 여인의 누드를 즐겨 그려온 김종하(金鍾夏·93) 화백이 30일 오후 4시 10분쯤 노환으로 별세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에 차려졌다.
1918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 화백은 1932년 14세의 나이로 조선미술전람회에 최연소 입선, ‘신동’으로 불리며 화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 해 일본 도쿄로 건너가 아르바이트를 하며 야간으로 일본 가와바다 미술학교를 다녔다. 1941년 동경제국미술대학을 졸업하면서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1942년엔 조선미술전람회에 특선했다.
1956년 한국 최초의 상업화랑인 반도화랑이 개관할 때 박수근과 함께 2인전을 열었고, 그해 말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나 다양한 유파들을 연구하면서 작품활동을 했다. 1959년 귀국한 후에도 파리와 서울을 오가며 활동했다. 1950년대 말~1960년대 초엔 조선일보에 ‘파리의 이모저모’, ‘오후의 파리’ 등 파리의 풍물을 그린 삽화와 글을 연재해 해외 사정에 어두웠던 국내 독자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줬다.
2008년 1월엔 62세 때인 1980년에 그린 ‘여인의 뒷모습’이 당시로서는 인터넷 경매 사상 최고가인 1억7100만원에 낙찰돼 화제가 됐으며, 지난 3월 롯데호텔 갤러리 개관 기념으로 열린 ‘1956 반도화랑:한국근현대미술의 재발견’전에도 누드와 풍경, 정물 등 작품 10점을 내놓았다.
무심한 표정의 여인들을 고요한 색채로 그려내 서늘한 에로티시즘을 유발하는 것이 고인 특유의 화풍이다. 미술평론가 김윤섭은 고인의 작품에 대해 “초현실적으로 표현한 ‘인간의 욕망’은 김 화백의 주요한 모티브다. 평범해 보이는 풍경이나 일상도 그의 붓 끝에선 아득하고 몽환적인 생명력을 새롭게 얻는다”고 평했다.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심사위원, 한국미술대상전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2002년엔 문화관광부에서 주는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유족은 딸 김명순씨.
-조선닷컴(19-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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