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時事-萬物相]

[세계는 기술 전쟁, 한국은 '불 꺼진 연구소'] [한·일 공생의 궤도는.. ] [미·북 쇼는 "적대 관계 종식" 과대 포장, 日 보복엔.. ]

뚝섬 2019. 7. 3. 08:23

세계는 기술 전쟁, 日은 기술 보복, 한국은 '불 꺼진 연구소'

 

일본이 무역 보복 조치를 발표한 다음 날 본지에 '불 꺼진 연구소들' 사진이 실렸다. 지난 1일부터 국책 연구기관이 주 52시간 근로제의 예외 업종에서 제외되면서 과거 같으면 밤늦게까지 일하던 연구자들이 오후 6시에 다 퇴근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국책 연구소가 밀집한 대덕연구단지에선 오후 6시에 컴퓨터를 강제 종료시키고 더 일하려면 별도 결재를 받도록 했다고 한다. IT· 통신·우주항공 등 국가 차원의 전략 기술이나 군사·안보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소들이 6시만 되면 강제로 문을 닫는 상황이 됐다. 일본이 우리의 기술 약점을 겨냥해 보복을 가하고 전 세계가 과학기술 개발에 총력전을 벌이고 있는데, 우리는 연구·개발자들이 일하고 싶어도 못 하게 막는 기막힌 나라가 됐다.

반도체 소재 3종을 타깃 삼은 일본의 무역 보복은 한국 산업의 취약한 기술력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 산업은 세계시장의 60%를 차지하는 압도적 1등이지만 생산 장비와 소재는 국산화 비율이 각각 17%, 50%에 불과하다. 핵심 소재와 장비 시장을 일본이 석권하고 있다. 반도체 소재 중 가장 많이 필요한 실리콘 웨이퍼는 일본 기업이 세계시장의 60%를 점유하고 있고, 감광재 점유율은 99%, 차단재는 78%에 달한다. 한국에도 소재·장비 업체가 있지만 품질에서 따라가지 못한다. 반도체는 우리 경제성장률의 절반을 차지하는 핵심 산업이지만 일본제 소재·장비 없이는 굴러가지 못한다는 사실이 새삼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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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뿐 아니다. 스마트폰도 OLED 패널 증착 장비의 90% 이상이 일본제이고, 전자나침반이나 터치스크린 같은 원천 기술은 대부분 일본이 갖고 있다. 자동차는 반도체에 이어 우리의 둘째 큰 수출품이지만 일본 기술 없이는 전기차나 친환경차를 만들지 못한다. 자율 주행차 등에 삽입되는 초정밀 카메라의 광학렌즈 원천 기술도 일본이 가지고 있다. 세계 1위 조선산업은 고성능 친환경 도료의 90% 이상을 일본 제품을 쓰고 있으며, 건설 분야에선 미니 굴착기의 90%를 일본 등에서 수입하고 있다. 일본이 몽니를 부리면 주력 산업 대부분이 타격을 입는 구조. 지난해 한국은 일본과의 무역에서 241억달러 적자를 기록했는데, 그 대부분이 부품·소재 수입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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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기술의 대일(對日) 의존도를 줄이려면 자체 기술을 개발하고 기술력을 키우는 방법밖에 없다. 그런데 이를 지원해야 할 정부가 도리어 기술 경쟁력의 발목을 잡는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52시간제 때문에 불이 꺼진 것은 국책연구소만이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경직적인 근로시간 단축 제도를 보완 조치도 없이 무리하게 시행하는 바람에 민간 기업의 연구소나 개발 부서도 밤만 되면 텅 빈 사무실로 변해버렸다. 과제가 몰릴 때는 집중적으로 일해야 하는 연구개발 직종의 특성을 감안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52시간 근무를 강제했기 때문이다. 전 세계의 연구개발자들이 밤샘하고 휴일에도 일하며 기술 개발에 몰두하는데 한국 연구소에선 강제로 컴퓨터가 꺼진다. '저녁을 즐기다 저녁 끼니를 굶게 될 것'이란 경고를 흘려들어도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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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위 수사를 받고 있는 삼성전자는 주주 환심을 사기 위해 투자에 써야 할 사내 유보금 5조원을 주식 소각에 사용했다. 구글·애플 등 글로벌 기업이 적극적인 타 기업 인수로 핵심 기술을 확보하는 전략을 펴고 있는데 삼성전자는 지난 2년간 이렇다 할 인수·합병 실적을 보이지 못했다. 경영권을 약하게 만드는 일련의 법안이 추진되면서 대기업들이 공격적 투자를 꺼리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과도한 규제는 신기술의 출현과 상용화를 가로막고 있다. 낡은 규제 때문에 바이오·인공지능·빅데이터 등 미래 기술 경쟁에서 갈수록 뒤처지고 있다. 기술력이 경제는 물론 군사 안보를 포함한 총체적 국력을 좌우하는 기술 전쟁의 시대다. 일본의 무역 보복은 한국의 급소를 정확히 찔러온 것이다. 강제로 연구소 컴퓨터를 끄는 나라는 앞으로도 당할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19-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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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공생의 궤도는 지키자

 

경제·산업계를 오래 출입하다 보면 한국과 일본의 관계에 대해 좀 더 냉정한 시각을 얻게 된다. 드러나지 않는 부분에서 양국의 관계는 깊고 복잡하게 얽혀 있다. 좋고 나쁨을 떠나 한·일 유수의 기업 중 상대 국가와 관계를 맺지 않은 곳을 찾기 어렵다.

한국산 반도체가 일본산 화학제품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한국이 일본에서 반도체 기술을 배워왔다는 사실과 관련이 깊다. 반도체 기술의 전래는 TV나 냉장고 같은 가전제품을 합작 생산하고, 그 과정에서 상호 교류해 온 기존의 관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국에서 일찌감치 제조업을 시작한 기업 중엔 일본에서 설비 일체는 물론이고, 아예 사람을 보내 기술과 경영 방식까지 배워온 경우가 흔하다. 지금도 많은 중소기업이 일본의 기술 인력을 한국으로 초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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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의 경제 관계가 좀 더 상호적으로 변화한 것은 비교적 최근 일이다. 한국은 1980년대까지 일본의 생산기지 역할을 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2000년대 들면서 반도체와 IT(정보기술) 기기 분야에서 청출어람(靑出於藍)한 한국 제품이 일본에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소니나 파나소닉 등 일본 대표 브랜드가 한국산 부품으로 TV와 스마트폰, PC를 만든다. 한국의 생활양식과 대중문화가 일본에 소개되면서 한국산 소비재의 대일 수출도 크게 늘었다. '한·일 무역 역조'라는 제목이 신문에 더는 나오지 않게 된 것도 이때부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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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관점에서 보든 한국과 일본 산업은 하나의 생태계가 된 지 오래다. 최소한 일제강점기 이후 일본과 한국 경제는 서로 긴밀한 영향 아래 발전해왔고, 그 과정에서 결코 일방적이지 않은 의존 관계를 맺고 있다. 섬유산업에서 중공업, 가전제품, 반도체, IT, 그리고 문화 콘텐츠로 이어 온 일본 경제의 발전 과정을 한국이 10~20여 년의 격차를 두고 뒤따라 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일본의 개별 산업 발전 과정에 한국의 자원과 노동력이 투입되며 그 과정을 봤고, 한국이 그 뒤를 좇아 신산업에 뛰어들면 이미 성숙한 일본의 기반 산업이 한국의 부족한 산업 생태계를 메워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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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상대국 없는 한국 혹은 일본 경제의 성공을 논하기는 어렵다. 세계를 휩쓴 일본 애니메이션 중 상당수가 한국의 하도급 업체와 함께 만들어졌다. 그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란 청년들이 세계에 한류 붐을 일으키는 콘텐츠를 만들고, 그 콘텐츠를 본 일본 청년들이 한국에 넘어와 글로벌 스타가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 청년들이 매년 수천 명씩 일본 기업에 입사하는 일이 어색하지 않다. 이것이 오늘날 한·일 관계의 큰 흐름이다. 양국이 과거사를 놓고 시시비비를 따질 수 있지만, 양국 간 '공생과 번영의 궤도'에서 벗어난다면 도대체 무슨 이득이 서로에게 있겠는가.

 

-정철환 산업2부 차장, 조선일보(19-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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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북 쇼는 "적대 관계 종식" 과대 포장, 日 보복엔 침묵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국무회의에서 "북·미도 사실상의 행동으로 적대 관계 종식과 새로운 평화시대의 본격적인 시작을 선언했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미·북 정상이 군사분계선에서 만난 것은 의미가 있지만 정작 중요한 비핵화를 위한 실질적 조치는 한 발짝도 나아간 게 없다. 문 대통령 말처럼 적대 관계가 종식됐다면 미국의 '적대시 정책'을 핵개발 명분으로 삼아온 북한은 모든 핵무기를 내려놓아야 한다. 북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앞으로 북핵 폐기 협상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언제든 위기가 재연될 수 있다. 이 경우에 대비하는 것이 안보 최고 책임자의 책무다.

문 대통령은 북핵 낙관론을 펴면서 일본의 무역 보복 문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베 일본 총리는 직접 나서 "WTO 규칙에 어긋나지 않는다"며 압박해 오는데 국무회의서 논의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청와대는 산업자원부에 맡긴다고 한다. 우리 대법원 판결 때문에 외교 충돌로 번진 사안을 어떻게 산자부가 해결하나. 전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해보려 한 것을 '사법 적폐'로 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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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이런 입장인 것은 일본이 실제로 보복을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할 것이란 판단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일본의 보복이 국내에 반일 감정을 불러일으켜 정치적으로 손해 볼 것도 없다는 계산을 했을 수 있다. 아베도 보복 조치 후 일본 국내 지지율이 올라가고 있다고 한다. 양쪽이 이렇게 무책임하게 부딪치면 예상치 못한 심각한 사태가 벌어질지 모른다.

 

-조선일보(19-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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