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전날 달밤에 송편 빚을 때
추석 전날 달밤에 마루에 앉아
온 식구가 모여서 송편 빚을 때
그 속에 푸른 풋콩 말아 넣으면
휘영청 달빛은 더 밝아오고
뒷산에서 노루들이 종일 울었네.
"저 달빛엔 꽃가지도 휘이겠구나!"
달 보시고 어머니가 한마디 하면
대수풀에 올빼미도 덩달아 웃고
달님도 소리 내어 깔깔거렸네.
달님도 소리 내어 깔깔거렸네.
-서정주(1915~2000)
밝다, 환하다, 풍성하다, 즐겁다, 정겹다. 무엇이? 달밤이, 마당이, 웃음이, 노루와 올빼미가, 송편 빚는 식구가. 휘영청 달 밝은 마루에서 달빛과 웃음과 수다까지 섞어서 송편을 빚는 이 추석 풍경! 참 넉넉하고 여유롭게 다가온다. 한가위가 그려낸 풍경화다. 달빛에 꽃가지가 휘어진, 달도 깔깔 웃는 풍경화다. 옛날은 이랬다. '그리운 옛날'이라고
하면 너무 낭만적일까.
가을과 풍요의 상징이었던 추석 풍경이 오늘날은 어딘가 고단해 보인다. 정감의 물기가 말라
보인다. 추석 증후군이라는 말까지 생겨날 정도이니. 생활의
얼개가 너무 촘촘해서일까. 삶이 고달프고 팍팍해서일까. 좋은
풍경화가 시드는 것 같아 아쉽다. 올 추석에는 만남이 부드럽고 정겨운 그림 한 폭을 그려봄이 어떨는지. 달빛이 마음마당을 더 환히 밟아 오게.
-조선일보(19-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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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편] '달 차오르듯 흥하길'... 반달 모양으로 송편 빚는 이유
'백제는 둥근달이라 곧 저물고 신라는 초승달이라 곧 차오른다'
백제 말기, 무당이 의자왕에 예언
그 후 추석에 반달 모양 송편 먹으며 소원 빌었다는 이야기 전해져
우리 조상은 추석에 햇곡식으로 송편을 지어 먹었어요.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불분명합니다. 고려 말 학자 이색의 시문집 '목은집'에 '팥으로 속을
채운 떡을 먹었다'는 대목이 있어, 이걸 송편의 일종으로
보고 고려시대부터 사람들이 두루 송편을 먹기 시작했을 것으로 짐작할 따름이죠. 송편의 유래에 대해선
재미있는 이야기가 여럿 전해옵니다.
◇새알을 빚어 반달 모양으로 만든 송편
송편은 멥쌀가루를 뜨거운 물로 반죽해 콩, 깨, 밤
등의 소를 넣고 찐 떡입니다. 소나무 송(松)자에 떡 병(餠)자를 써서 '송병'이라고 부르다가 조선 후기에 송편으로 바꿔 부르게 됐어요. 시루에 솔잎을 켜켜이 놓고 쪄내 은근한 솔 냄새가 나고 떡에 솔잎 자국도 남아있어 붙은 이름이 아닌가 합니다.
▲/그림=안병현
조선시대의 방랑시인 김삿갓은 송편에 대해 이런 시를 지었어요. "손바닥에 빙빙 돌려 새알을 빚더니/ 손가락 끝으로 낱낱이
조개 입술을 맞추네/ 금 쟁반 위에 오뚝오뚝 세워 놓으니 일천 봉우리가 깎은 듯하고/ 옥 젓가락으로 집어 올리니 반달이 둥글게 떠오르네."
◇"백제는 둥근달, 신라는 초승달"
시에서 묘사하듯 송편은 반달 모양입니다. 반달 모양으로 빚게 된 유래에 대해 '삼국사기'에 이런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삼국시대 말기 백제의 궁궐에 귀신이 들어와 '백제가 망한다'고 외치고 땅으로 꺼졌다고 해요. 의자왕이 괴이하게 여겨 사람을 시켜
땅을 파게 하니 그 자리에서 거북이 한 마리가 나왔어요. 거북이 등에
'백제는 둥근달 같고 신라는 초승달 같다'는 글이 쓰여 있었죠. 왕이 무당을 불러 의미를 물으니 "둥근달 같다는 것은 가득
차 기울어진다는 뜻이고, 초승달 같다는 것은 점차 가득 차게 된다는 뜻이니, 백제는 망하고 신라는 흥하게 될 것"이라고 했어요. 화가 난 의자왕은 무당의 목을 베어버렸죠.
하지만 무당의 말처럼 신라가 일어나 백제는 멸망했어요. 이에 후세 사람들은 송편을 반달
모양으로 빚어 먹었다고 해요. 초승달 같은 신라가 보름달 같은 강국이 됐듯이, 백성들도 반달 모양 송편을 먹으며 소원을 빌면 달이 차오르듯 소원을 이룰 수 있을 거라 믿은 거예요.
◇이괄의 난과 인조의 인절미
추석에 먹는 떡은 송편뿐 아니에요. 인절미도 별미랍니다.
조선 후기에 홍석모는 '동국세시기'에 추석에
시장에서 인절미라는 떡을 팔았다고 기록했어요. 인절미는 찹쌀가루를 쪄서 떡을 만들어 볶은 콩가루나 참깨를
묻혀 먹는 음식이죠.
충남 공주에 인절미라는 이름에 얽힌 역사적 일화가 전해 내려옵니다. 조선 제16대 왕 인조 때인 1624년, 당시
평안도 병마절도사로 있던 이괄은 역모를 꾀한다는 누명을 쓰게 되자 억울함과 분노에 못 이겨 진짜 반란을 일으킵니다. 인조는 한양을 떠나 공주로 피란을 가야 했죠. 인조는 공주 공산성에
머물며 반란이 진압되기를 기다렸어요.
그러던 어느 날 공주에 사는 임(任)씨라는 사람이
콩고물에 무친 떡을 왕에게 올렸어요. 마침 시장했던 왕은 떡 몇 개를 맛있게 먹고 나서 떡 이름을 물었어요. 하지만 떡 이름을 아는 사람은 없었어요. 그저 임씨라는 백성이 올렸다는
말만 듣게 됐지요. 인조는 "그 맛이 빼어나 '절미(絶味·뛰어난 맛)'이니, '임절미(任絶味)'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어요. 세월이 지나면서 '임절미'는 발음하기 편하게 '인절미'로 바뀌었다는 거고요.
재밌는 일화지만 사료와는 다른 내용입니다. '고려사'에
이미 종묘대제에 인절미를 올렸다는 기록이 나오거든요.
[조선시대에 약과는 사치품?]
명절이면 문화유적지나 문화행사장에서 ‘약과 만들기’ 등을 합니다. 약과는 우리 조상들이 즐겨 먹었던 대표적인 ‘유밀과’입니다. 유밀과는 밀가루나 쌀가루를 꿀·참기름으로 반죽해 다식판 또는 약과판에 찍어내거나 썰어서 바싹 말린 다음, 기름에 튀겨 꿀에 담가뒀다가 먹는 과자죠.
유밀과는 고려시대부터 명절 음식으로 널리 유행했어요. 그렇지만 고려 명종과 공민왕, 조선 태조와 세종, 성종 등 여러 왕이 유밀과를 금지했어요. “유밀과를 만드느라 곡물과 꿀, 기름 등을 많이 써서 민생이 어려워진다”는 이유였죠.
-지호진 어린이 역사 저술가/기획·구성=양지호 기자, 조선일보(19-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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