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중반부터 연습만 하다 불빛·폭죽·갈채의 무대 섰는데
비난·조롱 쏟아지면 공황… 사회가 이들을 死地로 내몰아
개그맨 네 명이 이른바 맛집을 찾아가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을 먹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말 그대로 '푸드 포르노'라고
할 만하다. 넷이서 돼지갈비 24인분을 먹은 적도 있고 떡볶이 1인분 2000원인 분식집에서 각종 분식 5만6500원어치를 먹기도 했다. 이들은
많이도 먹지만 맛있게도 먹는다. 온갖 먹는 프로그램 홍수 속에서 장수하는 비결이다.
그런데 이들도 싫어하는 음식이 있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먹는 모습을 가끔 본다. 워낙
뭐든지 잘 먹는 사람들이란 틀이 짜여 있어 피할 수 없는 모양이다. 이 프로를 보면서 언젠가 '먹을 수 없는 것을 먹는 사람들' 같은 프로도 나올 것이란 생각을
했다.
시청자들은
개그맨들의 촬영이 끝난 뒤 모습은 알지 못한다. 설령 복통을 호소하며 응급실에 실려 갔다 하더라도, 그 모습을 들키면 안 되는 게 연예인이다. 그러나 대중은 이들의
카메라 바깥 모습도 알고 싶어 한다. 그 직업적 숙명을 어떻게 다스리느냐가 연예인이란 직업을 유지하는
데 최대 관건일 수도 있다. 어떤 직업보다 철학적 고민이 필요한 직업이 연예인이다.
우리나라
아이돌은 대개 스무 살 안팎에 데뷔하는데, 대개 중·고생 시절부터 학업을 전폐하고 연습생으로 훈련받는다. 매일 연습실에 출근해 기초 체력, 안무, 노래 같은 시간표에 따라 밤늦게까지 주 6일을 훈련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2~3년 만에 데뷔하면 운이 좋은 편이다. 계획대로 데뷔가 이뤄지지 않으면 그만큼 시간과 비용이 더 든다. 데뷔하는
데 6~7년이 걸리고 비용이 한 그룹당 10억원까지 드는
경우도 있다.
어렵게 데뷔했다 해도 1년 안에 '모 아니면
도'의 성적표를 받는다. 그 성적은 연습을 더 많이 한다고
오르지 않는다. 대개 다른 그룹으로 다시 데뷔해서 다시 성적을 받는 방식을 택한다. 이런 과정을 두어 번 거쳐도 스타가 되지 못했을 때, 20대 초반
연예인 지망생이 떠안는 좌절감은 엄청날 것이다.
성공적으로 데뷔해 인기를 누리는 아이돌에겐 '연예인 스트레스'가 기다리고 있다. 우선 이런저런
TV 프로그램에 불려나가야 하는데 이게 보통 걱정거리가 아니다. 배운 건 춤과 노래뿐인데
말을 잘하거나 웃기거나 희한한 재주를 보여줘야 한다. 그런 프로그램에 나가 얼굴을 알려야 출연료 높은
각종 행사에 섭외되거나 광고 모델 제안을 받을 수 있다. 시청률 낮은 프로라 해도 데뷔시켜 준 방송사
눈치가 보여 거절할 수도 없다. 그런 TV에 나가봐야 할
이야기가 없으니 연습생 때 있었던 일 아니면 맨날 붙어 다니는 매니저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춤과 노래, 토크쇼까지 어찌어찌 통과하면 '만능
엔터테이너'라는 타이틀이 붙는다. 이쯤 되면 자신을 데뷔시킨
회사와 계약이 만료될 시점이다. 이때쯤 좋아하는 사람도 생기고 전 소속사가 엄격히 금지했던 사생활에
대한 욕심도 커진다. 그러다가 크고 작은 스캔들이 터진다. 잘못에
비해 감당할 수 없는 비난과 조롱, 악의적인 가짜 정보들이 인터넷에 퍼진다. 10대 중반부터 회사에 소속돼 연습만 하다가 어느 날 불빛과 폭죽, 갈채의
무대로 갈아탄 이들의 삶이 급격히 흔들린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가르쳐 주는 어른 한 명 만나 지 못한 채 스마트폰 쥐고 밤을 지새운다.
재능을 상품으로만 생각하며 인성 교육에는 한 푼도 투자하지 않는 기획사, 이들의 상품성을
시청률의 도구로만 쓰는 방송사, 그런 상품을 아무런 비판 없이 소비하는 시청자는 단단한 고리로 연결돼
있다. 이 고리를 어떻게든 바꾸지 않으면 연예인이란 극한 직업을 견디지 못하고 최악의 선택을 하는 일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한현우 논설위원, 조선일보(19-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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