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4·3 추념사 속 "먼저 꾼 꿈"이 던지는 의문]
['북한' 숨긴 추모사에 천안함 어머니 절규, 文 진심은 뭔가]
[뻔뻔한 '천안함 괴담' 유포자들]
[잊지 않는 국민이어야 평화 지킨다]
[독일군 '낫질'이 멈춘 곳, 老정객의 도박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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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4·3 추념사 속 "먼저 꾼 꿈"이 던지는 의문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제주 4·3 사건 72주년 추념식에 참석해 "원점으로 돌아가 그 학살의 현장에서
무엇이 날조되고, 무엇이 우리에게 굴레를 씌우고, 무엇이
제주를 죽음에 이르게 했는지 낱낱이 밝혀내야 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누구보다 먼저 꿈을 꾸었다는 이유로 제주는 처참한 죽음과 마주했고, 통일 정부 수립이라는 간절한 요구는 이념의 덫으로 돌아와 우리를 분열시켰다"고도
했다. 문 대통령은 2018년 4·3 70주년 추념식에도 참석해 사과를 했다. 현직 대통령이 재임 중 제주 추념식 행사에 두 번 참석한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4·3 사건은 남로당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반대해서 일으킨 무장 폭동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민간인 희생자가 다수 발생한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다. 군경의 반란 진압 과정이 지나쳐 억울하게 희생된
민간인에 대해서는 국가가 마땅히 위로·사과·보상을 해야 한다. 그러나 그 대상에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폭동을 일으킨 남로당과 그 배후인 북한까지 포함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대통령은 '먼저 꿈을 꾼 사람들'이라며 정부 수립에 반대한 무장 폭동 자체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듯이 말했다. 문 대통령이 말한 '꿈'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문 대통령은 이날 "교과서에 4·3이 '국가 공권력에 의한 민간인 희생'임을 명시하고, 진압 과정에서 국가의 폭력적 수단이 동원됐음을 기술하고
있다"며 "뜻깊다"고도 했다. 자유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한 이승만 정권의 '국가 폭력'을 강조하면서 정작 남로당과 북한 책임은 거론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천안함 폭침 추모 행사와 현충일 기념사에서도 책임 주체인 '북한'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적이 없다. 대한민국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로 보는 역사 인식 연장선에 있는 것
아닌지 우려스럽다.
-조선일보(20-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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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숨긴 추모사에 천안함 어머니 절규, 文 진심은 뭔가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취임 후 처음으로 '서해
수호의 날' 기념식에 참석했다. 제2연평해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 북한의 서해 도발로 순국한 우리 장병 55명을 추모하는 국가기념일이다. 군 통수권자라면 모든 일정을 뒤로하고 기념식에 참석해야 마땅하지만 문 대통령은 해외 순방과 다른 국내 일정을
이유로 계속 불참했다. 문 대통령의 10분에 걸친 기념사에서 '북한'이란 단어는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순국 장병들이 누구의 공격으로 희생됐는지를 숨기는 추모사도 있나.
이날 분향하는 문 대통령에게 백발의 천안함 유족이 다가갔다. 고(故) 민평기 상사의 어머니(77)였다. "대통령님, 이게 누구 소행인가 말씀 좀 해주세요" "가슴이 무너집니다"라고 했다. 절규와 같았다. 문 대통령이 민 상사 어머니에게 "북한 소행이란 정부 입장이 있다"고
답하는 장면이 찍혔다. 그렇다면 왜 공식 추모사에서 이를 밝히지 못하나.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문 대통령은 천안함 폭침 5년 뒤에 "북
잠수정이 천안함 타격"이라고 했다. 그때까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은 온갖 천안함 괴담을 지어내거나 편승해왔다. 문 대통령이 이 괴담에 종지부를 찍었지만
범여권 세력의 '진심'이 무엇인지는 의문이다. 북한의 소행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게 됐지만 그렇다고 북한의 도발에 대해 분개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이들은 북한이 첫 핵실험을 해 민족의 앞날에 암운을 드리운 몇 달 뒤에 북한 관계자들과 춤을 추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에서 '4·19 60주년' '5·18 40주년' '6·15 선언 20주년'은 말하면서 6·25 발발 70주년이라는
것은 언급하지 않았다. 6·25는 현대사 최대의 사건이자
비극이다. 그런데도 6·25만 뺀 것은 남침 전범의 손자가 김정은이기 때문이다. 취임
후 3년 연속 6·25 기념식
당일 행사에 불참했다. 6·25 호국 영령을 추모하는
현충일 기념사에서도 3년간 '6·25'와 침략 주체인 '북한'을
직접 거론하지 않았다. 오히려 6·25 남침에 공을 세워 김일성에게서 훈장을 받은 인물을 국군의 뿌리인 것처럼 추켜세웠다. 천안함 폭침 주범 중 한 명인 김영철을 받아들여 국빈 대우하기도 했다.
이것이 문 대통령의 진심 아닌가.
문 대통령이 서해 수호의 날 행사에 참석한다고 하자 마음에도 없는 총선용 쇼를 한다는 지적이 일었다.
하지만 군 통수권자로서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한 국민도 많았다. 하지만 그의 추모사는
진심이 다른 데 있다는 사실만 보여줬다. 지금 "김정은이
위인"이라는 세력까지 활개치며 야당 선거를 방해하고 경찰은 구경만 하는 지경이다. 희생된 장병의 유족들 심정이 어떻겠나. 고 민평기 상사의 부모는
유족 보상금 1억여원을 내놓아 기관총 18정을 해군에 기증했다. 대한민국은 군 통수권자가 아니라 이런 분들이 지키고 있다.
-조선일보(20-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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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뻔한 '천안함 괴담' 유포자들
10년 전 천안함 폭침 직후 북 어뢰 공격을 부정하는 첫 괴담이 '좌초설'이었다. 이를 제기한 민간 잠수업자에게 판단 근거를 물었더니 "딱 보니 좌초"라고 했다. '천안함을 실제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인양 TV 중계 때 처음 봤다"고 했다. 이 사람은 세월호 침몰 때도 '다이빙 벨' 주장으로 현장에 큰 혼선을 일으켰다. 5년 뒤 민주당 중진 의원은 방송에서 "천안함 옆에 난 스크래치를 봤느냐. 좌초"라고 했다. 스크래치는 인양 과정에서 생긴 것이다. 그는 "북 소행이라고 믿고 싶지가 않다"고 했다. 이 말이야말로 진심일 것이다.
▶'내부 폭발설'도 있었다. 천안함 절단면이 밖에서 안으로 심하게 휘어진 것으로 드러나자 사라졌다. '미군 핵잠수함 충돌' 괴담이 안 통하자 '소형 이스라엘 잠수함 충돌설'이 튀어나왔다. 북한 소형 잠수정 소행으로 발표되자 "그럴 능력이 없다"는 주장이 퍼졌다. 한 괴담이 근거를 잃으면 다른 괴담이 대신한다. 괴담끼리 서로 모순되기도 했다.
▶인터넷 매체 대표가 "동해에 사는 붉은 멍게가 서해에서 인양된 (북) 어뢰 추진체에서 발견됐다"고 주장했다. 우리 군이 폭침 증거로 건져낸 북한 어뢰 추진체가 조작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붉은 멍게' 유전자 분석 결과 생명체가 아닌 것으로 판명 났다. 그는 "북 어뢰에 적힌 '1번'이란 글씨는 우리가 쓴 것 같다"고까지 했다. 민주당은 이런 사람을 천안함 민간조사위원으로 추천했다.
▶지금 집권 세력인 당시 야당은 정부 발표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세계적 금속공학자가 발표한 과학적 사실들에 대해 유시민씨는 "소설"이라고 했다. 한때는 천안함 폭침을 믿지 않아야 뭔가 잘난 사람인 양하는 풍토까지 있었다. '지방선거용 북풍 공작'이란 괴담도 크게 퍼졌다. 병사들이 집에 전화 걸어 "북한과 일부러 전쟁하려는데 막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천안함 폭침을 인정한 뒤에 괴담은 사라졌다. 사실 인정하고 말고 할 것도 없다. 북한 공격이 아니었다면 지난 10년 동안 수십 번 양심선언이 나왔을 것이다.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괴담을 주장하던 사람들은 여전히 얼굴을 들고 다닌다. 광우병 괴담, 사드 전자파 괴담을 퍼뜨렸던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광우병 괴담을 주장했던 한 사람이 미국에서 햄버거를 먹기도 했다. 천안함 괴담은 처참한 천안함 유족들의 가슴을 찢어놓았다. 괴담 유포자들은 지금껏 '미안하다'는 한마디가 없다. 그러고도 입만 열면 '정의'를 외친다.
-안용현 논설위원, 조선일보(20-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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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천안함 10주기, 잊지 않는 국민이어야 평화 지킨다
오늘이 천안함 폭침 10주기다. 북 어뢰 기습에
해군 장병 46명이 전사했다. 구조 과정에서 또 10명이 희생됐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코로나 탓에 천안함 추모 발걸음은 사이버 공간에서 활발하다. 해군과
천안함 재단 등이 마련한 '사이버 추모관'에는 1만5000여명이 헌화했다. 10년
전 초등학교 4학년생이 쓴 그림일기도 올라왔다. "너무너무
슬프다"고 꾹꾹 눌러 적었다. 그 소년이 이번에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 "우리 바다를 굳건히 지키는 장교가 될 것"이라고 했다. 평화는 잊지 않는 국민이 지키는 것이다.
이 정부는 천안함 흔적을 지우고 비틀려 해왔다. 폭침 주범 중 한 명인 북한 김영철을 국빈급
대우하며 한국을 휘젓고 다니게 했다. 통일부 홈페이지에선 김영철 이름을 아예 삭제했다. 고교 한국사 교과서 대부분은 천안함 폭침을 언급조차 않거나 '천안함
사건' 등으로 얼버무리고 있다. 2018년 남북 정상회담이
추진되자 KBS는 '천안함 괴담'을 재탕해 내보내기도 했다. 북은 이명박 정부에서 식량 등을 지원받으려고
천안함 공격을 인정·사과하기 직전까지 갔었다. 지금 다시 "남측
자작극"이라고 목청을 높이는 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한국 정권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천안함 폭침을 '소설'이라고 하며 온갖 괴담을
주장하던 이들이 정권을 잡았다. 그 괴담에 대해선 모두 시치미를 떼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천안함 폭침을 '북한 소행'이라고 말하는 데 5년이 걸렸다. 천안함 유족을 따로 만나 위로한 적도 없다. 천안함을 '우발적 사건'이라고 했던 사람을 통일장관에 앉혔다. 국방장관은 천안함 등 북한 도발에 대해 "일부 우리가
이해할 부분이 있다"고 하더니 "불미스러운
충돌"이라고도 했다. 자기 부하가 적에게
떼죽음을 당했는데도 '이해' 운운하는 국방장관은 한국뿐일
것이다. 정권은 김정은 눈치를 살피고 군(軍)은 그런 정권 눈치를 본다.
최근
정부는 우리 국민의 북한 개별 관광을 밀어붙이고 있다. 북 관광은 천안함 폭침 때문에 중단된 것이다. 관광 재개는 천안함 폭침에 대한 북한 사과를 받은 뒤에나 검토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정부는 북에 천안함 사과를 요구한 적도 없다. 천안함 영령들이 통곡할 노릇이다. 잊지 않는 국민이어야 다시 도발의 희생물이 되지 않는다. 잊지 않는
국민이어야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킨다.
-조선일보(20-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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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낫질'이 멈춘 곳, 老정객의 도박이 시작됐다
['덩케르크']
독일군 마약 씹어 먹으며 열흘 만에 320㎞ 진격해 영국해협 도착
18일 전 총리 된 처칠, 33만 연합군 철수 성공시켜 전세 역전 발판
결사 항전 명연설, 美 참전 유도 전략… 그의 미친 짓엔 유머·애교가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서로마를 침략했던 이민족들은 자기들이 로마의 계승자라 주장하며 진짜
로마였던 동쪽 로마를 역사에서 지웠다. 나중에 프랑스·독일·이탈리아라는 이름으로 뻗어나간 그들은 동로마를
그리스인들의 왕국으로 격하시켰고 비잔틴 제국이라는 이상한 이름을 붙여줬다. 그 결과로 우리는 지금도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된 1453년이 아닌, 단지 서쪽 로마
황제가 사라진 476년을 로마 멸망의 해로 부르고 배운다. 패장(敗將)인 히틀러도 마찬가지다. 승전국의
사가(史家)들은 히틀러에게 장기적인 계획이 없었고 독일의
폴란드 침공 후 영국과 프랑스가 선전포고를 하자 당황했으며 특히 영국을 두려워했다고 말한다. 정말 그랬을까. 히틀러는 자신의 저서인 '나의 투쟁'에서 일찌감치 세계 정복의 청사진을 공개한 바 있다. 영국과 이탈리아는
동맹국 혹은 호의적인 중립국으로 삼고 프랑스는 알맹이를 제거하여 무력화시킬 것이며 가장 큰 적은 러시아인데 정복한 뒤 항구적으로 지배한다는 것이다. 계획과 망상 사이의 경계가 불분명해서 그렇지 히틀러에게는 다 계획이 있었다.
거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 처칠이다.
66세 중늙은이 처칠의 총리 등판을 히틀러는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취임 연설에서 결사
항전을 외쳤지만 의례적인 대국민 담화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긴 사냥개가 짖는 것 같은 히틀러의 신경질적인
연설에 비해 내내 웅얼대는 처칠의 연설에는 박력이 없었다. 물론 히틀러의 자신감에는 근거가 있었다. 군사 부문 최대의 업적이기도 했던, 자신이 창설한 전차 군단이다. 다소 느슨하게 진행된 오스트리아, 체코슬로바키아 합병과 폴란드 침공은
독일군의 진짜 실력이 아니었다. 본편은 그로부터 7개월 후
화려하게 펼쳐진다. 1940년 5월 10일 독일군의 '낫질 작전'이
시작된다. 우리가 흔히 전격전(電擊戰)이라고 부르는 이 기동전은 순식간에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국경을 허물고 프랑스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기분 나쁜 사이렌 소리를 울리며 급강하하는 독일 슈투카 폭격기에 진저리를 치다 보면 어느새 독일 보병이 코앞에
와 있었다. 보름은 걸릴 거라고 예측했던 거리를 독일 보병은 사흘 만에 주파했다. 퍼버틴이라는, 메스암페타민 계열의 마약 덕분이었다. 이들은 퍼버틴을 사탕처럼 씹어 먹으며 사흘 밤낮을 잠도 안 자고 달렸다. 발군(發軍) 열흘 만에 독일군은 320㎞를
진격해 영국해협에 도달한다. 낫질이 계속 진행되었으면 히틀러의 계획은 순조롭게 흘러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히틀러는 자신이 최종 명령권자라는 것을 전군에 알리고 싶다는 황당한 이유로 진격을 중지했다. 오른팔인 공군대장 괴링의 공명심도 한몫을 했다. "연합군을
쓸어버리는 영광은 독일 공군이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사료됩니다." 이렇게 오기와
오만이 오락가락하는 사이 덩케르크에 고립되었던 33만 연합군은
860여 척의 군민(軍民) 연합 어선을 타고
탈출에 성공한다.
일러스트=박상훈
배트맨의 재해석으로 명성을 떨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이 철수 작전을 동명의 영화에 담았다. 독일군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 괴상한 전쟁 영화인 '덩케르크'는 복잡한 이야기를 쉽게 풀어내는 탁월함으로 리얼리즘 전쟁 영화의 정점인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넘어섰다. 이 영화에 처칠은 실물이 아닌 연설로, 그것도 신문 지면에 실린 글로 등장한다. 절대 항복하지 않겠다는 이 연설에는 그러나 매우 위험한 발언이 들어 있다. 가까운 장래에 강력한 힘을 가진 신(新)세계가 구(舊)세계를 해방할 것이라는 문장이다. 당연히 신세계는 미국을 의미한다. 처칠은 미국의 개입 없이는 그 전쟁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승리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신의 조국을 제물로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 영국의 공장에서는 24시간 내내 무기만을 생산했고 보유한 외환은 남김없이 무기 구입에 털어 넣었다. 영국이 파산하면 당신네도 재미없을 것이라는, 미국에 대한 일종의 자해 공갈이었다. 도박에 가까운 처칠의 이 미친 짓은 결국 미국의 참전을 끌어낸다. 영국의 입장에서 보면 그는 명백한 국가 반역자였다. 2차 대전에서 처칠의 최대 공적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이다. 시기를 계산한 것도 처칠이었고 상륙 지점을 혼동하도록 공작을 펼친 것도 그의 아이디어였다. 거기까지만 했으면 좋았을 텐데 처칠은 자기가 앞서서 상륙하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처칠의 야심을 주저앉힌 건 말더듬이 왕 조지 6세였다. "나, 나도 참가하겠소. 내, 내, 내가 왕이니까 다, 당신은 내, 내, 내 뒤를 따르시오." 동글동글한 이 영국인의 미친 짓에는 유머와 애교가 있었다. 아직도 세계인들이 처칠을 기억하고 사랑하는 이유일 것이다.
-남정욱 작가, 조선일보(20-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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