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國內-이런저런..]

[코로나 덕에 좋아진 것들] .... [미쉐린 맛집의 선언, '모두 셀프']

뚝섬 2020. 5. 2. 07:14

[코로나 덕에 좋아진 것들]

[이토록 학교가 그리웠던 날이 없다]

[우리의 21세기]

[미쉐린 맛집의 선언, '모두 셀프']

 

 

 

코로나 덕에 좋아진 것들 

 

필리핀의 코로나 조심 캠페인 중 '집에 있든지 관 속에 있든지'가 인터넷에서 퍼져 씁쓸한 웃음을 준 적이 있다. 그렇게 집에 틀어박혀 지내다 보니 코로나 때문에 좋아진 일도 생긴다. 맘 카페엔 "빨래가 줄고 요리 실력이 늘었다"는 얘기가 많다. 삼시 세끼 집에서 해 먹으니 냉장고 정리가 저절로 됐다고 하고, 사춘기 아이가 기분 나쁘다고 휙 나가버리지 못하니 자연스레 친해진단다.

▶공연 표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격인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유튜브로 무료 공연을 열어 30만명이 집에서 보는 호사를 누렸다. 와이파이 잘 터지는 집에만 있으니 휴대폰 데이터가 펑펑 남아돈다. '시댁 행사에 당당히 안 갈 수 있어 좋다' '화장할 필요가 없으니 피부가 좋아졌다'는 얘기도 많다. "남편이 약속 안 잡고 일찍 와서 좋다"는 글도 꽤 있는데 "좋은 건가요? '저녁 먹고 들어갈게' 하던 문자가 그립습니다"라는 댓글도 달렸다.
 

 

▶요즘 남산에 가면 서울 전경이 또렷이 보인다. 중국발 미세 먼지와 스모그가 겹쳐 하늘에 회색 띠가 둘러져 있던 예년과는 확실히 다르다. 여객기를 비롯한 교통량과 공장 가동률이 줄면서 전 세계 대기 질이 크게 좋아졌다. 인도 북부 펀자브주에서는 160㎞ 떨어진 히말라야 산맥을 볼 수 있게 됐다. 펀자브에 사는 한 인도인은 올해와 작년 사진을 트위터에 나란히 올리고 "히말라야를 30년 만에 다시 보게 됐다"고 했다. "코로나는 인간의 생태계 무시에 대한 자연의 대응"이란 교황 말이 실감난다.

▶질병관리본부는 지난 3월 27일 2019~20년 인플루엔자 유행 주의보를 해제했다. 작년보다 12주나 빠른 것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손을 자주 씻고 마스크까지 하고 다니니 독감 환자가 크게 줄었다. 이번 독감 유행 기준은 외래 환자 1000명당 5.9명인데 3주 연속 3명 안팎으로 낮게 유지되자 주의보를 일찍 해제했다. 다만 내과·소아과 의원들은 환자가 없어 죽을 맛이라고 한다.

 

▶일본 거리와 식당에서 야쿠자가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두목이 "외출하지 마라. 감염되지 마라. 다른 조직과 싸우지도 말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검은 양복 입은 덩치들이 몰려다니는 게 야쿠자들의 일이지만 최근 한 조직에서 코로나 감염자가 속출하자 '3밀(밀폐·밀집·밀접)'을 포기하게 됐다고 한다. "

야쿠자가 규칙적 생활을 하는 건 감옥에 갔을 때뿐"이라는데 코로나 때문에 감옥 신세 안 지고도 집밥 먹으며 얌전히 지내는 모양이다. 코로나가 세상 곳곳을 바꾸고 있다.

 

-한현우 논설위원, 조선일보(20-05-02)-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이토록 학교가 그리웠던 날이 없다 

 

공부보다 인성 교육 중요 절감
앞으로 학교는 온·오프 수시 전환
코로나 이전 모델로 돌아가선 안 돼
과목 줄인 '고단백 저열량' 수업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한때 문학소녀였던 친구는 칼릴 지브란이 쓴 이 시구(詩句)를 하루에도 몇 번씩 되뇌며 맘을 다스린다고 했다. 칼릴 지브란은 배우자나 연인을 염두에 두고 쓴 글이었지만, 친구의 대상은 온라인 개학 중인 중학생 자녀다. 손가락 까딱하면 되는 '댓글 출석'에도 지각하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속이 터진다고 했다. 나만 "코로나 시대에 정말 필요한 건 자녀와의 사회적 거리 두기"라고 생각한 게 아니었다.

온라인 개학을 한 지 보름 남짓, 전국의 학부모들이 극기(克己) 훈련 중이다. 이토록 학교가 그리웠던 날이 없다. 교육부에서 슬슬 학교 문 열 채비를 한다는 소식에 걱정이 앞서지만 귀가 솔깃해지는 이유다. 다만, 돌아갈 학교는 분명히 다른 모습이어야 한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코로나 사태로 전 세계 학생의 87% 정도인 15억여 명이 집에 있다. 교육 선진국에선 '포스트 코로나' 학교 모델 구상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장기적으로 보면 언제 학교 문을 여느냐보다 어떻게 교육 패러다임을 바꿀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

학교가 멈추자 보인 학교의 민낯을 찬찬히 곱씹어 교육을 재조합해야 할 때다. 온라인 개학을 취재하면서 만난 학부모들은 대체로 "공교육에 실망했지만 학교의 중요성은 더 커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포인트는 '교과 교육'이 아니라 '인성 교육'이었다. 공부는 학원으로 대체할 수 있지만, 공동체 생활에서 이뤄지는 인성 교육은 도저히 집에서 대체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교육 포커스를 바꾸기 위한 여러 고려 중 '수업 다이어트'에 주목해야 한다. 식단에 비유하자면 현재 우리 학교 교육은 저단백 고열량이다. 통합 교과를 지향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과목 수가 많다. 온라인 개학을 하니 병폐가 더 또렷이 보인다.

일례로 중학교 1학년 아이의 시간표를 보니 과목이 13개였다. 온라인 개학에 맞춰 학교에서 개설한 온라인 강좌 수는 15개였다. 동영상 강의를 하루에 6~7개씩 듣는데 동영상이 다운돼 연쇄적으로 다음 수업이 늦춰질 때가 잦다. 과목마다 '형식적인' 숙제가 딸려 있다. 정식 개학 때 과제를 출석 증거로 삼는다니 담당 교사들로선 안 내 줄 수도 없다.

같은 나이 아이를 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 있는 친구에게 물었다. 6학년(우리 중학교 1학년에 해당) 아이가 배우는 교과 수는 6개인데 요즘 원격 수업으로 하루 세 과목만 듣는다고 했다. 기술적 결함과 수업에 못 따라오는 아이를 염두에 둔 조치였다. 적어도 새로운 환경에 교사, 학생, 학부모가 적응할 시간을 배려한 것이다.

이 얘기를 했더니 한 교육학자가 "학생들 필요에 따른 게 아니라 교과 이기주의와 교사들 밥그릇 싸움으로 만들어진 시스템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역사 과목을 예로 들며 "국사·동양사·서양사학과로 나뉜 서울대 빼고 대부분 대학에 사학과만 있다. 그런데 고등학생이 한국사, 세계사, 동아시아사 등으로 잘게 쪼개 배운다. 말로만 통합 교과를 외친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제2의 코로나를 경고하며 학교도 유연하게 온·오프라인으로 전환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비상시마다 수십 과목에 아이들을 빠뜨릴 수는 없다. 필요 이상의 배움을 주입하는 과거의 방식과는 절연해야 한다. 이번 기회에 교과 수를 줄인 고단백 저열량 수업을 진지하게 고민해 AC(After Corona·코로나 이후) 시대 학교 모델을 만들었으면 한다.
 

 

-김미리 주말뉴스부 차장, 조선일보(20-05-02)-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우리의 21세기 

 

2020년 봄처럼 혼란스러운 적이 있었나 싶다. 생수보다 싼 마이너스 유가를 보게 된 것도, 10퍼센트씩 곤두박질쳤다 치솟는 주가지수를 보게 된 것도, 텅 빈 에펠탑 광장을 보게 된 것도 그렇다. 갱년기 우울과 코로나 블루가 동시에 왔다는 뉴욕의 선배가 격리 중에 만든 '달고나 커피' 사진을 보내왔다. 커피와 설탕을 넣고 달고나처럼 저어야 만들 수 있다는 이 커피의 핵심은 400번 이상 휘젓는 것이다. 그녀 말대로라면 체감상 4000번은 저어야 만들어지는 이 노동 집약적 행위는 21세기 시대정신인 효율성과 정반대 지점에 있다고 했다.

자가 격리 48일째. 미국의 확진자가 100만명을 돌파했다는 기사를 보던 날, 지구 저편 뉴욕에서 보내온 그녀의 달고나 커피 사진을 보며 영화 '우리의 20세기'에 나오는 대사가 떠올라 말했다. "행복한지 아닌지 따져보는 건 우울함으로 가는 지름길이야." 영화에 등장하는 앨빈 토플러의 책 '미래 쇼크'는 지금 생각하면 쇼크가 아닌 것 같다는 말도 했다.

이 시기가 지나가고 후견지명이 생겨 2020년의 봄을 기억한다면 나는 어떤 말을 하게 될까. 실은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대사는 따로 있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금방 괜찮아져. 그래 봐야 또 힘들어지지만!" 차마 말하지 못했지만 이 대사가 선명한 건,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가 깨달은 진실 때문이다.

'밤은 책이다'에서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 대로"라는 문장에 밑줄을 그었었다. 현재가 고달파도 사람은 행복할 수 있다. 그러나 미래를 불안해하면서 행복해지기는 어려운 법이다. 언제부턴가 나도 아주 먼 미래에 대한 구체적 계획은 세우지 않게 됐다. 그저 미래가 내 예상과 너무 다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자주 지나가는 길에 손님 없는 삼겹살 집이 있다. 나는 1월에 신장개업한 그 식당 문에서 일부러 떨어져 걸어간다. 자꾸 나를 손님으로 오인하는 주인의 눈짓이 나를 슬프게 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러니 누구든 살아남으라.

 

-백영옥 소설가, 조선일보(20-05-02)-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미쉐린 맛집의 선언, '모두 셀프' 

 

국립외교원 인남식 교수의 페이스북 유머를 읽다가 소리 내 웃었습니다. 새 알탕집 옥호(屋號)가 '아르마니'였다는 거죠. 이 계열 식당 이름으로 '알마니'까지는 들어봤지만, '아르마니'는 처음. 이어 댓글창에는 한바탕 언어유희가 벌어졌습니다. 최고의 일본 카레집 '와카레마시타'와 자웅을 겨루자는 둥,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뷔페는 서초동 대검 근처 '부정부페'라는 둥.

좋아하는 맛집 이야기는 늘 즐겁습니다. 마침 찾은 식당은 종로 낙원상가 뒷골목의 해물 칼국수집. 개그 감각으로 승부한 앞의 이름들과 달리, 신앙에 기반한 경건한 옥호를 가지고 있죠. 20년 넘은 단골이지만 최근에는 좀 뜸했습니다. 그새 한 그릇 가격은 7000원. 원래 저렴한 가격과 풍성한 해물이 놀라운 집이었는데, 전에 안 보이던 안내판이 벽에 붙어 있었습니다.

'모두 셀프서비스'.

아랫줄에는 네 개의 명사가 괄호 안에 적혀 있더군요. 김치·물·접시·바가지. 김치도, 물도, 개인접시도, 바지락과 홍합 껍데기를 담을 플라스틱 바가지도 직접 가져다 먹으라는 안내 혹은 지시였습니다. 안내판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김치만두, 고기만두 아래 쓴 여섯 글자. '만두 반반 없음'.

아, 이야말로 코로나 시대에 보기 드문 호연지기(浩然之氣)가 아닌가.

3년 전 이 칼국수집은 미쉐린 맛집으로 뽑혔습니다. 미쉐린 스타 직전 단계인 빕구르망으로, 맛과 저렴한 가격이 충족되어야 선정한다고 하죠. 그 자부심이 불러온 기개의 가격과 호기인 걸까.

원래 낙원상가 뒷골목은 서울 도심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가격으로 유명합니다. 3000원 국밥, 5000원 설렁탕집을 지금도 찾기 어렵지 않죠. 1965년 시작할 때 해물칼국수의 가격은 20원. 주변 노인과 주머니 헐거운 젊은 손님들의 열렬한 사랑과 지지를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인기 있는 식당은 당연히 가격 현실화 혹은 인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영업자에게 더욱 가혹한 시절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아쉬운 점은 '모두 셀프'와 '반반 없음'이 주는 어떤 위압. 우리가 특정 식당을 좋아하는 이유가 오직 맛과 가격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중에는 주인장의 손님에 대한 어떤 태도도 포함되겠죠.

'아무튼, 주말'의 맛집 소개가 돈 받고 하는 광고가 아니듯, 인기있는 식당에 대한 비판 역시 바탕은 애정입니다. 나와 독자가 좋아하는 맛집이, 좀 더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어수웅·주말뉴스부장, 조선일보(20-05-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