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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 만난 이승만] [이들에게 이승만의 진짜 ‘죄’는 무엇일까]

뚝섬 2020. 7. 23. 06:28

 

도쿄에서 만난 이승만

 

서거 55주년을 맞은 이승만(李承晩) 전 대통령에 대해 집권 세력의 폄훼가 잇따를 때 이곳을 다시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는 일본 정부의 영토주권전시관. 일본 측 의도와는 달리 이승만이 일본에 맞서 독도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업적이 부각돼 있는 장소다. 아베 내각은 지난 1월 독도와 센카쿠열도, 쿠릴열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전시관을 도쿄 한복판에 확대해 재개관했다.

21일 다시 방문한 이곳은 코로나 사태에도 개관 중이었다. '독도관'에는 여전히 가로 10m, 세로 3m 대형 패널에 '한국의 독도 불법 점거' 과정이 상세히 설명돼 있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전후로 이승만 정부와 국제사회의 움직임을 일지(日誌) 형태로 전시 중이다.

독도는 1945년 일본의 패망(敗亡)과 함께 자동으로 한국 영토로 인정받지 못했다. 미국의 오락가락하는 입장으로 독도가 다케시마(독도의 일본명)가 될 뻔한 위험천만한 상황도 있었다. 이때 이승만의 강단(剛斷)과 국제적 감각이 빛을 발했다. 일본의 영토주권전시관은 한국의 '불법행위'를 강조하면서 '1952년 이승만 라인(평화선)'에 대해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이승만 한국 대통령은 해양주권선언을 만들어 이른바 이승만 라인을 공해상의 광범위한 해역에 일방적으로 설정함과 함께 이 라인 안에 다케시마를 포함했다." "그 후, 이 라인을 침범한 일본 어선을 나포하는 사안이 제주도 남방 어장을 중심으로 다수 발생하게 돼 선원들이 억류되는 문제가 심각해졌다."

이승만 평화선이 선포되던 1952년은 어떤 상황이었나. 당시는 김일성의 동족살해(同族殺害) 남침(南侵)에 따른 전쟁 중이었다. 개전 초기의 절체절명 위기는 면하고 휴전협상이 시작됐지만, 모든 것이 불확실했다. 모두가 38선 근처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때에도 이승만은 해외 상황을 면밀히 봐가며 국제사회를 놀라게 하는 결정을 내렸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발효 석 달 전에 평화선을 선포, 독도에 대한 실효적 조치를 취했다. 이어서 1954년엔 독도에 등대를 설치했다. 경찰 경비대도 파견했다. 일본이 이에 항의하는 구술서를 보내왔지만 일축했다. 오히려 독도 풍경을 담은 기념우표 3종을 발행, '독도는 한국 땅'임을 명백히 했다.

이런 역사가 서술된 독도관을 찬찬히 보고 있노라면 일본 정부가 이승만을 얼마나 미워했는지가 느껴진다. 식민지배 청산을 위해 1951년부터 시작된 한일협상에서는 사죄와 배상을 강하게 요구, 일본이 골머리를 앓았다. 재임 시기가 이승만과 겹쳤던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총리는 이승만에 대해 진절머리를 냈다. 그가 가장 싫어하는 인물로 정적이었던 고노 이치로(河野 一郞·고노 다로 현 방위상의 할아버지) 농림대신과 이승만을 꼽은 것은 일본에서는 잘 알려진 얘기다.

이승만은 35년간 지도에서 사라졌던 나라 재건을 위해 집권 초기 일제 시대의 전문 관료들을 기용했다. 이 때문에 '친일파'라는 오명(汚名)을 뒤집어썼으나 사실은 일본 측이 상대하기 껄끄러운 인물이었다.

그런 이승만이 대한민국 건국을 부정적으로 보는 문재인 정권의 법무장관으로부터는 제헌절에 조롱을 당했다. 19일 추모식에서는 보훈처장으로부터 건국 대통령으로 온전하게 불리지 못했다. 여당 의원들은 단 한 명도 추모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공로자에게 침을 뱉는 행태와 다름없다. 최근 대한민국 국민의 민심이 급속히 현 정권으로부터 떠나가는 것은 단지 '미친 집값'과 '성(性) 인지 감수성'부족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하원 도쿄 특파원, 조선일보(20-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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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에게 이승만의 진짜 ‘죄’는 무엇일까

 

가장 反日 이승만… 美에 맞서 국익 지킨 그를 '친일' '미국 괴뢰'라 매도
日 패망 후 소련 공산주의와 싸워 대한민국 건국한 것이 이승만의 진짜 '죄'일 것

 

공영방송에서 이승만을 '친일파, 미국의 괴뢰'라면서 '무덤에서 파내라'는 주장이 나왔다. 그러더니 정부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을 기념해 선정한 독립운동 인물에도 이승만이 빠졌다. 이승만은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이다. 이승만만 빠진 인물화들이 걸려 있는 정부청사를 보면서 이 나라가 사실을 뻔뻔하게 왜곡하는 세력들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현실을 절감한다.

이승만에 대해 알게 되면서 필자는 그가 너무 지나치게 반일(反日)적이라고 생각했다. 거의 피해망상 수준이었다. 일본 군국주의만이 아니라 일본인들의 심성 자체를 증오했다. 일본인들이 겉과 속이 다른 민족성으로 언제든 우리에게 칼을 들이댈 것이라고 경고하고 또 경고했다. 일본을 저주하고 망하기를 바라지 않은 날이 없었고 어떻게든 미국이 일본을 공격해 파괴하기를 기원했다. 이승만은 일본이 도발해 미국과 전쟁을 벌이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론적 근거에 앞서 미·일 전쟁이 반드시 일어나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있었다.

그 신념으로 쓴 책이 '일본의 내막(JAPAN INSIDE OUT)'이다. 이 책에서 이승만은 머지않아 일본이 미국을 공격할 것이라고 했다. 몇 달 뒤 실제로 일본이 진주만을 공습했다. 그 책에서도 이승만은 일본인의 민족성에 대해 미국인들에게 경각심을 촉구하고 있다. 이승만은 하야 후 하와이에서 죽음을 맞았다. 병약해져 의식이 왔다 갔다 하는 순간에도 갑자기 "일인(日人)들은 어떻게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에게 반일은 본능이었다. 이 정권이 얼마나 반일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승만에 비하면 조족지혈일 것이다.

이승만이 내각에 친일 인사를 많이 기용했다고 '친일'이라고 한다. 이 정권 사람들이 인정하는 친일파 연구자들의 조사에 따르면 이승만 정부 내 일제 관료 출신은 32%인데, 이 대통령 하야 후 수립된 장면 4·19 혁명정부 내각의 60%가 부일 협력자라고 한다. 그렇다면 4·19 혁명정부는 아예 일본 하위 기관인가. 모두가 헛된 논쟁일 뿐이다. 2016년 독일 언론 조사에 의하면 2차 대전 패망 후 서독 법무부 간부의 53%가 히틀러 나치당 당원이었다. 많은 국·실에서 간부의 70% 이상이 나치당원이었다. 악명 높은 나치스돌격대(SA) 출신도 20%에 달했다. 한 나라에 해방과 패망은 과거와의 급작스러운 단절이다. 그래도 어떻게든 세상은 돌아가야 하고 사람은 살아야 한다. '과거'와 '미래' 사이를 잇는 '현실'은 일정 기간 불가피하게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미래로 가느냐이다. 한국과 서독은 모두 미래로 갔다. 미래로 간 나라는 과거를 가장 확실하게 청산하고 극복한 것이다.

이승만은 미국의 힘과 시스템을 부러워하고 존경했지만 미국에서 너무나 많은 좌절과 쓰라림을 겪었다. 미국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승인받기 위해 피눈물 나게 노력했으나 미국인들은 철저하게 무시했다. 미국 사람들은 일본인을 좋아하고 신뢰했다. 김구 등 많은 독립운동가가 현실적 필요 때문에 거주 중인 국가의 국적을 취득했다. 이승만은 끝내 미국 국적을 취득하지 않고 무국적 망명객으로 머물렀다. 온갖 불편을 감수했다. 그는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이승만은 미국이란 국가는 높이 평가했지만 미국 정치인들에 대해선 그렇지 않았다. 그는 '일본의 내막' 서문에서 '미국인들은 일본인들의 아첨을 좋아하며 뇌물에 속아 넘어간다'고 했다.

이승만은 2차 대전 후 미국이 한국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 절대 낙관하지 않았다. 이승만은 미국 정부가 소련을 대일(對日) 전쟁에 끌어들이기 위해 소련군의 한반도 진군을 허용할 것이라고 보았다. 1945년 샌프란시스코 유엔 창립 총회 때 이승만은 '미국이 얄타회담에서 한반도를 소련에 넘기기로 밀약했다'고 폭탄 발언을 했다. 미 국무부는 즉각 부인했지만 그 후의 역사는 실제 그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승만은 통일 없는 6·25 휴전을 거부하며 한·미 동맹 조약을 요구해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정신착란자'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1953년 미군은 이 대통령을 감금하고 한국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작전계획까지 수립했다. 이런 그를 '미국의 괴뢰'라고 하는 사람들은 정말 누구의 괴뢰인가.

이들은 이승만이 친일파나 미국 괴뢰가 아니라는 사실을 정말 모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들이 이승만을 이토록 싫어하는 근본 이유는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일제강점기 이승만의 적은 일본이었다. 일본 패망 후 이승만의 적은 소련과 공산주의였다. 소련 사람들은 유엔 창립 총회장에 온 이승만 등 한국 대표단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부었다. 김일성 정권 수립과 한반도 석권을 계획하고 있던 그들에게 이승만은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한국 내 지식층에 압도적이던 좌익 인사들도 마찬가지 생각이었다. 소련은 결국 6·25 남침까지 승인했다. '반(反)이승만'의 뿌리는 여기에 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친일' 등은 엉터리로 씌운 모자일 뿐이다.


-양상훈 주필, 조선일보(19-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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