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라도 마이크' 값을 갚겠다는 文 정부
北 "쇼나 하라고 능라도에서 연설 기회 줬겠느냐" 대가 요구
지난 6월 초 한 대북 사업가가 중국에서 북한 측 인사를 만났다. 북측 인사는 "문재인 정부는 쇼 좀 그만하라"고 쏘아붙였다고 한다. "말뿐이고 아무것도 하는 게 없다. 무능한 이벤트 정부"라고도 했다. 이 인사는 "김정은 위원장께서 이러라고 능라도 경기장에서 문 대통령에게 마이크를 준 줄 아느냐"고 힐난했다.
문 대통령은 2018년 9월 평양 능라도 5·1 경기장에서 김정은과 손을 맞잡고 15만 북 주민 앞에서 연설했다. 당시 "나는 평양의 놀라운 발전상을 보았고, 어려운 시절에도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며 끝끝내 스스로 일어서고자 하는 불굴의 용기를 보았다"고 추켜세웠다. 그런데 이 연설을 두고 김정은이 큰 시혜를 베푼 것처럼 얘기한 것이다. 그러면서 '마이크 값을 내놓으라'고 으름장까지 놓았다. 북한 관영 매체도 같은 달 능라도 경기장 연설 장면을 내보내면서 "(김 위원장이) 특대형 환대를 했는데 남북 관계는 파국"이라고 했다. 그 직후 김여정의 문 대통령 비난 담화와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사건이 벌어졌다.
북한의 노골적 불만 표출에 놀란 청와대와 통일부는 북한에 무슨 선물이라도 주겠다고 나섰다. 미국이 제동을 걸자 대북 제재를 피해갈 창의적 대북 지원 방안을 찾겠다고 했다. 최근엔 국책 기관과 은행들에도 "대북 제재를 우회해 남북 교류를 활성화할 수 있는 창의적 아이디어를 내라"고 지침을 내렸다고 한다. 국책 기관 관계자는 "대북 사업 아이템을 찾으려고 전문가를 초청해 강연을 듣는 등 난리가 났다"며 "하지만 결론은 대북 제재를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고 했다. "이러다 우리 은행이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북한과 거래한 기관·기업에 대한 제재)에 걸리면 어쩌려고 하느냐"는 우려도 많았다고 한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북한의 술과 남한의 설탕을 맞바꾸는 '물물교환 남북 교류 방안'을 제안했다. 하지만 거래 상대방인 개성고려인삼무역회사가 대북 제재 리스트에 포함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실상 없던 일이 됐다.
북한 측은 이 사업에 대해 "액수가 얼마되지도 않는데 그따위 거래를 왜 하느냐"며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력한 대북 소식통은 "경제난 해소에 도움은 전혀 안 되고 김정은의 체면만 구기는 '대북 찔끔 지원'은 싫다는 것"이라며 "김정은이 원하는 '능라도 마이크 값'은 미국을 설득해 대북 제재를 풀라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북한은 문 대통령이 "남북 관계 개선과 북미 대화 진전은 서로 선순환 관계"라고 거듭 강조하자 "달나라 타령"이라고 비판했다. 남북 관계가 북미 관계를 앞서갈 수 없다는 뜻이다. 정작 북한도 원하지 않고 미국도 반대하는데 우리 정부만 '대북 지원과 교류를 하겠다'고 호들갑을 떠는 모양새다.
북한은 지금 심각한 경제난과 코로나 위기에 처해 있다. 하지만 우리의 '찔끔 지원'을 받고 대화의 장으로 나설 생각은 없어 보인다. 대북 제재 해제는 원하지만 완전한 비핵화를 할 의지는 없는 것이다. 이런 북한에 미국이 제재 해제란 당근을 줄 리가 없다. 미국과 보조를 맞추지 않은 채 북한과 직거래로 돌파구를 뚫겠다는 발상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의 대북 집착증은 고쳐질 기미가 없다. 북한과 중국 눈치 보기 바쁠 뿐 미국 등 국제사회와 보조 맞추기는 뒷전으로 밀렸다. 미 대선에서 민주당 바이든 후보가 승리할 경우에 대비한 정책적 준비도 돼 있지 않다. 정부가 대북 환상에 빠져 있으면 외교 안보 정책은 결국 난관에 부딪힐 것이다. 지금은 북한이 경제난을 버티지 못해 스스로 비핵화 대화로 나올 경우를 대비한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배성규 정치부장, 조선일보(20-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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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사 해체는 核 가진 北이 바라는 것
6·25 당시 유엔군 15만명 死傷… 유엔사는 자유세계 수호 戰士
부산시 남구 '유엔평화로'에는 UN기념공원이 있다. 이 공원의 명칭은 2000년까지는 'UN 기념묘지'였다. 6·25 전쟁의 급박한 전황에서 유엔군 사망자의 시신을 본국에 송환하기 이전에 임시 안장했던 곳으로, 당시에는 1만여 명이었으나 현재는 2309명이 잠들어 있는 세계 유일 유엔 묘지다. 자유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전 세계 많은 젊은이의 희생으로 오늘날 대한민국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곳이다.
1950년 6월, 북한이 남침하자 다음 달 7월 유엔은 총회 결의안 84호를 채택하여 유엔사를 창설했다. 이 결의안에 미국·영국·프랑스·캐나다·호주·터키 등 16국이 호응하여 전투 부대를 파견했고, 스웨덴·덴마크 등 5국은 의무 지원을 보냈다. 3년에 걸친 전쟁에서 200만명에 가까운 유엔군이 참전했고, 사상자가 15만여 명 발생했다. 유엔사의 존재로 6·25 전쟁은 '공산 침략자 대(對) 자유세계'의 전쟁이 되었다.
유엔사는 정전 체제의 안정적 관리와 한반도 평화 수호를 위해 기능해 왔는데, 북한의 핵 위협이 증가하면서 유엔사의 기능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유엔사의 기능에 대해 일부 우려의 시각이 있는 것 같다. 유엔사 활성화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가진 이들은 크게 두 가지 논거를 제시한다. 첫째는 유엔사 활성화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이후에도 한국군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하려는 미국의 '꼼수'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한국 장군이 한미연합사 사령관을 맡더라도 미국이 유엔사 사령관직을 이용해 한국군에 통제를 행사할 것을 우려한다. 또 다른 하나는 그동안 유엔사가 남북 주요 협력 사업에 훼방을 놓아 왔다는 지적이다.
유엔의 도움으로 오늘의 발전을 이룩한 우리나라에서 이런 주장이 제기된다는 것은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불행한 사태이다. 우선 유엔사는 연합사에 대한 지휘나 통제 기구가 아니다. 1978년 한미연합사 창설 이후에 한국군에 대한 전시작전통제권의 행사 주체는 유엔사가 아닌 한미연합사이며, 주한미군 사령관이 유엔군 사령관을 겸직한다고 해서, 그가 한국군에 대한 통제 권한을 갖는 것은 아니다.
남북 교류 협력을 위한 주요 물자나 인력의 통과에 유엔사가 제동을 걸었다고 하는 것은 '협의 부족'에서 이유를 찾았으면 한다. 유엔사가 의도적으로 타미플루 대북 지원이나 남북 도로·철도 연결 사업을 방해했다는 것은 정확한 보도가 아니라고 유엔사가 해명했다. 유엔사는 전체 비무장지대 출입 신청의 93퍼센트를 승인했고, 위험 지역이거나 서류가 미비한 경우에 한해 출입을 허가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현재의 규정이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협의를 통해 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유엔사와 관련된 국내의 논란이 우려스러운 또 다른 이유는 이것이 북한의 유엔사 무력화나 해체 주장에 힘을 싣는 결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중국 그리고 북한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에 있는 우리의 지정학적 현실을 생각해 보면, 유엔사 기능이 축소되거나 유엔사가 해체될 경우 우리의 안보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1978년 한미연합사가 창설된 이후 유엔사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생하였을 경우 기존의 유엔 참전국에서 병력을 접수해 전선에 공급하는 '전력 공급자'(force provider)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되어 왔고, 2007년 당시 유엔군 사령관이었던 버웰 벨 장군이 이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한미연합사가 유사시 주어진 임무를 원활히 수행하려면 일본 본토와 오키나와에 있는 유엔사 후방기지 7곳이 중요하며, 유엔사를 통해 국제적 지지와 후방 지원 능력이 보장된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전쟁 억제 자산이다. 북한이 천안함 폭침이나 연평도 포격과 유사한 도발을 재연할 때, 북한 핵무기의 위협 아래 놓여 있는 우리는 제대로 대응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유엔사가 제 역할을 한다면 크고 작은 도움이 될 것이다.
유엔사가 제대로 기능하려면 충분한 인력과 훈련이 필요한데, 순수히 유엔사만을 위해 배정된 인원은 30여 명에 불과하다. 한반도 유사시 유엔사는 참전 희망국과의 연락 및 협의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데, 현재의 인력으로는 이러한 방대한 임무를 수행하기 어렵고, 유엔사 활성화가 모색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가는 명분과 자존심만으로 유지될 수 없고, 안보를 지킬 힘이 있어야 존재한다. 6·25 전쟁 당시에도 그랬지만 북한이 핵무기로 우리를 위협하는 현재 상황에서 유엔사가 제대로 기능을 수행해야 우리의 안보는 최소한의 조건을 갖추게 된다. 유엔의 기본 정신은 평화와 자유 수호이고 유엔사는 이를 한반도에서 구현하는 기관이다. 유엔사를 "민족 자결"을 제약하는 '족쇄'가 아니라 한반도의 평화 통일로 가는 '열쇠'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15만 유엔군 사상자의 희생에 보답하는 길이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 조선일보(20-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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