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참의장]
[NLL 침범 北선박 나포했다고 합참의장 불러 망신 준 文 청와대]
[“우리 활동은 北 독재정권 상대로 했는데, 이제 文정권을 상대하게 됐다”]
[결국 문 닫는 북한인권재단 사무실]
합참의장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5월 10일 0시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지하에 마련된 국가위기관리센터 상황실에서 합동참모본부(합참) 지휘통제실로부터 군 통수권 이양에 따른 전화 보고를 받는 것으로 대통령으로서의 공식 업무를 시작했다. 원인철 합참의장이 윤 대통령에게 북한 군사 동향 및 군 대비태세를 보고했다. 합참이 군에서 이에 대한 책임을 맡고 있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군의 합동참모 시스템은 독일의 ‘제너럴 스태프’(Generalstab·장군참모)를 효시로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너럴 스태프는 프로이센, 독일 제국의 정예 육군 참모 조직이었다. 1차 대전 때 독일군 참모 조직의 뛰어난 작전에 큰 피해를 입은 영국 프랑스 등 연합군은 패전 독일군에 참모 조직을 두지 못하게 하기도 했다. 미국은 2차 대전 발발 이후인 1942년에야 지금의 합참과 비슷한 조직을 만들었다.
▶우리나라 합참은 미 합참을 모델로 1963년 본격 창설됐지만 한동안 힘이 없는 ‘얼굴 마담’ 비슷한 존재였다. 1990년 합동군제가 시행되면서 현재의 군령권을 가진 합참이 됐고 합참의장 권한도 커졌다. 하지만 예산 등에선 참모총장에게 밀려 1990년대 중후반 한 육군참모총장은 합참의장이 된 뒤 사석에서 “육군총장 때보다 못하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대전은 육해공 합동전투이고 군 작전은 합참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이제 국군 합참의장도 군 서열 1위이자 군 전체의 좌장과 같다. 현역 대장으로 장관급 예우를 받는다. 합참의장은 육·해·공군 작전사령관, 해병대사령관 등을 지휘한다. 유사시 대간첩작전을 지휘하는 통합방위본부장을 겸하고 있고 계엄령이 선포되면 계엄사령관도 된다.
▶용산 대통령실 청사 옆 10층짜리 건물에 국방부 핵심부서와 함께 합참 주요 부서가 자리 잡고 있다. 900여 명의 직원 중 인사군수·정보·작전·전략기획 본부장과 합참차장 등 중장 5명을 비롯, 장성만 30여 명에 달한다. 이곳이 바로 우리 군 전체를 움직이는 총사령부다.
▶지난 2019년 7월 심야에 동해 NLL을 넘어온 북한 선박을 나포하지 말고 돌려보내라는 청와대 안보실 지시를 어겼다는 이유로 당시 박한기 합참의장이 소환 조사를 받은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박 의장은 청와대 행정관으로부터 4시간여 동안 취조 수준의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군(軍) 수장의 권위와 명예가 땅에 떨어졌다. 미군 합참의장이 백악관 행정관에게 취조받는 모습을 누가 상상할 수 있을까.
-유용원 군사전문기자, 조선일보(22-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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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L 침범 北선박 나포했다고 합참의장 불러 망신 준 文 청와대
문재인 정부 청와대가 2019년 7월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온 북한 목선을 나포하라고 지시한 합참의장을 소환해 4시간 동안 조사했다고 한다. 사건 10여 일 뒤 민정수석실이 박한기 합참의장을 청와대로 불러 “왜 북 목선을 퇴거 조치하라고 지시했는데 따르지 않았느냐”고 추궁했다는 것이다. 군이 NLL을 침범한 북 선박을 나포해 경위를 조사하고 귀순 의사나 대공 용의점이 없는지 확인하는 것은 당연히 할 일이다. 당연한 지시를 내린 작전 지휘관을 청와대가 모욕 준 것이다.
당시 북 선박은 NLL 북쪽에 한동안 혼자 머물다 엔진을 켜고 돛대에 흰색 천을 단 채 정남향으로 내려왔다. 의도적으로 NLL을 넘었거나 귀순 의사가 있다고 볼 여지가 컸다. 그런데 청와대 안보실은 합참 실무진에 ‘그냥 북으로 보내라’고 했다고 한다. 조사 없이 돌려보내라는 것 자체가 온당치 못한 지시였다.
군은 이후 “북 선박이 방향 착오로 월선했고 귀순 의사는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나포 40시간 만에 북으로 송환했다. 당시 항로와 흰색 천 등 여러 정황을 볼 때 귀순이나 정탐 가능성이 있는데 너무 서둘렀다는 지적이 나왔다. 북과 정상회담 개최에 매달려 있던 청와대가 군을 압박해 북 선박들을 무조건 돌려보내려 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
당시 민정수석실의 소환 조사는 월권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비위 문제도 아닌데 민정수석실이 무슨 권한으로 군 작전 지휘관을 조사한다는 건가. 군 지휘부를 정권의 하수인으로 여기지 않고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정권 초 청와대 인사수석실 행정관은 인사 문제를 논의하자며 육군 참모총장을 영외로 불러내 카페에서 만나기도 했다. 이러니 군이 제대로 설 리가 없다. 북한 눈치 보며 훈련도 하지 않고 경계 실패와 기강 해이 사건이 속출하는 것이다. ‘대화로 나라를 지킨다’는 말도 이래서 나왔을 것이다.
합참의장 조사 이후 군은 북 선박이 NLL을 넘어와도 나포·조사 없이 현장에서 돌려 보내곤 했다. 4개월 뒤 탈북 어부 2명이 귀순했을 땐 살인범이라는 이유로 사흘 만에 안대를 씌우고 포승줄에 묶어 북송해 버렸다. 한·아세안 정상회의에 김정은을 초청하는 문 대통령 친서와 함께였다. 이듬해엔 북한이 우리 공무원을 서해상에서 사살해 불태웠지만 아무 조치도 하지 않고 월북자로 몰았다. 북한과 평화쇼 궁리에 빠진 청와대가 국민과 탈북자들의 인권을 짓밟고 우리 군마저 망가뜨렸다.
-조선일보(22-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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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활동은 北 독재정권 상대로 했는데, 이제 文정권을 상대하게 됐다”
北과 접촉해온 GP ‘대면병’ 출신… 윤여상 북한인권정보센터 소장

윤여상 소장은 “현 정부는 점점 더 세게 우리의 목을 졸랐다”고 말했다. /최보식 기자
“우리 활동은 북한 세습 독재 정권을 상대로 했는데, 이제 문재인 정권을 상대하게 됐다.”
윤여상(53) 북한인권정보센터 소장은 자신의 처지를 이렇게 요약했다.
그가 북한 인권 실태 조사를 위해 ‘하나원’(탈북자 정착 지원 기관)에 출입하기 시작한 것은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이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뒤로 정식 위탁 계약까지 맺었다. 그렇게 해서 ‘북한 인권 백서’를 14년째 발간해왔다.
“북한 인권 실태 조사와 기록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북한 권력자들에게 언젠가 처벌받을 수 있다는 심리적 압박을 준다. 서해상에서 해수부 공무원 총살을 지시한 사건도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그런데 지난 3월 문재인 정부가 계약 중단을 통보해왔다. ‘평양’의 눈치를 본 것이다.”
3급 비밀
―박근혜 정부 시절 ‘북한인권법’ 통과로 통일부 산하에 북한인권기록센터가 설치되지 않았나?
“탄핵 직전에 북한인권기록센터가 설치됐지만, 그 뒤 4년간 북한 인권 백서(白書)를 한 차례도 발간하지 않았다. 북한인권법에는 백서 발간 조항이 있는데도 무시했다. 심지어 탈북자 면담 조사 보고서조차 ‘3급 비밀’이라며 비공개로 막아놓았다.”
―'3급 비밀'은 국가 안보에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사안에 대해 지정하는데?
"구체적 인권침해 사례를 적시해놓은 보고서도 아니다. 탈북자 몇 명을 조사했고 어떤 범주의 인권침해 건수가 얼마였는지 추린 현황 통계에 불과하다. 이조차 공개를 안 한다."
―비공개 문제를 떠나 정부 기관이 이미 조사를 맡고 있으니, 민간 단체가 똑같은 조사를 중복할 필요가 없다는 것인데?
“어떤 정권이냐에 따라 북한 인권 사안은 영향을 받는다. 지금과 같은 정권이 들어서면 정부가 자료를 독점해 서랍 속에 숨겨버리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박근혜 정부 시절 통일부는 포괄적 조사를, 민간 단체는 특정 주제에 한정된 조사를 합의했다. 현 정부가 들어서자 이런 합의가 깨졌다. 그때부터 우리 목을 조여 오는 과정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어떻게 목을 조였다는 건가?
“조사 대상 탈북자 수와 설문 항목을 대폭 줄이라고 요구했다. 현 정부가 출범한 2017년 설문이 35개에서 12개로, 2018년에는 8개로, 2019년 6개로 계속 축소됐다. 평양이 기분 나빠할 ‘해외 파견 노동자’ ‘납치·억류’ ‘핵·생물·화학무기 실험’ 같은 문항은 삭제하라고 했다. 인터뷰 대상 탈북자의 성별, 나이, 출신지 등 기본 정보조차 수집 못 하게 했다.”
―정부의 통보를 안 따르면?
"칼자루를 정부가 쥐고 있다. 하나원 출입을 언제든지 막을 수 있다."
―조사 대상 수도 줄었다고 들었는데?
“그전까지 매달 20여 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현 정권이 들어서자 10명으로 줄였다. 금년에는 3명을 더 빼라고 했다. 유엔 서울 사무소도 우리처럼 북한 인권 실태 조사를 해왔다. 유엔 쪽은 매달 3명을 인터뷰했는데 여기도 1명을 더 줄이라고 했다.”
―한 달 조사할 수 있는 대상이 각각 7명과 2명으로 된 건가?
“10명에서 3명을, 3명에서 1명을 더 깎도록 지시하는 게 명색이 정부가 할 일이냐. 어린애도 이런 유치한 짓은 하지 않는다. 이게 무슨 의도냐. 결국 조사하지 말라는 것이다.”
―정부가 그런 의도라면 더 이상 조사할 수 없지 않은가?
“우리는 ‘을(乙)’의 처지이다. 이렇게라도 북한 인권 실태 조사는 계속돼야 하니까. 결국 지난 3월 정부의 조건을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하지만 통일부 실무자는 ‘방침이 바뀌었다. 더 이상 위탁 사업을 할 계획이 없다’고 답변했다. 그걸로 끝이었다.”
―정부가 위탁 사업을 끊어 단체의 운영도 어려워졌나?
“정부가 지급하는 조사비는 연 2000만원이다. 이 돈은 면담 탈북자들에게 설문 사례비와 면접비로 다 지급한다. 우리 단체의 운영 재정에는 전혀 보탬이 안 된다. 내가 이렇게 고발에 나선 것은 북한 인권 실태 조사를 더 이상 못 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건 아닌 것이다. 현 정권에 들어간 시민 단체 활동가들도 이런 상황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 잘 알 것이다.”
‘공동경비구역 JSA’ 같은 현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문 정권에서는 이제 뉴스도 아니다. 그런데 당신은 어떤 계기로 북한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나?
“나는 전북 출신으로 대구에서 학교를 다녔다. 영남대 정치학과 졸업 후 군 생활 3년(1989~1991년)을 휴전선에서 ‘대면병’으로 근무했다. 그게 내 인생을 이쪽으로 들어오게 했다.”
―'대면병'이라는 보직은 처음 듣는데?
“명칭 그대로 북한군과 대면하는 병사다. DMZ에서 서로 틀어대는 대북·대남 확성기 방송이 동시에 멈추는 시간대가 서너 번 있다. 주로 밤인데 각 30분~1시간 공백이다. 그 틈에 ‘대면병’이 마이크를 잡고 심리전을 펼치는 것이다. 북한에서는 이를 ‘적공조’라고 부른다. 우리는 사병이 담당했다. 북한은 소좌(소령)·중좌 계급의 정치 군관이 맡아 상당한 재량권을 갖고 있었다.”
―이게 신선한 뉴스 같다. 대면병은 어떻게 선발됐고 소속은?
“전체 GP(감시 초소) 중 북한 쪽과 근접한 10곳에만 두 명씩 있었다. 내가 근무하던 시점에 전군(全軍)의 대면병 숫자는 스무 명 남짓했을 것이다. 나는 훈련소에서 선발됐다. 자대에 배치된 뒤 ‘사수’(보직 상급자)한테 혹독한 일대일 도제 교육을 받았다. 국방부 직속으로 모두 보안이었다. 나는 ‘최민수’라는 가명을 썼다. 북측과 대화한 요약문은 즉각 국방부에 전달됐다.”
―북측과 주로 어떤 대화를 했나?
“매일 대화 주제를 준비했다. 우리는 국내외 뉴스, 북측은 체제 선전 내용을 위주로 했다. 북측의 질문과 답변을 가상해 미리 ‘아적(我敵) 대화록’을 만든다. 어떻게 공격하고 방어할지 전략을 짜두는 것이다. 국방부에서 ‘북측에 이런 사안을 확인하라’는 지시가 직접 내려오는 경우도 있다. 공식 남북 채널이 없던 시절에 대면병이 그런 역할을 했던 셈이다.”
―이념과 논리의 대결인 셈인데?
“북측 상대는 성경과 브리태니커 사전도 거의 다 외운 것 같았다. 처음에는 저쪽 논리에 쉽게 말려들었다. 이 때문에 사수한테 기합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여섯 달쯤 지나면서 내가 상대를 압도했다.”
―어떻게 가능했나?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가령 내가 대학 수강 신청이나 MT 얘기를 꺼내면 상대는 ‘그게 뭐냐?’고 끌려들어 온다. 자유 체제가 갖는 강점을 그때 확실하게 알았다. 폐쇄 사회는 결코 개방된 사회를 이길 수 없다.”
―전역할 때까지 대화 횟수가 얼마나 됐나?
“하루에 서너 번씩이니 1000회 이상 대화했다. 매일 그렇게 하니 그 시점의 북한 정세에 대한 감각은 가장 뛰어났을 것이다. 북측 상대와도 자연히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병헌·송강호가 출연한 ‘공동경비구역 JSA’ 영화 얘기가 실제 있었구나.
“직접 건너가 만나지는 못해도 휴전선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노래 대결과 장기 두기를 하거나, 가족 얘기를 할 때도 있었다. 대면병으로 근무하면서 북한 사람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 있었다. 어떻게 학습·통제·조종했기에 저런 인간형을 만들 수 있을까. 설령 통일된다 해도 저들과 공생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그 머릿속을 한번 들여다보고 싶었다. 전역 후 대학원에 진학한 나는 북한 주민 연구 목적으로 방북이 가능한지 정부에 문의한 적도 있다.”
―그게 성사될 리는 없었을 테고?
“내게는 절실한 과제였다. 결국 북한에서 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연구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만 해도 600여 명으로 수가 많지 않았다. 전국을 다니며 이들과 면담해 ‘귀순 북한 동포의 사회 정착’이라는 석사 논문을 썼다. 탈북자와 관련된 국내 최초 학위논문(1994년)이었다. 박사 논문도 이런 주제로 썼다.”

―북한 주민의 의식 구조에 관심을 가졌다가 어떤 계기로 북한 인권 문제로 넘어왔나?
“당초 연구는 북한 체제에 길들여진 사람들과 과연 함께 살아갈 수 있느냐에 대해 답을 구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탈북자들은 인터뷰에 응했을 때 그쪽 체제에서 자신이 고통받고 살아온 얘기만 했다. 대부분 인권 피해 사례였다. 누군가는 이를 기록해야 한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시작한 것이다.”
―어떻게 하나원에 입소한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하게 됐나?
“1999년 처음으로 탈북자가 한 해 100명을 넘었다. 당시 언론에서 ‘대량 탈북’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그해 탈북자 정착 교육을 위해 ‘하나원’이 설립됐다. 내가 전공자여서 하나원 강의를 맡게 됐다. 그러면서 내부 협조를 받아 탈북자 면담을 하기 시작했다.”
어용 지식인들
입국 탈북자는 2002년에 한 해 1000명을 돌파했다. 4년 뒤에는 2000명으로 두 배가 됐다. 2009년에는 2927명까지 올라갔다. 2012년 김정은 등장 이후 입국 탈북자 수는 줄어들기 시작했다. 국경 통제와 처벌 수위가 강화됐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1000명 선으로 떨어졌다. 코로나 여파로 이동 제약까지 겹쳐 올 상반기 탈북자는 147명까지 급감했다.
―과거 서독에서는 ‘잘츠기터 중앙범죄기록소’가 동독의 인권침해 사례를 기록했다. 서독에서도 사민당이나 좌파 언론과 지식인들은 ‘잘츠기터는 평화와 긴장 완화를 해치는 것’이라며 문을 닫아야 한다고 했다. 얼마전 어용 지식인 유시민씨가 김정은을 ‘계몽 군주’라고 띄우듯이, 당시 호네커 동독 서기장을 ‘친근한 이웃 아저씨 같은 지도자’로 미화하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북한 인권 개선 노력은 현 정부 100대 국정 과제 중 92번째에 들어 있었다.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다. 하지만 공개 석상에서 북한 인권에 대해 말을 꺼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문 대통령의 약속만은 현실이 됐다.
-최보식 선임기자, 조선일보(20-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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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문 닫는 북한인권재단 사무실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는 1970년 3월 개최된 제1차 동·서독 정상회담에서 "자유 왕래와 인권 신장을 이룩하는 관계 발전이 우리 목적"이라고 못 박았다. 동독과 평화·교류를 강조하는 '동방 정책'을 펴면서도 인권을 '목적'이자 '목표'로 삼았다. 1972년 12월 체결된 동·서독 기본 조약에도 당연히 '인권 보호' 조항이 들어갔다. 서독은 1983~84년 동독에 차관 19억5000만 마르크(약 6000억원)를 약속하면서 동독이 국경에 설치한 기관총을 제거하라고 요구했다. 반면 한국 진보 정권은 세 차례 남북 정상회담을 했지만 '인권'이나 '자유'란 단어를 한 번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2017년 2월 황해남도에서 한국 녹화물 시청·유포 등 혐의로 20여 명이 총살됐다." "2012년 12월 황해남도 4군단 작전부장이 '강성 대국이 언제 오겠느냐'고 발언했다가 총살됐다." "남한 가족과 통화한 주민들이 잇따라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고 있다." 탈북자 단체 주장이 아니다. 지난달 정부 산하 통일연구원이 펴낸 '2018년 북한인권백서'에 나오는 탈북자들 증언이다. 북한은 '사회주의 봉건제'를 거쳐 '사회주의 노예제' 단계에 왔다는 말이 나오는 마당이다.

▶통일부가 어제 '이달 말 북한인권재단 사무실 문을 닫겠다'고 밝혔다. 재단 출범이 2년 넘게 미뤄지는 상황에서 월 6300만원의 빈 사무실 임차료는 낭비라는 것이다. 재단은 2016년 북한인권법 통과 직후 바로 설립해야 했지만 이사진 구성을 놓고 여야가 갈등하면서 지금까지 공전하고 있다.
▶통일부는 "재단이 출범하면 즉시 사무실을 얻겠다"고 했다. 그러나 북 인권 문제를 대하는 현 정부 태도로 볼 때 재단 설립 노력을 제대로 할지 의문이다. 외교부의 북한인권대사 자리는 문재인 정부 들어 계속 공석(空席)이다. 국가인권위의 북 인권 담당 조직은 대폭 줄어들었다. 북한 정권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은 북한 주민 인권에 큰 관심을 보여왔다. 북한 수용소 참상을 고발한 필름을 본 부시 대통령과 참석자가 모두 울었다는 일화도 있다. 요즘은 미국 대통령도 달라졌다. TV 앵커가 김정은의 인권유린과 처형에 대해 질문하자 트럼프는 "김정은은 터프 가이"라고 했다. "다른 사람들도 나쁜 짓 많이 했다"고도 했다. '김정은은 살인자 아니냐'는 질문에도 "그가 누군지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고립무원'이란 지금 북한 주민들 처지를 말하는 것이다.
-안용현 논설위원, 조선일보(18-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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