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컬렉션, 세기의 기증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도쿄 우에노에 위치한 ‘국립서양미술관’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미술관이다. 모네, 고흐, 르누아르 등 교과서급 거장의 작품을 다수 소장한 이곳은 건물도 하나의 작품으로 이름이 높다. 프랑스의 르코르뷔지에가 설계한 이곳은 시대를 앞선 기능미와 조형미로 1959년 개관 당시부터 화제를 불러 모으며 일본을 대표하는 문화 공간이 되었다.

국립서양미술관 탄생 배경에는 아트 컬렉터 마쓰카타 고지로(松方幸次郞·1865~1950)가 있다. 가와사키 조선소의 경영자로 1차 대전 당시 조선업 호황으로 거부를 모은 그는 열정적으로 미술품을 수집하였다. 유럽 화랑가의 큰손으로 그가 미술품 구입에 쓴 금액이 물경(勿驚) 1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그의 컬렉션은 사연이 많다. 일본에 들여온 일부 작품들은 회사 경영 악화로 반강제 매각되어 뿔뿔이 흩어졌고, 런던과 파리에 보관된 컬렉션은 2차 대전의 발발로 런던 컬렉션은 소실(燒失)되고 파리 컬렉션은 프랑스 정부에 의해 적국 재산으로 몰수되는 우여곡절을 겪는다.
종전 후 파리 컬렉션의 일부인 365점을 프랑스 정부로부터 기증 형식으로 어렵사리 돌려받을 수 있었는데, 이때 프랑스 정부는 일본이 미술관을 지어 이 작품들을 전시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일본의 국립 미술관이 르코르뷔지에 설계로 지어진 것은 이러한 연유이다. 국립서양미술관에는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은 영욕(榮辱)의 일본 근현대사가 오롯이 담겨있다.
얼마 전 ‘이건희 컬렉션’의 사회 기증 뉴스가 화제가 되었다. 마쓰카타 컬렉션을 능가하는 세기의 컬렉션이 개인 소유를 넘어 한국의 문화 자산이 된 것이다. 이건희 회장이 평생을 바쳐 일군 기업의 생명력은 유한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가 수집한 예술품의 가치는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할 것이다. 국가도 할 수 없는 일을 해낸 개인의 위업을 어떻게 남기고 어떻게 기리는가가 그 사회의 문화 수준과 역량을 보여주는 척도일 것이다.
-신상목 대표, 조선일보(21-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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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글로브 보이콧

1997년 영화 ‘제리 맥과이어’에서 스포츠 에이전시 매니저인 주인공 제리(톰 크루즈)는 풋볼 선수와 우정을 나누며 그를 스타로 키웠다. 선수가 극 중 했던 말 ‘돈을 내놔(Show me the money)’는 세계적 유행어가 됐고 크루즈는 그해 제54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랬던 크루즈가 지금까지 받은 이 상의 트로피 세 개를 최근 반납했다. 공정을 내던지고 ‘쇼 미 더 머니’만 해 온 골든글로브 측에 대한 보이콧이었다.
▷1944년 시작돼 아카데미상과 함께 미국 양대 영화상인 골든글로브상이 존폐 위기를 맞았다. 1996년부터 시상식을 중계해 온 미국 NBC가 내년부터 중계를 중단한다고 밝힌 데 이어 워너미디어와 넷플릭스 등 주요 제작사와 스타들의 보이콧이 이어지고 있다. NBC는 골든글로브가 개혁을 추진해야만 중계 재개를 고려하겠다는 입장이다.
▷올해 2월 골든글로브의 부정부패가 폭로됐다. 주최 측인 미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가 영화제작사 파라마운트의 협찬을 받아 프랑스로 호화 여행을 다녀오고 곳곳에서 검은돈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골든글로브의 부패는 역사가 깊다. 1982년 여배우 피아 자도라의 신인상 수상 이면에는 그의 억만장자 남편이 협회 회원들을 라스베이거스로 초청해 벌인 초호화 파티가 있었다. 당시 미 CBS는 그 일로 시상식 중계를 중단했고, 자도라는 이듬해 골든 라즈베리상(최악의 신인상)을 받았다.
▷할리우드에서는 골든글로브상을 경박하게 여기는 시선이 많다. 최근엔 인종과 성 차별, 혐오와 편견 등 각종 논란도 빚는다. 협회의 끼리끼리 클럽 문화가 그들의 다양성 감수성을 낮게 만든 탓이다. 협회 회원 87명 중 흑인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2월에 밝혀지자 소셜미디어에서는 배우들을 중심으로 골든글로브의 종말을 고하는 #TimesUpGlobes 운동이 벌어졌다. 현재 미국의 주요 배우 10명 중 4명은 백인이 아니다.
▷골든글로브가 가진 힘의 비결은 돈이다. 1990년대에 수익원을 찾던 NBC가 생방송 중계에 눈을 돌렸을 땐 이미 CBS가 그래미상, ABC가 아카데미상 시상식을 중계하고 있어 골든글로브의 파트너가 됐다. 골든글로브는 NBC가 매년 500억 원이 넘는 광고 수익을 올리고 넷플릭스 같은 신흥 미디어가 명성을 쌓는 플랫폼이다. 그런데도 이들 기업이 이번에 보이콧을 했다. 제리 맥과이어에서 톰 크루즈의 명대사가 있었다. “당신은 나를 완성시켜 줘요(You complete me)”. 꼰대문화와 돈맛에 물들었던 골든글로브가 다양한 인종과 가능성을 포용해 부족함을 채워 나가야 한다.
-김선미 논설위원, 동아일보(21-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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