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世界-人文地理]

[‘이민족 황제’ 띄운 中의 속뜻] [中共과 越共] [6·25 전사자 추모의 벽]

뚝섬 2021. 5. 21. 06:23

이민족 황제’ 띄운 中의 속뜻

 

중국 관영 매체 신화통신 한국어판이 얼마전 허난성 뤄양시에서 열린 역사 재현 행사를 소개했다. 5세기 북위(北魏)를 다스렸던 효문제(孝文帝)와 부인 문소황후가 고대 유적지 용문석굴에서 시종들의 시중을 받으며 분향하고 예불을 드리는 장면을 재현한 것이다.

 

위는 현재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소장 중인 '위효문제 예불도'. 아래사진은 지난 4월 25일 뤄양시 용문석굴 관광지 예불대에서 연기자들이 '위효문제 예불도'를 재현하는 모습. /신화망 홈페이지

 

이 프로젝트를 진행한 용문석굴연구원은 황제 부부의 예불 장면을 돌에다 조각한 부조상 ‘위효문제예불도’와 ‘문소황후예불도’의 인물 모습과 당대 문헌을 참고해 연기자들에게 옷을 입히고 사진과 동영상으로 제작했다. 1분 51초짜리 동영상은 부조상 속 황제 부부와 시종들이 화려한 궁중 의상을 입고 조각 바깥으로 걸어나오는 것처럼 보이게끔 한 역동적 연출이 눈길을 잡아끌었다. 꼼꼼히 고증하느라 준비 기간만 석 달이 걸렸다고 한다. 기사에는 황제 부부의 부조상이 도굴돼 각각 미국 캔자스시티 넬슨-애킨스 미술관과 뉴욕 메트로폴리탄에 소장돼 있는 유출 문화재라는 것도 소개됐다.

 

이 행사를 단순히 중국의 지역 문화 행사로 보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 효문제라는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 때문이다. 북방 유목민족인 선비족 출신으로 황제에 오른 그는 한화(漢化)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친 것으로 유명하다. 북방 지역에 있던 수도를 남쪽 뤄양으로 옮겼고, 선비족의 언어와 옷차림 등 고유의 습속을 금지했다. 문물과 제도를 모두 한족의 것으로 바꿨다. 이를 통해 북위는 남북조시대 강국으로 군림할 수 있었지만, 그가 소속된 선비족은 정체성을 잃고 한족으로 흡수돼갔다. 한 문화의 우월성과 지배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한 소재로 효문제는 더없이 좋은 소재인 셈이다.

 

중국이 신장위구르와 네이멍구, 티베트 등 독립 성향이 강한 소수민족 지역에서 밀어붙인 강압 정책으로 국제 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는 요즘, 중국 당국이 원하는 ‘소수민족의 롤모델’로 효문제가 1500년 만에 ‘소환’된 것은 아닐까. 이번 행사가 중국이 인접 국가들의 역사와 문화를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역사 공정’의 일환이 아닌가 의심된다.

 

우리가 이를 타산지석으로 여겨야 하는 까닭이 있다. 한국은 반만년 역사에서 중국의 침탈을 버텨냈고, 근대국가인 대한민국 성립 이후에는 빠른 속도로 경제 발전과 민주화를 이뤄냈다. 하지만 중국은 어떻게든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침해하려는 역사 공정을 계속하고 있다. ‘중국몽(中國夢)’을 주창한 시진핑 집권기에 들어오면서 그런 흐름은 더욱 강해지는 양상이다.

 

한복과 김치를 자기네 문화유산이라고 주장하는 일부 중국인의 생떼와, 백두산을 ‘중국 왕조의 영토 장백산’으로 바꾸려는 최근 중국 당국의 움직임이 대표적인 예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중국의 역사 공정이 시도될지 경계심을 놓지 말아야 한다.

 

-정지섭 기자, 조선일보(21-05-21)-

___________________________

 

 

中共과 越共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공산주의(共産主義)로 체제를 끌어가는 나라는 이제 몇 안 남았다. 그러나 세계 최대 인구 14억 명을 이끄는 중국 공산당의 힘은 여전히 대단하다. 그 중국 공산당을 한자로 줄여서 적으면 중공(中共)이다.

 

중국의 이웃으로 함께 공산주의 체제를 구성한 나라 중 하나는 베트남이다. 한자로는 월남(越南)으로 적는다. 얼마 전까지 우리도 흔히 사용했던 나라 이름이다. 그 베트남의 공산당을 한자로 약칭하면 월공(越共)이다.

 

이 ‘월공’은 사실 두 대상을 가리켰다. ‘베트남 공산당’ 외에 남북 분단 시절 북베트남의 지원을 받아 게릴라전을 벌였던 ‘베트콩’도 같은 한자로 적는다. ‘베트남 민족주의 해방 전선(NLF)’ 소속 ‘베트남 공산주의자’의 지칭이다.

 

베트콩은 이미 사라졌다. 따라서 이제는 ‘월공’이라고 적으면 곧 베트남 공산당을 의미한다. ‘중공’과 ‘월공’은 모두 공산주의를 신봉해서 사이가 좋을 듯하지만, 역사적 갈등과 영해(領海) 분쟁 등으로 아주 관계가 나쁘다.

 

‘중공’이 먼저 1978년 개혁·개방의 드라이브를 걸었다. 이에 뒤질세라 ‘월공’ 또한 1986년 ‘도이모이’라고 하는 쇄신책을 내걸고 개혁·개방에 나선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둘은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중이다.

 

그러나 ‘중공’은 덩치가 크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경제 영역 외의 정치 분야 개혁에서는 진도가 지지부진이다. 오히려 요즘에는 1인 권력 체제를 강화하며 정치 개혁과는 점차 더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그에 비해 권력 분점 등을 잘 유지하며 ‘월공’은 민주화 등 정치 개혁 청사진까지 그리고 있다.

 

이름값 때문인지 ‘중공’은 중심(中心)으로 권력을 몰아가는 데 강하게 집착한다. ‘월공’은 그와 달리 공산주의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추세다. 마침 그 한자 이름을 뜻으로만 읽으면 ‘공산주의[共]를 뛰어넘다[越]’이니 참 묘하다.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조선일보(21-05-21)-

___________________________

 

 

6·25 전사자 추모의 벽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는 6·25전쟁에서 전사한 국군과 유엔군의 이름이 새겨진 명비(名碑)가 있다. 6·25전쟁의 전사자는 국군 13만7899명, 유엔군 3만7902명. 명비에 이름을 새겨 수많은 희생을 후대에서도 기억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명비에는 1994년 국군의 이름이 먼저 새겨지고 6년 뒤인 2000년에야 유엔군의 이름이 더해졌다. 정부가 아니라 한 방산업체가 제작해서 기증한 것이었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워싱턴의 한국전쟁 참전 기념공원에는 여태껏 미군 전사자들의 이름을 새긴 명비가 없다. 앞서 6·25전쟁 행사 때 생존한 전우들이 전사자들의 이름을 호명하며, 명비의 건설을 촉구한 적도 있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노력이 뒤늦게 결실을 본다. 6·25전쟁에서 전사한 미군 3만6574명, 한국군 카투사 7000여 명의 이름이 새겨진 ‘추모의 벽(Wall of Remembrance)’ 착공식이 21일 열린다. 방미 중인 문재인 대통령도 참석한다.

▷내달 6·25전쟁은 71주년을 맞는다. 하지만 참전용사에 대한 예우가 여전히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이번 추모의 벽 건설도 생존한 용사들이 앞장서서 시작했다. 취지에 공감한 한미의 민간단체들이 십시일반 기부금을 모았지만 약 250억 원인 건설비 마련에 힘이 부쳤다. 이런 상황이 되고 나서야 한국 정부는 뒤늦게 지원에 나섰다.

 

▷추모의 벽은 내년까지 한국전쟁 참전 기념공원 내 ‘추모의 연못’ 주변에 설치된다. 화강암 판에 전사자들의 이름이 알파벳 순서로 새겨진다. 가장 첫 줄에는 존 에런 주니어(John Aaron Jr.) 육군 이등병이 자리 잡는다. 그는 1950년 7월 27일 하동 전투에서 사망한 300여 명의 미군 중 한 명으로 당시 22세였다. 미 8군사령관으로 낙동강 방어선을 지켰던 월턴 워커 장군의 이름도 새겨질 것이다. 그는 당시 “지키지 못하면 죽음뿐이다(Stand or die)”라고 소리치며 부하들을 독려했다.

 

▷6·25전쟁에 참여한 미군은 178만 명이 넘는다. 그런데 이제 생존자는 50만 명 남짓이고, 하루 600명 정도가 세상을 뜨고 있다고 한다. 참전용사들에게 예우를 갖추고, 감사를 표할 수 있는 시간마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추모의 벽이 마련되는 것은 다행이다. 미국의 보훈단체들은 ‘더 이상 잊혀지지 않는 전쟁(No Longer the Forgotten War)’이라며 6·25전쟁 되새기기 운동에 나서고 있다. 우리도 국가의 부름에 목숨을 내놓고, 명비에 한 줄 이름을 남기고 떠난 수많은 청춘들을 잊어서는 안 될 일이다.

-황인찬 논설위원, 동아일보(21-05-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