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꽃핀 조선 도자기의 비결
경남 사천(泗川) 출신의 김존해(金尊楷)는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건너)간 도공이다. 규슈의 유력 다이묘 호소카와 다다오키(細川忠興)에게 스카우트된 존해는 부젠(豊前·후쿠오카현)에 자리를 잡고 도자기를 굽기 시작한다. 존해가 가마터를 잡은 곳의
지명을 딴 '아가노야키(上野燒)'는 지금도 후쿠오카를 대표하는 도자기로 명성이 드높다.
호소카와는 '리큐칠철(利休七哲·센노 리큐에게서 다도를 익힌 수제자 7명)'의 한 명으로 불리던 다도 명인이었다. 존해가 빚어내는 질소(質素)한 도자기에 흠뻑 빠진 호소카와는 히고(肥後·구마모토현)로 영지를 옮길 때에도 존해를 가신단으로 동반할 정도로
그의 기예(技藝)를 아꼈다.
존해는 특이하게 일본에 두 번 간 사람이다. 기록에 의하면 1592년 일본에 잡혀갔지만, 청자 기술 습득을 위해 조선에 돌아왔다가
정유재란 막바지인 1598년 일가 친척을 데리고 다시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한다. 존해가 왜 다시 일본으로 갔는지 그 속사정까지 기록에 남은 것은 없다. 다만 1622년 호구 조사가 의미심장하다. 존해의 도요(陶窯)에는 주민 65명, 야키모노시(도공) 8명, 우리코(판매원) 10명, 말 7두, 소 1두가 기록되어 있다. 웬만한 무가(武家) 부럽지 않은 인원과 재산이 존해의 관장하에 있었다.
내막이야 무엇이건 존해는 일본 땅에서 자신을 알아주는 주군을 위해 신명을 바쳐 도자기를 구우며 천수를 누렸다. 존해를 총애한 다다오키의 직계손이 그 자신 도예가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전 총리이다.
조선의 도공들이 활약한 일본에서는 찬란한 도자기 문화가 꽃을 피웠지만, 정작 원천
기술국 조선의 도자기는 시름시름 쇠퇴의 길을 걸었다. 현장에서 실용적 기술로 실리를 창출하는
전문가를 '쇼쿠닌(職人)'으로 대우하며 합당한 보상과 영예를 부여한 일본의 풍토가
그 갈림길의 배경에 있었다. 현대 한국 사회에도 여전히 묵직한 울림을 전하는 역사의 교훈일 것이다.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조선일보(19-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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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고대사의 溫故知新
"이거, 사실 다 우리 역사입니다."
해외여행이 갓 자유화된 1990년 여름, 일본
나라(奈良)의 도다이지(東大寺) 앞에서 한국인 가이드가 씩 웃으며 말했다. 일본에 고대 문화를 전수해
준 사람들이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渡來人)이기 때문에
일본 문화는 한반도 문화의 복사판이라는 얘기였다. 당시 한 기관에서 주최한 대학생 일본 문화 탐방에
참가했던 기자는 '영국 청교도 이주민이 미국의 뿌리가 됐다고 해서 미국 역사를 다 영국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으냐'는 의문이 들었다.
올해로 탐방 30주년을 맞은 조선일보 주최 '일본
속의 한민족사'를 최근 동행 취재했다. 고대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일본 속 한반도 문화의 잔영(殘影)이 뚜렷했다. 규슈 후나야마 고분에서 나온 금동관은 백제 무령왕릉 금동관과 쌍둥이 같았고,
우리 국보 83호를 꼭 닮은 교토 고류지(廣隆寺)의 목조 반가사유상은 신라 장인의 작품이라는 것이 정설로 굳어지고 있다. '백제관음상'이 있는 나라의 호류지(法隆寺)는
아예 한국 절인 듯 친근했다.
한반도의 영향을 부인하려는 일부 일본 학계는 '대륙 문화가 한반도를 경유해서 일본으로 왔다'고 강변한다.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는 이에 대해 "그건 '회삿돈이 아버지를 경유해서 나한테 용돈으로 왔다'고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반박한 적이 있다. 한국이 고대 일본에 문화를 전한 것은 이제 역사적 사실로 굳어졌고, 지난 수십 년 한국인의 역사적 자부심을 키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세계 최대의 목조건물인 도다이지의 대불전. 백제인의 불심과 기술로 만들어졌다. /조선일보 DB
하지만
탐방은 '그다음에 일어난 일'도 곱씹게 했다. 세계 최대 목조 건축물 도다이지가 8세기 건립될 때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이 큰 역할을 했지만, 이후 한반도 영향에서 벗어난 일본 고유 문화는 본격적으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게다가 도다이지와 비슷한 규모였던 신라 황룡사는 불타버렸으나 도다이지는 조금 후대에
다시 지은 건물이 여전히 남아 있다. 교토를 찾는 외국인들은 도다이지 앞에서 감탄하지만, 황룡사 터에선 주춧돌만 구경할 수밖에 없다.
원천 기술이 누구 것이며 그것을 누가 전파했느냐도 중요하지만 이를 받아들이고 발전시켜 세계인의 인정을 받는 것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일본은 임진왜란 때 데려간 조선 도공 이삼평에게서 도자기 기술을 전수받았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화려한 색채의 아리타(有田) 도자기를
개발해 유럽에 대량 수출했다. 일본은 한반도에서 건너간 방구부채도 '쥘부채'로 개량해 17세기
이후 유럽 사교계를 휩쓸었다.
일본 문화는 이미 수백 년 전부터 서구인에게 친숙했으나 한국은 그렇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최근 들어 세계인의 눈길을 사로잡은 K팝과 한국산 휴대폰도 외국에서 도래한 것을 우리 방식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우리가 한·일의 고대 문화 교류를 되짚어보는 것은 옛것을 토대로 미래의 새로움을
만들어내기 위한 온고지신(溫故知新)의 뜻이다.
-유석재 문화부 차장, 조선일보(17-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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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속의 한민족사(史)
일본에는 고대 한반도로부터 건너간 많은 불상과 문화유산이 있다. 한민족의 이름을 지키고 있는 일본내의 백제·고구려·신라 관련 유적과 유물을 통해 한 · 일 고대사를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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