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심검문’의 추억
1980년대엔 대학 안에도 경찰이 상주했다. 대학 밖에서도 경찰이 학생들 앞을 가로막고 수시로 ‘불심검문’을 했다. 학생증을 보여줘도 가방 속까지 샅샅이 뒤졌다. 생리대가 들어있는 손지갑을 털린 여학생은 모욕감에 눈물을 쏟았다. 과잉 검문에 항의하는 학생들은 ‘닭장차’로 불리던 경찰 버스 안으로 끌려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2021년 8월 15일 오전 서울역광장에서 경찰이 도심 집회를 통제하기 위해 설치한 펜스 앞에서 시민들을 검문하고 있다. /김지호 기자
▶민주화 이후 마구잡이 불심검문에 대해 비판이 쏟아졌다. 신체의 자유, 사생활의 비밀 등 국민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불심검문의 요건과 한계를 엄격하게 정한 경찰관 직무집행법이 1989년 시행됐다. 불심검문 대상은 이미 범죄를 저질렀거나 곧 범죄를 저지를 것이라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로 제한된다. 경찰은 자기 신분증을 꺼내 소속과 이름을 먼저 밝혀야 한다. 불심검문을 당하는 국민은 경찰의 질문에 답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이를 어긴 불심검문은 불법이며 해당 경찰관은 최대 징역 1년까지 처벌받을 수 있다.
▶민주화 30년이 지났지만 1980년대식 불심검문을 연상케 하는 일들이 광복절인 지난 15일 서울 곳곳에서 벌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광복절 행사가 열린 서울역 주변에서 일부 경찰관들은 시민들에게 신분과 행선지를 물었다. 가방 속 소지품을 확인하기도 했다. 광화문역 주변 회사에 가던 어느 직장인은 500m쯤 이동하는 동안 “어디 가느냐”고 묻는 경찰을 5번 만났고 그때마다 신분증을 보여줘야 했다고 한다. 비슷한 일은 16일에도 있었다. 광화문역 인근을 걸어가는 70대 남성에게 경찰이 “어디로 가시는지 말씀해달라”고 했다. 이 남성은 “경찰이 아무 근거 없이 나를 집회 참석자로 의심한 것”이라며 “5공화국 때로 돌아간 느낌”이라고 했다.

▶경찰은 서울 도심에 버스 543대로 차벽을 둘러 ‘재인 산성’을 쌓았다. 지하철 출구도 봉쇄했다. 어렵게 출구를 찾아 밖으로 나와도 횡단보도가 철제 펜스로 막혔다. 70대 여성 2명이 경찰에게 “길 건너 약속 장소에 가려면 도대체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하소연하는 걸 봤다.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수준이다.
▶광복절 불심검문은 코로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라는 게 정부 설명이다. 인터넷 기사에 ‘사회 안전을 명분으로 시민 자유를 제한하는 논리는 전두환도 써먹던 방식, 전두환 타도하자던 너희들 아니냐, 알면서 하는 게 더 나쁘지’라는 댓글이 달렸다. 문재인 정권의 핵심부의 586 정치인들은 1980년대식 불심검문 피해자들이었다. 자기들이 되살려놓은 30년 전 방식 불심검문을 뭐라고 변명할지 궁금하다.
-금원섭 논설위원, 조선일보(21-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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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한테 감사하라고?
1990년대생 이후 젊은 세대는 ‘선진국 한국’서 태어난 이들
5공 ‘땡전 뉴스’식 인사 요구… 청년 커뮤니티에선 조롱거리
도쿄올림픽 국가대표 여자 배구팀 기자회견에서 김연경 선수에게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감사 인사를 요구했던 배구협회 유애자 홍보분과 부위원장이 사퇴했다. 옛날처럼 TV 뉴스로만 나갔다면 잘 편집되어 전파를 탈 수도 있었겠지만, 경기 영상에 출입국 장면까지 거의 모든 것들이 생중계되다시피하는 시대에 대통령 관련 웃지 못할 ‘밈’(널리 퍼진 사진·영상)만 하나 추가되고 말았다. 유튜브에 키워드만 입력하면, “제가요? 감히 대통령님한테… 뭔 답변을요?” 같은 짧게 편집된 영상이나, 싫다는 선수 굳이 끌어다 카메라 앞에 세우는 출국장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아마도 “국민 모두 자부심을 느꼈다 (중략) 김연경 선수에게 각별한 격려를 보낸다”고 한 대통령의 소셜미디어 메시지 때문이었을 것이다. 혹시 문 대통령 극성 지지자들이 달려들어 김 선수가 봉변당하지 않을까 지켜봤지만, 팬덤에 관한 한 문 대통령 못지않은 ‘식빵 언니’(김 선수 별명)가 희생양이 되지는 않았다.

지난 9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 입국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대한민국 선수단 환영식에서 여자 배구 대표팀 김연경이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연합뉴스
사실 이런 일은 1980년대 5공화국 시절 전두환 당시 대통령 소식을 항상 톱 기사로 다뤄 방송 뉴스가 ‘땡전 뉴스’로 불리던 때도 웃음거리였다. 1984년 LA올림픽 레슬링 종목에서 고(故) 김원기 선수가 금메달을 땄을 때다. 김 선수는 “감사한 사람 없느냐”는 아나운서 질문에 “레슬링협회 이건희 회장님께 감사드린다”고만 했다. ‘대통령’ 언급이 없자, 다급해진 아나운서가 몇 차례나 “또 감사드릴 분 없나요” 물어도 감독과 코치 가족 이야기만 했다는 것. 당시 다방에 모여 TV를 보던 대학생들조차 답답해 “그냥 전두환이라고 말해”라고 했다는 자신의 경험담을 한 중견 언론학자가 페이스북에 올려놓은 것을 봤다. 올림픽 기간 선수들이 메달을 따면 대통령이 전화를 걸어 노고를 치하하고, TV에선 이를 연일 방송하는 국가적 제의(祭儀)가 반복되던 시절에도 이런 작은 균열은 발생하곤 했다.
올해 올림픽은 우리가 이런 국가우선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줬다. 무산된 대통령의 일본 방문이나 선수촌에 내걸린 이순신 장군 현수막은 잡음에 불과했다. 경기장에서 뛰던 선수들 한 명 한 명의 모습에선 국가가 지운 부담이나 그늘을 느끼기 힘들었다. 선수들은 메달을 따지 못해 아쉬워도 경기 자체를 즐겼고 국민들도 박수를 보냈다. 몸에 자유롭게 문신을 새긴 다이빙 선수와 수영 선수, 함성을 지르다 각 잡힌 경례로 자신의 도전을 끝내는 육군 일병 국가대표의 모습은 그 자체로 당당하고 아름다웠다.
-신동흔 기자, 조선일보(21-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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