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의 신곡(神曲)
지옥·연옥·천국 여행기 담은 시 100편… 인간의 삶, 윤리에 대한 사색 담아

단테가‘신곡’책을 들고 있는 모습을 그린 그림. /위키피디아
도시들이 시간에 따라 소멸하듯이 가문이 끊어진다는 것은 이상한 것도 아니고 이해하기 어려운 일도 아니리라. 너희의 모든 것은, 너희들 자신이 그러하듯, 죽음을 맞는다. (중략)인생은 짧다.
올해는 이탈리아 시인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1265~1321)가 세상을 떠난 지 꼭 700년 되는 해입니다. 그가 태어난 이탈리아에선 그를 기리는 각종 행사가 열렸고, 한국에서도 관련 연극과 기념 강연 등이 잇따랐어요.
그의 대표작은 '신곡(神曲)'이에요. 단테가 사후 세계인 지옥·연옥·천국을 여행하면서 역사적 인물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기독교 신앙이나 윤리 등에 대해 사색하는 내용이에요. '신곡'이란 제목은 일본에서 붙인 것이고, 본래 제목은 '단테 알리기에리의 코메디아'예요. '코메디아'는 희극(喜劇)이란 뜻이죠.
단테는 1304년쯤 작품을 구상하기 시작해 세상을 뜨기 직전 해인 1320년까지 집필했어요. 신곡은 '지옥' '연옥' '천국' 등 세 편으로 나뉘고, 각 편은 33곡으로 구성돼 있어요. 여기에 '서곡(序曲)'까지 서사시 총 100편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어두운 밤 숲에서 길을 잃은 단테 앞에 그가 존경하는 고대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나타나요. 그는 해가 뜨는 언덕 위가 천국인데, 거기로 가려면 지옥과 연옥을 지나야 한다며 함께 순례하기를 권해요. 9단계로 된 지옥은 무시무시했어요. 깔때기 모양으로 땅속에 박힌 지옥 입구엔 구더기에게 시달리는 비겁한 망령이 즐비했고, 지옥 깊은 곳에는 얼음에 갇혀 꼼짝달싹 못 하는 망령들이 있었어요.
단테가 지옥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연옥이에요. 가톨릭 교리에 나오는 '연옥'은 천국으로 가기 위해 살아 있는 동안 지은 죄를 씻고 잠시 머무는 공간이에요. 단테가 본 연옥은 둥근 피라미드 형태인데, 아래에서 위쪽으로 교만·질투·분노·나태·인색·탐식·색욕의 죄를 지은 사람들이 차례로 벌을 받고 있었어요.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 하는 지옥과 달리 연옥의 형벌은 일시적이에요. 생전에 교만했던 죄인은 무거운 바위를 지고, 게을렀던 죄인은 쉬지 않고 빠르게 달려야 하죠.
천국에 간 단테는 그곳이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이라는 걸 깨달아요. 그러곤 참된 구원의 길에 도달하게 되지요.
'신곡'은 특정 종교 교리를 담고 있지만, 그 틀에 갇힌 작품은 아니에요. 선과 악, 죄와 벌을 포함한 인간 삶의 다양하고 보편적인 모습을 담고 있는 작품이지요. 독일의 문호 괴테는 '신곡'을 "사람 손으로 만든 최고의 것"이라고 칭송했고, 아르헨티나 국민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모든 문학의 결정"이라고 찬사를 보내기도 했답니다.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본부장, 조선일보(21-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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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중에도 별을 바라보라”… 단테 사후 700년, ‘신곡’의 여정은 진행형
[알베르티의 유럽 통신]
‘우리 살아가는 길 중간에/ 나는 어느 어두운 숲 속에 서 있었네./ 곧은길이 사라져 버렸기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이탈리아 문학 작품, ‘신곡(神曲·La Divina Commedia)’은 이렇게 시작된다. 단테 알리기에리(1265~1321)가 죽기 전 약 17년간 쓴 이 작품은 이탈리아 반도에서 그 언어와 문학이 발달하고 확산되는 데 있어, 한국에서 한글의 발명과 보급만큼이나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신곡’은 신(神)에 다다르는 인간의 여정을 상징하는 지옥, 연옥, 천국편의 세 부분으로 이뤄진 장편 서사시이다. 단테는 지옥과 연옥에서 위대한 로마 시인 버질(Virgil)의 안내를 받으며, 기사도적 사랑의 이상을 상징하는 피렌체 여인 베아트리체가 천국에서 그를 인도한다. 죄를 깨닫고 그것을 거부하는 지옥에서 출발해 연옥에서 기독교적 회개의 삶을 거친 뒤, 신을 향해 승천한 영혼의 여정은 천국에서 끝을 맺는다.

‘신곡’을 쓴 이탈리아 시인 단테의 700주기인 올해, 이탈리아는 기념 행사로 떠들썩하다. 왼쪽 그림은 이탈리아 화가 아틸리오 런칼디에르가 그린 단테 초상화. 가운데 사진은 이탈리아 반도 700㎞를 7개월간 종주하며 단테의 신곡 지옥편을 공개 공연하는‘떠돌이 단테’프로젝트 공연 장면이다. 700년 전 단테가 라틴어 대신 썼던 당대의 이탈리아어 낭독과 현대 이탈리아어 설명이 화음을 이루듯 주고받으며 이뤄지는 공연이다. 오른쪽 사진은 단테가 말년을 보낸 라벤나에 있는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 수도원 내 단테의 무덤. /Ravenna Istituzione Biblioteca Classense Museo e Casa Dante, Naufraghi Inversi, City of Ravenna
여전히 ‘현대 시인’인 단테
단테 사후 700주년인 올해, 이탈리아와 전 세계에서 수많은 기념 행사가 열리고 있다. 무엇이 단테를 7세기가 흐른 뒤에도 여전히 살아 숨 쉬게 하는 것일까.
문학저널 ‘알레기에리’ 주간(主幹)인 주세페 레다 볼로냐대 교수는 “단테의 메시지는 인간이 여전히 추구하는 도덕적 향상과 성장의 여정을 상징하기에 현재적 울림이 있다. 인류가 불행한 상태에서 행복의 상태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고 했다. 이탈리아 라벤나에 있는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단테 센터의 이보 라우렌티니 신부는 “단테의 작품은 영적이며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동시에 사회적인 삶의 모든 측면을 아우른다”고 덧붙였다. 단테의 무덤이 이곳 라벤나의 프란치스코회 수도원에 있다.
사람이 가진 다면적 본성을 포착하는 단테의 능력 역시 그의 작품이 여전히 보편적 매력을 갖는 이유 중 하나다. 저널 ‘디지털 단테’ 편집장인 테오돌린다 바롤리니 미 컬럼비아대 교수는 “단테는 읽는 사람이 믿지 않을 수 없는, 압도적으로 진짜 같은 가상의 현실을 창조해낸다”고 했다. “셰익스피어처럼 인간 존재의 복잡성을 드러내는 고차원적 예술성과 ‘반지의 제왕’을 쓴 톨킨 같은 가상현실 창조 기법이 숭고한 시 텍스트 안에서 결합하지요. 흉내 낼 수 없는 비범함이 있어요.”
문학 저널 ‘단테’의 부(副)주간이자 로마 토르 베르가타 대학 교수인 플로린다 나르디는 “단테는 이탈리아만의 문화 전파를 위한 이상적인 수단으로 라틴어가 아닌 당대 피렌체의 토착어를 선택한 것”이라고 했다. “셰익스피어가 썼던 영어와 달리, 1300년대에 단테가 썼던 말은 지금도 이탈리아인이라면 꽤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이탈리아어로 최고의 시인 ‘소모 포에타(Somo Poeta)’는 그대로 단테를 가리킨다. ‘소모 포에타’를 기념하는 수천 건의 행사 중 하나인 ‘떠돌이 단테’도 단테의 ‘민중 언어’ 개념을 부각한다. 이탈리아 반도 700㎞를 종주하며 7개월 동안 신곡 지옥편을 공개 공연하는 프로젝트. 이 공연을 진행하는 극단의 대표 유제니오 디 프라이아는 “지금 인류가 지옥편의 현대판을 살아가고 있지 않느냐”고 했다. “단테는 ‘어두운 숲’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진실한 삶을 살라고 말합니다. 광적인 성공 지향, 디지털 소외 같은 것들이 현대의 ‘어두운 숲’입니다.” 신곡 지옥편 공개 공연은 형식도 독특하다. 디 프라이아가 단테가 쓴 당대의 언어 그대로 낭송하면, 마치 화음처럼 다른 목소리가 현대 이탈리아어로 의미를 설명한다. 그는 “코로나 사태로 우리의 삶은 완전히 멈춰 섰다. 단테의 지옥편의 마지막 구절처럼, ‘다시 별을 바라보라’는 메시지를 전하려 한다”고 했다. 이들의 공연 투어는 9월 라벤나에서 끝난다.
단테가 추방 뒤 몇 년 살았던 베로나도 ‘단테와 셰익스피어 사이: 베로나의 전설’ 전시 등 다양한 이벤트를 연다. 시인의 유해가 잠든 라벤나에서는 세계적인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가 지휘하는 콘서트를 포함해 9월 12일까지 이벤트들이 이어진다.
단테는 세계 문학에 거대한 영향을 끼쳤다. 제프리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는 신곡 지옥편에서 몇몇 아이디어를 얻었다. 존 밀턴의 실낙원 역시 우주에 대한 단테의 비전에서 영감을 얻었다. 볼로냐대 레다 교수는 “단테는 글로벌 대중문화 아이콘”이라고도 했다. “가장 성공적인 소설과 영화에서 그의 작품이 여러 형태로 등장합니다. 댄 브라운의 소설 ‘인페르노’나, 브래드 피트가 나온 영화 ‘세븐’도 신곡 지옥편에서 단서를 얻었지요.” 아르헨티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단 한 권의 책만을 남길 수 있다면, 나는 신곡을 선택할 것”이라고 했다. 단테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의 목록은 무궁무진하다.
영감의 원천으로서의 단테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단테는 ‘애국자’로 시대에 소환됐다. 이탈리아 통일 운동 ‘리소르지멘토(Risorgimento)’의 아이콘이 된 것이다. 부산외대 비교문학부 박상진 교수는 2013년 논문에서 “작가로서 신채호의 활동도 부분적으로 단테에게 영향받은 것”이라고 봤다. 신채호는 라틴어가 아닌 이탈리아어로 신곡을 썼던 단테를 계몽적 지식인으로 여겼고, 일제에 대한 저항으로써 일본어가 아닌 한국어 서사극 ‘꿈하늘’을 썼다는 분석이다.
여러 다른 의미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단테의 작품이 구원과 성장의 개인적 여정이라는 점은 변함없다. 그러니 이 글의 마무리로 신곡 천국편의 마지막 구절보다 더 적합한 언어는 없을 것이다.
‘여기서 높은 환상은 힘을 잃었다. 그러나/ 이미 나의 소망과 의지는, 똑같이/ 움직이는 바퀴처럼, 태양과 다른 별들을/ 움직이는 사랑이 돌리고 있었다.’
-프란체스코 알베르티·이탈리아 저널리스트/前 마이니치신문 기자, 조선일보(21-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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