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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영어 금지’] [남북 유엔가입 30년이 남긴것]

뚝섬 2021. 9. 14. 06:18

중국의 ‘영어 금지’ 

 

1960년대 후반 홍위병들이 마오쩌둥 어록을 손에 쥐고 톈안먼 광장에 몰려들고 있다. /조선일보 DB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처음 시작한 분야는 경제가 아니었다. 교육이었다. 청소부 등으로 쫓겨간 학자들을 대거 복권했고 문화대혁명으로 중단됐던 대학 입시도 10년 만에 부활시켰다. 중국 대학엔 서구 사상과 기술을 전하는 영문 서적이 넘쳐났다. 1978년 베이징대에 입학한 리커창 총리는 손으로 쓴 영어 단어장을 호주머니에 가득 채우고 다녔다고 한다. 1982년 중국에서 TV를 보유한 1000만 가구 대부분이 BBC 영어 학습 프로그램을 시청하기도 했다. 학문 개방과 외국어 열풍이 외자 유치보다 먼저였다.

 

▶2013년 중국 최대 정치 행사인 ‘양회’에서 “영어 학습 비중이 너무 높아 학생들이 중국어를 공부할 시간이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당시 한 미술대학은 ‘영어를 못하면 그림 재능이 있어도 불합격’이란 공고문을 붙이기도 했다. ‘외국 물’ 먹은 중국인들이 사적 모임에선 영어를 썼다. 고관대작의 자녀는 미·영으로 유학을 갔다. 시진핑 딸도 하버드에서 공부했다. 영어를 해야 돈도 벌었다. 그런데 빈곤 가정 출신이나 문혁을 겪은 중·노년층에선 알파벳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했다. 영어가 중국 사회 격차와 불만의 원인 중 하나로 부상했다.

 

▶지난달 ‘공동부유(共同富裕)’를 선언한 시진핑의 중국은 민간 기업의 팔을 비틀어 천문학적 돈을 뜯어내고 있다. 공산당에 찍힌 알리바바가 내놓기로 한 ‘기부금’만 1000억위안(약 18조원)이다. 문혁 시기 홍위병의 ‘부자 때리기’가 떠오른다. 공산당은 청소년 게임 봉쇄, 연예인 팬클럽 폐쇄 같은 개인 자유 통제도 서슴지 않는다. ‘시진핑 사상’ 교육을 강제하기까지 한다. 지금 ‘제2의 문혁이라도 났느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상하이 교육 당국이 지역 초등학교의 영어 시험을 막았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중국 초·중학교에선 해외 교과서 사용이 불허됐다. 영어 사교육도 사실상 금지됐다. 대입 시험에서 영어를 빼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대학 관계자는 NYT에 “저널리즘이나 헌법처럼 (정치적으로) 예민한 과목일수록 영어 원서를 사용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했다. 영어 자리는 중공 이념 교육이 대신하고 있다. 서구의 자유와 민주 사상을 직접 체득하지 말라는 것이다.

 

▶시진핑은 5년 전만 해도 “문혁이 (중국을) 세계와 단절시켜 폐쇄된 환경을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본인이 문혁 피해자이기도 하다. 그래 놓고 중국을 닫힌 나라로 되돌리려 하고 있다. 내년 공산당 총서기 3연임을 위한 통제 조치다. 권력은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는 말이 틀리지 않은 것 같다.

 

-안용현 논설위원, 조선일보(21-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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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유엔가입 30년이 남긴것

 

[특파원 리포트] 

 

1991년 9월17일 유엔본부에서 안보리가 끝나 남북한 유엔가입이 확정된 뒤 노창희 대사(오른쪽)가 북한 대표부 박길연 대사에게 축하한다며 손을 내밀어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뉴욕 맨해튼의 유엔(UN) 본부 앞엔 한국 유엔 대표부 전용 건물이 있다. 태극기가 휘날리고 무궁화가 심어진 상앗빛 건물 안엔 백남준 등 한국 예술가의 작품이 가득하다. 여기서 길 건너 1분쯤 가면 북한 유엔 대표부가 나온다. 정확히 말하면 북한 대표부가 들어있는 낡은 상가다. 1층의 식료품점과 식당, 철물점 사이에서 북한 외교 공관이 있다는 표지조차 찾을 수 없다.

 

이 북한 대표부는 미국 땅에서 북한이 유일하게 공식 활동하는 장소다. 미 정보기관은 이 건물과 북한 외교관 거주지인 인근 루스벨트섬 아파트 등에 걸쳐 이들의 동선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한다. 북한이 유엔 업무를 명분으로 뉴욕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감시하기 위해서다. 이 때문에 뉴욕의 북 외교관들은 다른 나라에서처럼 불법 외화벌이도 못하고 일부 한인 교포들의 도움을 받아 숨죽이며 살아간다. 지금 뉴욕시는 월가 취업을 앞두고 평양에 놀러갔다 모진 고문을 받고 사망한 대학생 오토 웜비어를 기려 북한 대표부 앞 도로를 ‘오토 웜비어길’로 개명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것이 한때 미·북 간 소통 창구로 알려진 ‘뉴욕 채널’의 현주소다.

 

북한이 30년 전 이런 장면을 상상하고 뉴욕에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남북은 1991년 9월 17일 유엔에 나란히 가입했다. 한국에게 유엔 가입은 서울올림픽의 성공과 소련·중국과의 수교 등 북방 외교에 힘입은 외교적 쾌거였다. 반면 북한의 유엔 가입은 한국의 단독 가입을 막으려다 막판에 울며 겨자 먹기로 택한 것이었다. 그래도 당시 북한은 유엔에 인공기를 꽂으며 자신들도 북·미 수교와 종전 선언을 얻어내 체제를 보장받으리라 여겼고, 국제사회도 남북 유엔 가입이 한반도 평화의 초석을 놓을 것으로 기대했다.

 

 

3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우리가 북한의 정서적·물리적 폭력에 끌려다니며 대화를 구걸하는 희한한 상황이라 잘 인지하지 못하지만, 국제 무대에서 남북을 비교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한국의 유엔 정규 예산 분담률은 2022년 세계 9위가 되지만, 북한은 아프가니스탄보다도 못한 130위권으로 밀려난다. 올해 유엔 총회에서 안보리는 북핵과 인권 문제를 또 주요 안건으로 올린다. 이는 수십 년간 개혁·개방을 설득한 국제사회의 노력을 배신한 북한이 자초한 결과다. 미국의 적대시 정책 때문”이라는 북한에 동조하는 건 쿠바·베네수엘라 같은 극소수 실패한 반미 정권뿐이다.

 

정부가 남북 유엔 동시 가입 30주년 공동 이벤트를 추진하다 무산됐다. 북한에 무의미하고 수치스러운 기념일까지 동원해 굳이 남북이 동등한 모습을 연출하려 하는 이유가 뭔지 안타깝다. 한국의 위상과 품격에 걸맞은 글로벌 외교에 집중했으면 한다.

 

-뉴욕=정시행 특파원, 조선일보(21-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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