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경험 못한 대선, 두 번 경험해선 안 될 나라]
[“오징어게임, 두 黨부패 의혹에 훼손된 시대정신 포착”]
[‘벼락거지’에 대한 우아한 변명]
한 번도 경험 못한 대선, 두 번 경험해선 안 될 나라
[박제균 칼럼]
이재명, 과거보다 대응방식 더 문제
‘퇴임 후 안전’ 문 정권과 共生관계
野, 이대로면 ‘文의 나라’ 시즌2
40 대 40 대결…중도 20 잡아야

누군가 내게 물었다. “이번 대통령 선거의 시대정신은 뭡니까?” 시대정신? 아, 그런 게 있었지….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전이 치러지고 있지만, 시대정신은커녕 시대착오적 막장 드라마만 펼쳐지고 있다. ‘한 번도 경험 못한 나라’의 한 번도 경험 못한 대선이다.
그래도 역대 대선엔 시대정신이란 게 있었다. 노태우 당선 때는 오랜 군부독재의 사슬을 끊고 직선 대통령을 뽑는다는 민주화의 열망, 김영삼 당선 때는 비로소 문민통치의 시대가 열린다는 희망, 김대중 때는 지역감정의 뿌리였던 호남의 응어리를 푼다는 해원(解寃), 노무현 때는 정치 엘리트의 전유물이었던 권력을 시민사회로 하방(下放)한다는 기대, 이명박 때는 이념 과잉을 벗어나 실용(實用)으로 나가자는 컨센서스가 있었다.
비록 둘 다 참담한 실패로 돌아갔지만, 박근혜 당선 때는 무너져 내리는 우리 사회의 원칙을 다시 세워줄 거란 바람이, 문재인 때는 궁중통치로 망가진 정치를 복원하고 나라를 정상화해 달라는 비원(悲願)이 시대정신이었다고 본다.
그런데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은 뭔가. ‘공정과 상식의 복원’이나 ‘비정상의 정상화’ 같은 아름다운 말들은 ‘단군 이래 최대 공익 환수’에서 ‘단군 이래 최대 뇌물 사건’으로 변질된 대장동의 문(게이트)에서 불어오는 광풍에 흩어져 버렸다. 야당은 야당대로 유력 주자의 ‘고발 사주’ 의혹에 난데없는 ‘王’자 손바닥, 미신 막말의 이전투구(泥田鬪狗)가 정책·비전 경쟁을 말아먹고 있다. 도무지 어디 눈 둘 곳 없는 대선이다.
압권은 역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까도 까도 의혹덩어리 ‘양파남(男)’이다. ‘친일세력과 미(美)점령군의 지배’ 운운으로 대한민국 부정(否定)은 기본이요, 종북 경기동부연합 연루설, 녹음으로 확인된 패륜 발언에 ‘공짜 불륜’과 조폭 연루 의혹까지…. 이번에는 ‘대장동 그분’의 태풍까지 몰아닥쳤다. 이 후보가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낸 뒤 다소 거칠게 살아온 점이 있다 해도 이건 너무 과하다.
과거야 그렇다 쳐도 더 심각한 건 이런 문제에 대응하는 방식이다. ‘야당·기득권 세력의 음모’라는 편 가르기, ‘국민의힘 게이트’라는 적반하장, ‘가짜뉴스’(뉴스는 가짜가 아니므로 ‘가짜소식’이 맞는 말)라는 언론 탓, 패륜을 묻는데 ‘친인척 비리는 없지 않느냐’는 둘러치기, ‘한전 직원 뇌물에 대통령이 사퇴하느냐’는 궤변, 마음에 안 든다고 중간에 인터뷰를 끊어버리는 발끈함…. 그의 과거보다 이런 대응 방식이 이 후보가 권력을 잡았을 때를 걱정하게 만든다.
이재명 후보가 단 한 번이라도 자신의 잘못을 진솔하게 반성하는 걸 본 기억이 없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느낌 아닌가. 바로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추미애 윤미향으로 상징되는 이 정권 사람들의 대응 방식이 꼭 이랬다. 사실 문 정권이 상식과 언어, 정의와 역사 관념 등을 파괴하면서 국민의 도덕의식을 무디게 하지 않았다면 이재명 대선 후보의 탄생은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다소 기이하지만, 그런 점에서 이재명은 이 정권에 빚지고 있다. 문 대통령 등 집권세력도 지상과제인 ‘퇴임 후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이 후보의 도덕성 따위에는 눈을 감아버렸다. 일종의 공생관계다.
이런 공생의 사슬을 끊으려면 야당이라도 정신 차려야 하는데, 아직 멀어도 한참 멀었다. 경선이 진행될수록 윤석열은 거듭되는 말실수와 검사스러운 태도, 고발 사주와 가족 의혹 등이 겹쳐지면서 특유의 ‘권력과 맞짱’ 이미지가 변색하고 있다. 여기에 야당인지 여당인지 모를 홍준표의 윤석열 때리기와 막말 행진, 갑자기 독해져서 뜬금없는 유승민의 언행까지 겹쳐 보수 야당의 기득권 본색(本色)에 저질 페인트까지 덧칠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이번 대선도 두 편으로 갈라져 40 대 40의 진영 대결이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다면 나머지 20의 중도와 2030세대를 잡는 쪽이 승자일 텐데, 국민의힘 주자들은 이들을 위해 무슨 정책과 비전을 보여준 게 있나. 야당이 이런 짝이라면 문 정권 시즌2인 ‘두 번 경험해선 안 될 나라’ 오지 말란 법이 없다. 그래도 선거까지는 140여 일. 내년 3월 10일 아침, 이번 대선에도 시대정신이 있었다는 뒤늦은 자각(自覺)이 오기를 소망한다. 그것은 ‘대한민국 정상화’였다고.
-박제균 논설주간, 동아일보(21-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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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게임, 두 黨부패 의혹에 훼손된 시대정신 포착”

드라마 ‘오징어게임’ 스틸컷.
넷플릭스에서 상영돼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한국 드라마 ‘오징어게임’은 취업 결혼 계층상승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국 청년들의 좌절감을 표현한다는 미국 국무부 외교 전문(電文)의 분석이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를 통해 공개됐다. 전문에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공정과 정의를 외치고 있지만 두 당의 유력 후보가 부패 의혹에 휩싸여 있어 청년들 사이에 냉소를 자아내고 있다는 분석도 들어 있다.
전문은 한국 사회가 지닌 고민의 한가운데 암울한 경제 전망이 자리 잡고 있다고 봤다. 한국의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인 가운데 20대 청년들의 자살이 높은 자살률을 초래하는 주요 원인이며 이는 미래에 대한 비관적 전망에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오징어게임’은 이런 문제를 풀어야 할 대선의 ‘정치적 시대정신’이 부패 의혹에 의해 훼손됐음을 포착한 것이며 부패 의혹으로 민주당 이재명 경기지사의 대장동 비리, 국민의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처가 쪽 비리와 곽상도 의원 아들의 50억 원 퇴직금을 거론했다.
미 국무부 외교 전문은 1970년대 이후로는 실제 전신망을 통해 보내지는 말 그대로의 전문은 아니고 주로 젊은 해외 주재 외교관들이 주재국의 동향을 분석해 심층 기사 형태로 워싱턴에 보내는 글을 지칭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8000자로 소련의 동향을 분석한 조지 케넌의 ‘롱 텔레그램’처럼 오늘날의 외교 전문도 해당 국가와 전 세계에 대한 새로운 외교 전락을 짜는 자료로 사용된다.
문재인 대통령부터 나서 ‘오징어게임’이 전 세계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고 외국 외교관들 앞에서 자랑하는 동안 미 국무부 외교 전문은 ‘오징어게임’이 반영하는 한국의 슬픈 현실을 날카롭게 분석했다. 전문이 전하는 핵심 내용은 한국 젊은이들의 깊은 좌절이다. 한국 정치는 그 좌절의 배경이 된 암울한 경제 전망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기는커녕 정치의 최소한이라고 할 수 있는 공정과 정의에 대한 기대마저도 저버리고 있다.
전문은 ‘오징어게임’을 2019년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받은 ‘기생충’ 등의 연장선상에서 보면서 계층 상황의 악화가 미국만의 일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강조했다. 오늘날 전 세계적인 정치의 시대정신은 계층 간 이동성을 높이는 것인지 모른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 지도자는 스스로 공정과 정의의 담지자(擔持者)여야 한다. 현재 유력한 우리 대선 후보들이 그런 조건을 갖추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동아일보(21-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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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거지’에 대한 우아한 변명
[오늘과 내일]
집 문제 커져도 비현실적 공약 여전
쌓여가는 ‘부동산 난제’ 직시해야
‘부동산 문제에 관한 한, 하늘에서 떨어지듯 새로운 방법은 없다.’
김수현 전 대통령정책실장이 최근 쓴 책 ‘집에 갇힌 나라, 동아시아와 중국’의 마지막 문단을 3번, 4번 읽었다. 그는 노무현 정부 당시 유례없는 국세 방식의 종합부동산세를 도입했다. 현 정부 들어 횟수를 세기도 힘든 부동산정책을 주도한 것도 김 전 실장이다. 이제 와 집값 상승의 원인을 주택의 금융화에서 찾고, 동아시아 국가에서는 주택이 가족주의의 중심이라는 학자적 해석을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겠다.
김 전 실장의 논리가 정책 실패에 대한 변명처럼 들린다는 사람도 있지만 ‘새로운 방법이란 없다’는 결론만큼은 진심이라고 믿고 싶다. 세금으로 집값을 잡는 진보의 단골 메뉴는 더 이상 중요하게 언급하지 않았다.
이게 정책 실패에 대한 반성 끝에 나온 진보의 대안적 결론일까 싶지만 실제 그런 반전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부동산 공약을 보면 진보는 여전히 ‘새로운 방법’을 찾고 있다. 이 후보의 국토보유세 공약은 토지와 건물에 과세하는 기존 세제와 달리 땅에 세금을 물리는 토지 단일세 체계다. 지주가 땅을 독점하면서 빈부 격차가 커졌으니 모든 지대를 조세로 징수해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쓰자는 논리다. 이 후보가 과거 대장동 개발에서 나온 배당금을 지역화폐 정책에 쓴 구조와 비슷해 보인다. 땅에 세금을 매기면 주택 임차인에게 세 부담이 전가되는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는 이상론이지만 토지 공급이 고정돼 있지 않은 현실에서는 다른 변수가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이 후보의 기본주택 공약은 원가 수준의 임대료로 30년 이상 살 수 있는 집을 역세권에 100만 채 지어 무주택자에게 공급하는 것이다. 복지의 오랜 논쟁거리인 보편주의와 선별주의 가운데 보편주의를 주거 부문에 적용하겠다는 취지다. 보편적 복지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무상급식과는 비교하기 힘든 수준의 돈이 들 것이다. 주택도시기금을 끌어다 쓰면 된다지만 기금 조성에 기여한 청약저축자들이 동의할지 의문이다. 무엇보다 기본주택을 하려면 전체 주택에서 공공임대주택이 차지하는 재고율이 30%는 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본다. 정작 우리나라의 재고율은 8%다.
A, B라는 사건이 연속적으로 일어났다고 A가 B의 모든 원인이라고 단언하는 건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현 정부가 부동산정책을 추진하면서 집값이 폭등했지만 과잉유동성, 수요 변화도 가격에 영향을 줬을 수 있다. 그렇다고 책임 있는 진보 인사들이 손에 잡히지 않는 요인 뒤에 숨는 건 비겁하다. 이번 정부의 새로운 정책들이 시장을 망가뜨린 핵심 이유라는 현장의 증언은 차고 넘친다. 부동산에 난제가 쌓여가는데 비현실적인 정책을 고수하는 건 사람들을 또 다른 실험으로 내모는 격이다.
현 정부가 정책을 26번이나 내야 했던 악순환은 ‘공급은 부족하지 않으니 다주택자에게 집을 팔 기회를 드리겠다’는 김 전 실장의 오판에서 시작됐다. 그가 지금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의 책에서 ‘오래된 숙제’가 우리 앞에 있다고 했다. 공정경쟁 질서 확립, 신규 택지 공급과 재개발을 원활히 하는 일, 주거안전망, 과잉유동성 대비를 그 숙제로 꼽았다. ‘벼락거지’라는 비극적 현상에 대한 우아한 변명이라고 해야 하나. 한국은 진작 했어야 할 일을 4년 반 동안 못 했고, 그게 후대에 거대한 숙제로 남겨진 것이다.
-홍수용 산업2부장, 동아일보(21-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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