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나라?
‘아르헨티나 남부에서 일명 남극 추위라고 하는 강추위가 일주일째 맹위를 떨쳐 수은주가 영하 16도까지 떨어지고 체감온도는 영하 20도까지 내려갔다. 길에 세워둔 자동차가 눈에 덮여 꽁꽁 얼어붙었다. 북부도 온도가 0도 가까이 내려갔다.’ 한국은 여름이지만 남반구는 겨울에 접어든 작년 7월, 국내에서 보도한 아르헨티나 뉴스다. 아르헨티나 남부는 지구에서 남극과 가장 가깝다.

▶아르헨티나 출신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과 관련해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따뜻한 나라 출신이기 때문에 겨울에는 움직이기 어렵다”고 말해 국제 망신을 샀다. 이 발언을 두고 미국의소리(VOA) 방송에서 “아르헨티나에 스키장이 있다는 것을 아느냐”고 했다. 한국과 정확히 지구 반대편에 있는 아르헨티나는 사계절이 있는 나라다. 세계 8위 면적으로 남북 최장 거리가 3700㎞쯤 되니 아열대, 온대, 건조, 한대 기후대에 다 걸쳐 있기도 하다. 그런 나라를 남반구에 있다고 ‘따뜻한 나라’라고 한다. 아르헨티나에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는 파타고니아 지역에 가 본 사람이 ‘따뜻한 나라’ 얘기를 들었다면 실소를 금치 못했을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추위에 유독 약한 사람도 아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추기경 재임 당시 직원들이 출근해야 건물 난방을 하면서 혼자 있을 때는 전기 난로 하나로 추위를 버텼다고 한다.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영하까지 내려가지는 않지만 겨울에 난방 시설이 없으면 지내기 힘든 곳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상식 부족 실수가 유독 잦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의 오스트리아 국빈 방문 소식을 전하면서 독일 국기를 게재해 망신을 샀다. 두 나라 국기는 완전히 다른 모양이다. G7 정상회의 때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사진을 잘라내고 문 대통령이 가운데 선 것 같은 사진을 띄웠다. 외교부는 대통령 순방국 체코를 분리 독립하기 전 나라 이름인 체코슬로바키아로 잘못 표기했다. 발틱 국가를 발칸 국가라고 했다가 해당국 대사관의 항의를 받았다. 발틱과 발칸은 비슷하지도 않은 지역이다.
▶지금 북한이 교황을 초청할 뜻이 없다는 것은 문 대통령도 잘 알 것이다. 코로나로 거의 편집증 수준의 봉쇄를 하고 있는데 외부 방문단의 대거 입국을 받을 수 있겠나. 종교 자유가 말살된 곳에 교황이 가서 무얼 하겠나. 성사 불가능을 잘 알면서 자꾸 교황 방북을 요청하고, 교황청과 다른 발표까지 하는 쇼를 왜 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되지도 않을 일을 하면서 그걸 감추려다 ‘아르헨티나=따뜻한 나라’까지 나왔다.
-강경희 논설위원, 조선일보(21-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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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론주의
페론 부부가 시작한 포퓰리즘, 아르헨은 아직도 중독
1946년 집권한 페론 대통령과 아내, 임금 20% 인상하는 등 복지 확대
나랏돈 퍼부으며 대중의 인기 끌어
지난 11일(현지 시각) 치러진 아르헨티나 대선 예비선거에서 좌파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페론주의'를 내세운 후보가 득표율 47%로 마크리 현 대통령(33%)을 크게 앞서면서 아르헨티나 경제가 요동치고 있어요. 국제 신용평가 업체들이 아르헨티나 신용등급을 일제히 떨어뜨리고, 아르헨티나 주가지수도 급락했어요. 페소화 가치도 일주일 새 약 22%나 떨어졌고요. '페론주의'가 뭐길래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페론 대통령 부부 이름에서 따와
페론주의(Peronism)는 후안 페론(Peron·1895~1974) 전 대통령과 그의 아내 에바 페론(1919~1952)의 이름에서 나온 말입니다. 페론 대통령 부부가 추진한 정책과 그 이념을 뜻하죠.

후안 페론(맨 오른쪽) 아르헨티나 대통령과 아내 에바 페론(오른쪽에서 둘째)이 1950년 발코니에서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어요. 페론 부부는 노동자와 중산층을 상대로 임금 인상과 복지 확대 정책을 펴 인기를 얻었어요. /게티이미지코리아
후안 페론은 1946~1955년과 1973~1974년 두 번에 걸쳐 대통령을 지냈어요. 원래는 군인 출신이었는데, 육군 대령이던 1943년 군부 쿠데타에 가담합니다. 쿠데타가 성공한 뒤 그는 노동부 장관과 복지부 장관을 지내면서 노동자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정책을 폈어요. 임금 인상, 노동자 복지 확대 정책으로 인기를 얻어 1946년 대선에 승리했어요.
그는 집권 후 '외국 자본 배제' '산업 국유화' '복지 확대와 임금 인상을 통한 노동자 수입 증대'를 강조했어요. 한 해에 많게는 20%씩 노동자 임금을 올렸지요. 1947년에는 '경제 독립'을 내세워 철도, 전화, 가스, 전기, 항공사 등을 국유화하고 외국 자본을 배제했어요.
◇현금으로 얻은 민심, 독재로 잃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현금을 살포하면서 한때 아르헨티나 빈곤율이 크게 줄어들었어요. 하지만 이런 반짝 성공의 이면엔 어두운 면이 있었어요.
모든 의사 결정은 대통령인 페론을 통해야 했어요. 그래서 정당이나 의회 정치가 발전하지 않았어요. 부정부패 추문도 끊이지 않았어요. 페론 자신도 집권 기간 동안 금괴 1200개, 비행기 1대, 요트 2대, 자동차 19대, 아파트 17채, 귀금속 1500점이라는 엄청난 재산을 모았죠. 겉으론 민중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엘리트주의자였다고 해요. 사석에서 "대중은 생각하지 않는다. 대중은 느낌에 본능적으로 반응한다"고 말한 적도 있죠.
그는 빈부 격차를 줄이는 데 성공했지만, 탄탄한 산업 기반을 닦거나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데는 실패했어요. 결국 아르헨티나 경제는 서서히 침체에 빠집니다. 페론은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 무제한 재선 허용'을 골자로 하는 개헌을 추진해 국민의 지지를 잃었어요. 페론은 1955년 군부 쿠데타로 아르헨티나에서 쫓겨납니다.
◇페론주의 부활은 '에비타' 덕분
많은 학자가 한때 경제 대국이던 아르헨티나가 국력이 기운 결정적인 원인으로 페론주의를 꼽아요. 실제로 아르헨티나 경제는 1970년대 이후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어요.
그런데도 아르헨티나에서는 매번 선거철이면 '페론주의'가 고개를 들어요. "에비타 효과 때문"이란 분석이 나옵니다. '에비타'는 후안 페론의 아내 에바 페론의 별명이에요. '작은 에바'라는 뜻이죠.
그녀는 후안 페론의 가장 강력한 정치적 무기였어요. 작은 마을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15세에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올라와 배우가 됐죠. 1944년 자선 행사에 참석했다가 떠오르는 정치인 후안 페론과 만나 이듬해 결혼했어요. 대통령 부인이 된 뒤 자선 사업과 여성 참정권 운동을 펼쳤죠.
그런 그녀가 1952년 33세로 요절하면서 페론은 큰 타격을 받았어요. 결국 아내가 죽은 지 3년 만에 권력을 잃었죠.
[여전히 성모로 숭앙받는 에비타]
아르헨티나 언론인 토마스 마르티네스는 1996년 "라틴아메리카에선 '정치적 신화'가 다른 지역보다 유독 오래간다"며 에바 페론의 문화적 영향력이 쿠바혁명을 일으킨 체 게바라에 버금간다고 평가했어요.
쿠바혁명은 당초의 이상과 달리 빈곤과 독재를 불렀어요. 그런데도 쿠바혁명을 주도한 체 게바라는 지금껏 청춘과 정의의 상징으로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어요. 마찬가지로 아르헨티나 경제는 페론주의 때문에 엉망이 됐건만, 후안 페론 대통령의 아내인 에바 페론은 여전히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의 상징으로 통하고 있어요. 각각 '예수'(체 게바라)와 '성모 마리아'(에바 페론)의 이미지로 숭앙받고 있는 거죠.
-서민영 경기 함현고 역사 교사/기획·구성=양지호 기자, 조선닷컴(19-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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