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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이냐, 실리냐] [파나마운하] [中 주도 니카라과운하 내년 착공]

뚝섬 2021. 11. 21. 06:05

양심이냐, 실리냐

 

[차현진의 돈과 세상]

 

물류 대란의 징조는 지난 3월 말 수에즈운하 사고였다. 큰 배가 드러누워 폭 200미터 뱃길을 가로막는 바람에 전 세계가 발을 굴렀다. 190킬로미터 운하를 건너는 데는 15시간밖에 안 걸리지만, 아프리카 대륙을 따라 1만킬로미터를 우회하는 데는 며칠이 걸리기 때문이다.

 

지중해와 홍해를 잇는 운하 구상은 지리상의 발견 이후 계속되다가 1869년 실현되었다. 프랑스 사업가 페르디낭 드 레셉스가 10년 공사 끝에 성공했다. 수에즈운하가 개통되자 그는 더 큰 욕심을 냈다. 이번에는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파나마운하를 뚫는 것이었다. 그때 드 레셉스는 이미 74세였다. 하지만, 수에즈운하보다는 길이가 절반도 안 되므로 금방 끝낼 수 있다고 자신했다.

 

착각이었다. 유럽인들은 아프리카에서 겪지 못했던 말라리아와 황열병, 그리고 긴 우기 앞에서 고전했다. 지구의 자전 때문에 대서양과 태평양의 바닷물 높이가 달라 수압이 엄청 높다는 것도 큰 장애물이었다. 풍토병과 사고로 죽은 사람이 2만명을 넘었고, 공사는 계속 지연되었다. 드 레셉스는 결국 1889년 파산했다.

 

이후 파나마운하 사업은 미국으로 넘어갔다. 미국은 그것을 4000만달러라는 헐값에 사면서 영구 소유까지 꿈꿨다. 그런 야무진 계획에 콜롬비아가 동의하지 않자 운하 지역만 따로 떼어내서 파나마공화국으로 독립시켰다. 어리바리한 신생국에서 영구조차권, 치외법권, 군사작전권을 얻어냈다.

 

파나마공화국에는 군대가 없다. 그나마 운하까지 없다면, 국가의 존재 이유가 없다. 그래서 파나마 정부는, 미국에 소유권 반환을 끝없이 졸랐다. 1977년 미국의 카터 대통령이 마침내 운하 반환 협정에 서명했다. 국제법과 양심에 따른 결정이었지만, 공화당은 그것이 매국 행위라며 맹비난했다. 결국 카터는 재선에 실패했다.

 

양심을 따르다 보면, 손해를 보기도 한다. 그걸 각오해야 진짜 양심이다. 정치인들이 양심을 따를 때 국격이 높아진다.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조선일보(21-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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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마운하

 

대서양·태평양 잇는 뱃길… 美, 파나마 독립시켜 완성

19세기 프랑스가 짓다 미국이 완공, 물 채운 후 배 이동하는 계단식 운영
총 항해 거리 1만5000㎞ 줄었어요… 中, 파나마운하 대체할 철도 추진

 

최근 중국이 브라질을 동서(東西)로 가로지르는 남미 횡단 철도 건설을 추진 중이라는 뉴스가 나왔어요. 중국은 브라질의 철광석·곡물을 많이 수입하는 나라인데, 미국 영향력이 강한 파나마운하 대신 이 같은 철도를 만들어 새로운 물류 경로를 확보하겠다는 거예요.

중국은 2014년부터 파나마운하를 대체하기 위한 새 운하 건설 사업도 추진 중이에요. 운하란 배 운항이나 물류 등을 위해 땅을 파내고 그 자리에 인공적으로 뱃길·물길(수로)을 놓은 것을 말하죠. 하지만 엄청난 공사비 때문에 진행이 지지부진하자 대안으로 남미 횡단 철도를 짓고자 한 거예요. 그렇다면 파나마운하는 뭐기에 중국이 막대한 돈을 쏟아 부어가며 그를 대신할 운송 수단을 만들고 싶어하는 걸까요?

◇대서양과 태평양을 이어준 운하

파나마운하(Panama Canal)는 남아메리카와 북아메리카를 연결하는 지협(地峽·두 육지를 잇는 좁고 잘록한 땅)을 파서 물길을 낸 길이 80㎞짜리 운하예요. 대서양과 태평양을 아메리카 대륙 중간에서 이어주는 관문으로 지중해와 인도양을 잇는 이집트 수에즈운하와 함께 세계 양대(兩大) 운하로 손꼽히지요.

파나마운하가 생기기 전 미국 동서 해안을 오가는 배는 매번 남아메리카 최남단인 칠레 마젤란해협까지 돌아가야 했지만, 이 운하가 생기면서 항해 거리가 약 1만5000㎞나 줄었답니다.

 

1927년 파나마운하 모습을 그린 그림. 파나마운하는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전략적 물길이에요. 갑문을 통과할 때는 수로 양옆 전동차나 다른 배에 끌려가요. /게티이미지코리아

 

처음 파나마운하 건설에 욕심을 냈던 사람은 16세기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5세였어요. 탐험가인 에르난 코르테스가 국왕에게 파나마 지협에 운하를 내자는 제안을 했고, 카를로스 5세가 이를 받아들였어요. 하지만 실제 공사로 이어지진 못했지요.

본격적으로 파나마운하 건설이 논의된 건 19세기 들어서였어요. 당시 파나마 지협은 콜롬비아의 한 주(州)였어요. 프랑스 외교관 출신 레셉스(Lesseps)는 수에즈운하를 완성한 경력을 앞세워 두 바다를 잇는 운하 건설을 추진하려고 했어요. 양대양(兩大洋) 주식회사를 세운 그는 꾸준히 콜롬비아 정부를 설득해 건설 계약을 따냈지요. 1881년 역사적인 파나마운하 공사가 시작됐어요.

많은 노동자가 파나마운하 건설에 뛰어들었어요. 그중엔 프랑스의 유명한 화가 폴 고갱도 있었지요. 당시 고갱이 아내에게 쓴 편지를 보면 파나마운하 건설 현장은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악몽처럼 묘사돼 있어요.

'나는 아침 5시 반부터 저녁 6시까지 열대의 태양 아래 또는 빗속에서 땅을 파야 했소. 밤이면 모기들한테 뜯어 먹혔지.'

황열병(모기가 옮기는 풍토병의 일종)과 말라리아가 돌면서 파나마운하의 미래는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했어요. 예상보다 복잡한 지형과 이에 따른 엄청난 공사비도 문제였지요. 투자자들이 하나둘씩 돈을 가지고 빠져나가기 시작하자 결국 착공 9년 만에 모든 공사가 중단됐어요.

◇미국, 파나마 독립운동 지원하다

 

파나마운하 건설을 이어받은 것은 미국이었어요. 당시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아메리카 대륙 사이로 대서양과 태평양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파나마운하의 군사·경제적 이득을 매우 높게 평가했어요. 1898년 미·스페인 전쟁 당시 미국 서부에서 출발한 전함이 마젤란해협을 돌아 쿠바에 도착하는 데 두 달 넘게 걸렸다는 사실만 봐도 파나마운하는 미국에 아주 절실한 것이었지요.

하지만 새롭게 삽을 뜨려면 콜롬비아 정부 허가가 필요했어요. 당시 콜롬비아 정부는 미국이 파나마운하 건설로 가져갈 이익이 크다는 걸 알고 운하 건설 허가를 내주길 거부했어요. 그러자 미국은 콜롬비아 정부에 대한 파나마 지역 사람들의 불만을 이용해 파나마 독립운동을 배후에서 지원하기 시작했지요. 1903년 11월 파나마 지협에서 독립운동이 일자 미국은 이 지역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이유로 전함을 보내고 군대까지 파견했어요. 미국 지원에 힘입어 파나마는 독립에 성공합니다.

미국은 파나마 독립 직후 파나마 지협을 미국이 영구적으로 임대하는 내용의 조약을 체결했어요. 안정적인 운하 건설을 시작할 수 있게 된 미국은 1903년부터 1914년까지 총 7만여 명의 노동력을 투입해 파나마운하를 완성합니다. 이후 85년간 파나마운하를 독점 관리하면서 막대한 이득을 거뒀지요. 파나마운하 소유권은 2000년에야 파나마 정부로 넘어왔지만, 미국의 영향력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랍니다.

파나마운하는 대표적인 갑문(閘門)식 운하예요. 지형적 특성으로 평평한 운하를 파기 힘들었기 때문에 물길 중간에 여러 갑문을 설치해 물을 채우고 빼가면서 배를 계단식으로 통과시키는 방식이지요. 운하를 모두 통과하는 데 8시간 정도 걸리는데, 대기 시간 등을 합치면 24~30시간 소요된다고 해요. 갑문을 통과할 때는 수로 양옆 전동차나 다른 배에 끌려가요.

파나마운하가 해상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보니 많은 배가 여기에 맞춰 만들어졌어요. 길이 295m, 너비 32m 등 파나마 갑문을 통과할 수 있도록 만든 최대 크기 배를 '파나맥스(Panamax)'라 해요. 통행료는 선박 종류 등에 따라 다르지만 파나맥스급 선박의 경우 약 20만달러랍니다.

중국의 남미 횡단 철도가 파나마운하만큼이나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수에즈운하(Suez Canal)

아시아와 아프리카 대륙의 경계인 이집트 시나이반도 서쪽에 건설된 세계 최대 운하로, 지중해와 홍해·인도양을 잇는 수로(水路)예요. 프랑스 외교관 레셉스가 1854년 이집트에서 건설권을 따내 1869년 완공했지요. 아프리카 대륙을 돌지 않고도 곧바로 아시아와 유럽이 연결되는 통로라는 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요. 하지만 프랑스와 영국·이집트가 소유권을 둘러싸고 갈등을 벌이면서 1956년 수에즈전쟁까지 벌어졌답니다.

 

-이정하·천안 계광중 교사’/기획·구성=박세미 기자, 조선일보(17-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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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마 

 

대서양·태평양 잇는 파나마 운하는 '황금알 낳는 거위'

 

배를 타고 영국 런던에서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세계지도를 보면 대서양을 지나 남아메리카 최남단을 돌아가는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사실은 이렇게 돌아가지 않아도 돼요. 길이 약 80km 파나마 운하를 지나면 곧장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건너갈 수 있거든요.

파나마 운하로 잘 알려져 있는 파나마 면적은 우리나라의 약 4분의 3 정도입니다. 다른 중앙아메리카 나라처럼 스페인어를 공용어로 하고 혼혈 인종이 인구 400만명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요.

 

1914년 개통된 파마나 운하의 통행세 수익은 파나마 국내총생산(GDP)의 약 6%에 해당합니다. /조선일보 DB

 

파나마 운하를 처음 구상한 사람은 16세기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5세였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공사를 시작한 나라는 19세기 후반 프랑스였지요. 파나마를 지배하던 콜롬비아 정부로부터 파나마 운하 공사권을 따낸 프랑스는 야심 차게 공사를 시작했지만 험난한 지형과 말라리아 등 풍토병으로 어려움을 겪었어요. 공사 도중 근로자가 2만명 넘게 사고나 병으로 목숨을 잃었고, 결국 프랑스는 운하 공사를 포기하고 말았지요.

그러자 미국이 파나마 운하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콜롬비아 정부가 미국의 파마나 운하 건설을 반대하자 미국 정부는 파나마의 독립을 지원했어요. 덕분에 파나마는 1903년 콜롬비아로부터 독립하게 되었습니다. 프랑스로부터 공사 허가권을 사들인 미국은 파나마 정부의 협조를 받으며 운하 공사를 할 수 있었어요.

다시 5000여 근로자가 목숨을 잃는 대공사 끝에 1914년 파나마 운하가 완성되었습니다. 파나마 운하가 개통하면서 대서양을 지나 태평양으로 가는 배는 과거보다 운항 거리를 약 1만5000km 줄일 수 있게 되었어요. 세계 해운 무역에서 혁신적인 일이었지요. 현재도 파나마 운하는 국제 무역과 해운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입니다.

파나마 운하 운영권은 1999년까지 미국이 가지고 있다가 2000년부터 파나마 정부로 넘어갔어요. 이후 파나마 운하는 파나마 국민에게 '황금을 낳는 거위' 같은 존재가 되었지요. 파나마 운하를 지나는 선박이 내는 통행세는 파나마 국내총생산(GDP)의 6%가량을 차지합니다. 더불어 수많은 파나마 국민이 파나마 운하에서 일하며 돈을 벌고 있어요.

하지만 파나마 운하의 미래가 밝지만은 않습니다. 파나마 북쪽에 있는 니카라과에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니카라과 운하가 건설되고 있기 때문이죠.

2020년 개통 예정인 니카라과 운하는 파나마 운하보다 3배 길지만, 파나마 운하보다 더 큰 배가 지날 수 있어요. 미국, 캐나다, 유럽과도 더 가까워 파나마 운하의 지위를 뺏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니카라과 운하가 개통되면 파나마 운하는 어떻게 될까요?

 

-박의현 창덕여중 지리 교사, 조선일보(17-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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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도 니카라과운하 내년 착공, 파나마운하 100년 독점 막 내릴 듯

 

1914년 완공된 파나마운하는 해상 교통의 혁명을 일으켰다. 미주 대륙의 허리를 선박들이 통과하게 만들어 태평양과 대서양 사이 항로를 획기적으로 단축시켰다. 파나마운하는 100년 넘게 독점적 지위를 누렸지만 2022년에는 경쟁 상대가 등장한다. 같은 중남미 국가인 니카라과가 새로운 운하를 개통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니카라과 정부는 국토의 동서를 가로지르는 니카라과운하(길이 276㎞)를 내년 착공해 5년 후 완공할 예정이다. 건설 비용은 500억달러(약 60조원)에 달한다. 파나마운하(82㎞)보다 길이가 3배가 넘는다. 폭도 더 넓고 수심도 더 깊다. 따라서 파나마운하를 통과하지 못하는 큰 선박도 니카라과운하는 수용할 수 있다. 파나마운하는 올 상반기 중으로 확장 공사를 마치면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만4000개를 실은 배까지 통과 가능하다. 반면 니카라과운하는 2만5000개짜리 초대형 컨테이너선도 통과할 수 있도록 건설된다.

니카라과는 파나마보다 위도(緯度)가 높아 입지상 유리하다. 미국·멕시코에 더 가깝다는 얘기다. 니카라과운하를 이용하면 샌프란시스코~뉴욕 항로가 파나마운하를 통과하는 것보다 800㎞ 더 짧아진다. 세계 해상 물동량의 5%가 니카라과운하를 거칠 것으로 예상된다. 1인당 GDP 1929달러(2015년)에 불과한 니카라과는 운하가 개통되면 막대한 경제적 효과를 얻어 경제 규모가 배 가까이 커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물류 전문가들은 니카라과운하가 개통되면 파나마운하와 통행료 인하 경쟁을 벌일 것으로 보고 있다.

니카라과운하는 중국이 중남미에 대한 영향력을 키우는 발판이 될 전망이다. 중국 신웨이(信威)통신그룹의 왕징(王靖) 이사장이 설립한 홍콩니카라과운하개발(HKND)이라는 회사가 운하를 건설하고 향후 100년간 운영권도 갖게 된다. 파나마운하를 미국이 1999년까지 85년간 운영했던 것과 비슷한 방식이다. 왕징은 "순수한 개인적 투자"라고 주장하지만, 주요 외신은 그가 중국 정부를 대변하는 역할을 한다고 본다.


-손진석 기자, 조선일보(16-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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