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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의 랜드마크] [다시 북적대는 명동] ....

뚝섬 2026. 7. 12. 05:50

[명동의 랜드마크]

[다시 북적대는 명동] 

[세계 3대 화장품 수출국으로 메이크업 해준 K뷰티] 

[명동의 몰락]

 

 

 

명동의 랜드마크 

명동 윤선도 집터에 지어진 건물에서 찍은 명동성당. /권재륜 제공

 

서울 명동 거리에는 여러 가지 장르의 즐거움이 있다. 명동은 먹거리 천국에 K-뷰티의 성지이자 쇼핑의 메카다. 온갖 패션 브랜드부터 백화점·면세점·할인점·생활용품 전문점까지 몇 블록 안에 다 있다. 그야말로 오감을 만족시키는 곳이다. 내국인보다 외국인 관광객이 더 많아 해외로 여행 온 기분이 들기도 한다. 걸어서 남대문시장, 남산타워, 청계천, 인사동 등으로 이동하기 편해 서울 여행의 거점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런 명동의 중심이자 랜드마크인 곳이 바로 명동성당이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주교좌성당이며, 우리나라 천주교의 상징이자 구심점 역할을 하는 곳이다. 명동성당은 국내를 대표하는 고딕 양식의 벽돌 건축물로, 1892년 착공해 1898년 완공됐다. 6·25 전쟁 중 인민군이 성당 주변에 주둔해 미군이 폭격을 검토한 바 있으나 한국 가톨릭의 강력한 반대로 살아남았다. 이런 역사를 알고 보면 성당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사진은 성당 건너편 윤선도 집터에 지어진 건물 위층에서 담았다.

 

-권재륜 사진작가, 조선일보(26-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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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북적대는 명동

 

코로나로 관광객이 끊기며 ‘생업 파괴의 고요’가 감돌던 서울 명동이었다. 그 명동에 드릴과 망치 소리가 요란하다. 28일 낮, 명동길은 병가를 마치고 출근을 준비하는 직장인 같았다. 공실 점포가 몇 곳 보였지만, 리모델링 공사가 요란한 점포도 여럿이었다. “이제 조금 살아난 거예요. 매출은 한창 때 비하면 한 20%? 아직 멀었어요.” 닭꼬치 노점 주인은 아직은 심드렁했다. 빨간 유니폼을 입은 서울시 통역안내원 말은 이랬다. “오늘이 제일 많고요, 내일은 더 많을 거예요.”

 

▶'외국 관광객이 온다손 치더라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반도호텔-조선호텔-명동에 이르는 거리가 거지들의 전시장이자, 구걸 경연장이 됐다…' 1960년대 6월 일간지 내용이다. 그래도 6개월 후 장면(張勉) 총리는 1961년을 ‘한국 방문의 해’로 선포했다. 그때 한국을 찾은 외국인은 1만명 수준이었다.

 

▶1990년대까지 명동을 가장 많이 찾은 외국인은 일본인이었다. 명동 관광객 중 80% 내외였다고 한다. 1997년 중국 정부가 단계적 해외여행 자유화를 시행하며 ‘유커(遊客) 시대’가 왔다. 중국인은 관광도 ‘인해전술’로 했다. 최고치를 찍은 2016년에는 807만명이 입국했다. 부산, 인천, 광주 시민을 다 합친 것보다 많다. 유커는 많은 걸 바꿨다. 명동 대표 음식이 교자, 칼국수에서 ‘닭꼬치’로 바뀌었고, 명동에서 임차료가 가장 비싼 매장은 화장품 가게였다. 사드 갈등으로 큰 폭으로 줄었지만 2019년에는 600만명까지 회복하다 코로나로 발길이 끊겼다.

 

▶요즘 명동 관광객은 국적과 인종이 다양해졌다. 통역안내원은 “체감상 태국, 베트남 동남아인이 가장 많고, 유럽, 미국인도 많다. 중국인은 20%쯤인 같다”고 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미국인 부부는 22년 만의 재방문이었다. “노스탤지어(향수)여행이다. 전에 묵었던 사보이호텔을 찾다가 깜짝 놀랐다. 같은 곳인가 싶더라. 달러 강세(strong dollar)라 한국이 마치 30%, 40% 세일하는 것 같다. 그래서 더 좋다.”

 

28일 낮 명동성당 근처의 카페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아일랜드 관광객. /박은주기자

 

▶대개 한국과 인연이 있었다. “친구가 한국 남자와 전통 혼례를 올릴 예정이라 2주 일정으로 왔다. 서울의 중심이라 명동에 호텔을 잡았다.”(독일) “동생이 한국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명동 카페 커피랑 음식이 맛있다.”(아일랜드) “중국, 일본은 코로나 관련 입국 절차가 까다로워 한국에만 2주 있을 예정이다. K드라마 팬이라 더 좋다.”(독일) 한국인이 글로벌해지니 관광객도 더 다양해졌다. 출발이 좋다.

 

-박은주 에디터 에버그린콘텐츠부장, 조선일보(22-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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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화장품 수출국으로 메이크업 해준 K뷰티

 

K팝에 이어 영화, 드라마, 게임, 웹툰 등 K브랜드가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화장품을 주축으로 한 K뷰티도 한몫 단단히 하고 있다(play a crucial part). 한류(韓流) 덕분에 부수적 혜택을 입는(get collateral benefits) 수준이 아니라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play a role of locomotive). 세계 유행을 선도하는(set the trend) 프랑스의 영문 매체 ‘프리미엄 뷰티 뉴스’가 ‘한국은 어떻게 화장품 세계에서 명성을 떨치게(make its mark) 됐나’라는 특집 기사를 마련했을 정도다. 

 

한국 화장품은 세계 유수의 제품들을 흉내 내며 국내 소비자 취향에 맞추는(adapt to local consumers’ tastes) 수준에 급급했다. 일본 제품 영향도 적잖이 받았다. 그랬던 것이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시도(original and innovative attempt)를 더해가면서 프랑스와 미국에 이어 세계 3대 화장품 수출국으로 우뚝 서게 됐다(establish itself as the world’s third-largest cosmetics exporter).

 

한국 화장품 수출은 이미 지난해에 전년 대비(compared to the previous year) 15% 이상의 두 자릿수 성장(double-digit growth)을 기록했다. 액수로는 61억2000만달러(약 7조2500억원)에 달한다. 최대 수입국(biggest importer)은 중국, 그다음은 미국이다. 유럽에선 프랑스, 영국, 독일 순이다.

 

한국 화장품은 비비 크림과 쿠션 콤팩트가 전 세계적 성공을 거두면서 처음 주목을 받았다(come to the fore through their worldwide success). 이를 이용해(capitalize on it) 유명해지기 시작하자(begin to make a name for themselves), 면세점을 잘 활용해 세계적 평판을 넓혀 나갔다(work up a worldwide reputation).

 

한국 화장품은 역동적인 국내 시장에서 동력을 얻었다(draw their strength from a dynamic local market). 치열한 경쟁(fierce competition)이 서양 브랜드들은 따라잡지 못하는 신상품 출시 속도(speed to market), 혁신 능력(capacity for innovation), 품질, 다양성을 발전시켜왔다(upbuild the quality and diversity).

 

소비자 수요에 맞춰(in line with consumer demand) 녹차, 인삼, 병풀 등 식물재료들을 활용한 천연성으로 평판을 쌓은(build a reputation for naturalness) 것도 주효했다. 또 과거에 외국 기업 하청 납품을 하며 익힌 뛰어난 제조법과 생산 속도(outstanding manufacturing methods and speed of production)가 유행이 급속히 변하는 화장품 산업에 있어 중요한 자산(significant assets)이 됐다. 프리미엄 뷰티 뉴스’는 한국 화장품이 앞으로도 오랫동안(for many years to come) 세계적 인정을 계속 얻어나갈(constantly gain global recognition) 것이라고 전망했다. 천연성분과 건강한 피부에 대한 수요가 한국 화장품 주력 분야인 클렌징·스킨케어와 맞아떨어지고 있고, 한국 업계의 경쟁이 계속 혁신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진단에서다.

 

-윤희영 에디터, 조선일보(21-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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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의 몰락

 

1956년 이른 봄 명동의 대폿집에서 막걸리 마시던 시인 박인환이 종이에 글을 끄적거렸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옆에 있던 이진섭이 곡을 붙였다. 테너 임만섭이 열창하자 길 가던 행인들이 술집 앞으로 모여들었다. 나중에 가수 박인희가 노래해 히트한 ‘세월이 가면’은 이렇게 탄생해 ‘명동 샹송’ ‘명동 엘레지'로 통했다. 명동의 낭만 시대였다.

 

▶1929년 일본 미쓰코시 백화점이 서울 출장소를 지점으로 승격했다. 이듬해 10월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의 백화점 건물을 충무로에 완성했다. 지금의 신세계백화점 본점이다. 4층 커피숍은 모닝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고 한다. 주인공이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고 되뇌는 이상의 단편소설 ‘날개’ 결말에 등장하는 장소가 미쓰코시 백화점 옥상이다. 1920년대부터 상업지구가 된 명동과 충무로 일대는 부와 욕망이 집결하는 상권 그 이상이었다. 문화 예술의 중심이었다.

 

▶'예술가들은 돈을 귀찮게 생각한다/예술가들은 오로지 사랑에 산다/예술가들의 사랑에선 커피 냄새가 난다.’(조병화의 시 ‘동방살롱) 전흔이 가시지 않은 1955년, 청년 사업가가 명동에 문화 예술인을 위한 ‘동방문화회관’을 열었다. 차 한잔 시켜 놓고 하루 종일 죽치는 가난한 문화 예술인을 위해 1층엔 다방 ‘동방살롱’을 운영했다. 전후 복구가 이뤄지면서 명동에 고층 빌딩이 들어섰고 금융기관 본사가 자리 잡았다.

 

▶강남 개발로 명동의 독보적 지위도 흔들렸다. 여의도에 금융 중심지 지위도 내줬다. 그럼에도 전국에서 제일 땅값 비싼 곳은 여전히 명동이다. 화장품 브랜드 네이처리퍼블릭의 명동 매장 부지가 18년째 공시지가 전국 1위다. 1㎡당 공시지가가 2억650만원으로 평당(3.3㎡) 6억8000만원도 넘는 금싸라기 땅이다. 명동의 활력이 되살아난 건 10여 년 전부터다. 글로벌 금융 위기로 불황이 닥쳤는데 오히려 명동은 환율 상승(원화 가치 하락)의 특수를 누렸다. 내국인 대신 일본중국 관광객이 몰려 명동은 K패션, K뷰티 상품을 파는 관광 코스가 됐다.

 

▶코로나 확산으로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끊기자 명동이 특히 치명타를 입었다. 임대료 비싼 1층 상가 공실률이 60%쯤 된다고 한다. 명동(明洞) 아니라 암동(暗洞) 됐다. 관광객이 다시 찾아오면 어느 정도 매출은 회복되겠지만 화장품 싹쓸이하는 중국 관광객에게만 의존해서는 ’100 상권명동의 명성을 되찾기에는 역부족일 듯싶다.

 

-강경희 논설위원조선일보(21-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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