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객이 전도된 대북정책 이젠 멈춰라

문재인 대통령이 9월 21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유엔총회장에서 종전선언을 촉구하는 내용의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천안함 폭침도발의 국민적 공분이 채 가시지 않은 2010년 11월 23일, 백주대낮의 연평도를 불바다로 만든 북한군의 무차별 포격으로 해병대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이 전사하고 무고한 민간인 2명이 목숨을 잃었다.
선전포고도 없는 적의 기습 도발에 맞서 해병대 장병들은 불붙은 철모를 쓰고 사력을 다해 응전했다. 휴전협정문을 불태워버린 것과 같은 야만적 도발을 감행한 지 11년이 됐지만 북한은 한마디 사과는 고사하고 대남비방과 핵무력 증강에 골몰하고 있다.
판문점과 평양, 싱가포르, 하노이에서 떠들썩하게 열렸던 남북, 북-미 정상회담에서 쏟아낸 갖은 선언과 합의는 북한의 핵무력 고도화를 저지하는 데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올해 1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전술핵 개발 지시 이후 극초음속미사일과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북한의 대남 핵타격용 ‘비수’는 더 날카로워졌다.
올해 초 발간된 2020 국방백서에 따르면 휴전 이후 지난해까지 북한의 대남침투 및 국지도발 건수는 3120건에 이른다. 2018년 남북 정상의 면전에서 양측 국방수장이 서명한 9·19 남북 군사합의도 북한의 거듭된 도발로 사문화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북한과의 ‘약속’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김정은 지배체제 유지를 위해서라면 어떤 협정이나 합의도 휴지조각이 될 수 있는 대북관계의 본질을 직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럼에도 정부는 ‘종전선언 카드’를 흔들면서 임기 말까지 대북 구애에 공을 들이고 있다. 종전선언을 비핵화 협상의 입구로 삼아서 남북 및 북-미 비핵화 대화의 돌파구를 찾겠다는 의도이겠지만 4개월 뒤 치러지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남북관계 개선에 조급해하는 기류가 역력하게 감지된다.
하지만 이 같은 구상은 실현 가능성이 낮고, 성과도 미미할 것이라고 필자는 본다. 비핵화라는 본질을 외면한 채 ‘평화 지상주의’로 점철된 ‘왜그더도그(wag the dog·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것)’ 방식의 대북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과의 두 차례 남북 정상회담에서 민족과 평화 운운하면서 약속한 비핵화가 ‘공수표’로 판명 난 것이 그 증거다.
뿐만 아니라 ‘묻지마식 종전선언’은 북한에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이 9월 담화에서 종전선언의 선결조건으로 주한미군과 한반도에 전개된 미 전략자산의 철수를 콕 찍어 요구한 것에서 그 속내가 훤히 보인다. 종전선언을 주한미군의 철수 명분으로 삼아서 한미동맹을 흔들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 북한 요구대로라면 유사시 한반도 작전지원과 전력제공을 하는 유엔군사령부도 유명무실해질 가능성이 크다. 종전선언과 유엔사는 별개라는 정부의 입장과 달리 북한은 최근 유엔총회에서 유엔사 해체를 거듭 주장하고 나섰다.
지난달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종전선언과 관련) 단계별로 정확한 순서(sequencing)나 시기, 조건에 관해 (한국과) 다소 다른 관점을 갖고 있을 수 있다”고 언급한 것도 섣부른 종전선언이 주한미군 철수의 빌미를 주고, 역내 위협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대처 능력을 약화시키는 위험한 옵션임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봐야 한다.
북한이 종전선언에 합의하면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는 기대도 그야말로 순진무구한 발상이다. 친정부 성향의 전문가들은 ‘평화 만들기(peace making)’의 과정으로 종전선언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북한의 핵포기가 빠진 어떤 선언이나 합의도 ‘모래성’으로 귀결될 것이 자명하다. 커티스 스캐퍼로티 전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이 지난달 한미동맹재단과 주한미군전우회가 주최한 간담회에 참석해 “종전선언을 하든 안 하든 (북한의) 위협은 그대로”라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는 이제라도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의 대북정책을 멈춰야 한다. 한미 양국이 일치된 목소리로 핵포기 결단만이 한반도 평화의 출발점이고, 어떤 도발도 단호히 대처할 것임을 북한에 명확히 주지시키는 것이 순리다. 주객이 전도된 대북정책을 고수해 북한의 눈치를 살피는 평화가 연출되고, 핵무력 고도화의 시간만 벌어주는 사태가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동아일보(21-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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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력 강화와 과학자 육성 두 토끼 잡아낸 이스라엘군
[홍익희의 新유대인 이야기]
軍이 창업 요람... 나스닥 상장된 이스라엘 기업, 유럽보다 많다

이스라엘군은 ‘시모네 메타임’ ‘탈피오트’ 같은 엘리트 부대를 통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입대한 학생들을 최정예 요원으로 길러내고 있다. 군대에서 수년간 창의력과 유연성, 문제 해결력을 키운 이들은 실전에서 신속하게 문제점을 파악하고 최선의 해결 방안을 찾아낸다. 또 제대 후에도 끊임없이 신기술을 개발하며 이스라엘 벤처 산업을 이끈다. 군대가 ‘창업 인큐베이터’ 역할까지 하는 셈이다. 사진은 이스라엘 군인들이 전투 훈련을 하는 모습. /이스라엘방위군(IDF) 홈페이지
이스라엘 학생들은 고등학교를 마치고 군 복무를 한다. 남자는 2년 8개월, 여자는 2년 복무 뒤 대학에 진학한다. 이스라엘군은 국방력 강화라는 본연의 임무 이외에 과학기술 인력 양성이라는 두 토끼를 한꺼번에 잡고 있다.
이스라엘군에는 컴퓨터에 특화된 ‘맘람’이 있다. 맘람은 ‘중앙 컴퓨터 처리 부대’를 지칭하는 히브리어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정보 부대인 ‘시모네 메타임’의 교육을 강화했다. 시모네 메타임은 히브리어로 숫자 ‘8-200′을 일컫는다. 그래서 8200부대라고도 부른다. 8200부대 복무자들은 군 복무 기간에 군 지정 대학에서 4년간 교육받은 뒤 군에서도 동일한 전공 분야에서 4년간 연구 개발을 하게 된다. 이 기간에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 경우 특허를 출원할 수 있다. 이 부대 출신들이 1000개가 넘는 벤처기업을 세워 신기술 개발로 엄청난 돈을 버는 사례가 속출하면서 학생들은 너나없이 정보 부대를 지망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천재 자폐증 병사로 구성된 9900부대도 있다. 평상시에는 다른 사람과 눈도 마주치기 힘들어하는 이들이 위성사진의 미묘한 변화 판독에는 귀신 같은 능력을 발휘한다.
애국심 투철한 과학자로 키운다
이스라엘 항공 산업체(IAI)는 전투기뿐 아니라 민간 항공기, 미사일 시스템, 인공위성 그리고 레이더 기반의 전투 시스템 같은 다양한 첨단 설비를 제작하고 있다. 이스라엘 최대 하이테크 업체로, 이스라엘 방산품 수출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고 있다. 1988년에 인공위성 발사를 단 한 번에 성공시킬 만큼 첨단 기술을 지녔다. 그 뒤 군사 첩보위성과 상업용 위성 시리즈를 연속 발사하여 이스라엘을 세계적 위성 강국으로 만들었다. 병기개발청도 1959년 최초의 공대공 미사일을 개발한 이후 미사일 전문 제조 수출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이스라엘은 현재 무인 항공기와 드론 분야에서 세계적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무인 항공기란 사람이 타지 않는 타격기로, 고성능 탄두를 내장하고 목표 지점으로 돌진하는 자폭형 비행체다. 미국의 대테러 전쟁 과정에서 활용도가 높아지면서 가장 주목받는 수출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가자지구에서 날아오는 미사일을 요격하기 위해 발사된 이스라엘군의 ‘아이언 돔’ 미사일. 적의 단거리 미사일을 공중에서 요격하는 아이언 돔은 이스라엘 최정예 부대 ‘탈피오트’의 여름방학 과제에서 시작된 결과물이다. /위키피디아
이스라엘이 자랑하는 미사일 방어 시스템이 아이언 돔이다. 전천후 이동식 방공 시스템인 아이언 돔은 미니 레이더의 정보 분석과 컴퓨터 통제에 따르는 적외선 유도 기기를 장착한 요격미사일로, 단거리 로켓과 포탄을 차단한다. 아이언 돔은 다층 미사일 방어 체계의 일부다.
이스라엘에서는 징병 연령이 되기 1년 전, 곧 고등학교 2학년부터 남녀 모두 적성, 능력, 심리, 신체검사를 받는다. 검사가 끝나면 신체 점수와 심리 점수에 등급이 매겨지며, 개인 인터뷰에서 어느 부대에 지원할 수 있는지 선택지가 주어진다. 이 가운데 모든 면에서 요구 조건을 충족하는 후보들에게는 엘리트 부대에 들어갈 수 있는 응시 자격을 준다. 8200부대(시모네 메타임)는 보통 10대 1의 경쟁을 거쳐 400명으로 압축된다. 이후 또다시 6개월간 간헐적 테스트를 통해 소수의 최종 선발 인원이 정해진다. 이 부대는 20개월 훈련을 마치고 최고의 과학기술 교육을 통해 전문가로 육성된다. 8200부대는 ‘웜 바이러스(컴퓨터 시스템을 파괴하는 악성 프로그램)’를 통해 이란의 핵 개발을 저지했다. 2007년에는 8200부대 주도로 시리아의 핵 의혹 시설을 이스라엘 공군이 공습했다. 이스라엘 인터넷 구직란에서는 ‘8200부대 출신 원함’이란 문구를 자주 볼 수 있다. 이들은 정보 부대 출신의 특성상 인터넷 보안과 암호 해독 분야에 특히 강하다.
그런데 이보다 한 차원 높은 부대가 ‘탈피오트’다. 히브리어로 ‘최고 중의 최고’를 의미한다. 이 부대는 들어가기가 가장 어렵고 훈련 기간 또한 가장 길다. 매년 영재급 고교 졸업 예정자 1만명 중에서 수차례 테스트를 거쳐 50명이 엄선된다.

이스라엘군 정보 부대인 8200부대(시모네 메타임) 요원들이 복무하는 모습. 20개월간 훈련을 통해 최고의 과학기술 전문가로 육성되는 이들은 인터넷 보안, 암호 해독 분야에서 특출 난 성과를 보이고 있다. /이스라엘방위군(IDF) 홈페이지
군대가 국가 벤처사업의 핵심으로
탈피오트 창시자는 히브리대학의 사울 야치브와 펠렉스 도탄 교수다. 창의력이 왕성한 젊은이들에게 위기관리를 할 수 있는 정신력 함양과 첨단 교육을 병행해 과학 영재 지휘관을 양성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탈피오트 신병 교육은 6개월 동안 밤 10시까지 강도 높게 진행된다. 이 기간 중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전략적, 전술적 요구 사항을 끊임없이 스스로 해결토록 하는 훈련을 받는다. 목숨을 건 전투 상황에서 냉정하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직된 사고보다 창의력과 유연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마치 스타트업에서 하듯 수평적 방식으로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으며 협동하여 맡은 문제를 해결해낸다. 이 훈련을 마칠 때쯤이면 모든 것이 부족한 군대 환경 속에서도 신속하게 현장의 기술적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결 방안을 찾아내는 우수한 인력으로 재탄생한다. 이후 이들은 히브리대학에서 숙식하며, 수학과 물리와 컴퓨터공학을 복수 전공한다. 적의 단거리 미사일을 공중에서 요격하는 아이언 돔은 탈피오트의 여름방학 과제에서 시작된 결과물이었다. 보통 2년 반 내지 3년 안에 복수 전공 과정을 수료해야 한다. 탈피오트 수료생들은 주로 공군 산하 컴퓨터 센터인 ‘맘다스’로 많이 간다. 이곳은 세계 최고 수준의 군사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곳이다. 이들은 총 9년 이상을 복무한다.
이러한 초 엘리트 교육과정을 이수하면 ‘탈피온’이라는 명예를 부여받는다. 제대 후 민간인 사회에서도 초엘리트로 인정된다. 지금까지 배출된 탈피온 1000여 명은 이스라엘 최고 인재로 여러 방면에서 활약하고 있다.
벤처기업가 80%가 탈피오트 출신
역대 이스라엘 총리 대부분과 이스라엘 주요 기업의 CEO 상당수를 포함해 이스라엘 벤처기업가 80%가 탈피오트 출신이다.
당초에 탈피오트는 군 현대화 전략의 하나로 추진됐다가 지금은 벤처기업 육성 정책의 핵심 국가 프로젝트로 자리 잡았다. 이들은 군대 후배들을 이끌어주는 역할도 한다. 이들의 인적 유대가 이스라엘 비즈니스 인맥의 중요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이스라엘 고등학생들은 어떤 대학을 진학하느냐 하는 것보다 어떤 군부대를 갈 것인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자신이 갖고 있는 재능을 군대에서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 주목해야 할 사실은 이스라엘의 창업 정신이 군대에서 형성되고, 이스라엘 벤처기술 대부분이 군사 기술을 민간 부문에 응용하는 과정에서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의 군대가 하이테크 벤처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학생들이 군 복무 기간 혹독한 자기 개발 훈련을 받고, 스타트업 분위기에서 복무하며 이미 자기 또래의 세계인들보다 몇 배 많은 경험을 쌓기 때문이다. 이들은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스스로 판단하고 알아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도록 훈련받았다. 이스라엘 벤처가 강한 이유는 이런 토양에서 훈련받은 인재들이 창업의 길로 들어서기 때문이다. 나스닥에 상장된 이스라엘 벤처기업 수가 전 유럽의 상장 벤처기업보다 더 많은 이유다.
일찌감치 컴퓨터 전략에 눈떠
73년 4차 중동전쟁 후 “탱크도 폭격기도 아니다, 미래는 사이버 전쟁이다”
1973년 4차 중동전쟁은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나긴 했지만, 이스라엘군은 이제 더 이상 야전에서 지상군과 전차, 심지어는 폭격기조차 쓸모없음을 깨닫는다. 앞으로 있을 전쟁은 사이버 전쟁이라고 판단했다. 인공위성과 컴퓨터로 원격 조종하는 미사일과 미사일 방어 시스템이 승패를 가르게 될 것이라고 보았다.
이후 이스라엘군은 궤도를 전격 수정해, 재래식 무기가 아닌 컴퓨터로 제어하는 첨단 무기 개발에 주력했다. 이를 위해서는 소프트웨어 경쟁력이 필수였다. 이후 소프트웨어 개발과 이를 위한 인재 양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스라엘군이 택한 전략은 군의 교육 기능을 대폭 강화하는 것이었다. 이스라엘군은 대학들과 손잡고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벤구리온 대학이다. 벤구리온 대학은 국방 과학기술 캠퍼스를 별도로 지어 군 교육을 맡았다. 이곳에서는 정보·컴퓨터 부대 병력 수천 명이 학부와 대학원에서 공부할 수 있다. 군이 국가의 컴퓨터 산업 인력 양성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홍익희 전 세종대 교수, 조선일보(21-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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