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서울 경운동에 있는 민병옥(閔丙玉) 가옥은 1930년대 개량 한옥의 역사를 보여 주는 민속 자료다<사진>. 한동안 훼손되어 있던 이 집을 식음 공간으로 리모델링하는 프로젝트를 2001년에 맡았다. 디자인 콘셉트는 동서양 문명이 교류하던 근대화 시기 분위기를 재현하는 것이었다. 한옥에서 느껴지는 건축 요소의 아름다움을 유지하면서 내부에 서양 문물이라는 켜를 또 하나 입히는 작업이었다. 6개월간 미국과 한국을 세 번 왕복하면서 작품을 구상하고 설계와 공사를 마쳤다. 그리고 ‘민가다헌(閔家茶軒)’이라는 이름의 공간이 탄생했다. 이전까지 이 집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서울시와 치른 오랜 소송에서 이기고 레스토랑으로 사용하면서 사람들이 드나들고, 박제된 건축에 비로소 생명이 생겼다. 더불어 문화재 가치도 인식되었다.


서울 경운동 민병옥가옥은 1930년대 개량한옥의 역사를 보여준다. 한동안 훼손돼있던 이 집은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통해 동서양 문명이 교류되던 근대화 시기의 분위기를 재현한 ‘민가다헌’으로 재탄생했다.(좌)/한옥의 건축적 아름다움을 유지하면서 내부에 서양문물의 분위기를 입힌 ‘민가다헌’./ 박진배 뉴욕 FIT 교수
16년 동안 민가다헌은 많은 내외국인 인사를 손님으로 받았다. 힐러리 클린턴을 비롯하여 아르헨티나 대통령, 이탈리아 총리 등이 여기서 식사했고, 프랑스와 벨기에 대사, 전현직 서울 시장과 기업 총수들이 즐겨 찾았다. 서울을 소개하는 책자나 항공사 기내지에도 단골로 실리던 명소다. ‘신의 물방울’ 저자 아기 다다시도 방문했고, 와인 드라마 ‘떼루아’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문 닫은 민가다헌./ 박진배 뉴욕 FIT 교수
몇 해 전 서울시는 문화재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민가다헌 문을 닫아버렸다. 21세기에 이런 문화유산을 올바로 활용하고 유지하는 방식을 모르는 무지한 결정이다. 한심하고 답답하다. 건축은 도자기나 조각처럼 감상하는 것이 아니다. 문화재 고택들이 한옥 스테이를 제공하는 이유도 단지 수입만이 아니다. 사람이 살지 않고 집을 보존할 수 있는 길은 없다. 도시 한복판에 이런 역사적 공간과 분위기를 만들기는 더욱이 쉽지 않다. 비 오는 날 기왓장을 타고 흐르는 낙숫물 소리는 민가다헌의 영혼이자 서울의 소리였다. 서울 시민에게, 또 서울을 찾는 손님에게는 이런 정취를 즐길 권리가 있다.
-박진배 뉴욕 FIT 교수, 마이애미대학교 명예석좌교수, 조선일보(21-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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