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망칠 포퓰리즘 거부, 한국민은 그리스·아르헨과 다르다]
[20대가 아직도 ‘무야홍’ 외치는 이유]
나라 망칠 포퓰리즘 거부, 한국민은 그리스·아르헨과 다르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가 줄기차게 요구해온 '전국민 재난지원금' 추가 지급을 철회했다. 이번 사건은 정치권 포퓰리즘 폭주에 국민들이 제동을 건 첫 사건으로 한국 정치사에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사진은 민주당 송영길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이 17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선대위 회의에서 발언하는 장면./연합뉴스
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전 국민 재난 지원금’을 철회한 것은 한국 정치사에 기록될 만한 의미 있는 사건이다. 이 후보는 야당 반대와 정부의 비협조를 이유로 댔지만, 사실은 현명한 국민의 벽에 부닥친 것이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60%가 전 국민 지원금을 반대했다. 매표를 위해 내놓은 공약인데 선거에 도움이 안 되니 접은 것이다.
민주당은 지난해 4월 총선에서 포퓰리즘 덕을 톡톡히 봤다.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를 통해 24조원대 선심성 지역 개발 사업을 각 시도에 나눠주고,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약속하는 동시에 선거 이틀 전에 아동수당 1조원을 미리 뿌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투표 직전에 재난지원금 지급을 국민에게 일부러 상기시키기도 했다. 현금 살포는 선거 압승에 크게 기여했다. 이후 민주당은 선거용 현금 살포의 효과를 맹신하게 됐다. 이 후보와 민주당이 대선용 ‘현금 살포’ 카드를 쓰려고 ‘예산 분식’ 등 온갖 꼼수를 동원하려 했던 것도 이 맹신 때문이었다.
포퓰리즘은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다. 정당과 정치인의 선거 승리와 권력 확보가 그 목적이다. 세상에 의무는 줄이고 혜택을 더 주겠다는 데 싫어할 유권자는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2002년 대선에서 ‘수도권 이전’ 공약이 강력한 득표 효과를 거두면서 포퓰리즘 선거의 판도라 상자를 열었다. 군 복무 기간은 선거 때마다 줄어들었다. 반면 기초연금은 선거 때마다 대폭 오르고 있다. 무상급식·무상보육·아동수당, 반값 등록금 등 각종 무상 복지는 모두 선거의 산물이다. 급기야 지난 총선에선 야당마저도 ‘전 국민 1인당 50만원 지급’ 약속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정당들은 포퓰리즘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많은 나라의 국민이 포퓰리즘의 유혹에 넘어갔고, 그런 나라는 예외 없이 쇠락했다. 베네수엘라 차베스 대통령은 매주 방송에 나와 서민 생활고를 덜어주는 온갖 복지 선물을 내놨다. 결국 나라가 망해 국민 수백만명이 해외로 탈출하고 남은 국민은 쓰레기통을 뒤지는 지옥이 됐다. 국가 수장이 “국민이 원하는 것은 다 주라”고 했던 그리스에선 선거 때마다 연금이 새로 생겨 연금공단이 150개나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급증한 나랏빚을 숨기려 GDP 통계까지 조작하다 국가부도를 맞았다. 아르헨티나는 일자리 만든다고 공무원을 대폭 늘리고 연금 혜택도 마구 늘리다 20번 이상 모라토리엄(채무불이행)을 선언하는 ‘부실 국가’로 전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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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선진 민주주의 국민은 포퓰리즘 발호를 막는 분별력을 보여주었다. 스위스 국민은 5년 전 매달 300만원 기본소득을 공짜로 주겠다는 제안에 77%가 반대표를 던졌다. 노르웨이는 북해유전 덕에 1조달러가 넘어선 국부펀드의 인출 한도를 한 해 수익의 절반으로 묶어놨다. 원금과 기본수익은 미래 세대를 위해 남겨두는 것이다. 독일 사회당 정권은 지지층을 반대를 무릅쓰고 노동개혁을 완수해 일자리 창출의 돌파구를 열었다.
민주당의 선거용 재난지원금 철회는 우리 국민도 선진국 수준의 분별력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제 한걸음 더 나아가 예상보다 더 들어온 세금 19조원을 국가재정법이 정한 대로 나랏빚을 줄이는데 우선 쓰는 모범 선례까지 만들어졌으면 한다. 이 돈을 활용해 적자 국채 발행량을 줄이면 시장금리가 내려가 이자 부담 탓에 고통을 겪는 서민들에게 도움이 된다. 금리 급등세가 잡히면 물가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 포퓰리즘 병(病)은 재발한다. 특효약도 없다. 돈 다발을 흔드는 정치인이 등장할 때마다 유권자가 준엄한 심판을 내려 정치권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 방법뿐이다.
-조선일보(21-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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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가 아직도 ‘무야홍’ 외치는 이유
이번 생엔 아파트도 못 사고…
세상에 대한 불만 홍준표에 투영
20대 “우린 이쪽 저쪽 다 싫어”
통합, 어디부터 할지 돌아봐야
“홍준표가 뭐가 그리 좋아?” 스물셋 서준씨 대답은 딱 세 글자였다. “무야홍!” 무조건 야당 후보는 홍준표. 묻지도 따지지도 말라는 뜻이다. ‘내가 홍준표가 좋다는데 무슨 상관이세요?’ 하는 눈빛이었다. 지난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홍준표는 여론조사에서는 이겼으나 당원 투표에 패해 끝내 후보가 되지 못했다. 서준씨는 분을 삭이지 못했다. ‘당신들이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2021년 11월 2일 오전 부산 동구 부산역 광장에서 홍준표 국민의힘 대통령 선거 경선 후보가 '승리를 위한 특별기자회견'을 가진 뒤 한 청년 지지자의 기념촬영에 응하고 있다./김동환 기자
그런데 서준씨가 ‘정말로’ 홍준표를 좋아해 무야홍을 외쳤던 것일까? 이런 말을 하면 또 ‘꼰대’ 소리 듣겠지만, 홍준표라는 인물에 대해 자세히 모르는 것 같았다. 정치에 아주 관심 많은 20대가 아닌 이상, 10년, 20년 전 홍준표가 어땠는지 ‘그때의 느낌으로’ 알겠는가. 그저 세상에 대한 불만을 무야홍에 투영하는 모양이랄까. 이쪽저쪽 다 싫은 20대 청년층의 제3지대 아이돌이 홍준표였던 셈이다. 현상을 뭉뚱그려 일반화할 순 없겠지만.
편의점을 운영하다 보니 20대를 많이 고용하게 되고, 계산대에 앉아 이야기를 나눌 기회 또한 다른 업종에 비해 많다. 그러면서 느끼는 점은, 요즘 20대는 나 같은 X세대보다 훨씬 힘든 세상을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때’는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얕은 기대라도 가졌지만 지금은 희망의 바늘구멍이 숫제 사라져 버렸다. 우리 때도 대기업과 중견·중소기업의 차이는 있었지만 지금처럼 대단한 격차라고 생각진 않았고, 우리 때는 그래도 은행에 적금 넣고 허리띠 졸라매면 아파트쯤 살 수 있다 여겼다. 지금은 로또에 당첨되거나 코인이 대박 나지 않는 한 이번 생에 아파트는 어렵게 되었다. 대출은 꿈도 못 꾼다. 20대는 이것을 ‘자기들은 실컷 올라가 놓고 사다리를 걷어차 버렸다’ 여긴다.
우리 때는 세상 물정 모르는 말일지언정 “서로 사랑하면 됐지 조건은 왜 따져?”라고 결혼을 대했고, 알콩달콩 복작이며 아이 낳고 사는 것을 행복이라 여겼다. 지금 20대에게는 그런 말을 차마 꺼낼 수 없다. 사실은 나보다 훨씬 냉정한 현실 인식을 갖고 있어 서늘함을 느낄 때가 많다. 게다가 20대 남자들은, 이제야 남녀가 점차 동일 선상에 서는 것처럼 보이는데, 남성에 대한 가부장적 책임을 묻는 문화는 여전한 것 같아, 그것을 일종의 역차별로 받아들인다. 지난 세대는 어우렁더우렁 살았으면서 왜 우리만 잠재적 가해자 취급을 받느냐고 분하게 여긴다. 우리 때가 ‘정치 혐오’였다면 요즘 20대는 ‘세상 혐오’쯤이랄까.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라는 각자도생의 각오로 살아간다. 그렇게 그들은 ‘산골’로 갔다.
정치권에서는 MZ(밀레니얼+Z세대)를 민지, 민준, 민진이라 부르면서 가스라이팅하듯 구애한다. 그러나 MZ는 ‘밑진’ 세대다. 애초에 손해 보고 태어난 인생이라 한탄한다. 어쩌다 세상이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그들의 바늘구멍을 열어주고 사다리를 다시 세워주지 않으면 쉬이 돌아오지 않을 마음이다. 다가오는 대선은 20대와 자영업자들의 표심이 결정하리라 내다본다. 이들의 공통점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가장 고통받는 세대와 계층이라는 사실이다.
윤석열 선대위에 ‘국민통합위원회’를 만든다는 말이 들린다. 위원장으로 민주당 출신 정치인이 거론된다. 선거 때만 되면 등장하는 그 통합 소리 지겹다. 아직도 국민 통합을 영호남 화합 정도로 생각하는 사고방식 또한 고색창연하다. 현 시기 국민 통합이 간절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돌아보지 않는다면, 윤석열은 홍준표에게 사실상 패했고, 내년 3월 9일 저녁에도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이게 되지 않을까. 서준씨는 오늘도 갈 곳 없이 ‘무야홍’을 외친다.
-봉달호 편의점주, 조선일보(21-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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