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世界-人文地理]

[‘외로움의 동굴’에서 서로에게 필요한 건 다정함] [우리나라 최초의 캐럴] ....

뚝섬 2021. 12. 24. 05:55

[‘외로움의 동굴’에서 서로에게 필요한 건 다정함] 

[우리나라 최초의 캐럴] 

[윈도 드레서의 세계] 

[아이들 눈과 마음을 사로잡은 가게] 

[타이태닉號 이등항해사, 그는 악인이었나 영웅이었나?]

 

 

 

외로움의 동굴’에서 서로에게 필요한 건 다정함

 

[김지수의 서정시대]

10년 함께하다 떠난 조선족 이춘자 할머니, 한 계절만에 우리 가족 초대
마침 그날은 내 생일… 둘러앉아 삼겹살 굽고 생일 노래 ‘다정한 풍경’
외로움이 바이러스보다 무서운 시대, 더 많은 ‘이춘자 할머니’가 필요
 

 

경계 없이 선선하던 조선족 이춘자 할머니가 10년을 머물다 떠난 후, 우리 집 대문은 적적해졌다. 말을 튼 이웃들과 북적북적 우수리처럼 주고받던 옥수수니 밤이니, 옷 보따리 대신 현관 앞엔 택배 상자만 고적하게 쌓여갔다. 그렇게 훌쩍 한 계절이 지났다.

 

노인 간병을 한다며 옆 동네 아파트로 일터를 옮긴 이춘자 할머니가 우리를 초대한 때는 우연히도 내 생일 점심이었다. ‘호기심 반 외로움 반’ 롤케이크 하나 들고 찾아간 10평 남짓 아파트에서, 나와 아이는 처음 본 할아버지와 양철 밥상에 동그랗게 둘러앉아 삼겹살을 굽고 생일 노래를 불렀다. 지직거리는 TV 앞에서 도란도란 귤을 까먹는데, 이 풍경이 너무 다정해서 잊히지 않을 것 같았다. ‘이상한 정상 가족’이란 이런 거구나!

 

12월 어느 날. 서울 삼성동 빌딩 지하 식당에서, 취재 끝에 늦은 ‘혼밥’을 먹던 날도 기억난다. 앞치마를 두른 서버 청년이 내 앞에 우거지 뚝배기가 담긴 쟁반을 내려놓으며 휘파람 불듯 말했다.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있던 나는 놀란 눈동자로 그를 쳐다보았다. 올해 첫 크리스마스 인사였다. 더운 숟가락이 닿은 것처럼 내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일러스트=김성규

 

“아, 네. 메리 크리스마스! 감사해요.”

 

“별말씀을요. 제가 더 기쁩니다. 맛있게 드세요”

 

밥 뚜껑을 열어주고 나가는 그의 반듯한 등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최고급 등심 스테이크를 시켰어도 이보다 흐뭇할 순 없겠다.

 

내가 발견한 이 도시의 신호등은 전부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모두가 외롭다는 것. 얼마 전 ‘고립의 시대’를 쓴 노리나 허츠 박사를 인터뷰했다. 그는 “지금은 인류가 가장 외로운 세기”라며 코로나 이후 외로움 후폭풍이 몰아칠 거라고 경고했다. 외로움은 지구촌 곳곳에 깊숙이 똬리를 틀었다. 고립에 몰려 극단적 선택을 하는 청년들, 경범죄를 저지르고 ‘덜 외로운’ 감옥행을 택하는 노인들, “엄마가 날 안아주지 않는다”며 전화 상담원에게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들… 상황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그가 찾아낸 해결책은 거창하지 않았다. 동네 식료품점 계산원, 카페 바리스타 등 이웃과 20초 정도 안부 인사를 주고받으라는 것. 이러한 미세 상호작용이 ‘우리’를 일깨우는 중요한 안전 신호라는 말에 나는 크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생각해보면 정글의 약자였던 인간은 소셜 애니멀의 지혜로 야생의 위협과 싸우며 문명을 이룩했다. 문명은 SNS(소셜네트워킹서비스)라는 꼭짓점에서 초연결의 정점을 찍었지만, 동시에 우리는 서로를 감각하던 민감한 협응의 촉수를 잃어버렸다. 너무 쉽게 우정을 거래하고, 물건을 사는 ‘소비 네트워크 서비스’ 안에서, 우리는 점점 더 무력해졌다. 허츠 박사는 ‘돌보는 사람’으로서 시민의 정체성을 회복하려면,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로컬의 세계로 나와야 한다고 조언한다.

 

외로움 동굴에서 서로를 구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다정함이다. 강해지려면 다정해져야 한다. 다정해지려면 부드러워져야 한다. 부드러워지기 위해 우리는 더 필사적으로 서로를 ‘감각’해야 한다. 재난 현장에 고립돼도 다가오는 인간의 기척이 우리를 살게 한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라는 이란 영화가 있다. 잘못 가져온 친구의 노트를 돌려주기 위해 2시간 내내 마을 언덕길을 내달리던 영화에서 소년 아마드는 친구의 집을 찾지 못했지만, 이튿날 친구 몫까지 숙제를 해서 늦지 않게 교실에 도착한다. 공책 갈피엔 작은 꽃잎이 꽂혀 있었다. 그 위로 뉴스에서 본 영국 빈민가 초등학교 교사의 모습이 겹쳐 떠오른다. 코로나 격리 기간에 18㎏짜리 배낭을 앞뒤로 둘러메고 8㎞를 걸어 제자 78명에게 점심을 배달하던 파울스 선생님은 흡사 코알라나 캥거루처럼 보였다.

 

“진화의 생존자는 최적자가 아니라 다정한 자”라고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책에서 그랬던가. 가까워질수록 다정해지는 우리는 로컬 애니멀이다. 그래서 외로움이 바이러스보다 무서운 이 시대에, 우리는 더 많은 아마드, 더 많은 파울스 선생님, 더 많은 이춘자 할머니가 필요하다.

 

다시 한번 그날의 점심상이 떠오른다. 저 멀리 중국 창춘에서 온 할머니를 사이에 두고, 90대 할아버지와 아홉 살 아이와 내가 만났다. 문턱을 낮추고 서로를 허용하는 그것을 ‘외로움 보험’이라 할까. 내년 설에 떡국을 함께 먹자며 헤어지는데, 문풍지로 찬 바람을 메꾼 듯 배꼽 아래가 든든했다. 두 노인이 문 앞에 서서 와이퍼처럼 나란히 손을 흔들었다. 모두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

 

-김지수 조선비즈 문화전문기자, 조선일보(21-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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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캐럴

 

[장유정의 음악 정류장]

 

우리나라에서 발표된 첫 번째 캐럴(성탄 축하곡)은 무엇일까? 음반 기준으로 지금까지 밝혀진 자료에 따르면 윤심덕이 1926년 노래한 ‘파우스트 노엘’이다. 한기주와 함께 도쿄음악학교 사범과를 졸업한 윤심덕은 임배세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초기 성악가로 활동했다. 하지만 윤심덕은 단순한 성악가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1926년 목포 부호 출신의 아들이자 극작가인 김우진과 대한해협의 물거품으로 사라진 윤심덕! 그는 당시는 물론이고 2021년 현재까지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지금까지 그가 발표한 노래는 ‘윤심득(尹心得)’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노래까지 포함해 38곡이다. 이 중 음원이 밝혀진 노래는 음반 세 장, 총 6곡이다. 제목만 남은 노래 등을 볼 때 그는 동요, 서양 민요, 일본 유행가 번안곡, 찬송가, 캐럴 등 다양한 노래를 불렀다. 특히 그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녹음한 ‘사(死)의 찬미’는 당시 크게 유행하면서 ‘유성기’를 대중에게 알리기도 했다. 윤심덕을 성악가를 넘어서 초기 대표 대중가요 가수로 보는 이유다.

 

윤심덕이 발표한 노래 중 캐럴로 보이는 것은 ‘파우스트 노엘’과 ‘산타클로스’였다. ‘산타클로스’는 아직까지 음원이 발견되지 않아서 정확하게 어떤 노래인지 알 수 없다. 두 노래 모두 1926년에 발표되었으나 음반 번호상으로 ‘파우스트 노엘’이 ‘산타클로스’보다 앞서니 ‘파우스트 노엘’이 현존하는 첫 캐럴 음반이다. 그 온전한 내용을 알 수 없다가 ‘파우스트 노엘’ 음반을 유일하게 소장하고 있는 이경호 선생이 세상에 소개하였다. 결국 ‘파우스트’가 ‘퍼스트(first)’란 뜻이라는 것과, “노엘 노엘 노엘 노엘 이스라엘 왕이 나셨네”라는 노랫말로 익숙한 ‘노엘(The First Noel)’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한국 캐럴의 역사도 어느덧 100년이 되어간다. 1920년대를 시작으로 광복 이후 1950년대, 60년대, 70년대까지 수많은 가수가 창작 캐럴과 번안 캐럴을 불렀다. 여기에 1966년 서영춘을 시작으로 “달릴까 말까”로 웃음을 자아낸 심형래의 ‘징글벨’처럼 개그맨들이 노래한 캐럴도 대거 등장했다. 현재도 많은 가수가 캐럴을 만들고 부른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캐럴이 있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는 것도 사실이다. 크리스마스는 ‘온 세상이 함께하는 사랑의 시간’이라 했던가. 캐럴을 들으며 우리 마음에도 사랑이 피어나기를 바라본다.

 

-장유정 단국대 자유교양대학 교수·대중음악사학자, 조선일보(21-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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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도 드레서의 세계

 

[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런던 해러즈(Harrods) 백화점의 크리스마스 쇼윈도 디스플레이. ‘럭셔리 기차 여행’을 주제로 최고의 공예 기술과 디테일을 선보였다./박진배 뉴욕FIT교수·마이애미대 명예석좌교수

 

연말연시가 되면 세계의 주요 백화점 쇼윈도들은 경쟁하듯 그 화려함을 자랑한다. 물질세계의 풍요로움을 구현하기 위한 온갖 소품과 시각적 화법들이 등장한다. 이 패션 판타지를 만드는 사람들을 ‘윈도 드레서(Window Dresser)’라고 부른다. 짧은 주기로 계속 바뀌는 디스플레이에 맞추어 기발한 아이디어와 순발력, 집중된 노동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이들에게는 폭과 깊이가 지극히 제한된, 현실적이지 않은 공간이 주어진다. 여기서 최대 광고 효과를 이루는 디자인을 창조해야 한다. 착시, 해체, 과장된 스케일, 중력을 무시하는 연출 등의 온갖 기법이 이용된다. 1987년 영화 ‘마네킨(Mannequin)’은 이 직업의 세계를 잘 표현해주었다. 디자이너들은 역사, 자연, 음악, 만화, 빈티지, 사회적 이슈, 클래식 영화나 발레 등 수많은 곳에서 영감을 찾는다. 그래서 쇼윈도는 하나하나가 모두 다르다. 마치 잡지가 한 페이지마다 편집이 다른 것과 같다.

 

쇼윈도의 매력은 정체된 움직임, 예상치 못한 각도와 시점, 그리고 극도의 편집성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수준 높은 공예 기술이다. 관객과 거리가 있는 연극 무대 세트와 달리 사람들이 유리창에 코를 대고 가깝게 들여다보기 때문에 대충 만들 수 없다. 디테일이 완벽해야 한다. 환경심리학에서 이용하는 연구 방법이지만 쇼윈도 디자인의 성공 여부를 가늠하는 척도는 하루 동안 행인들이 유리에 남긴 손가락 지문과 코 자국이다.

 

뉴욕 버그도프 굿맨(Bergdorf Goodman) 백화점의 쇼윈도 디스플레이. 데이비드 호이(David Hoey)가 이끄는 디자인팀은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의 장식을 위해서 몇 개월간 아이디어를 짜고 설치 준비를 한다. 애슐린(Assouline)에서 ‘버그도프 굿맨의 윈도’라는 제목으로 책도 출판되었다.

 

어둠이 깊은 시간 쇼윈도를 응시하면 그 전시가 초대하는 상상의 세계로 빠져드는 느낌을 받는다. 쇼윈도는 평균 1주에서 길어야 3주의 공연 시간을 갖는 무대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과 제한된 공간에 집중된 에너지는 다른 형태의 미술에 없는 응집력을 지닌다. 상업 광고가 문화가 되는 대표적 현상일 것이다. 유행 감각의 반영, 놀라움과 유머, 즉흥성과 도발적 메시지로 가득 찬 박스 안에는 실험 정신과 일상의 스토리가 있다. 그야말로 무대와 패션, 공간 쇼맨십의 작은 결정체다.

 

(사진 1,3) 런던 해러즈(Harrods) 백화점의 크리스마스 쇼윈도 디스플레이. ‘럭셔리 기차 여행’을 주제로 최고의 공예 기술과 디테일을 선보였다.

 

(사진 2) 뉴욕 버그도프 굿맨(Bergdorf Goodman) 백화점의 쇼윈도 디스플레이. 데이비드 호이(David Hoey)가 이끄는 디자인팀은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의 장식을 위해서 몇 개월간 아이디어를 짜고 설치 준비를 한다. 애슐린(Assouline)에서 ‘버그도프 굿맨의 윈도’라는 제목으로 책도 출판되었다.

 

-박진배 뉴욕FIT교수·마이애미대 명예석좌교수, 조선일보(21-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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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눈과 마음을 사로잡은 가게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티몰레옹 마리 로브리숑, 장난감 가게 진열장, 1870년대, 캔버스에 유채, 112×84㎝, 개인 소장.

 

1885년 빈센트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에서 다른 화가가 그린 어린이 그림을 언급하면서 ‘전성기 로브리숑에 견줄 만하다’고 했다. 당시 프랑스 화가 티몰레옹 마리 로브리숑(Timoléon Marie Lobrichon·1831~1914)은 무엇보다도 아기와 어린이의 모습을 현실적이고도 사랑스럽게 그려낸 화가로 온 유럽에서 이름을 날렸다. 그의 작품 중 수많은 복제품을 낳은 그림이 바로 이 ‘장난감 가게 진열장’이다.

 

쌀쌀한 겨울날, 북적이는 거리를 바삐 오가는 사람들 속에서 장난감 가게에 눈을 빼앗겨 걸음을 멈춘 이들이 있다. 과연 가게는 고급스러운 드레스를 차려 입은 어여쁜 인형들과 커다란 말이 끄는 정교한 마차 등 누구라도 깜빡 넘어갈 만한 상품으로 가득 찼다. 가게를 들여다보는 이들은 저마다 원하는 걸 찾는 눈치지만, 주인공은 단연코 두 손과 코가 납작해지도록 유리문에 바짝 붙어 선 가운데의 여자아이다. 위를 향한 두 눈동자를 보니 틀림없이 가게 천장에 매달린 무언가를 갖고픈 모양. 야무지게 다문 입술과 빳빳하게 힘을 준 양손에서 저 장난감을 언젠가 반드시 ‘득템’하고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느껴진다. 이 정도면 그냥 바라는 게 아니라 마음속으로 마법의 주문이라도 외우고 있는 게 틀림없다. 로브리숑의 그림에서는 이처럼 어른의 눈으로는 마냥 천진해 보이는 아이들의 미묘한 심리, 욕심과 기대와 상상력이 투명하게 드러나, 그림 한 장에서 마치 동화 한 편을 본 것만 같다.

 

관람자는 그림 밖에 있지만, 가게 안에 선 시점이다. 내가 주인이라면 저 꼬마가 원하는 걸 그냥 줄 수는 없겠으나 다른 손님이 먼저 사가지 못하도록 잠시라도 숨겨두고 싶은 마음이다.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조선일보(21-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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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태닉號 이등항해사, 그는 악인이었나 영웅이었나?

 

 

1912년 4월 14일 밤 11시 40분, 영국 사우샘프턴항(港)을 떠나 미국 뉴욕시로 처녀항해에 나섰던(set sail on her maiden voyage) 세계 최대 호화 여객선(luxurious passenger vessel) 타이태닉호가 빙산에 부딪혀(hit an iceberg) 침몰했다. 이 사고로 승선 인원 2208명 중 1513명이 목숨을 잃어 사상 최대 해난 사고(marine accident)로 기록됐다.

 

그 끔찍했던 비극(horrific tragedy) 이후 침몰 원인을 제공한 악인으로 역사에 알려진(be known to history) 인물이 있다. 이등 항해사로 승선했다가(go on board as the liner’s second officer) 출항 직전 배에서 내린 데이비드 블레어. 그는 서둘러 배에서 내리면서(in his haste to disembark) 선박 꼭대기 망대의 쌍안경·망원경 보관함 열쇠를 두고 오는 것을 잊었다(forget to leave the key to the binoculars and telescope box in crow’s nest). 훗날 망 보는 근무를 서다가 살아남은 선원은 법정에서 망원경만 있었으면 사고를 피할 수 있었을(avoid the shipwreck) 것이라고 말했고, 그로 인해 그는 참사 원흉으로 낙인찍히게 됐다(be stigmatized as the culprit). 

 

그러나 최근 블레어에게 침몰 책임을 전가하는(shift the blame on to him for the sinking) 것은 부당한 꼬리표(unfair label)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망원경 박스를 열 수단과 방법(ways and means)은 많았을뿐더러 블레어는 본의 아니게(against his will) 하선하게 됐던 것으로 밝혀졌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그는 출항을 앞두고 마지막 순간에 교체됐다(be replaced at the last minute). 선장이 바뀌면서 원래 선장이 일등 항해사(chief officer)로 내려오고, 일등 항해사가 그의 역할을 맡게 됨에 따라 밀려났던 것이다.

 

그는 지인에게 보낸 엽서에서 자리를 잃게 된 것을 한탄하면서(lament the loss of his post) 몹시 안타까워했다. “정말 훌륭한 배인데, 첫 항해를 함께하지 못하게 돼 실망스럽다(feel disappointed). 언젠가 꼭 돌아오고 싶다”고 썼다. 그는 일부러 열쇠를 갖고 내린 졸렬하고 비겁한(be mean and cowardly) 인물이 아니었다. 주머니에 넣어뒀던 열쇠를 무심코 갖고 내렸을(get off the ship with the key unwittingly pocketed) 뿐이다.

 

그는 비겁자가 아니라 영웅이었다. 다른 여객선 항해사로 근무 중 바다로 뛰어들어(throw himself overboard) 익사 상태에 빠진 승객을 헤엄쳐 가서 구해내(swim to the rescue of a drowning passenger) 버킹엄궁에서 국왕 훈장을 받았고, 1차 세계대전에선 해군으로 공훈을 세워(serve with distinction) 대영제국 훈장과 프랑스 최고 권위의 레지옹 도뇌르 등 더 많은 훈장을 가슴에 달았다.

 

그는 그 운명적 열쇠를 끝내 간직하고 있다가(hold on to the fateful key to the last) 1955년 80세 나이로 사망했고(pass away), 열쇠는 딸에게 한 많은 유물로 남겨졌다.

 

-윤희영 에디터, 조선일보(21-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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