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스스퀘어]
[自由의 女神像-뉴욕]
타임스스퀘어
50년 전 소매치기 날뛰던 극장가… 하루 300만명 오가는 뉴욕 상징

/위키피디아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의 '볼드롭(Ball drop)' 행사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코로나로 대폭 축소된다고 해요. 백신 접종 증명서가 있는 1만5000명만 입장할 수 있고 마스크를 착용해야만 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하네요. 당초 예년 규모로 크게 열 예정이었지만, 뉴욕시 신규 확진자가 빠르게 늘면서 내린 조치라고 해요.
'볼드롭'은 매년 12월 31일 타임스스퀘어에서 진행된 새해맞이 행사예요. 이날 오후 6시부터 각종 공연 등이 진행되다가 자정이 되기 1분 전에 '원(one) 타임스스퀘어 빌딩'에 있는 거대한 공이 카운트다운과 함께 내려오며 새해가 시작되는 걸 알려요. 1907년에 시작해 100년 넘게 진행해 온 전통적인 행사랍니다.
무대에 오르는 가수들도 세계적 스타들이에요. 2012년 '강남스타일'로 세계적 인기를 끈 가수 싸이가 한국인 최초로 공연했고, 2019년에는 방탄소년단(BTS)이 공연을 하면서 진행자와 함께 새해를 맞이했어요.
화려한 새해 행사로 유명한 타임스스퀘어는 세븐스 애비뉴와 브로드웨이가 교차하는 일대를 말해요.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관광지 중 하나로, 브로드웨이 극장가의 시작점이기도 하죠.

타임스스퀘어는 뉴욕의 성장과 함께 발전했어요. 본래 이름은 '롱에이커 스퀘어'로 19세기 후반에는 말 거래업자, 마구간, 마차 등으로 붐빈 곳이죠. 그러다 1899년 극장이 생기면서 브로드웨이 공연 문화가 시작됐고 극장·상점·음식점·술집 등이 집중되면서 미국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 됐어요.
하지만 50년 전만 해도 이 지역에 소매치기 등 범죄가 기승을 부렸대요. 성인 영화관이나 성인용품점도 많았고요. 이에 뉴욕주와 뉴욕시 당국은 1982년 재개발에 나섰어요. 1995년 청소년 전용 극장인 '뉴 빅토리 극장'이 개장하면서 150개가 넘었던 성인용품 가게도 폐업하고 깔끔한 거리가 됐지요. 지금은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과 함께 뉴욕의 대표적 랜드마크로 꼽힙니다. 현재 하루 유동 인구가 300만명 정도로, 뉴욕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이 오가는 곳이라고 해요. 따라서 글로벌 기업들의 광고로 대형 전광판이 휘황찬란하게 빛나고 있답니다.
타임스스퀘어란 이름은 1904년 신문사 뉴욕타임스가 본사를 이곳으로 이전하면서 붙여진 이름이에요. 뉴욕타임스는 2007년 본사를 다른 곳으로 옮겼는데, 원래 뉴욕타임스 본사가 있던 자리에 위치한 전광판이 타임스스퀘어 가운데 광고비가 가장 비싸다고 하네요.
-전종현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 조선일보(21-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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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由의 女神像-뉴욕


-조선일보(14-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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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이 미국을 대표하는 도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역사와 입지조건 때문이다. 뉴욕 항은 천혜의 항구인데다, 뉴욕 중심을 흐르는 허드슨 강은 대형 선박도 내륙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넓다. 수운이 발달하기에 매우 좋은 조건을 갖춘 도시인 것이다.
때문에 유럽인들이 활발하게 식민지 개척을 하던 17세기에 이곳을 식민지로 삼은 네덜란드인들은 ‘뉴암스테르담’이라 부르며 식민지 경영의 중심지로 삼았다. 이때부터 이 지역은 미국의 현관이 된 것이다.
뉴암스테르담은 현재의 뉴욕과 그 규모가 전혀 달랐다. 즉, 맨해튼 섬 최남단, 현재의 월가Wall Street보다 남쪽에 있던 그다지 넓지 않은 땅이었다. ‘월 가’라는 이름은 네덜란드인들이 영국군과 원주민들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해 뉴암스테르담 북쪽에 쌓은 성벽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그러나 영국과 네덜란드 사이에 벌어진 몇 차례 전쟁의 결과, 뉴암스테르담은 1664년 영국에 점령되었다. 그리고 영국 국왕 찰스 2세의 동생이자 영국 해군제독인 요크York 경의 이름을 따서 ‘뉴욕’이라고 개명했다. 그 까닭에 영국 요크 주에서 이 땅에 많은 이민자들이 들어왔다.
식민지 시대의 뉴욕은 작은 항구 마을이었으나 점차 큰 마을로 발전하였고, 독립전쟁에 승리한 다음인 1784년에는 수도로 선정되었다. 맨 처음 미국의 수도는 뉴욕이었던 것이다. 그러다 1790년에 수도의 자리를 필라델피아에게 양보했지만 여전히 미국의 현관 역할을 계속하며 발전을 거듭했다.
1886년에는 독립 100주년 기념으로 프랑스로부터 선물 받은 자유의 여신상을 세웠다. 이후 자유의 여신상은 세계 각국에서 오는 이민자들을 환영하는 상징이 되었다. 이 여신상이 뉴욕을 더욱 미국다운 얼굴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아가 20세기에 와서 맨해튼에 마천루라고 불리는 초고층 빌딩이 가득 들어서며 뉴욕의 상징이 되었다. 맨해튼 섬의 위치는 강 가운데 모래톱 같은 곳인데 그 지반은 모래가 아니라 단단한 암반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마천루를 세울 수 있었다.
뉴욕은 정치적 기능만 다른 도시에 양도했을 뿐, 미국 최초의 수도였던 시절 이래로 미국의 얼굴이었으며 계속하여 발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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