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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공산당의 ‘금과옥조’] [‘한한령(限韓令)’은 끝나지 않는다] [대의를 위한 합심]

뚝섬 2022. 1. 7. 06:15

중국 공산당의 ‘금과옥조’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금(金)은 금이라서 금 대접 받는다. 이는 세계 어느 지역이나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옥(玉)을 향한 중국인의 집착은 참 별나다. 그저 값어치로 따지면 금에 못 미칠지 몰라도, 문화적 함의는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

 

그래서 한자 세계의 금옥(金玉)은 ‘가장 귀중한 그 무엇’이다. 사랑스러운 제 아이들을 지칭하는 성어는 금지옥엽(金枝玉葉)이다. 황금 가지와 옥 잎사귀라는 뜻이다. 본래는 왕실 자식들을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일러스트=김성규

 

금과 옥을 병렬하는 중국 성어는 풍부하다. 금옥만당(金玉滿堂)은 보물이 가득한 집을 지칭한다. 때론 훌륭한 신하를 많이 거느린 군주를 형용키도 한다. 빼어난 아이들을 일컫는 금동옥녀(金童玉女)도 같은 맥락이다.

 

‘세상의 넘버원’이라는 속뜻을 지녔으니 금과 옥은 정치 권력과 잘 이어진다. 금구옥언(金口玉言)이라는 성어는 ‘부처님 말씀’을 뜻했다가 ‘임금의 발언’으로 정착한다. 따라서 ‘고치거나 손댈 수 없는 방침’이라는 권력의 외피를 두른다.

 

금과옥조(金科玉條)도 그렇다. 요즘의 중국은 금과옥률(金科玉律)이라는 표현을 더 잘 쓴다. ‘과(科)’ ‘조(條) ‘율(律)’은 다 법 조항 등을 가리킨다. 따라서 가장 귀중한 법, 아무도 거스를 수 없는 ‘큰 원칙’ 등의 뜻이다.

 

몸집이 거대한 중국은 국정의 큰 지향을 잘 강조한다. ‘중심’을 설정해 불필요한 혼란을 피하려는 구조다. 따라서 ‘금과옥조’를 잘 표방할 수밖에 없다. 올해 중국 공산당은 최고 권력자의 연임, 그를 위해 만든 ‘공동부유(共同富裕)’를 내세울 전망이다.

 

그러나 중국이 근래 맞이한 현실과 잘 맞아야 그 나름대로 ‘금옥’이다. 그냥 교조(敎條)로 흐르면 큰 낭패다. 명(明)대 문인은 속이 썩은 감귤을 이렇게 표현했다. “겉은 금옥이나, 안쪽은 문드러진 솜뭉치(金玉其外, 敗絮其中).” 중국이 빠지지 말아야 할 함정이다.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조선일보(22-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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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한령’은 끝나지 않는다

 

[특파원칼럼]

영화·드라마 잇단 수입 재개에 기대 나오지만
언제라도 비상식적 中 행태 되풀이될 수 있어

 

중국은 6년 동안 한국 문화 수입을 철저히 막아 왔다. ‘한한령(限韓令·한류 금지령)’까지 내렸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별에서 온 그대’(2014년), ‘태양의 후예’(2016년) 등 한국 드라마들은 2016년 상반기까지 중국에서 대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이후 ‘공식적’으로 자취를 감췄다. 영화, 예능 프로그램, TV 광고 등도 마찬가지다. 한한령이 한중 문화교류를 단박에 막아버린 셈이다.

한한령은 실체가 없다. 중국 당국은 한한령의 존재를 부인한다. 한국 문화 콘텐츠를 수입하지 말라는 공식 지침이 발표된 적도 없고, 문건은 더더욱 없다. 누가 수입을 금지시켰는지, 언제쯤 해제될지, 해제 조건이 있는지 없는지 등 알려진 바가 전혀 없다. 중국에서 큰 인기를 얻던 한국 드라마와 영화 등이 하루아침에 동시에 외면당하다 보니 ‘지도부가 명령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추정은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중국은 한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에 반발해 보복을 예고했다. 제재를 하고도 모른 척하는 태도에 한국은 맥없이 당하며 하염없이 중국의 처분만 기다려 왔다.

최근 변화 움직임이 감지된다. 4일 이영애, 송승헌 주연의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사임당)’가 중국에서 첫 방송 됐다. 한국 드라마가 중국에서 공식 방영된 것은 2016년 이후 6년 만이다. 앞서 지난해 12월 초 한국 영화 ‘오! 문희’도 중국에서 6년여 만에 처음으로 개봉됐다. 영화와 드라마가 잇따라 중국에 소개되면서 사실상 한한령이 해제된 것 아니냐는 긍정적인 해석이 나오고 있다.

 

한국 문화 콘텐츠들이 중국 시장에 자유롭게 소개돼야 한다는 점에 이견은 없다. 한한령이 해제될 것 같은 움직임도 좋은 소식이 분명하다.

하지만 실체가 없는 한한령이 언제, 어떤 형태로든 다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한한령은 사드 배치 보복 측면도 있지만 그 밑바닥에는 중국의 한국 문화에 대한 두려움도 깔려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이번에 허용한 드라마 ‘사임당’은 한중 동시방송을 목표로 이미 2016년 11월에 중국 심의를 통과했던 작품이다. 6년 동안 묵힌 작품을 이제 열어준 것이다. 한한령 해제 의미를 부여하기 조심스럽다. ‘오! 문희’도 2020년 9월 한국 개봉 당시 흥행 성적이 35만 명에 그친 작품이다. 반면 전 세계를 강타하고 각종 영화제를 휩쓴 한국 영화 ‘기생충’은 아직 중국에서 개봉되지 못하고 심의를 기다리고 있다.

 

중국은 올해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아 지난해와 올해를 ‘한중 문화교류의 해’로 지정했다. 특별히 문화교류의 해로 지정까지 했으면서도 중국은 지난 1년 동안 한국 영화와 드라마 수입을 계속 막아왔다. 앞뒤가 맞지 않는 처사에 스스로도 민망했을 것이다. 상징적 측면에서라도 한국 영화와 드라마 수입이 필요했다. 생색내기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계층갈등, 빈부격차, 교육문제 등 민감한 사회 이슈를 다루는 작품은 모두 피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 문제를 집요하면서도 유쾌하게 파고드는 한국 작품들에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상당 기간 한한령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 당장 조금 완화되는 듯 보였다가도 어느 순간 사드 같은 빌미만 생기면 또다시 튀어나오는 일이 반복될 것이다. 중국이 한국 영화 1편, 드라마 1편 허용해 줬다고 일희일비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동아일보(22-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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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를 위한 합심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페리 제독 방일을 계기로 서구의 압박에 위기감을 느낀 도쿠가와 막부는 1856년 본격적 서양 학문 연구·교육기관인 만서조소(蠻書調所)를 출범시킨다. 이곳에 가장 먼저 교수로 초빙된 인물 중에 데쓰카 리쓰조(手塚 律蔵·1822~1878)가 있었다. 조슈(長洲)의 의사 집안 출신인 데쓰카는 출중한 어학 실력으로 명망 높은 난영(蘭英)학자로, 일찍부터 서구국과 친교 맺기, 서양 문물 적극 도입을 주장한 개국론자였다.

 

1858년 막부가 서양 5국과 정식 수교 조약을 맺자 일본 각지에 존왕양이(尊王攘夷) 운동이 들불처럼 번진다. 데쓰카의 고향 조슈가 그 선봉에 선 형국이었다. 양이론자들의 활동이 과격해지면서 개국론자들에 대한 테러가 빈번하던 시절이었다. 데쓰카도 화(禍)를 입은 적이 있다. 1862년 조슈번의 양이론자들이 개국 필요성을 역설하는 데쓰카를 매국노로 낙인찍어 에도 한복판에서 주살하려 달려들었고, 그는 겨울 강에 뛰어들어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에도를 떠나 이름을 바꾸며 도피 생활을 해야만 했다.

 

동향인들의 눈을 피해 숨어 살던 그에게 전기가 찾아온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조슈번이 주도한 메이지 유신이 성공한 다음이었다. 그는 1870년 만서조소의 후신인 개성(開成)학교 교수에 복귀하였고, 1876년에는 외무성 관료로 임용되어 러시아 상대 통상 업무에 진력하다가 1878년 임지인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귀국 도중 병사하였다. 양이파의 테러를 모면했던 개화파 지식인이 자신을 참살하려던 자들에게 발탁되어 국정의 뜻을 펼치다가 순직하였으니, 개인적으로도 국가적으로도 역사의 굴곡이 있었던 셈이다.

 

조슈의 유신 세력은 막상 막부 타도에 성공하자 과감하게 ‘개국 화친’으로 노선을 전환하였고, 데쓰카와 같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등용하는 데에 주저함이 없었다. 정치적 혼란이 정리되자 구원(舊怨)을 내려놓고 신국가 건설에 힘을 합친 것이 메이지 일본을 만든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주일대사관1등서기관, 조선일보(22-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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