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時事-萬物相]

[국민은 대선 후보에게 무엇을 바라는가] [아비의 심정으로 지켜보는 우울한 대선]

뚝섬 2022. 1. 14. 06:46

국민은 대선 후보에게 무엇을 바라는가

 

[김형석 칼럼]

대통령은 정직과 진실의 책임자
교만과 아집, 독선 사로잡혀선 안돼
각계의 창의적 역량 발휘토록 해야

 

정치 경제를 포함하는 사회생활에는 절대가치나 고정관념은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과거에 경험했던 문제들을 미래를 위해 어떻게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가, 하는 선택이 있을 뿐이다.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대선도 비교적 선하고 유능한 지도자를 뽑아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한 건설적 책임을 완수할까, 함에 있다. 다른 후보보다 부족하더라도 내가 속해 있는 정당의 후보니까 투표한다든지, 지역적 이해관계나 정서를 앞세워 선출한다면 선거에 임할 자격도 부족하고 후대에게 사회악을 범하게 된다. 더 많은 국민들이 자율적으로 행복하게 사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지도자를 선출하는 것이 후보자나 국민 전체의 공통된 권리인 동시에 의무이다.

우리가 원하는 대통령은 성실한 인격을 가지고, 국민들이 믿고 협력할 수 있는 정직과 진실의 책임자여야 한다. 교만과 아집, 나와 우리가 하는 일에는 잘못이 없다는 독선적 사고, 주어진 정치적 이념의 노예가 되어 있는 지도자는 배제해야 한다. 진실을 위하기보다 수단방법을 무기로 삼으며, 정직한 삶의 가치를 거부하는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장래를 이끌 자격이 없다. 지금 우리가 정직과 진실을 상실한 위기에 머물면서 같은 과오를 되풀이하는 대통령이 나올까 걱정이다. 최근 있었던 대통령의 신년 메시지를 시청하는 국민들의 여론은 간단했다. 대통령의 메시지는 마치 다른 나라에 살다가 온 지도자의 인상을 주었다는 평가였다. 지도자의 성실성과 정직은 참과 진실을 추구하는 국민들의 절박한 염원이다.

정치 현실도 그렇다. 민주정치를 터득하고 신념을 갖춘 대통령이 아쉽다. 정치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지 국민을 정권 확보의 대상으로 삼는 역행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이념을 앞세우는 정치는 더욱 위험하다. 그런 과오에서 벗어나기 위해 좌우가 아닌 실용주의자로 자처하기도 한다. 실용주의는 본래부터 이념을 목적 삼지 않는 경험주의 사회질서에서 출발했다. 그 처음 목표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추구하는 공리주의 정책에 있었다. 그 구체적 방법으로 탄생한 것이 실용주의다. 열매 많은 것이 진리라는 철학적 결론이다.

 

한 가지 구체적 예를 들어보자. 지금과 같은 대통령 전권 독주체제를 개선하기 위해 헌법을 개정하고 거기에 현실을 맞추어 가면 된다는 주장을 한다. 입법에서 현실화로 가기 이전에 지금의 헌법 안에서 대통령이 자기보다 전문가인 장관들에게 국내 문제는 위임하고 조화로운 발전을 성공시킨다면 현실 문제의 해결이 먼저 가능해진다. 그 현실적 성공의 규범을 입법화하는 것이 실용주의 철학이다. 그런 다양한 정책적 개선을 이끌어 갈 수 있는 대통령이 필요하다.

차기 대통령에게 경제 문제 해결은 더욱 심각하다. 문재인 정부가 경제의 목표, 과정, 방법 모두에서 실패했기 때문이다. 박정희는 윤일선 박사를 찾아가 원자력의 활용 범위를 지도 받았고, 전두환은 경제학회장이었던 성창환 교수 등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자신은 경제의 문외한임을 자인했기 때문이다. 경제학자들이나 현실경제 담당자들과 동떨어진 이념경제를 떠나 폭넓은 여론을 수습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 역사에서 누구도 예측하기 힘들게 변하는 분야가 기계과학의 발전과 경제의 다양성이다. 청와대에 갇혀 상의할 문제도 아니고 집값을 통제하기 위해 법조문을 바꾸는 노력은 시장경제를 혼란시킬 뿐이다. 경제를 움직이는 큰 힘은 경제방향과 경제생활에 있어 질서의 정상화다. 공직자들이 국제경제나 국내무대에서 규제 위주의 간섭을 벗어나 취사선택의 길이라도 열어 주었으면 좋겠다. 국제적 대기업체는 이미 경제사회의 독립된 주체로 바뀌었다. 어떤 개인이나 가족의 소유물이 아니다. 기여 체제를 모르는 기업주도 있을 수 없고, 기업체의 주인은 주식을 갖는 국민들이다. 부자의 재산을 빼앗아 모두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목표라는 철없는 정치인들의 발상에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학자는 학문으로 기여하고 기업인은 경제적 기여를 위한 봉사자이다. 열린사회의 다원적 가치관을 모르는 사고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인간교육의 기본정신에서 이탈한 정치이념 교육은 민족의 존엄성을 훼손시킨다. 문화예술은 정치계가 따를 수 없을 정도로 앞서가고 있다. 문화와 경제활동은 국제무대에서 경쟁하는데, 지금까지 정부는 집안에서 해결방법을 찾을 정도의 후진성을 면치 못했다. 절박한 국방과 안보 문제도 더 이상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각계 지도자들의 창의적 역량을 십분 발휘할 수 있다면 차기 대통령이 국가 재출발의 기틀을 정착시켜 줄 수 있을 것이다.

 

-김형석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명예교수, 동아일보(22-01-14)-

________________________

 

 

아비의 심정으로 지켜보는 우울한 대선

 

‘부모보다 못사는 세대’ 더 굳힌 文 정권
미래 담론 없이 2030 구애 바쁜 李-尹

 

우리 젊은 세대가 단군 이래 처음으로 부모보다 못살 게 되는 세대라는 말이 자조(自嘲)가 아니라 현실로 굳어지고 있다. 실로 암울하다. 한국인 60%는 자식이 부모보다 못살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미국 여론조사 결과도 지난해 나왔다. 다른 나라들에 비해 증가 속도가 유독 빠르다.

문재인 정권은 절망의 급류를 완전히 막지는 못하더라도 희망의 물꼬는 텄어야 했다. 미래 세대를 위한 성장 동력, 초격차 기술의 토대를 뭐 하나라도 닦아놓지 못하고 5년을 허무하게 날려 보낸 것에 분노한다. 원전 초격차 기술은 팽개치고 소득주도 성장 같은 어처구니없는 실험만 하다 천금같은 시간을 허송하고 말았으니…. 눈 가리고 귀 막은, 4개월 남은 정권에 말해 뭣하랴. 대선에 영향을 주려는 어떤 관권 금권 시도도 말고 조용히 물러나길 바랄 뿐이다.

이재명 후보에게 한때 전쟁론을 탐독했다고 들은 적이 있다. 정규전이 아닌 게릴라전을 다룬 책들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후보의 캠페인은 포퓰리즘과 게릴라 전술의 교묘한 결합 같다. 삼프로TV를 봤다. 이 후보는 “코스피 5000은 그렇게 어려운 일 아니다”고 했다. “선진국에 비해 너무 저평가된 불투명성, 그 점만 정상화해도 4500 정도는 가뿐히 넘지 않을까”라고 했다. 그래놓고 ‘임기 내 달성’이라고 하진 않는다. 그게 MB의 ‘747’ 공약이랑 다르다는 거다. 주식 시장의 주도세력으로 부상한 2030세대를 숫자로 현혹시키는 포퓰리즘이자 치고 빠지기 아닌가.

 

천만 탈모인을 흥분케 한 탈모제 건강보험 적용 ‘검토’도 마찬가지다. 공식 공약이라는 건지 아닌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잊을 만하면 전 국민 재난지원금 얘기를 꺼냈다가 도로 집어넣는다. 대장동 이슈, 부동산 이슈를 덮거나 전환시키려는 치밀한 계산도 맞물려 있는 것 같다. 그러면서 소확행 공약 시리즈를 결합시킨다. 한 푼 두 푼 모아 목돈 만들자는 마이크로 타깃 저인망 전법이다.

윤석열 후보는 한 손엔 공정, 다른 손엔 상식의 검을 들고 기세 좋게 원형경기장에 들어섰다가 휘청대는 검투사의 모습 같다. 관중의 호통에 뒤늦게 투구를 고쳐 쓰고 칼날을 벼리고 나섰지만 아직 굼떠 보인다. ‘병사 봉급 200만 원’ 등 포퓰리즘 따라하기를 하는 듯한 정도의 형국이다.

2030이 이번 대선의 승부를 가른다고 하는데, 두 후보의 접근법은 환심 사기에 급급하다. 또 지나치게 미시적이다. 젠더 갈등 조장 논란을 빚기도 한다. 소확행 공약, 심쿵 공약과 같은 맞춤형 공약 경쟁은 달라진 대선 트렌드의 한 단면으로 볼 수도 있다. 경쟁과 차별, 불평등이 복잡하게 얽힌 상처 입은 세대인 만큼 마방진을 풀 듯 정밀하게 접근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본질을 잊어선 안 된다. 선거기술이 미래담론을 삼키는 것은 곤란하다.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을 묻는다면 젊은 세대가 부모만큼은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5대 강국을 만들겠다” “잠재성장률을 4%로 끌어 올리겠다” 등과 같은 말잔치만 벌일 일이 아니다. 위기상황을 정확히 꿰뚫고, 우리 수준에 맞는 핵심 성장동력을 어떻게 키울 것인지부터 내놔야 한다.

우리 젊은 세대는 장차 밥벌이는 하고 살 수 있을까, 10명 중 3명꼴로 줄었다는 중산층에 진입은 할 수 있을까, 스펙만 갖추려 애쓰다 번듯한 직장 한번 갖지 못한 채 낭인(浪人)이 되진 않을까. 20대 초반의 자식 둘을 둔 아비의 심정으로 지켜보는 대선…. 답답하고 우울하다.

-정용관 논설위원, 동아일보(22-0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