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광산’ 세계유산 추천, “역사 전쟁 하겠다” 달려든 日]
[‘마쓰시로 대본영’보다 못한 日 사도 광산]
[日내각, 사도광산 세계유산 신청 이견... 기시다 결정에 달렸다]
‘사도 광산’ 세계유산 추천, “역사 전쟁 하겠다” 달려든 日

일제 강점기 조선인 강제 노역 현장인 사도(佐渡)광산.
일본 정부가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 노역 현장인 사도(佐渡)광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후보로 추천하기로 했다고 일본 언론이 보도했다. 지난주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의 반대로 유네스코 등록 가능성이 낮아지면서 추천을 연기하기로 했다. 그런데 당내 강경 세력이 반발하자 방침을 뒤집은 것이다. 사도광산은 2차 대전 때 조선인 1000여 명을 강제 노역에 동원한 곳이다.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기록하고 기념하면 어두운 역사도 세계문화유산으로 보존할 가치를 가진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등재를 추진하면서 신청 대상을 1867년 이전의 유적으로 한정했다. 어두운 역사를 가리겠다는 것이다. 이는 ‘완전한 역사’를 반영한다는 세계문화유산 등재 원칙에도 어긋나 한국이 반대하면 유네스코 심사에 통과할 가능성도 낮다. 이런 현실을 반영해 연기하기로 했으나 아베 전 총리 등 자민당 내 강경 세력이 반발하자 하루아침에 방침을 뒤집었다.
아베는 27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한국이) 역사 전쟁을 걸어온 이상 피하면 안 된다”고 썼다. 총리 재임 당시 ‘군함도’로 알려진 하시마(端島) 탄광 유적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한 사실을 언급하면서 “(한국과) 지금도 싸우고 있다. 연기한다고 사태가 달라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다음 날 일본 정부의 방침이 바뀌었다. 이는 아베 전 총리의 압박에 따른 것이라 볼 수 있다. 한국 정부와 역사 전쟁을 하겠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2015년 군함도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조건으로 강제 노역의 역사를 알리고 희생자를 기리는 후속 조처를 유네스코에 약속했지만 아무것도 지키지 않았다. 등재 2년 뒤 유네스코에 낸 관련 보고서에는 ‘강제 노역’ 표현까지 삭제했다. 작년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일본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은 데 대해 강한 유감을 표하고 충실한 이행을 촉구하는 결정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이런 상황에서 사도광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허용해선 안 된다. 앞으로 유네스코에 일본의 약속 불이행 문제와 군함도의 세계유산 등재 재검토 문제도 함께 제기해야 한다.
-조선일보(22-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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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시로 대본영’보다 못한 日 사도 광산
[특파원칼럼]
조선인 강제동원 포함 전체 역사 보여줘
불편한 역사 눈감은 사도 광산과 대비
2020년 8월이었다. 일본 도쿄의 살인적인 무더위를 피해 겨울 올림픽이 열렸던 나가노현으로 여름휴가를 떠났다. 숙소에 도착해 지도를 받아보니 승용차로 5분 거리에 ‘마쓰시로 대본영(전쟁 때 일본군 최고지휘부)’ 지하호가 있었다. 태평양전쟁 말기인 1944년 일본 군부는 ‘본토 결전’을 준비하며 도쿄의 주요 시설을 옮기기 위해 나가노에 땅굴을 파 지하호를 만들었다. 도쿄의 대본영과 정부 기관, 왕실 등을 옮기고자 했다. 총 길이 약 10km인 지하호 건설에 조선인 노동자 7000여 명(추정)이 강제로 동원됐다.
‘섬뜩한 이곳을 일본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들에게 보여줘도 되나….’
고민되긴 했지만 역사의 현장을 모른 척할 순 없었다. 다음 날 지하호를 찾았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입구에 심어진 무궁화꽃이었다. ‘모금을 통해 (조선인) 희생자 고향의 무궁화와 개나리를 심었습니다. 소중하게 다뤄 주세요’란 안내문도 있었다. 바로 옆에는 ‘조선인 희생자 추도평화기념비’가 세워져 있었다. 의외였다.
더 놀란 것은 나가노시가 세운 안내판 문구였다. “노동자로 많은 조선인과 일본인이 강제로 동원됐다고 전해지고 있다.” 당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아름다운 일본’을 외치며 가해(加害) 역사 지우기에 한창이었는데, 어떻게 이런 안내판이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결정적 역할을 한 이는 나가노 현지의 일반 시민들이었다. 나가노슌에이고교 학생들은 1985년 미군과 일본군이 참혹한 전쟁을 벌인 오키나와로 수학여행을 다녀온 것을 계기로 고향에 있는 지하호를 주목했다. 학생들은 1986년 ‘고향연구반’이란 클럽을 만들어 시 측에 지하호 공개를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결국 시는 1990년 지하호 일부를 일반인에게 공개했다. 학생들은 주말이면 지하호 개요, 조선인 강제동원 사실 등을 설명하는 자원봉사를 한다. 참혹한 기억을 계승하기 위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주장하고 있다.
나가노현단기대학 교수였던 시오이리 다카시(염入隆) 씨는 1991년 조선인 희생자들을 위해 모금 운동을 시작했다. 시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 4년 뒤 추도비를 설립했다. 비문에는 ‘식민지였기에 조선에서 강제연행돼 식량 부족, 낙석 사고, 영양실조 등으로 사망하는 일이 많았다’며 역사적 기록을 남겼다. 이들은 기념비 건립 후 매년 추도식을 열고 있다.
2년도 더 지난 기억이 떠오른 것은 니가타현 사도시 ‘사도 광산’ 때문이다. 니가타현과 사도시 측은 “전통적인 방법으로 금(金)을 생산한 귀중한 유산”이라며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태평양전쟁 때 조선인 노동자 최소 1411명이 강제동원 됐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유네스코는 세계문화유산 등재 원칙 중 하나로 ‘완전한 역사(full history) 반영’을 들고 있는데, 사도 광산은 그 기준을 충족한다고 보기 힘들다. 2월 1일까지 일본 정부가 추천 여부를 최종 판단한다.
“일본인의 역사 인식은 아시아 국가로부터 자주 문제시된다. 일본 정부가 과거의 침략, 가해의 역사를 충분히 검증해 사죄할 것은 사죄하고, 전후 보상을 성실하게 했으면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기자의 주장이 아니다. 일본인으로 구성된 시민단체 ‘마쓰시로 대본영 추도비를 지키는 모임’이 2019년 1월 발행한 팸플릿 첫 페이지에 넣은 문구다. 불편한 과거에 눈감지 않는 일본 정부의 판단을 기대한다.
-박형준 도쿄 특파원, 동아일보(22-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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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내각, 사도광산 세계유산 신청 이견… 기시다 결정에 달렸다
세계유산 관장 문부성은 신청 방침… 외무성은 ‘제2 군함도’ 우려 부정적
日, 군함도 등재 때 “강제노역 명시”, 약속 불이행에 유네스코 “강한 유감”
신청해도 韓반대 땐 등재 쉽지 않아… “7월 선거 위해 강행해야” 의견도

일본 총리관저가 일제강점기 때 최소 1141명의 조선인 노동자를 동원한 니가타현 사도시의 ‘사도(佐渡) 광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하더라도 한국의 반발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현지 민심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신청을 강행해야 한다”는 주장도 총리관저 내에서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의 최종 판단만 남은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네스코 신청 마감일(2월 1일)까지 15일 남은 상황이다.
16일 일본 정부와 집권 자민당 관계자에 따르면 사도 광산 유네스코 신청 관련 논의는 정부 내에서 결론을 내리지 못해 현재 총리관저가 주도하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을 관장하는 행정부처인 문화청과 문화청의 상위 부처인 문부과학성은 “신청해야 한다”고 방침을 정했다. 문화청 자문기구인 문화심의회는 앞서 지난해 12월 28일 사도 광산을 국내 추천 후보로 선정한 바 있다. 지금까지 일본 정부는 문화심의회 추천 후보를 예외 없이 유네스코에 신청했다.
하지만 외무성은 부정적인 의견을 내고 있다. 사도 광산 유네스코 신청을 추진할 경우 2015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가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군함도(하시마 탄광) 등 ‘메이지 산업혁명유산’과 한 묶음으로 엮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일본은 군함도 등을 등재할 때 “많은 한국인 등이 본인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가혹한 조치에서 강제로 노역했다는 역사를 제대로 알리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2020년 6월 도쿄에서 문을 연 산업유산정보센터에는 메이지시대 산업화의 성과를 미화하는 내용으로 채웠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지난해 7월 일본의 약속 불이행을 지적하며 ‘강한 유감(strongly regret)’을 밝혔다. 일본은 올해 말까지 세계유산위원회의 지적 사항에 대한 이행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자민당 관계자는 “정부 내에서 의견이 조율되지 않아 결국 총리관저가 정치적 판단을 내리기로 했다”고 전했다.
총리관저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우선 사도 광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추천해도 한국이 반대하면 등재되기 힘들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들은 “(등재 여부를 결정하는) 세계유산위원회가 군함도 건으로 일본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5월 니가타현 지사 선거,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다. 특히 참의원 선거에서 집권 자민당은 니가타현 선거구에서 2016, 2019년 잇달아 패했다. 총리관저 내에는 ‘3연속 패배를 막기 위해 니가타 민심을 자극해선 안 된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외교 소식통은 “세계유산위원회의 최종 결정은 내년 6월경에 나온다. 총리 주변에서 ‘한국이 반대하든 말든 이번에 신청해야 참의원 선거에 유리하다’는 주장이 나온다”고 전했다.
일본은 태평양전쟁 기간에 구리, 철, 아연 등 전쟁물자를 확보하기 위해 사도 광산을 활용하면서 조선인을 강제 동원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동아일보(22-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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