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하 뒤에 숨었다”는 文, 유체이탈 國政의 끝은?]
[대통령의 침묵,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다]
“신하 뒤에 숨었다”는 文, 유체이탈 國政의 끝은?
[박제균 칼럼]
김건희 “盧는 진심, 文은 신하 뒤에…”
‘유체이탈 국정’의 끝은 관권선거
현실이 된 윤석열 ‘처가 리스크’
尹, 국민 인내 폭발 않도록 해야

이러니 ‘정치는 생물’이라고 한다. 민심을 누그러뜨리려 사과했을 때는 오히려 지지율이 급락하고, 치부(恥部)가 까발려진 듯한 녹취록 폭로엔 지지율이 반등하는 패러독스. 요 한 달 새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지지율은 롤러코스터를 탔다. 가장 큰 변수는 부인 김건희 씨.
여러모로 희한한 대선이다. 역대 대선에서 부인 변수로 유력 후보의 지지율이 급등락한 건 윤 후보가 처음이다. 많은 사람들은 김건희의 사과에서 ‘예쁜 체하는 가식’을, 녹취록에선 ‘날것 그대로의 솔직함’을 읽었다고 했다. 특히 녹취록을 접한 사람들 중에는 ‘생각보다는 머리가 좋은 여자’라고 평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김건희 씨의 머리가 더 좋았다면 기자인지, 기사인지 모를 ‘듣도 보도 못한’ 인사와 50번 넘게 통화하며 8시간 가까운 녹취록을 남겼을까. 대선 후보도 아니면서 “내가 정권을 잡으면…” 운운한 건 가소롭기까지 하다. 분명한 건 이런 캐릭터의 김 씨가 진짜로 청와대에 입성하면 과연 뒷짐 지고 가만히 있을까, 하는 깊은 우려를 남겼다는 점이다.
하지만 나오는 대로 말해버린 김건희 녹취록에도 내 귀에 쏙 들어오는 대목이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진심이 있었고 희생하신 분이고, 문재인 대통령은 여기저기 신하 뒤에 숨은 분이다.” 문 대통령의 국정(國政) 5년을 시정(市井)의 언어로 잘 압축했다고 본다.
그럼에도 40%를 넘나드는 국정 지지도는 여야 유력 대선 후보의 지지율을 뛰어넘는다. 대통령이 국정을 잘해서? 그게 아니라는 건 다 안다. 문 대통령처럼 임기가 끝나는 이 시점에 국정의 단 한 분야라도 잘한 걸 찾기 어려운 대통령이 있었을까. 아니, 문 대통령처럼 임기 내내 국정의 각 분야를 돌아가면서 망가뜨린 분은 없었다고 해야 하나.
오늘의 문 대통령을 만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임기 말 지지율은 20% 밑으로까지 떨어졌다. 본인의 이념 과잉 탓이 컸지만 내 편이 반대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과 이라크 파병, 제주 해군기지 건설 등을 밀어붙이면서 집토끼도 산토끼도 다 잃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노무현은 그래도 나라의 미래를 생각한 지도자로 남았다.
문 대통령은 어떤가. 그의 지지율이 떨어지지 않는 비결은 다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①지지층이 싫어할 일은 안 한다 ②책임은 ‘신하’에게 미루고, 공은 자신에게 돌린다 ③잘못해도 사과 안 하고, 사과해도 남 얘기하듯 한다 ④누가 뭐래도 줄기차게 ‘국정 성과’를 주장한다. 이러니 지지자들에겐 잘못한 것 하나 없는 대통령이지만, 본질을 들여다보면 ‘유체이탈 국정’이다.
그런들 어떠랴. 북한이 남한 전역 타격을 상정한 가공할 미사일 도발 시리즈를 펼치고, 오미크론 위기가 닥쳤어도 대통령 부부는 임기 끝나기 전 밀린 숙제라도 하듯 ‘외유성 순방’을 멈추지 않는다. 문재인 5년은 우리 대통령사(史)에서 책임윤리를 저버린 국정이 먹힌 나쁜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그만큼 우리의 시민의식과 민주주의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 유체이탈 국정의 끝은 예상대로 관권선거다. 문 정권이 뒤집은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가, 5년 가까이 이룩한 좌파 생계공동체의 운명이, 심지어 문 대통령의 퇴임 후 안위(安危)가 3·9대선 결과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선거관리 부처인 법무 행정안전부 장관에다 중앙선거관리위원 8명 중 7명을 친여 일색으로 해놓고도 못 미더워 무리수를 두다 벌어진 중앙선관위 파동을 보라. 임기 말에 이렇게 노골적으로 대선에 개입한 대통령은 없었다.
이렇듯 정권 연장에 목숨을 건 여권과는 달리 야당 쪽을 돌아보면 여전히 한가하다. 선거 캠프 합류 여부를 가르는 첫 만남에서 공천권을 요구한 홍준표 의원이나 단둘이 나눈 밀담을 흘린 윤 후보 측이나 지질하긴 마찬가지다. 뭐라 명분을 갖다대든 속내는 웰빙 보수 특유의 지겨운 자리다툼이다.
무엇보다 최근 윤석열의 지지율 등락에서 보듯 ‘김건희 리스크’는 윤 후보에게 벌써 현실이 됐다. 더 우려되는 건 부인 말고 장모와 처남을 둘러싸고도 이런저런 구설이 나온다는 점이다. 윤석열의 대선 성패는 물론 설혹 대선에서 승리한다 해도 그의 정치적 명운(命運)이 처가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 정권교체를 위한 전략적 선택을 염두에 둔 국민들은 그 문제에 대해 이미 충분히 참고 있다. 그 인내가 폭발하지 않도록 하는 건 전적으로 윤석열의 몫이다.
-박제균 논설주간, 동아일보(22-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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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침묵,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다
[朝鮮칼럼]
공정한 선거 관리야말로 민주주의 지탱하는 기초
편향성 시비 선관위원을 대선 앞두고 연임시키려던
이유 소명하지 않으면 공정선거 훼손 혐의 못 벗어
새해 벽두부터 위대한 나라 대한민국 5년 단임의 대통령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공정성을 무너뜨리는 몰상식한 인사를 감행했다. 선관위 직원들이 거세게 반발하자 해외 순방 중 부랴부랴 사표를 수리하는 희대의 코미디가 벌어졌다. 물러나는 상임위원은 자기 뜻은 아니었다며 그 무리한 인사의 책임을 오롯이 임명권자에게 돌렸다. 이제 공은 대통령에게 넘어갔다.
대통령은 당장 국민 앞에 왜 애초 3년 전 공정성 시비가 일었던 그 편향적 인물을 선관위 상임위원으로 임명했으며, 왜 그 문제의 인물을 3년 더 연임시키려 했는지 설명해야 한다. 제대로 그 이유를 소명하지 못하면, 대통령은 공정 선거를 고의로 훼손하려 했다는 혐의를 벗을 수가 없다. 만약 대통령이 권력 재창출을 위해 선거에 개입하려 했다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심각한 부정이다.
대통령은 세습 군주가 아니다. 민주국가의 대통령은 국민이 참여하는 공정한 선거를 통해 잠시 권력을 위임받았을 뿐이다. 그 권력의 정당성은 오로지 공정한 선거에서 나온다. 그렇기에 행정부 수반으로서 대통령은 선거의 공정성을 보장해야 할 법적·정치적·도덕적 책무를 진다. 선거의 공정성이 훼손되는 바로 그 순간 민주정은 왕정이나 귀족정보다 못한 최악의 정치 제도로 추락하고 만다.
지난주 상황을 보면, 중앙선관위 위원 9명 중 7명은 이미 대통령·대법원장·여당이 추천한 친(親與) 성향 인물이었다. 남은 2명 가운데 한 명은 여야 공동 추천 인사였으며, 야당 추천 몫의 한 자리는 지금도 여당의 거부로 비어 있다. 명실 공히 ‘친여 선관위’가 구성된 상태다. 그도 모자라 대통령은 정부의 오랜 관례를 허물고 바로 그 선관위원을 연임시키려 했다. 그 결정이 얼마나 부당했으면 선관위 지도부를 위시한 2900여 명 직원 전체가 집단적으로 반발했겠는가.
이제 대통령이 직접 국민에게 해명해야 한다. 대통령은 왜 비판과 반대를 무릅쓰고 무리한 인사를 감행했는가? 대통령은 진정 자기 진영 사람들이 선거 관리를 맡지 않으면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는가? 투표는 국민 개개인이 소신대로 하는데, 선관위가 어떻게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가 있는가? 선관위가 투표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면, 대통령은 왜 헌법 정신 그대로 가장 중립적이고 신뢰감 있는 인물을 물색해서 선관위 상임위원으로 임명하지 않았는가? 어떻게 대통령이 공정 선거의 훼손을 우려하는 수많은 국민의 정당한 비판에 귀를 닫고 모르쇠로 버틸 수 있나? 도대체 대통령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지난 4·15 총선 이후 이례적으로 광범위한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되어 왔다. 2021년 8월 15~19일 여론조사기관 리서치앤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4·15 총선의 조작 의혹에 대해서 43.4%가 “검찰 수사, 특검을 통해 경위가 밝혀져야 한다”고 대답했다. 지난해 10월 6일 여론조사기관 오피니언코리아의 조사에 의하면 32.3%가 4·15 총선이 부정선거라고 생각하며, 65.5%가 오는 “대선에서 부정선거가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선관위가 이미 공신력을 상실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지표다. 선거의 공정성에 대한 국민적 불신은 민주주의의 총체적 위기를 알리는 적신호다. 참으로 서글프게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 모든 책임은 현 정권에 있다. 대통령이 자신의 ‘대선 캠프 특보’라는 의혹에 휩싸인 사람을 청문회도 없이 선관위 상임위원이라는 자리에 앉혔다. 그전에 청와대가 총동원되어 지방선거에 개입한 혐의도 드러났다. 대통령의 심복은 지난 대선 당시 인터넷 여론 조작을 주도해서 현재 실형을 살고 있다. 대법원은 180일 이내에 선거 소송을 처리하라는 법의 명령을 무시하고 4·15 총선에 대한 선거 재판을 장기간 사실상 사보타주했다. 이러한 사태를 계속 보아왔기에 상식을 가진 국민은 선거의 공정성을 신뢰할 수가 없다.
대통령의 부당한 인사는 일단 저지됐지만, 한국 민주주의는 이미 큰 상처를 입었다. 그 상처를 치유하는 첫걸음은 대통령이 떼어야 한다. 대통령은 왜 그런 무리한 인사를 감행했는지 국민 앞에 이유를 밝혀야 한다. 지난 4년간 대통령은 중대한 사안에 대해서는 입을 닫는 특유의 ‘침묵 정치’로 일관했다. 이제 입을 열어 말을 할 때다. 타당한 이유가 있으면 해명하고, 잘못을 시인한다면 사죄하고 개선책을 강구해야 한다. 대통령의 침묵은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다.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역사학, 조선일보(22-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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