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時事-萬物相]

[너무 큰 발자국] [호환보다 무서운 인간] [소망식당, 4000원의 행복]

뚝섬 2022. 1. 25. 07:50

너무 큰 발자국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현생 인류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에 등장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20만~25만년 전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존재 역사 거의 대부분 동안 존재감조차 없던 지극히 하찮은 한 종의 영장류였다. 수렵과 채집을 하며 살던 시절에는 기껏해야 600만~1000만명 정도가 지구 전역 여기저기에 흩어져 살다가 불과 1만여 년 전 농경을 시작하며 폭발적으로 숫자가 늘어 오늘에 이른다.

 

농경을 시작하기 전 지구 생태계에서 인간의 존재감은 어느 정도였을까? 당시 인간의 무게와 기르고 있던 개와 고양이의 무게를 다 합해본들 포유류와 조류 전체 중량의 1% 미만이었다. 그러나 지난 1만여 년 동안 농업 혁명, 산업 혁명, 정보 혁명 등을 일으키며 어언 80억명에 육박하는 인류의 무게와 우리가 기르는 가축 전체의 무게를 합하면 비율은 무려 96~99%에 달한다. 지구 생명의 역사에서 일찍이 이런 반전은 없었다.

 

‘지구에서 가장 큰 발자국’이라는 책이 번역돼 나왔다. ‘80억명의 인간을 한데 모아 1명의 거인을 만들면?’이라는 기발한 발상으로 쓴 책이다. 키가 무려 3㎞이며 몸무게가 2억9000만톤에 달하는 이 거인은 1년에 나무 150억그루를 베고 1초에 수영장 크기만큼 땅을 파헤쳐 돌, 모래, 광물, 화석연료 등을 꺼내 쓴다. 매년 달걀 1조3000억개를 먹어 치우고 우유 8400억리터를 들이켠다. 그나마 깨끗이 먹으면 좋으련만 만든 음식의 3분의 1을 그냥 내버린다.

 

코로나19도 결국 이 엄청난 생물 다양성 불균형이 야기한 재앙이다. 야생동물의 몸에 붙어 사는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불안함을 못 이겨 이주하면 거의 확실히 ‘80억 거인’이나 그가 기르는 가축의 몸에 내려앉는다. 거인이 지구 표면에 찍는 생태 발자국이 너무 크다. 거인이 오줌 한 번만 싸도 베네치아 운하가 범람할 지경이니 더 말해 무엇하리. 그나마 뭉치면 1000만톤에 달하는 80억 두뇌에 기대를 걸 뿐.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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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환보다 무서운 인간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작자 미상, 노덤벌랜드 동물 우화집 중 호랑이, 1250~1260년, 폴 게티 박물관 소장.

 

한반도에서는 호환(虎患)이 흔했다지만, 유럽인들에게 호랑이는 그저 말로만 전해 들은 전설 속 괴수였다. 영어 ‘타이거’는 고대 수메르어로 화살을 뜻하는 ‘티그리스(Tigris)’에서 왔다. 고양이처럼 무늬가 있는 거대한 짐승이 마치 화살처럼 재빠르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그러나 실물을 본 적이 없는 유럽 화가들은 파란색, 빨간색, 검은색, 흰색 등 온갖 색깔로 호랑이를 칠했다. 어차피 남들도 모르니 별 상관은 없었다.

 

1세기에 로마의 플리니우스가 ‘박물지’에 쓰기를, 한 사냥꾼이 어미가 없는 틈을 타 새끼 호랑이를 모두 훔쳐 달아났다고 한다. 빠른 말 여러 필을 갈아타며 달렸으나 새끼 잃은 어미 호랑이를 따돌릴 도리가 없자, 그는 아슬아슬한 순간마다 새끼를 한 마리씩 던졌다. 어차피 한 마리만 잡아갈 작정이었고, 다른 새끼들은 어미를 따돌리는 데 쓰려던 것. 어미가 떨어진 새끼를 돌보는 틈을 타 달아나고자 했으나, 호랑이는 새끼를 물고도 아랑곳없이 쏜살같이 쫓아왔다. 마침내 한 마리만 남았을 때 사냥꾼이 가까스로 배에 올라 도망을 쳤다는데, 플리니우스는 호랑이가 얼마나 헤엄을 잘 치는지 몰랐나 보다. 어쨌든 이 이야기가 중세에는 사냥꾼이 새끼가 아니라 거울을 던진 것으로 변했다. 13세기, 영국에서 만들어진 이 괴수집의 삽화가 바로 그 장면이다. 새파란 어미 호랑이가 커다랗게 쓴 ‘Tigris’를 딛고 높이 튀어 오르는 순간, 동그란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이 새끼인 줄 알고 멈칫한 틈을 타 말은 사냥꾼과 새끼를 실은 채 그림틀을 뚫고 달아난다. 어미는 반색을 하며 거울을 핥는다. 맹수의 표정이 어찌 이리 다정한가. 역시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 게 인간이다.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조선일보(22-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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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식당, 4000원의 행복

 

[김윤덕의 新줌마병법]

한 그릇에 4000원 우거짓국 팔며 오순도순 살아가는 팔순 부부
하루 매상 2만원 안 될 때 많지만 “내일이 있잖여요, 내일이!”
비가 멎기를, 바람이 자기를 기다려 해를 보는 것이 소망이지요
 

 

한강 철교를 지난 열차가 영등포를 지나 남쪽으로 내달렸다. 꽝꽝 얼어붙은 하늘이 시리도록 파랬다. 도시의 속살은 낡고 추레했다. TV에선 스토킹 살해범에 관한 뉴스가 흘러나왔다. 들녘에 쌓인 잔설을 보다 깜박 졸았다 싶더니, 어느새 열차가 대전역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이곳에 마지막으로 내린 게 언제였던가. 그날 사람들은 대합실 TV 앞에 모여 있었다. 뒤통수에 ‘구루프’를 달고 출근한 재판관은 작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선고문을 낭독했었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환호와 탄식이 엇갈리며 아수라장 된 5년 전 대합실은, 한산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한 통의 편지 때문이었다. 지난가을, 행운의 클로버잎 두 장이 동봉된 편지가 배달됐다. 발신지가 대전 중구 대흥동의 작은 식당이었다. 1945년생 주인장은 장사를 끝낸 뒤 젖은 손을 마른 행주에 꾹꾹 눌러 닦고 식탁에 조선일보를 펼쳐 놓은 채 이 글을 쓰고 있노라 했다. 신문은 10년 전 두 내외가 식당을 개업하며 구독하기 시작했단다. 배우는 게 너무 많아 ‘신문은 선생님’이 됐다고 했다. 코로나로 저녁 장사를 접은 지 오래였다. 그날 매상이 1만6000원이었다고 썼다. 훤한 대낮에 가게 문 닫으며 헛헛하기 짝이 없는 마음을 눈물·콧물에 웃음소리 왁자한 당신 글이 달래준다고 했다. ‘까짓 장사가 좀 안 되면 워뗘, 내가 굶어죽냐, 내일이 있잖여 내일이’라고 외쳤다고도 했다. 그날로 답장을 쓴다는 것이 어영부영 해를 넘긴 탓에, 무작정 대전으로 나선 길이었다.

 

대흥동은 90년대만 해도 대전역을 중심으로 번창한 상권이었다. 도청이 이사간 뒤 쇠락했다가 젊은 예술가들이 원도심을 재생한다며 카페, 갤러리, 소극장을 열어 잠시 반짝하더니, 임대료가 치솟자 다들 썰물처럼 떠나갔다. 감염병까지 덮쳐 더욱 스산한 거리에, 소망식당이라고 쓴 간판이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손님도 둘, 주인도 둘이다. 연탄난로에선 보리차가 끓고, 빈 테이블엔 조선일보가 놓여 있었다. 하루 장사가 끝나면 주인장의 낙이 되어줄 참이었다. 메뉴는 우거지국 한 가지. 배추겉절이와 깍두기가 함께 나왔다. 선지가 듬뿍 들어간 우거지국은 담백하고 고소했다. 주인 할머니는 여자 손님과 이야기꽃을 피웠다. 보문산 오른 얘기를 나누는 듯했다. 편지에 동봉한 네잎 클로버도 보문산 둘레길을 걸을 때 발견한 것이라고 썼다. 아직 식사할 수 있죠? 한 청년이 숨을 몰아쉬며 들어섰다. 우거지국에 밥을 말아 뚝딱 비운 남자는 밥도 맛있지만 식당이 예뻐서 단골이 됐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흰 벽에 연필로, 물감으로 그린 그림들이 보였다. 신윤복 풍속화부터 최민식 사진까지 고금을 넘나든다. 꿈이 화가였던 할아버지가 신문에서 찾은 그림과 사진을 오려놨다가 열심히 모사해 완성한 ‘역작’이었다.

 

4000원. 여름에만 파는 냉콩국수와 보리밥도 4000원이란다. 이렇게 팔면 남는 게 없지 않냐고 묻자, 두 노인이 먹으면 얼마나 먹겠냐며 웃는다. 값을 치른 뒤, 실은 편지를 받은 김아무개라고 하자 노인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어떻게 여기까지…. 편지는 노부부가 함께 쓴 것이라고 했다. 할머니가 말하면 할아버지가 살을 붙여 적었단다. 밥은 굶어도 신문은 꼭 읽는다고 했다. 신문에 실린 사진과 달라 못 알아봤다고, 할아버지가 겸연쩍게 웃었다. 1시 반. 문 닫을 시간인데 연로한 손님이 오셨다. 동네 최고 어르신인데, 거의 매일 부부가 점심을 대접한단다. 후식으로 믹스 커피를 탔다. 세 노인이 커피잔을 부딪치며 외쳤다. 건강하세요! 떠날 채비를 하니, 할머니가 비닐봉지에 겉절이를 담는다. 이것밖에 줄 게 없어서…. 안 된다고 해도 막무가내다. 여름에 냉콩국수 드시러 오라며 할머니가 작은 손을 흔들었다.

 

다시 대전역. 코로나에도 어김없이 설은 오고, 노부부의 단골인 역전시장엔 왕대하와 미더덕과 꽃게가 넘쳐날 것이다. 대추·고사리·시금치·호박고지·무말랭이며, 김 모락모락 나는 두부와 동태포를 떠서 검은 봉지에 바리바리 싸서 돌아가는 여인들로 북적이리라. 대전역 가는 방향을 일러주러 따라나온 할아버지에게 새해 소망을 물었다. 작년, 작년에 작년 것이 금년의 소망이지요. 그것은 김광섭의 시에도 있어요. 시시하지요? ‘비가 멎기를 기다려/ 바람이 자기를 기다려/ 해를 보는 거예요’로 시작하는 김광섭의 ‘소망’은 ‘젊어서 크던 희망이 줄어서/ 착실하게 작은 소망이 되는 것이/ 고이 늙는 법이예요’로 끝난다. 광장에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김윤덕 주말뉴스부장, 조선일보(22-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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