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世界-人文地理]

[안도 다다오] [“공공성이 건축 최고 가치라는 LG 구본무 회장”]

뚝섬 2023. 3. 23. 08:11

[건축계가 외면했던 노출 콘크리트로 미완성의 아름다움 끌어낸 거장]

[“건축가는 복서와 같다.. 순수하고 고독한 싸움, 극한서 빛보인다”] 

[“공공성이 건축 최고 가치라는 LG 구본무 회장과 뜻이 맞았다”]

[日 골목풍경 바꾼 안도 다다오 건축 혁신]

['건축계 상징' 안도, 그 놀라운 건축물 한국서 찾았다]

 

 

 

건축계가 외면했던 노출 콘크리트로 미완성의 아름다움 끌어낸 거장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독학으로 공부해 세계적인 건축가가 되었죠.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6일부터 1박 2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해 한일 정상회담을 가졌어요. 부인 김건희 여사도 동행했는데요. 17일 오전 김 여사가 건축가 안도 다다오(1941~ )와 오찬을 한 사실이 화제가 됐어요. 2016년부터 친분을 쌓은 두 사람은 올 초 신년 인사를 주고받기도 했답니다.

오사카 출신인 안도는 정규 교육을 받지 않고 독학으로 건축을 시작해 1995년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 건축상을 받은 입지전적인 인물로 유명해요. 17세 때 권투 선수로 데뷔했다가 고등학교 졸업 후 트럭을 몰면서 쉬는 시간에 헌책방에서 구입한 건축 책을 읽으며 지식을 쌓았어요. 특히 서양 근대 건축을 대표하는 르코르뷔지에의 저서에 매료돼 몽땅 외울 정도로 도면을 베껴 그렸다고 해요. 마침내 그는 1969년 오사카에 자신의 건축 사무소를 열었습니다.

고졸에다가 스승도 없던 그는 동네 낡은 집을 찾아가 고쳐주겠다고 제안하며 일거리를 만들어냈는데요. 1976년 오사카 스미요시에 지은 콘크리트 박스형 주택 '스미요시 나가야'가 일본 건축계에 큰 파란을 불러일으켰어요. 출입문 말고는 창문이 아예 없고, 외벽과 내벽, 천장까지 모두 노출 콘크리트(별도의 마감재 없이 콘크리트를 그대로 노출하는 시공법)로 만들었으며, 방과 방 사이에는 천장이 뚫린 중정(中庭·안채와 바깥채 사이 마당)을 배치했거든요. 비가 올 때마다 우산을 쓰고 방으로 건너가야 할 정도로 살기에는 불편했죠. 엄청난 혹평을 받았지만, 이런 파격에서 출발한 안도의 건축 철학은 곧 세계를 사로잡기 시작합니다.

안도는 서양의 모더니즘 건축과 일본의 전통 미학을 독창적으로 결합했습니다. 모더니즘 건축의 특징을 단순하고 기하학적인 형태로 정의하며, 그 주요 재료로 노출 콘크리트를 선택했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노출 콘크리트는 불완전하고 거친 느낌이 드는 싸구려 재료였는데요. 그는 꾸미지 않은 진정성을 강조하며 미완성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일본 전통 미학 '와비사비(わびさび)'에 주목하고 이를 노출 콘크리트에 접목했어요. 치밀한 준비 아래 만든 안도표 노출 콘크리트는 마치 대리석이 떠오를 정도로 아주 아름다웠기 때문에 건축계가 노출 콘크리트를 바라보는 관점을 뒤바꿔 놓았어요.

더불어 그는 건물이 자리한 주변의 자연을 내부로 끌어들였습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빛의 교회'는 교회 동쪽 벽면에 십자가 모양을 파냈어요. 파낸 곳으로 들어오는 자연광은 눈부시게 빛나는 십자가로 변하면서 내부를 차분하고 순수한 공간으로 탈바꿈시킵니다. 벽면의 노출 콘크리트 질감은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으로 승화되죠.

마침 다음 달 1일부터 안도가 설계한 강원도 원주의 '뮤지엄 산'에서 '안도 다다오, 청춘' 전시회가 열릴 예정입니다. 안도 다다오의 건축 세계를 이해하는 좋은 기회가 될 거예요.

-전종현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 조선일보(23-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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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는 복서와 같다.. 순수하고 고독한 싸움, 극한서 빛보인다”

 

81세에 신작 ‘LG아트센터’ 설계한
세계적 건축 거장 안도 다다오
 

 

세계적 건축 거장 안도 다다오의 눈빛에는 타고난 완강함이 담겨있다. 여든이 넘은 나이지만, 그는 여전히 불굴의 도전자다. 그는 ‘행복은 무엇인가’란 질문에 목표를 향해 자신을 잊을 정도로 열중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미래의 건축가들을 향해 그는 “근시안적이고 단기적인 이익만을 추구해선 안 된다. ‘인간의 행복이란 무엇인가’ ‘세계는 어떤 모습이 돼야 하는가’란 질문에 확고한 비전이 있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오른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안도의 대표작 일본 오사카 ‘빛의 교회(1989)’, 일본 나오시마 ‘베네세 하우스(1992)’, 미국 텍사스 ‘포트워스 현대미술관(2002)’. /Kinji Kannno·Tadao Ando Architect & Associates

 

건축에 손톱만큼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르기 어려운 이름이 있다. 일본이 낳은 세계적 건축가, 안도 다다오(安藤忠雄·81)다. 그는 50년 넘는 세월 온갖 건물을 쉼 없이 지었고, 세계적 건축상을 셀 수 없이 많이 받았다. 그의 시그니처 건축 양식, 색을 입히지 않은 회색 콘크리트가 그대로 드러나게 하는 ‘노출 콘크리트’ 기법은 세계의 트렌드가 된 지 오래다. 빛과 콘크리트로 예술을 빚어내는 그의 작품은 일본은 물론이고 세계 전역에 퍼져 있다. 일본 ‘빛의 교회’ ‘물의 절’ ‘지추미술관’, 이탈리아 ‘파브리카’, 프랑스 ‘유네스코 명상공간’, 미국 ‘포트워스 현대미술관’ ‘퓰리처 미술관’ 등 수많은 대표작을 자랑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어렵지 않게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원주의 ‘뮤지엄 산’, 제주의 ‘유민미술관’과 ‘본태박물관’, 서울 혜화동에 있는 ‘JCC빌딩’ 등이 있다.

 

‘1941년 오사카 출생. 독학으로 건축을 공부하고 1969년 안도 다다오 건축연구소를 설립….’ 그의 이력서는 이렇게 시작된다. 스승도 없고, 대학도 나오지 못한 그는 ‘괴짜’ 취급을 받았다. 스물여덟 나이에 건축사무소를 낸 그는 동네 낡은 집 주인을 찾아가 집을 고쳐주겠다고 제안하며 일거리를 만들었다. 그렇게 지은 집이 데뷔작 ‘스미요시 나가야(住吉の長屋·1976)’다. 1980년대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1995년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으며 거장 반열에 올랐다.

그야말로 혈혈단신 성공이었다. 돈도, 집안 배경도, 연줄도 없었다. 오직 강인한 의지만이 있었다. 단 한 번도 엘리트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도쿄대 교수직까지 맡았다. 그는 2008년 펴낸 자서전에서 자신의 삶을 이렇게 회고했다. 매사 처음부터 뜻대로 되지 않았고, 뭔가를 시작한다 해도 대개는 실패로 끝났다. 그래도 얼마 남지 않은 가능성에 기대를 품고 애오라지 그늘 속을 걷고, 하나를 거머쥐면 이내 다음 목표를 향해 걷기 시작하고, 그렇게 작은 희망의 빛을 이어나가며 필사적으로 살아온 인생이었다.’ 2009년과 2014년 두 차례 암 선고를 받고 십이지장 등 5개의 장기를 제거하는 대수술을 받았지만, 이 역시 극복해냈다.

 

올해 81세인 그는 지금도 왕성하게 일하고 있다. 올해 10월 서울 마곡에서 문을 여는 ‘LG 아트센터’는 그의 최신작이다. 무엇이 그의 열정의 원천인지, 무엇이 그를 거장으로 만들었는지 궁금해졌다. 1월 편지를 주고받으며 안도 다다오를 만났다. 그는 ‘거장’이란 표현을 마뜩잖아 했다. “자기 스스로를 거장이라 말하고 만족하면 미래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빛과 콘크리트의 예술가’ ‘동양의 가우디’ 같은 별명도 “딱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대신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 같은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사과도 인간도, 인간도 건축도, 무르익지 않은 도전 정신으로 넘쳐흐르는 푸른색일 때가 아름답습니다. 언제까지나 도전자가 되세요!”

 

일본 홋카이도 토마무의 ‘물의 교회’(1988) 예배당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겨울 호수에 십자가가 외로이 서 있다. /Tadao Ando Architect & Associates

 

활력의 원천은 일, 삶의 원동력은 긴장감

 

-코로나 때문에 직접 만날 수 없어 아쉽다. 잘 살아내고 계신지.

 

“팬데믹으로 세계의 연결이 끊어졌다. 우리 건축연구소도 회의를 온라인 화상회의로 진행하는 등 많은 것이 바뀌었다. 업무 효율은 높아졌지만, 오감(五感)을 통해 생각하고 만들어져야만 하는 건축에는 부정적인 면이 더 큰 것 같다. 내 개인 생활은,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 잠을 자는, 평범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많은 이가 당신의 건강을 걱정하고 있다.

 

“두 차례 걸쳐 장기를 적출하는 큰 수술을 받은 것을 계기로 생활 습관을 바꿨다. 업무량을 반으로 줄였다. 덕분에 그동안 일에 쫓겨서 하지 못했던 독서를 할 시간이 생겨났다. 그 때문일까. 정신적인 면에서는 병에 걸리기 전보다 건강해졌다. 따뜻한 염려, 감사하다.”

 

-건강을 위한 비법이 있나.

 

“하루의 끝을 헬스장에서 가볍게 땀을 흘리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매일 만보 걷기도 한다.”

 

-새해 새롭게 결심하신 게 있는지.

 

“1969년부터 현재까지 해 온 ‘일’을 변함없이 계속해 가는 것! 그것이 전부다.”

 

-나이도 적지 않은데 어떻게 왕성하게 일을 하시나.

 

“핸디캡을 짊어졌지만, 그것을 고통스럽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내 활력의 원천은 일이다. 건축을 통해 나와 사회를 연결하는, 그 긴장감이야말로 내 삶의 원동력이다.”

 

-마르지 않는 창조력은 어디서 나올까.

 

“나는 항상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싶었고, 다음 번에는 현재의 것을 넘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장소에서 그때밖에 할 수 없는 건축을 목표로 분주히 뛰어왔다. 하지만 지금까지 만들어온 하나하나의 일들을 되돌아보면 시작은 결코 ‘제로(0)’부터가 아니었다. 언제나 나 자신에게 체화된 기억이 그 시작점이었다. 예컨대 고베의 롯코에서 집합주택 의뢰를 받아 산자락의 부지를 방문했을 때, 건축 예정지로 선정된 평탄한 땅이 아닌 대지 뒤편의 급경사에 강한 영감을 느낀 이유는 산토리니나 카파도키아 등 과거에 보고 체험한 아름다운 마을의 기억이 무의식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가 현재에 영향을 미치고, 이로 인해 미래가 만들어지는…. 연속되는 시간의 흐름 속에 건축적 상상력의 세계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안도 다다오와 그의 애견 르코르뷔지에의 모습. 안도는 1992년 사무실로 들어온 유기견에게 자신이 존경하는 건축가 르코르뷔지에의 이름을 붙여주고 16년 간 길렀다. 그는 “코르는 대단히 총명했다. 내가 직원을 야단칠 때 도가 지나치면 ‘이제 그만해’라고 말하듯 짖곤 했다”고 말했다. /프리츠커상 공식 홈페이지

 

복싱 소년이 건축 거장으로

 

1941년 오사카 변두리에서 태어난 그는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넉넉지 못한 환경이었다. 열일곱에 프로 복서로 데뷔한 그는 대전료를 받아 생계에 보탰다. 트럭 운전, 공사장 막일도 그의 돈벌이였다. ‘권투로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꺾였을 때, 그는 글러브를 벗었다. 진로를 고민하던 그의 뇌리에 스친 것은 자신이 무언가를 만드는 데 늘 흥미를 느꼈다는 점이다. 고교 졸업 뒤 온갖 아르바이트를 해 돈을 벌었고, 그 돈으로 헌책방에서 책을 사 닥치는 대로 읽으며 건축 공부를 해나갔다. 그가 한눈에 반한 ‘근대건축의 아버지’ 르코르뷔지에 작품집은 너무 많이 베껴 모든 도면을 외울 정도였다. 스물넷 되던 해 배와 기차를 타고 유럽으로 향했고, 근대건축의 명작들을 눈으로 보고 체험했다.

 

-외할머니는 어떤 분이셨나.

 

“할머니는 늘 바쁘셨기에 내게 간섭하시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학교 성적을 물어보신 기억도 없다. 그 대신, 사회적 규칙을 가르치는 부분에서는 매우 엄격하셨다. 할머니의 가르침은 내 인격 형성의 기초가 됐다. ‘시간을 지킨다’ ‘약속을 지킨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 단순하지만 어려운 외할머니의 세 가지 가르침은 늘 마음속에 새기고 있다.”

 

-10대 때 권투 선수였다는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여전히 흥미롭다.

 

“어릴 때부터 지는 걸 싫어했다. 복싱을 시작한 이유도 먼저 체육관에 다니기 시작한 쌍둥이 형제에 대한 경쟁심 때문이었다. 연필을 쥐고 그림을 그리는 건축가와 글러브를 끼고 링에 서는 권투 선수는, 생활 방식은 전혀 다르지만 둘 다 내면의 불안을 딛고 용기 있게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싸움이라는 점에서 같다. 가혹한 트레이닝과 (체중) 감량을 반복하고서, 그 모든 것을 순간의 시합에 쏟아붓는다. 의지할 수 있는 것이라곤 오직 내 몸 하나! 복싱이라는 것은 순수하고 고독한 스포츠다. 육체와 정신을 극한까지 몰아넣는 가운데 환기가 되는 힘도 있다. 건축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프로그램과 예산 조건이 까다롭고 설계 자유도가 낮을수록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가’를 철저히 고민하게 된다. 그 속에서 빛이 보이는 것이다.”

 

-’독학’이란 말에서 외로움과 막막함이 느껴진다.

 

“나는 대학에도 가지 않았고, 선배 건축가 밑에 제자로 들어간 적도 없이 내 설계사무소를 차렸다. 소위 말하는 ‘스승’은 없었다. 그래서 독학으로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을 개척해 모더니즘 건축의 초석을 놓은 르코르뷔지에에게 끌렸던 것 같다. 건축가로서 삶을 가르쳐줬다는 의미에서 르코르뷔지에는 나의 스승이다. 또 내게 여행은 곧 학교였다. 하지만 단지 건물을 보고 (주변을) 걷는 것만으로는 배울 수 없었다. 그것이 왜 아름다운지, 무엇이 나를 끌었는지를 계속해서 생각했다. 정답 없는 자문자답의 시간이 고통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독학의 시간이 건축가로서 자아 확립으로 이어졌다고 본다.”

 

-무엇이 당신을 거장으로 만들었다고 보나.

 

“자신을 스스로 ‘거장’이라 말하고 만족하면 거기서 끝이다. 새로운 세계를 향해 더 깊이, 더 멀리 생각하는 소박한 도전 정신이 창조의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건축가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이나 기술이 아닌, 정신적 건전함과 꿈을 지속할 힘이다.”

 

-많은 작품을 세계 곳곳에 남겼다. 가장 애정을 갖고 있는 작품은 무엇인가.

 

“모든 프로젝트에는 저마다 고유의 흐름과 이야기가 있다. 우열을 가리기는 어렵다. 하지만 ‘스미요시 나가야’는 내 커리어의 원점이 됐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스미요시 나가야는 오사카 스미요시에 있는 폭 3.6m 깊이 14.4m의 콘크리트 박스형 주택이다. 출입구 말고는 개구부가 전혀 없다는 점, 벽과 천장을 전부 노출 콘크리트로 만들었다는 점, 좁은 집 한가운데를 지붕 없는 중정으로 만들었다는 점 때문에 평단으로부터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이 집은 ‘좁으면 좁은 대로 이 땅에 어울리는 풍요를 추구해야 한다’는 안도의 철학이 반영된 것이었다. 스미요시 나가야는 일본 주거사의 변곡점이 됐다.

 

‘스미요시 나가야’(1976)는 안도 건축의 원점이다. 창문 없는 외벽, 빛이 비추는 중정이 특징이다. /Tadao Ando Architect & Associates

 

건물은 인간과 자연의 대화 장소

 

-작품에 늘 빛과 바람, 나무와 물이 공존한다.

 

“내게 자연이란 문자 그대로 생명의 원천이다. 인간은 그 일부이며,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이야말로 인간이 살아가야 할 길이라고 믿는다. 이런 이유로 건축과 조경에 대해 구상할 때, (주변의 나무들이 성장해) 언젠가 녹음 속에 묻혀 있을 건물의 모습을 상상하며 계획한다. 인간과 자연의 대화 장소를 만드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여기서 빛은 추상화된 자연으로서 역할을 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빛과 어둠의 움직임은 단지 벽에 둘러싸인 공기 덩어리에 불과했던 공간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단지 이 빛을 극대화하는 것만으로도, 건축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콘크리트를 왜 고집하나.

 

“처음 콘크리트를 선택했던 이유는 단순히 건물의 내외장을 하나로 만들 수 있는 경제성에 끌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번 사용해 보니, 자유로운 형태를 다양한 표정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소성에 무한한 가능성을 느꼈다. 콘크리트라는 현대에서 가장 보편적인 건축 공법으로 아무도 할 수 없는 것을 만들고 싶었다. 이러한 소박한 도전 정신이 지금도 내가 콘크리트를 계속해서 고집하는 이유다.”

 

-’안도의 건축은 사용자를 배려하지 않는다’ 등의 비판은 어떻게 보시나.

 

“내게 건축은 사회와 소통하기 위한 장치다. 때론 그 소통이 기존 사회제도에 대한 문제제기를 목적으로 하기도 한다. 나는 언제나 편리하고 쾌적하게만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환영받지 못할 때도 있다. 비판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서 다음번 건축의 양식으로 삼되, 근본적인 생각과 일하는 태도를 바꿀 마음은 없다.” 

 

일본 나오시마의 지추미술관(2004). 나오시마의 조금 높은 언덕에 위치한 지추미술관은 자연 경관을 해치지 않기 위해 완전히 지하에 묻혀 있다. /Tadao Ando Architect & Associates

 

안도는 1980년대 말 일본의 출판교육기업인 베네세홀딩스와 함께 산업폐기물 처리장이었던 나오시마섬을 문화예술의 섬으로 만드는 ‘나오시마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안도가 설계한 베네세하우스, 지추미술관 등이 섬에 들어섰고, 섬의 오래된 가옥들은 예술가들에 의해 갤러리로 탈바꿈했다.

 

-나오시마의 변화는 기적 같다.

 

“경제지상주의에 찌들어 있던 30년 전 당시의 일본 사회에서, 나는 육지에서 떨어져 있는 나오시마섬의 입지를 최대한 살린 ‘토착 현대 예술’이란 비전을 세우고 지금까지 추구해왔다. 그 과정에서 인구 감소로 어려움을 겪는 섬 주민들에게 내일을 향한 희망을 심어 드렸다. 나오시마의 현재 모습은 문화가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건축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인가.

 

“건축이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도, 사람의 영혼을 구할 수도 없다. 건축은 무력하다. 하지만, 문화를 바탕으로 내일을 짊어질 아이들이 각자의 꿈을 발견하는 계기를 만드는 역할은 할 수 있다.”

 

‘롯코 집합주택 I·II·III’(1978~1999)은 일본 고베 롯코 산기슭에 지어졌다. 원래 의뢰인은 산을 깎아 평탄한 땅에 주택을 지을 생각이었지만, 안도는 경사면에서 강한 영감을 받았고 결국 이곳이 아니면 불가능한 작품을 완성했다. /Tadao Ando Architect & Associates

 

-아시아의 대표 건축가로서, 아시아 건축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나.

 

“이제는 아시아의 시대라고 한다. 하지만 (아시아의 목표가) 단순히 이전의 선진국을 따라잡으려는 것이라면, 아시아 발전은 지구 환경 문제에 직면한 상황에서 절망을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아시아다운, 공생하는 사회를 만들어가고자 한다면, 미래에 대한 희망을 키우는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선 프리츠커상 수상자가 8명이나 나왔는데, 한국에선 아직 한 명도 수상자가 나오지 않았다. 그 이유는 뭘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시간을 들여서 정형적 건축이 아닌 각각의 장소가 가진 고유의 개성을 차분하게 발전시켜 나간다면 좋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한국에서만 할 수 있는 건축의 모습이 보일 것이다.” 

 

오는 10월 서울 마곡동에 들어서는 LG아트센터 조감도. /LG아트센터

 

-올가을 서울 마곡에서 LG아트센터가 문을 연다. 중점을 둔 부분은?

 

“(LG가) 민간 기업이면서도 높은 공익성을 추구한다는 점에 큰 감명을 받았다. 도시와 시민 모두에게 열린 시설이 되도록, 많은 이가 모여 감동을 공유하는 공간이 되도록 설계했다. ‘여기밖에 없는’ 공연장을 만들고 싶었고, 그래서 카탈리스트 튜브, 스텝 아트리움, 게이트 아크 등의 개성 있는 공간을 교차하게 만들었다. 관객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매력적인 공간이 되기를, 서울 시민뿐 아니라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문화 발산지로서 사랑받는 건물이 되기를 바란다.”

 

-한국에서 작업할 때 즐거운가.

 

“한국 사람들은 매우 열정적이다. 이 때문에 건축 과정도 격렬하다. 나는 너무 통제되는 바람에 특징이 없는 일본보다 그쪽을 더 좋아한다.”

 

순탄한 항해는 아니었지만, 노를 저을 순 있었다

 

-지금도 ‘이 기회를 놓치면 끝장’이란 심정으로 일하시나. 치열한 삶이 고되진 않나.

 

“건축도 인생도 좀처럼 생각대로 되지 않고,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래서 재미있는 것이다.”

 

-처음 건축사무소를 냈을 때부터 함께한 아내는 어떤 존재인가.

 

“나라는 인간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며, 또한 가장 엄격한 비평가이기도 하다.”

 

-건축 외에도 많은 사회 공헌 활동을 했다. 특히 환경을 보호하고 어린이 돕는 일을 많이 했는데.

 

“현대사회에서 인공과 자연의 불균형으로 생겨난 문제가 바로 환경문제다. 지금 가장 필요한 일은 사람들이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가치관을 바꾸는 일이다. 도쿄만의 쓰레기 매립지에 녹색 숲을 조성하는 계획인 ‘바다의 숲’ 등 내가 일본의 여러 도시에서 진행하는 나무 심기를 통한 환경 재생 활동은 내 나름의 노력이다. ‘아이들’을 왜 중요하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이유는 분명하다. 미래를 책임질 아이들을 키우는 것, 이것은 세상의 미래를 만드는 것과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강원도 원주의 ‘뮤지엄 산’(2012). 안도는 부지를 보고서 ‘주위와는 동떨어진 별천지’를 만들 수 있겠단 생각을 했다고 한다. /뮤지엄 산

 

-사회를 향한 메시지도 여러 차례 냈다. 한국은 저출산 등의 문제가 심각한데, 일본 사회가 당면한 문제는 무엇인가.

 

“일본 역시 저출산 고령화, 빈부격차 등의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계속되는 경제 불황 속에서 젊은이들이 미래에 대해 희망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목표와 꿈이 필요하다. 이대로라면 일본에 미래는 없다.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과 일본의 많은 청년이 실패를 두려워하고 도전을 어려워한다.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은.

 

“지금 이 순간을 최대한 열심히 살아라, 그 긴장감을 생의 마지막까지 유지해 갈 내적인 힘을 기르라고 말하고 싶다. 길을 잃거나 좌절로 고통받는 일이 생긴다면, 아름답고 든든한 고향의 풍경으로 되돌아갔으면 한다. 그곳에는 당신이라는 사람의 뿌리가 있을 테니.”

 

세계적 건축 거장 안도 다다오가 <아무튼, 주말> 인터뷰를 위해 포즈를 취했다. 안도는 자신의 건강을 걱정하는 이들에게 "따뜻한 염려 감사하다. 하지만 걱정하실 필요는 없다. 나는 매우 건강하다"고 전했다. /Kinji Kannno·Tadao Ando Architect & Associates

 

-다시 태어나도 건축가가 되고 싶나.

 

“결코 순탄한 항해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오늘까지 노를 저어올 수는 있었다. 나를 지지해 준 분들과 내게 기회를 준 사회에 감사드린다.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태어나는 그때에 무엇을 할지 생각하고 싶다.”

 

-마지막 작품에 대한 구상이 있나.

 

“내 건축의 원점은 주택이었다. 마무리 역시 주택으로 하고 싶다. 아주 평범한 규모의 일반적인 주택도 괜찮다. 제한 없는 자유보다, ‘평범함’으로 인한 부자유 안에서 쟁취한 자유가 더 가치 있다.”

 

-이옥진 기자, 조선일보(22-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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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성이 건축 최고 가치라는 LG 구본무 회장과 뜻이 맞았다”

 

안도 다다오의 최신작
10월 개관하는 마곡 LG아트센터

 

오는 10월 서울 마곡에 들어서는 LG아트센터의 지상층을 관통하는 원형 통로 ‘튜브’의 모습. 공원과 광장으로 연결되는 튜브는 지상의 관객들을 건물 내부로 끌어들이며, 예술·과학·자연의 융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LG아트센터

 

안도 다다오는 서울 마곡동에 들어서는 LG아트센터를 ‘여기밖에 없는 공연장’이라고 표현했다. 오는 10월 개관 예정인 LG아트센터는 건축 면적 1만5000㎡에 1300석 규모의 대극장, 400석의 다목적 공연장을 갖췄다. 4년 6개월의 공사 기간에 공사비 약 2500억원이 투입됐다. 국민들의 문화 향유를 위해 설립한 취지에 따라 LG 측에서 20년간 운영한 뒤 서울시에 기부 채납할 예정이다.

 

2018년 작고한 구본무 전 LG회장이 전세계 건축가를 물색한 끝에 안도를 낙점했다. 안도는 <아무튼, 주말> 인터뷰에서 “처음 구본무 회장에게 이 프로젝트를 들었을 때 그의 열의에 압도됐다”며 “구 회장은 ‘진정으로 가치 있는 건축은 항상 높은 공공성을 갖고 있다’고 말했고, 이는 내게 ‘공공성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하는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LG아트센터 오는 10월 서울 마곡동에 들어서는 LG아트센터 조감도.

 

LG아트센터에는 건축에 자연이 녹아드는 안도의 철학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건물 외부는 안도의 트레이드마크인 노출 콘크리트를 기반으로, 정마름모꼴의 외형과 타원형의 옥상 장식 탑 등이 눈에 띈다. 내부에서 시선이 집중되는 공간은 크게 세 곳. 건물의 지상층을 대각선으로 관통하는 원형 통로 ‘튜브’, 지하철 마곡나루역부터 지상 3층까지를 연결하는 계단 ‘스텝 아트리움’, 관객들이 로비에서 마주하는 곡선 형태의 벽면 ‘게이트 아크’ 등이다. 안도는 “직사각형이나 타원 등 심플하고 상징적인 기하학을 이용해 녹색 자연이 풍부한 주변 환경과 어우러지도록 했다”며 “무엇보다 사람들이 모여서 대화하고 감동을 공유하는 장소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았다”고 했다.

 

LG아트센터 관계자는 “LG아트센터는 최첨단 연구·개발 시설인 LG사이언스파크, 국내 최대 규모의 서울 식물원과 함께 공연 예술과 과학, 자연이 어우러진 서울의 문화 예술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옥진 기자, 조선일보(22-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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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골목풍경 바꾼 안도 다다오 건축 혁신

 

안도 다다오가 1976년 지은 주택 ‘스미요시 나가야’(왼쪽). 전면이 좁은 나가야의 형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오른쪽은 안도가 어린 시절 자란 생가. 일본 전통 가옥 나가야 형식이다. 사진 출처 HeT 오사카건축

 

오랜만에 1975년 하길종 감독이 만든 영화 ‘바보들의 행진’을 보았다. 청바지와 생맥주로 상징되는 당시 청년 문화의 단면을 볼 수 있었는데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이 배우들의 억양이었다. 말투가 요즘과 다르고 서울말이라기보단 북쪽 억양과 비슷했다. 개봉 당시에는 그런 느낌이 전혀 없었는데 지금 그렇게 들리는 것이 신기했다. 말투뿐만 아니라 우리 생활 방식도 그사이 많이 달라졌다. 시대가 바뀌면 삶의 형식도 바뀐다. 내용이 형식을 지배하고 형식은 내용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우리의 주거 형식도 그런 흐름 속에서 변화해 왔다.

특히 아파트라는 주거 형식은 1970년대 말부터 21세기를 넘어온 50여 년 동안 우리 삶을 지배했다. 아파트는 건축이며 물리적인 공간이지만 그 전에 ‘모던 리빙’이라는 새로운 삶의 방식이자 상징이었다. 사람들이 꿈꾸는 아파트에서의 삶은 단지 생활의 편의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제 경제적 가치 외에 그런 상징으로서의 효용은 거의 끝나고 있다는 것을, 일선에서 일하는 건축가로서 자주 실감한다.

아파트가 도시를 뒤덮기 시작하고 ‘바보들의 행진’이 나온 무렵인 1976년, 일본에서는 우리와 반대의 사건이 일어났다안도 다다오(安藤忠雄·80)라는 당시 30대 건축가가 오사카 스미요시라는 동네에 작은 주택을 하나 지었는데, 그 집이 일본 주거사의 중요한 변곡점 역할을 한 것이다.

 

2004년 촬영한 일본의 대표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모습.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프리츠커상 수상자가 8명이나 나온 일본은 건축 선진국이라 부를 만한데 그중 대표적인 건축가가 안도 다다오다. 노출 콘크리트 붐을 일으켰고 미니멀한 공간을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일본의 정신이 깃든 전통 주거 방식을 콘크리트라는 현대 재료로 번안하고, 공간을 현대적인 삶이 가능한 방식으로 전환한 건축가다.

 

오사카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그는 독학으로 건축을 시작한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공업고 기계과를 졸업하고 막연히 건축설계가 하고 싶어서 책을 읽고 해외 유명 건물을 보러 다니며 공부했다. 스무 살 무렵 대학 건축과 교재로 수련을 하던 그는 오사카 도톤보리에 있는 헌책방에서 프랑스 건축가 르코르뷔지에의 작품집을 발견한다. 당시 바로 살 수 없었기에 그 책을 헌책방 구석에 감춰 놓고 수시로 드나들다 몇 달 후 샀다고 한다. 그러고는 책을 수십 차례 읽고 그림들을 외울 정도로 그리고 또 그린다. 그런 치열함 속에서 그는 건축이라는 생소한 분야에 들어섰다. 사실 아무런 배경이나 경력 없는 20대 초반 젊은이에게 누구도 건축설계 일을 맡길 리 만무했다. 그러나 굴하지 않고 동네 낡은 집 주인을 찾아가 고쳐주겠다고 하거나 새로 지을 집의 계획안을 만들어 제시하곤 했다고 한다. 그렇게 지은 집이 ‘스미요시 나가야’다.

스미요시(住吉)는 지명이고 나가야(長屋)는 폭이 3m 남짓이고 안으로 10m 이상 들어가는, 전면은 좁고 안쪽으로 깊은 일본의 전통적인 도시 주거 유형이다. 아즈마라는 사람을 위해 지은 ‘스미요시 나가야’는 폭 3.6m, 깊이 14.4m의 전형적인 나가야 형식이다. 안도는 목조로 된 전통적 나가야를 콘크리트라는 재료를 통해 아주 모던한 방식으로 재탄생시켰다. 건축을 제대로 배우고 많은 집을 지은 노련한 건축가가 아니라, 건축을 독학하고 현장실무를 통해 익힌 30대 건축가가 일본 주택의 흐름을 바꿔 놓게 된 것이다.

그것은 아주 흥미로운 사건이었다. 일본의 집들은 원래 표정이 없다. 골목 풍경은 우리와 다를 것 없지만 집 밖으로 가족의 두런거림이나 시끌벅적함이 풍겨 나오는 우리와 달리, 일본의 골목에는 무표정한 얼굴로 집들이 덤덤하고 조용하게 모여 있다. 스미요시 나가야는 그런 일본의 집을 극단적으로 현대화한 것이다. 오사카 서민 동네 시타마치(下町)의 좁고 답답한 나가야에서 나고 자란 안도의 기억과 공간감이 그곳에 스며들어 있다.

오사카의 어느 골목길 안쪽, 주변 나가야들과 높이만 같은 콘크리트 박스로 된 집이 하나 있다. 이 집 전면 1층에는 직사각형 구멍이 하나 있을 뿐이다. 거실과 가운데 중정이 있고 건너편에 주방이 있다. 2층에는 중정을 사이에 두고 침실 두 개가 있는데 그 사이에는 얇은 다리가 있다. 집이라기보다는 나가야로 상징되는 일본 주거문화를 다이어그램으로 표현한 것 같다.

스미요시 나가야에는 좀 더 서구적인, 구체적으론 미국을 본받고자 하던 당시 사회 풍토에 대한 반성이 담겨 있다. 안도 다다오는 20대 초반 미국을 두 번 방문했다. 그는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타고 대륙을 횡단하며 세계 최강국의 엄청난 풍요를 목격한다. 그리고 “대량소비 사회의 일상에 주눅이 들면서도 국토도 자원도 생활 습관도 다른 일본이 (미국을) 흉내 내려고 하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꼈다”고 한다. 그런 자각은 건축에 대한 반성으로 이어진다. “모던 리빙 이미지 역시 미국의 산물이다. 비좁은 일본 땅에서 그것을 추구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가 있다. 조금 더 덩치에 어울리는 생활, 좁으면 좁은 대로 이 땅에 어울리는 풍요를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 83쪽)

‘스미요시 나가야’는 젊은 건축가의 치기 어리고 용감한 작업이 아니라, 일본 전통에 대한 이해와 그것을 현대에 적용하고자 하는 의지가 결합된 집이다. 이 집을 볼 때마다 우리는 단절된 전통을 지금의 삶에 맞춰가기 위해 건축가가 해야 할 역할을 생각하게 된다.

-임형남·노은주 가온건축 대표, 동아일보(21-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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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계 상징' 안도, 그 놀라운 건축물 한국서 찾았다

 

안도 다다오(安藤忠雄). 세계 건축계의 상징이 된 이름이다. 그의 건축 세계를 들여다보는 다큐멘터리 영화 ‘안도 타다오’가 오는 25일 개봉한다. 자연과 조화를 이룬 그의 건축은 그 자체로 예술로 평가받는다. 특유의 노출 콘크리트 공법은 세계적으로 대중화된 지 오래다. 한국에도 그가 설계한 건축이 여럿 있다.  

산중 숨은 미술관–강원 뮤지엄 산  

 

뮤지엄 산 제임스터렐관. 산중에 틀어박힌 듯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사진 뮤지엄 산]

 

강원도 원주 산중에 숨은 미술관. 해발 275m 산중에 틀어박혀 있는데, 주변 산세와 조화를 이뤄 더 고즈넉한 느낌을 준다. 700m 길이의 산책로를 따라 웰컴센터·플라워가든· 워터가든·명상관·스톤가든·제임스터렐관이 이어진다.  
 

워터가든은 안도 다다오 특유의 ‘물 위의 건물’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곳에서 뮤지엄 본관이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올해 개관한 명상관은 돔 형태의 건물로 멀리서 보면 아담한 구릉처럼 보인다. 제임스터렐관은 천장에 구멍이 뚫려 있다. 구멍 사이로 보이는 강원도의 맑은 하늘이 비춘다.  

 

워터 가든. 주변 풍경이 물에 비쳐 더 그윽한 곳이다. [사진 뮤지엄 산]
 

 

전망 좋은 건축–제주 휘닉스아일랜드 

 

휘닉스아일랜드 글라스 하우스. 바다 전망이 빼어난 곳으로, 건물 아래에는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사진 휘닉스아일랜드]

 

제주도 동쪽 끝 섭지코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건축이 섭지코지 휘닉스아일랜드에 두 개나 있다. 절벽 끝에 자리한 글라스하우스는 흡사 바다를 향해 두 팔을 벌리는 듯한 모습이다. 2층에 레스토랑이 마련돼 있는데 바다전망이 좋아 관람객 많이 찾는다. 웨딩 장소로도 유명하다. 1층에는 지포 뮤지엄이 있다.   

유민 미술관(지니어스 로사이)은 땅속에 묻혀 있는 듯한 모양의 건축이다. 건물 곳곳에서 섭지코지의 바람·빛·소리를 느낄 수 있도록 공간이 연출돼 있다. 군데군데 창이 나 있는데, 각도에 따라 성산 일출봉, 하늘, 너른 평원 등 제주의 풍경이 액자처럼 담긴다. 사진도 잘 나온다. 유민미술관에선 프랑스 아르누보(1894년부터 약 20년간 유럽 전역에서 일어났던 공예디자인 운동) 양식의 유리공예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땅속에 숨은 듯 독특한 외형의 유민미술관(지니어스 로사이). [사진 휘닉스아일랜드]

 

제주 중산간에 비스듬히-제주 본태박물관

 

본태박물관 제1박물관 외관. 노출 콘크리트 건축물로 유명한 안도 다다오 의 개성을 엿볼 수 있다.앞의 조형물은 스페인 출신의 미술작가 하우메 플렌사의 작품이다. [중앙포토]

 

제주 중산간 지역의 지형을 최대한 살려 건축한 곳이다. 굴곡진 경사면을 깎지 않고 건물을 올렸다. 조금 더 높은 자리에 있는 제2박물관은 멀리 산방산과 마라도를 바라보도록 남향에 통창을 냈고, 대지가 낮아 멀리 내다볼 수 없는 제1박물관에는 박물관 앞에 인공호수를 두어 균형을 맞췄다. 안도가 제주 중산간 지역을 빛이 잘 들고 바다 전망이 좋은 공간으로 해석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본태박물관은 전통 민예품이 놓인 제1박물관, 현대미술 작품이 전시된 제2박물관과 별채 제3박물관으로 나누어져 있다. 서귀포시 안덕면에 자리해 있다.  
 

도심 속 안도의 흔적-서울 JCC(재능문화센터)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혜화동 JCC크리에이티브센터 외관. [사진 JCC]

 

서울 혜화동 로터리에서 혜화파출소와 연우소극장을 거치면 재능교육의 JCC아트센터와 JCC크리에이티브센터가 나타난다. 장식 없는 노출 콘크리트 외벽, 비탈진 주변 자연에 맞춰 비스듬히 들어선 구조 등 안도 다다오 특유의 건축 양식이 잘 드러난다. JCC아트센터는 콘서트, 전시를 위한 공간, JCC크리에이티브센터는 다양한 강연과 행사가 열리는 문화 공간이다.  

 

-백종현 기자, 중앙일보(19-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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