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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 150주년, 라흐마니노프가 마주친 ‘세계의 낯섦’] ....

뚝섬 2023. 3. 29. 15:47

[탄생 150주년, 라흐마니노프가 마주친 ‘세계의 낯섦’]

[라흐마니노프의 별장들]

[18세 청년이 연주한 ‘악마의 곡’은 어떻게 만인을 울렸나]

 

 

 

탄생 150주년, 라흐마니노프가 마주친 ‘세계의 낯섦’

 

[유윤종의 클래식感]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1873.4.1.∼1943.3.28.). 그는 한때 ‘감상적이고 낡은 음악’을 쓴 인물로 치부되었지만 최근 그가 가진 혁신성이 재발견되고 있다. 동아일보DB

 

“나는 낯설어진 세계를 방황하는 유령 같다고 느낀다.”

오늘(28일) 서거 80주년을 맞은 러시아 작곡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는 생전에 이렇게 말했다. 그를 말해주는 세 가지 키워드는 ‘엄청난 기교의 피아니스트’ ‘감상주의(센티멘털리즘)’ 그리고 ‘망명’이었다. 러시아 제국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혁명이 일어나자 서유럽을 거쳐 미국에 정착했다. 그러고는 다시 고향 땅을 밟지 못했다.

라흐마니노프가 마주친 ‘세계의 낯섦’은 고향과 타향의 차이에 관한 것만이 아니었다. 시골의 부유한 장원에서 자라난 라흐마니노프는 뉴욕 마천루의 엘리베이터와 마주쳐야 했다. 그는 유럽 낭만주의 음악의 품 안에서 자라났고 ‘음악은 일상의 사랑스러운 감정들을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한 차이콥스키를 경모하며 작곡을 연마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세계 음악계는 음계를 파괴한 쇤베르크의 무조주의적 음악이나 ‘봄의 제전’으로 대표되는 스트라빈스키의 원시주의적 음악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서두에 소개한 라흐마니노프의 말은 새로운 시대의 문화적 지향과 예술적 환경에 대한 소외감을 표현한 것이었다.

이런 소외감이 타국에 발을 디딘 러시아 작곡가 혼자만의 것은 아니었다. 라흐마니노프보다 여덟 살 위였던 핀란드의 교향악 거장 시벨리우스는 오스모 벤스케 지휘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이달 24, 25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연주한 교향곡 6번(1923)을 작곡하면서 “오늘날 여러 음악가들이 온갖 복잡한 칵테일을 섞는 데 열중하지만 나는 맑은 생수를 내놓겠다”고 말했다. 라흐마니노프보다 열다섯 살 위였던 이탈리아의 오페라 거장 푸치니는 자신이 혼란하게 느낀 예술계의 기류에 대해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아름다운 음악으로 응답할 것이다. 이 미친 세상에 대항하기 위해”라고 편지에 썼다.

푸치니는 1924년 세상을 떠났고 시벨리우스도 비슷한 시기에 대부분의 작곡 활동을 중단했다. 그러나 스스로 명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였던 라흐마니노프는 미국에서 자신의 ‘구식’ 음악을 연주하며 수입을 이어 나가야 했다. 대중들은 열광했지만 비평가들은 따가운 시선을 거두지 않았고 그의 음악은 ‘단순함, 가요적, 선율미에만 의존하는 개성 없는 작품’으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음악사 전공자들의 필수 참고자료 중 하나인 그로브 음악사전은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이 ‘단조롭고 인공적이며 분출하는 선율뿐’이라고 단언했다. 뉴욕타임스의 평론가를 지낸 해럴드 숀버그가 이에 대해 ‘터무니없이 젠체하며 멍청한 얘기’라고 반박한 게 다행이었다.

올해는 라흐마니노프의 탄생 150주년이 되는 해다. 오늘 서거 80주년에 이어 나흘 뒤인 4월 1일에 ‘거짓말처럼’ 그의 생일이 돌아온다. 이 사실이 그의 재평가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지난해 뉴욕에서 열린 바드 음악축제는 라흐마니노프의 숨은 혁신성을 탐구하는 자리였다. 그의 음악 어법이 지닌 개성 및 동시대 대중음악과의 상호 영향, 현대 문명에 대한 반응 등도 진지하게 탐구됐다. 2020년 KAIST 문화기술대학원의 박주용 교수는 여러 작곡가의 화음 연결 패턴을 분석한 빅데이터 분석 결과 ‘고전음악 작곡가 중 가장 혁신적인 화음 연결을 사용한 작곡가는 라흐마니노프’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일반적인 음악 팬에게는 재평가라는 말이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2021년 영국 ‘클래식 FM’이 집계한 ‘가장 사랑받는 작곡가’ 순위에서 라흐마니노프는 브람스와 드보르자크 다음 자리인 27위를 차지했다. 2015년 KBS 클래식FM이 설문 조사를 통해 집계한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클래식’ 1위는 그의 피아노협주곡 2번이었다. 임윤찬이 밴 클라이번 콩쿠르 결선에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3번을 연주한 동영상은 유튜브에서 음질 개선 재업로드 버전을 포함해 26일 현재 1178만 뷰를 기록 중이다.

20세기 음악은 시벨리우스의 표현대로 ‘수많은 칵테일을 섞었고’, 당시까지 모색되지 못한 수많은 음향과 미학의 지평을 열었다. 그러나 여전히 수많은 음악 팬들은 선율적이고 감상적인 음악을 들으며 일상의 위안을 얻고 있다. 다음 세대에도 그럴 것이라는 데 감히 많은 것을 걸 수 있다.

-유윤종 문화전문 기자, 동아일보(23-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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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흐마니노프의 별장들

 

러시아 옛 별장과 닮은 집 짓고 향수 짙은 걸작 만들었다

 

▲ ①그랜드피아노 앞에 앉은 라흐마니노프. ②라흐마니노프가 젊은 시절 여름마다 방문해 작품을 썼던 이바놉카 별장. ③라흐마니노프가 후기 작품을 썼던 스위스의 호숫가 마을 헤르텐슈타인. /위키피디아

 

2023년은 러시아 작곡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가 태어난 지 150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의 작품은 아름답고 서정적인 멜로디와 격정적인 악상(樂想)으로 인기가 높죠. 또한 뛰어난 피아니스트였기에 특히 피아노 분야에서 걸작이 많습니다. 1873년 태어난 라흐마니노프는 같은 세대의 러시아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을 겪어야 했고, 이를 계기로 조국을 떠나 활동했죠.

고향을 그리워했지만 생의 마지막까지 돌아가지 못했던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에는 그래서인지 어느 곡이든 짙은 향수(鄕愁)가 배어 있습니다. 러시아를 떠난 후 그는 작곡하기 위해 예전에 즐겨 찾던 별장과 흡사한 집을 지어 그곳에 머물면서 향수를 달랬죠. 오늘은 라흐마니노프의 주옥같은 명곡의 산실(産室)이 된 장소 두 곳과 관련된 이야기를 알아보겠습니다.

이바놉카, 첫 30여 년 영감의 산실

러시아에서 활동할 때 라흐마니노프에게 많은 영감을 제공해줬던 장소는 이바놉카의 별장이었습니다.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약 600㎞ 떨어져 있는 이바놉카는 러시아 탐보프주에 자리 잡고 있는 작은 마을이죠. 원래 그의 사촌인 사틴 집안이 소유했던 이 집을 라흐마니노프는 1890년 처음 방문했고, 그 후 1917년까지 매해 여름 찾아와 작품을 썼습니다.

이곳은 장미가 가득 핀 정원과 넓은 들판, 멀리서 들려오는 교회 종소리와 주변을 둘러싼 숲 등이 그림처럼 아름다워 젊은 라흐마니노프의 창작열을 불러일으켰죠. 그는 이 집에 있는 방 중에서 햇볕이 잘 들지 않고 어두운 방을 골라 그곳에서 강한 집중력으로 작곡했어요. 여기서 구상하거나 완성한 작품 대부분이 라흐마니노프의 대표작이 되었습니다. 그의 작품번호 1인 피아노 협주곡 1번의 시작도 이바놉카에서였고, 교향곡 2번 작품번호 27은 그가 독일 드레스덴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3년의 기간 여름휴가지였던 이바놉카에서 집중적으로 만들어 1907년 완성했습니다. 작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자 임윤찬의 연주로 우리에게 친숙해진 피아노 협주곡 3번 역시 1909년 9월 이바놉카에서 썼어요.

이바놉카의 별장은 1917년 10월 혁명에 이어진 러시아 내전 당시 대부분 파괴됐습니다. 1968년 탐보프주 지역 정부에 의해 재건 논의가 시작됐고, 1982년 마침내 라흐마니노프 박물관으로 변신해 개관했죠. 그 후 이곳은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은 물론이고 클래식 음악과 재즈 공연, 연극 등 다채로운 문화 행사가 펼쳐지는 멋진 장소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루체른 호숫가 헤르텐슈타인서 만년 보내

1917년 12월, 라흐마니노프는 조국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로부터 1년 후 미국에 정착한 라흐마니노프는 생계를 위해 피아니스트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해 큰 인기를 얻었죠. 미국 이주 전까지는 주로 자신의 작품만 연주했지만 미국에서는 레퍼토리를 늘려 베토벤·쇼팽·슈만 등을 해석했고, 당대 최고 피아니스트의 위치까지 올랐습니다. 분주한 연주 투어 일정에 지친 라흐마니노프는 소란하고 어지러운 일상에서 벗어나 휴식하며 작곡을 이어가려고 했지만, 기회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았죠.

1930년 라흐마니노프는 자신의 전기를 쓰려고 찾아온 작가 오스카 폰 리제만과 인사를 나누게 됐고, 리제만의 안내로 스위스 루체른 호수 북쪽에 있는 헤르텐슈타인을 찾았습니다. 그곳은 놀랍게도 자신이 그리워하던 이바놉카와 매우 닮아있었죠. 그는 단숨에 매료됐고, 곧바로 이곳에 집을 짓기 시작했어요.

라흐마니노프는 1932년부터 살기 시작한 루체른 호반(湖畔)의 별장에 '세나르(Senar)'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자신의 이름 세르게이의 앞 두 글자(Se)와 아내의 이름 나탈리아의 앞 두 글자(na), 그리고 라흐마니노프라는 성(姓)의 첫 글자(r)를 딴 것이었죠. 그는 일과 휴식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세나르를 무척 사랑했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곳에) 진정한 평화와 고요가 있다"고 했어요.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전 유럽이 황폐해진 1939년 8월 라흐마니노프가 스위스를 떠날 때까지, 세나르는 여름마다 휴식과 재충전을 하고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랠 수 있는 보금자리가 돼주었습니다. 러시아 시절보다 작품 수는 줄었지만, 세나르에서도 그의 후기 작품 중 중요한 걸작들이 나왔습니다.

1934년 완성된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는 지금도 많은 피아니스트가 즐겨 연주하는 명곡이죠. 니콜로 파가니니의 바이올린을 위한 무반주 카프리스 24번 a단조를 주제로 해 모두 24개의 변주가 이어지는 구성인 이 작품은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함께 연주하는 협주곡 구성으로 만들어졌는데, 로맨틱한 감성과 극적인 전개, 러시아인 특유의 우수가 들어 있어 많은 사랑을 받습니다. 1936년 발표된 교향곡 3번 작품번호 44 역시 그의 만년을 장식하는 대곡으로, 우아한 선율미와 광대한 스케일이 멋지게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라흐마니노프를 가장 잘 기억할 수 있는 장소 두 곳에서는 그의 탄생 150주년을 맞아 많은 행사가 예정돼 있습니다. 이바놉카에서는 다양한 피아노 공연과 함께 특히 지금까지 잘 조명되지 않았던 라흐마니노프의 성악곡들을 중심으로 한 음악회가 1년 동안 이어집니다. 오랜 기간 보수 공사 중인 세나르 역시 올해는 진행 중인 공사를 잠시 중단하고 라흐마니노프의 특별한 해를 기리기 위한 다양한 문화 행사를 준비 중이라고 하네요. 러시아 음악과 라흐마니노프를 사랑하는 팬들에게는 여러모로 풍성한 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김주영 피아니스트·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기획·구성=안영 기자, 조선일보(23-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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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 청년이 연주한 ‘악마의 곡’은 어떻게 만인을 울렸나

 

[朝鮮칼럼]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임윤찬, 라흐마니노프로 감동의 드라마 써
기교보다 자신 낮춘 헌신으로 오케스트라와 이룬 완벽한 화음에 청중들 기립 박수 보내며 눈물
音樂의 이치와 政治는 서로 통해… 우리 위정자들이 꼭 들어보길

 

June 14, 2022. Yunchan Lim of South Korea performs a concerto with the Fort Worth Symphony Orchestra conducted by Chairman of the Jury Marin Alsop in the Final Round of The Sixteenth Cliburn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Bass Performance Hall in Fort Worth, Texas. (Photo by Richard Rodriguez)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1873~1943)가 서른여섯에 작곡한 피아노협주곡 3번은 초인적인 파워와 기교를 요구하는 곡으로 악명이 높다. 겹겹이 쌓인 음표로 악보 해독부터 어렵고, 광폭의 음역대와 스피드, 40분이 넘는 연주 시간까지 고도의 테크닉과 집중력 없이는 완주가 힘들어 당대 최고 연주자들도 기피했다고 한다.

 

일반 대중에게는 영화 ‘샤인’의 주제곡으로 먼저 알려졌다. 아버지와 불화로 정신 질환을 앓던 천재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헬프갓을 통해 미치지 않고는 칠 수 없는, 악마의 곡”으로 묘사된다. 올해는 그 인기가 폭발적이다. 지난달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18세 한국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결승 무대에서 연주해 세계 클래식 평단을 뒤집어 놓은 곡이 바로 이 곡이다. 영화 속 데이비드는 이 곡을 완주한 뒤 정신을 잃고 쓰러지지만, 임윤찬은 땀에 젖은 머리가 살짝 헝클어졌을 뿐 기립 박수를 치며 열광하는 청중을 향해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반 클라이번이 쏘아 올린 ‘윤찬 신드롬’은 2015년 조성진이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했을 때 이상으로 뜨겁다. 콘서트 티켓은 삽시간에 매진됐고, 그가 연주한 라흐마니노프 3번 영상은 3주 만에 500만 조회 수를 돌파, 거장 블라디미르 호로비츠가 뉴욕필과 협연한 영상을 넘어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만화책을 찢고 나온 듯한 외모, 선승(禪僧) 같은 어록에 클래식 문외한들도 마음을 빼앗겼다. “내게 클래식은 5분 만에 잠드는 수면제였는데 그의 신들린 연주로 내 막귀가 열렸다” “70대 일자무식인 나를 울린 연주” “나랑 동갑 맞아? 수학 문제 풀면서 이 연주만 몇 번째 듣고 있는지 모르겠다” 같은 댓글이 줄을 잇는다. 미국의 한 피아니스트는 반 클라이번 심사위원들까지 동원해 임윤찬의 라흐마니노프가 왜 독보적인지 악보와 영상을 비교해가며 분석했을 정도다. 이제 겨우 열여덟 살인 피아니스트는 어떻게 만인의 가슴을 울렸을까.

 

영어 일어 중국어 아랍어 등 각국 언어로 달린 댓글 9000개에 그 답이 있다. 100년 전 작곡가와 접신한” 임윤찬은 피아노 한대로 “광야에 꽃이 피고 바람이 불고 별이 뜨는 한 편의 드라마”를 썼다. 코로나와 우크라이나 전쟁, 곤두박질치는 경제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어느 위대한 정치가도 안겨주지 못한 위로와 감동을 선사”했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 자체가 인생을 은유하는 드라마다. 클래식 전문가 배현정의 표현을 빌리면, 삶에 지쳐 일어설 힘도 없는 한 사람이 다시 용기를 내어 인생의 파도와 맞서 싸워 나가는 이야기다. 러시아 특유의 우수와 서정이 흐르면서도 폭풍우 몰아치듯 질주해야 하는 이 장대한 곡을, 임윤찬은 허투루 날리는 음 하나 없이 맑고 강건한 타건(打鍵), 고요와 격정을 거침없이 넘나드는 표현력으로 압도했다.

 

만인의 가슴을 흔든 건 오케스트라와의 완벽한 조화였다. 피아노가 주인공인 협주곡(Piano Concerto)이지만, 임윤찬은 자신의 기교를 뽐내는 대신 오케스트라 모든 악기를 동등하게 대하며 그들 소리에 귀 기울이고 호흡했다. 플루트의 독주가 시작될 때 피아노를 한껏 낮추며 연주자와 눈 맞추는 대목은 명장면으로 회자된다. 경쟁하면서 화합하고, 격돌하면서도 스며드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 오케스트라와의 동행은 운명의 신이 먹구름을 몰고 오는 마지막 3악장에서 절정으로 치닫고, 어떤 시련에도 굴하지 않겠다는 듯 전장의 장수처럼 돌진하는 청년은 마침내 가슴 벅찬 승전고를 울리며 뜨겁게 산화한다.

 

흩어진 소리와 음들을 율(律)로써 아름답게 바로잡는다는 점에서 악(樂)의 이치는 정치(政治)와 통한다고 했던가. 열여덟 살 임윤찬이 연주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을, 취임 후 최대 고비를 맞은 대통령과 여야 정치인들이 꼭 한번 들어보길 바란다. 음악의 제단 앞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불살라 연주하는 이 청년처럼 우리 정치인들은 오직 국민만 바라보며 자신을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하나의 곡을 완주하려 매일 15시간 피아노라는 거대한 골리앗과 싸운다는 이 청년처럼 삶의 벼랑 끝으로 내몰린 서민들을 위해 그들은 숨이 턱에 차고 발에 불땀이 나도록 뛰고 있는지, 최고의 화음을 빚기 위해 자신을 한없이 낮출 줄 아는 이 젊은 연주자처럼 한국 정치는 경청과 상생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지, 부디 돌아봐주길 바란다.

 

딱 40분이면 된다. 나랏일로 바쁘시면 마지막 4분만 들어도 충분하다.

 

June 17, 2022. Yunchan Lim from South Korea performs the final concert with Jury Chairman and Conductor Marin Alsop and the Fort Worth Symphony Orchestra for the Finals of the Sixteenth Cliburn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Bass Performance Hall in Fort Worth, Texas. (Photo by Ralph Lauer)

 

-김윤덕 주말뉴스부장, 조선일보(22-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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