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한 철 사는 매미가 정치권에 가득하다
[朝鮮칼럼]
1800조 넘는 가계빚에 국가부채마저 지금처럼 늘면
10년 이내 외환위기 수십배 경제 변고 닥친다
혹독한 겨울 오는 줄 모르는 포퓰리즘 정치인 근절해야
2010년 그리스가 국가 부도로 무너졌을 때 아테네대학의 하치스 교수는 다음과 같이 한탄했다. “그리스는 1980년까지 일본보다 성장이 양호하고, 국가 부채도 GDP의 22%에 불과한 건실한 나라였다. 그런데 1981년 파판드레우라는 사회당 총리가 최저임금 인상, 무상 의료, 연금 수령액 인상, 공무원 증원 등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하면서 장기 집권에 성공하자, 보수 야당도 포퓰리즘 경쟁에 뛰어들면서 파탄의 길로 갔다. 여야 할 것 없이 나라 곳간을 활짝 연 결과 국가 부채가 GDP의 100%를 넘으면서 재정이 붕괴하고 국민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10여 년 전 이 이야기가 나왔을 때 사람들은 대부분 남의 나라 이야기로 치부하였다. 하지만 2년 전 총선에서 여권이 전 국민 재난지원금 덕택에 압승했을 때부터 더 이상 남 이야기가 아니었다. 당시 수도권에서 낙마한 야당 정치인이 ‘이번 선거에서 포퓰리즘을 이길 유일한 방법은 더 큰 포퓰리즘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할 정도로 포퓰리즘이 다가왔고, 결국 이번 대선에서 거스를 수 없는 추세로 뿌리내리고 있다.
재난지원금을 두고 여야가 35조니, 50조니 금액 경쟁을 벌이고, 6·25전쟁 이후 처음으로 1월에 추경을 편성하는가 하면, 대선 공약에서는 국민에게 돈 나눠주고, 빚도 갚아주겠다는 식의 정책을 남발하고 있다.
포퓰리즘의 대부분은 여권에서 먼저 불을 지폈다. 이들은 우리 국가 부채가 외국보다 낮은 수준이니까 문제없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국채를 많이 발행하면 나라는 어떤 식으로든 내상을 입게 마련이다. 최악은 국가 부도다. 갚을 능력보다 국채가 많아지면 그 국채는 아무도 안 산다. 기축통화가 아니면 더욱 그렇다. 결국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 살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돈 가치가 떨어지면서 물가가 오르고 외국 자본이 떠난다. 달러가 없으니 환율은 치솟고, 석유·곡물·의약품 같은 생필품마저 수입이 어려워지서 물가는 폭등하고, 국민 생활은 쑥대밭이 된다.
이론적 이야기가 아니고 실제 이런 일이 많이 일어났다. 지금은 최고 우량국인 독일마저도 과다 국채 발행으로 1913년부터 10년간 물가가 100조% 오르면서 파탄 났고, 러시아는 1992년 한 해 2000% 넘는 인플레로 무너졌다. 이 외에도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아일랜드, 그리스 등 사례는 수없이 많다. 우리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국채가 과다하면 국가 부도까지는 안 가더라도 경제는 큰 타격을 받는다. 이자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금년 들어 국채 10년물 금리는 작년 말 2.25%에서 불과 두 달 만에 2.6%대로 뛰었다. 추경 편성과 향후 예상되는 재정 적자 때문이다. 금리가 오르면 기업 투자 위축은 차치하고, 당장 1800조원이 넘는 가계 부채가 뇌관이다. 금리가 1%만 올라도 추가로 내야 할 이자가 18조원이 넘는다. 시중금리가 벌써 5%를 넘어 계속 오를 추세라서 900조원이 넘는 빚을 진 자영업자, 소득보다 많은 빚을 ‘영끌’한 청년 세대의 피해가 우려된다.
국가 부채에 따른 위기는 먼 훗날 일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가계 부채가 세계 최고 수준이기 때문에 국가 부채가 지금 추세로 늘어나면 10년 이내에 과거 외환 위기의 수십 배나 되는 큰 변고가 올 수도 있다. 그럼에도 정치권의 인식은 참 안일하다. 특히 여권이 예산을 아끼려는 경제부총리에게 “국가 부채 좀 늘면 어때?” “감히 임명직이 말을 안 듣는다” “기재부를 해체하겠다”는 등 겁박하는 모습은 도를 넘었다.
2005년경 노무현 대통령은 당시 기획예산처 예산실 간부들을 청와대로 불러 격려해 준 적이 있다. 당시 어떤 간부가 “예산 편성 때 정치인과 이익 단체의 압력이 너무 심해 힘들다”고 말하니까, 노 대통령은 “내가 바람막이가 되어 줄 테니 소신껏 하라”고 말했다.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은 예산실 직원 전체를 청와대 오찬에 초청해서 다음과 같이 격려했다. “자기 돈도 아닌데 국가 예산을 이렇게 알뜰하게 쓰는 여러분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다.” 지금 정치 지도자들과 비교하면 격이 다르다.
중국 옛말에 “매미는 눈 내리는 겨울을 모른다”는 말이 있다. 여름 한 철 치열하게 살다가 죽으니 혹독한 겨울을 모른다는 뜻이다. 지금 우리 정치권이 이런 매미들로 가득 차 있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리스의 파판드레우 전 총리 같은 왕매미가 이 땅에 발붙이는 일은 없어야 한다.
-김대기 단국대 초빙교수·前 청와대 정책실장, 조선일보(22-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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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디폴트 위기

북방정책을 추진하던 노태우 정부는 1991년 구소련에 대규모 경제협력 차관을 제공했다. 구소련 해체 후 러시아가 채무를 승계했지만 1998년 모라토리엄(지불유예) 선언으로 돈을 돌려받을 수 없었다. 아시아 외환위기 여파로 러시아 외환보유액도 바닥났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한때 150%의 고금리를 유지하며 국가부도를 막으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세월이 지나 한국은 원금 일부를 무기와 헬리콥터로 받아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24년 만에 다시 국가부도 위기에 몰렸다. 미국 등 서방이 러시아 은행을 국제은행결제망에서 퇴출하고 경제제재를 쏟아내면서 루블화 가치가 급락했다. 러시아는 미리 외환보유액을 쌓아 놓고 위안화, 금 등으로 보유 자산을 다각화했지만 역부족이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러시아 신용등급을 한 단계 낮춘 데 이어 지난주 다시 8단계 강등했다. 무디스와 피치도 한꺼번에 6단계나 낮췄다. 피치의 신용등급 6단계 강등 조치는 1997년 말 외환위기를 맞은 한국에 적용한 이후 처음이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은 신흥시장 지수에서 러시아 증시를 제외했다.
▷24년 전과 달라진 점은 국가부도를 대하는 러시아의 태도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러시아가 국제사회의 경제제재에 맞서 고의로 부도를 내는 ‘디폴트’(채무 불이행) 선언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혼자 죽지 않겠다는 물귀신 작전이다. 물론 이미 투기등급으로 떨어진 러시아 경제는 파국을 맞게 된다. JP모건은 올해 러시아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7% 둔화할 것으로 봤다. 국가부도가 난 1998년과 2008년 금융위기에 맞먹는 수준이다.
▷죽어나는 것은 러시아 국민이다. 루블화가 폭락하고 물품 수입이 막히면서 초인플레이션과 고금리로 인한 고통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러시아인들은 자구책으로 암호화폐를 사들이고 있다. 루블화를 통한 비트코인 거래량은 작년 5월 이후 최대치다. 하지만 주요 7개국(G7)과 유럽연합은 러시아 개인과 기업의 암호화폐 거래도 차단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2000년 5월 취임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이후 러시아 경제가 회복되면서 장기 집권의 초석을 닦았다. 비결은 고유가였다. 오일머니가 쏟아져 들어오면서 중산층이 두꺼워졌고 국방력과 외교력을 강화했다. 이번에도 그가 믿는 구석은 원유와 가스다. 유가가 치솟는 상황에서 미국은 러시아의 생명줄인 에너지 제재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누가 오래 버티느냐는 치킨 게임이 벌어지는 이유다. 당장 달러가 없으면 에너지 수입이 막히는 한국으로서는 상상도 못 할 러시아의 배짱이다.
-배극인 논설위원, 동아일보(22-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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