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의 성큰가든(sunken garden)
[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도심에는 부족한 녹지와 휴식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대안이 늘 만들어진다. 그중 하나가 ‘성큰가든(sunken garden)’이다. 건물 진입로 주변을 파서 지면보다 단을 낮춘 공간이다. 자동차 소음과 행인으로 가득 찬 길거리의 번잡함을 벗어나 살짝 숨는 공간이라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길거리가 건물과 연결되는 부분에 작은 광장이 생기고, 지하층의 채광과 환기에 유리한 장점이 있다. 그래서 실내 정원이라 부르는 아트리움과 함께 1970년대 건축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성큰가든은 ‘뜨락 정원’으로 번역하기도 하지만 원래 ‘뜰’이라는 뜻의 뜨락과 정원은 중복되는 단어다. 도심 속의 움푹 파진 정원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자연요소와 벤치 등을 조합해서 휴식을 제공하고 있다./박진배 뉴욕 FIT 교수, 마이애미대학교 명예석좌교수
성큰가든의 규모는 작지만 용도는 다양하다. 나무, 꽃과 같은 정원 요소에 벤치 등을 조합해서 쉴 공간을 이룬다. 자연을 가져오려는 원래 의도에 충실한 계획이다. 놀이터나 레스토랑, 스케이트장 등 적극적인 기능을 위해서 조성하는 경우도 있다. 뉴욕 록펠러센터의 아이스링크가 대표적 예다.
한편 아주 정적(靜的)으로 만들어져 관조(觀照)하는 경우도 있다. 뉴욕 다운타운의 체이스은행 사옥의 정원이 그렇다. 세계적 조각가 이사무 노구치의 작품으로 도심에서 명상적 공간을 이룬다.

(좌) 레스토랑과 같이 적극적인 기능을 위해서 디자인되었다./(중간) 세계적인 조각가 이사무 노구치의 작품으로 도심 속에 명상적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우) 성큰가든 위의 다리를 건너서 미술관에 진입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또한 마르셀 브로이어가 건축한 휘트니 미술관은 성큰가든 위의 다리를 건너서 미술관에 진입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일상 공간을 건너서 예술 공간으로 넘어간다’는 시(詩)적 은유를 담고 있다.
날씨가 따듯해지고 외부 활동이 늘어나면 이 공간의 활용 빈도는 더 높아진다. 성큰가든은 도시의 야외 공간을 수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지상에서 움푹 파 놓았으므로 진입을 위해서 다리나 계단과 같은 건축 요소가 도입되기 마련이다. 도심의 루프톱, 둑길, 2층 버스, 그리고 성큰가든은 보통과 다른 눈높이에서 도시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해주는 장치다. 잠시 한 층 아래 바닥으로 내려가면서 눈높이가 달라지므로 우리는 새로운 영감에서 오는 아이디어를 기대할 수 있다. 다른 스타일의 공간은 또 다른 생각의 순간을 제공한다.
-박진배 뉴욕 FIT 교수/마이애미대학교 명예석좌교수, 조선일보(22-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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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힐 타운
[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산이 많은 이탈리아의 지형적 조건은 언덕 위에 삶의 터전을 제공해 주었다. ‘힐 타운(hill town)’이라 부른다. 오랜 역사에서 외적의 침입과 내전을 겪어오다가 방어적 위치를 구축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산 판탈레오(San Pantaleo). 산이 많은 이탈리아의 지형적 조건은 언덕 위에 사람들의 터전을 제공해 주었다. /박진배 뉴욕 FIT 교수, 마이애미대학교 명예석좌교수
확실한 것은 기원전부터 존재했다는 것이며, 오늘날 보존되어 있는 모습이 만들어진 시기는 비교적 조용하던 중세, 11세기에서 13세기 사이다. 멀리서 보면 언덕 위의 마을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성과 같이 아련하게 보인다. 드라마틱한 경관이다. 그 특이한 풍경이 눈에 거슬리거나 이질적인 요소가 없이 잘 짜여 있다.

페루지아(Perigia). 그 풍경이 눈에 거슬리거나 이질적인 요소가 없이 잘 짜인 조화를 보여준다.(아래)
힐 타운들은 마을의 중세적 분위기를 보존하기 위해서 건물의 높이 제한, 도로의 폭과 돌출에 관한 규정, 상업 건물의 종류 제한, 건축 재료 및 개구부(창이나 문 등)의 크기와 모양 규정 등 까다로운 건축 법규를 적용한다. 마을 외곽으로만 차량을 주차시키고 마을 내부로는 차량을 철저하게 통제하는 것도 공통적이다. 덕분에 진입하는 순간부터는 차량이 없는 옛 모습 그대로를 감상할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은 마을을 아름답게 보존해 주민 스스로가 긍지를 가지게 되는 마음가짐의 발로다.
대부분의 힐 타운들은 체계적인 도시계획과는 상관없이 무작위로 불규칙하게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 요소의 조화가 절묘하다. 좁은 골목을 굽이굽이 지나면 저절로 삼차원의 구성이 이루어진다. 길과 건물의 색채, 질감, 음과 양의 볼륨, 막힌 벽과 열린 공간의 대비가 마치 수백 점의 빼어난 조각 작품을 연속으로 감상하는 것 같다. 저절로 형성되는 이 공간의 연출은 보는 시점마다 변한다.

(좌) 좁은 길을 구비 구비 지나면서 저절로 형성되는 삼차원의 조각 같은 풍경은 보는 시점마다 변화되는 공간 연출을 보여준다./(우) 가끔씩 눈에 들어오는 캄포(campo·광장)나 언덕 아래의 풍경은 건물과 환경의 친밀한 상호 관계를 잘 표현해 준다.
가끔씩 눈에 들어오는 캄포(campo·광장)나 언덕 아래의 풍경은 덤이다. 여기에는 자연 환경과 인간의 생활, 그리고 건물 형태 간의 친밀한 상호 관계를 표현하는 명백함이 존재한다. 지적이고 양식적인 압박에서 탈피한 자유로운 구성, 거주자의 삶과 조경에 꼭 맞게 짜인 형태들, 이탈리아는 실로 아름다운 마을의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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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의 언어
광장의 역사는 길다. 고대부터 그리스의 아고라(Agora), 로마의 포럼(Forum)과 같은 이름으로 존재해왔다. 종종 상거래가 이루어지는 시장과 인접하여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로 자리를 잡으며 자연스럽게 정치와 경제의 마당으로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중세에는 성당이 한가운데 위치하면서 종교적 중심지로서의 기능도 첨가되었다.

로마의 피아자 나보나(Piazza Navona) /박진배 뉴욕 FIT 교수, 마이애미대학교 명예석좌교수
광장은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 특징과 분위기를 가진다. 이탈리아에는 ‘피아자(Piazza)’와 ‘캄포(Campo)’로 불리는 두 종류의 광장이 있다. 사전에 계획되고 기하학적으로 디자인되는, 보통 규모가 큰 광장이 피아자다.
반면 캄포는 원래 ‘땅’이라는 뜻으로, 건물을 짓고 길을 만들다 보니 남는 땅에 생기는 공간이다. 캄포의 바닥이 포장되기 전에는 흙바닥을 경작지로도 사용했다. 그래서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이다. 광장 주변에는 카페와 상점이 도열하고, 어느 골목에서도 연결되어 밤낮으로 사람들이 모인다.

이탈리아 코르토나(Cortona)의 캄포. 다이안 레인 주연의 영화 ‘투스카니의 태양(Under the Tuscan Sun)’의 배경이 되었던 마을이다.
그림 그리는 화가, 대화에 열중한 젊은이, 사색에 잠긴 촌로(村老) 등 다양한 일상을 담는 마을의 중심지다.
아름다운 건축물들로 둘러싸인 파리의 크고 작은 광장은 시민들이 아끼는 공간이다. 해 질 무렵 빨간 차양의 카페 불빛이 광장의 돌바닥에 반사되는 모습은 파리를 대표하는 풍경이다. 특히 부슬비가 오는 날 촉촉이 젖은 바닥의 은은한 빛과 어우러지는 물안개의 이미지는 무척 낭만적이다.

파리의 광장
수도 워싱턴을 비롯한 미국의 몇 도시는 이런 파리의 광장을 모방해서 만들었다. 문제는 미국에서 비가 오면 보통 장대비가 온다는 점이다. 광장이 로맨틱하기는커녕 비를 피할 공간이 없어 낭패가 되었다. 서울에도 접근성과 이용성이 떨어져 외면받는 광장들이 꽤 된다. 접근하기 어렵고, 주변에 아무것도 없고, 차들은 쌩쌩 달리고, 그늘도 없다. 어설프게 흉내 내서 인위적으로 만들면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광장은 그 앞에 기념비적으로 지어진 건축물도 있지만 핵심은 사람들 간의 교류, 피플 워칭(People Watching)이다. 새 대통령은 어떤 광장의 모습으로 국민과 교감을 할지 궁금하다.
-박진배 뉴욕 FIT 교수/마이애미대학교 명예석좌교수, 조선일보(2-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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