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이 이재명’

근래 우리나라 여론조사에서는 ‘샤이 보수’보다는 ‘샤이 진보’가 조사를 왜곡하는 경향이 있다. 20대 총선(2016년)에서는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 야권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나뉘어 여당이던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이 압승하리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결과는 크게 빗나갔다. 민주당(123석)이 새누리당(122석)에 간발의 차이로 이겼다.
▷이듬해 19대 대선(2017년)은 탄핵 직후의 선거로 ‘샤이 진보’가 있을 이유가 없었다. 5년 뒤인 이번 대선에서는 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에 실시돼 본투표 직후 공개된 여론조사에서도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적게는 3.1%포인트, 많게는 7.6%포인트까지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투표 결과는 0.73%포인트 차의 신승(辛勝)이었다. 여론조사 공표금지 며칠 동안 윤 후보에 대한 여론을 불리한 쪽으로 크게 바꿀 만한 사건이 없었기 때문에 ‘샤이 진보’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대선이나 총선 국면에서 수백 번의 여론조사가 이뤄진다. 전국 단위에서 몇몇 후보를 대상으로 하는 대선 여론조사는 많은 지역구의 많은 후보를 대상으로 하는 총선 여론조사보다 정확하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이번 대선 여론조사는 그렇지 못했다. 공표금지 기간 직전 실시된 17개 여론조사에서 윤 후보는 막판 단일화 전 안철수 후보가 포함된 대결임에도 15개에서 이 후보를 앞섰고 그중 4개에서는 오차 범위 밖에서 앞섰다.
▷20대 총선에서 여론조사의 부정확성이 쟁점이 된 후 21대 총선(2020년)부터는 휴대전화 안심번호의 이용이 가능해졌다. 그 때문에 21대 총선 여론조사는 20대 총선보다 정확해졌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과연 그런지는 더 검토가 필요하다. 당시 여론조사는 어느 지역구에서는 더 정확했고 어느 지역구에서는 더 부정확했다. 전국 단위의 몇몇 후보에게 조사가 집중되는 이번 대선 국면에서 그 정확성이 다시 입증돼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여론조사는 현대 정치 활동의 기초 자료다. 여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정치 토론이 이뤄지고 정부와 정당은 그 결과에 맞춰 정책을 수정하기도 한다. 안심번호가 이용 가능해져 휴대전화 등장 이후 발생한 샘플링의 난점은 어느 정도 극복됐다. 다만 응답을 거부하는 샤이한 유권자가 있으면 샘플링을 잘해도 체계적인 왜곡이 발생한다. 샤이한 유권자의 응답을 끌어내려면 조사비를 많이 쓰는 수밖에 없다. 싸구려로 막 하는 여론조사는 여론조사가 아니라 여론조작이다. 여론조사의 질을 높일 방법을 강구하지 않으면 민심(民心)의 방향을 잘못 읽는 후진적 정치 활동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송평인 논설위원, 동아일보(22-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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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집게 출구조사
대선 출구조사 적중을 두고 “과학이자 예술의 경지” “무섭도록 정확한 족집게”라는 말이 나온다. 선거 막판까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5%p 안팎 앞선다는 여론조사들이 쏟아졌는데 정작 출구조사는 윤 후보 우세가 오차 범위 내인 0.6%p일 것이라며 초박빙 승부를 예측했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유권자들이 많았지만 실제 개표 결과는 0.73%p 차 윤 후보 승리로 출구조사와 불과 0.13%p 차이였다.

▶출구조사는 1967년 미국의 여론조사 전문가인 워런 미토프스키가 CBS를 위해 켄터키 주지사 선거에서 처음 실시해 주목을 받았다. 이듬해에는 대선에 적용해 대성공을 거뒀고 이후 여러 방송사가 출구조사 경쟁을 벌였다. 1980년 대선 당시에는 시간대가 다른 동부 지역에서 투표한 유권자의 출구조사 결과가 서부 지역 투표 시간에 보도돼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는 논란을 빚기도 했다.
▶투표를 마치고 나온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출구조사는 여론조사보다 정확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출구조사에도 사전투표라는 변수가 생겼다. 사전투표자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전투표자가 전체 투표자의 거의 절반에 육박한 이번 대선에서도 출구조사가 정확할지 의문이 있었다. 하지만 미리 전화 조사로 사전투표자들 투표 성향을 파악하고 여기에 선관위가 제공한 사전투표자 연령 성별 등 변수를 감안해 예측한 것이 적중했다.
▶국내 대선 출구조사는 1997년이 최초였는데 지금까지 당선 예측이 어긋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번 정도는 아니지만 득표율도 비슷하게 맞혔다. 2017년 대선 출구조사에선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후보에 대해 각각 41.4%, 23.3%, 21.8% 득표를 예측했는데 최종 득표율은 41.08%, 24.03%, 21.41%였다. 하지만 전국 250여 개 지역구 당선자를 맞혀야 하는 총선에선 번번이 빗나갔다. 1996년 총선부터 2012년까지 5회 연속 예측 의석수와 실제 결과가 달랐다. 출구조사에선 이겼으나 실제 개표에선 연거푸 패배한 후보들에겐 ‘출구조사 다선 의원’이란 별칭이 붙기도 했다.
▶이번 대선에선 사전투표를 먼저 개표해 선거 초반에 이재명 후보가 크게 앞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출구조사와 같은 수치로 접근해갔다. 양측 지지자들 모두 마음 졸이며 새벽까지 이어진 이 과정을 지켜봐야 했다. 대선 출구조사와 여론조사 중 어느 쪽이 더 정확한지 경쟁은 다시 한번 출구조사의 압승으로 끝났다.
-최승현 논설위원, 조선일보(22-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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