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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 만든 ‘오징어 게임’을 보다가] [냉장고 속 보리차가.. ]

뚝섬 2023. 12. 20. 05:29

[영국이 만든 ‘오징어 게임’을 보다가] 

[냉장고 속 보리차가 제아무리 시원해도... 짜릿한 사이다에 비할소냐]

 

 

 

영국이 만든 ‘오징어 게임’을 보다가

 

[한현우의 미세한 풍경]

드라마를 리얼리티 쇼로… 상금 456만달러 놓고 456명이 게임
사탕 없던 시절, 가난 잊게 한 ‘뽑기’가 세계인의 게임 되다니
필사적으로 ‘달고나’ 혀로 핥는 외국인들… 왠지 아찔하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리얼리티 쇼로 만든 영국 TV 프로그램을 봤다. 실제 참가자 456명이 1등 상금 456만 달러를 차지하려고 각종 게임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전 세계에서 모인 사람들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거쳐 설탕 과자를 동그라미나 세모 같은 모양으로 잘라내는 게임을 했다. 그들은 드라마에서 본 대로 흉내 냈다. 침을 발라 과자를 흐물흐물하게 만들고 도형의 가장자리 선을 따라 바늘을 긁어가며 과자를 떼어내려 애썼다. 피부색이 달라도 혀는 다들 붉었다. 그 혀로 설탕 과자를 맹렬히 핥아 침 범벅을 만들었다.

 

한국 드라마에서 어른들이 아이들 놀이로 생사가 갈리는 것은 그 나름의 부조리극 장치였다. 그러나 외국인들이 필사적으로 설탕 과자를 핥는 모습은 그들이 젓가락으로 깻잎 무침을 떼어내려고 기를 쓰거나 산낙지를 삼켜보려고 입을 오물거리는 것과는 매우 다른 느낌을 줬다. 할리우드 영화에 한국인이나 한국 풍경이 등장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아주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달고나’라고 알려진 그 놀이 겸 간식은 내 어릴 적 서울에서 ‘뽑기’라고 불렀던, 엄마들이 사 먹지 말라고 엄포 놓곤 했던 길거리 불량 식품이었다. ‘달고나’는 다른 식품 포장지에 써있었던 이름으로 기억하는데, 인터넷을 뒤져 보니 녹여 먹는 포도당 덩어리에 그런 상표가 있었다고 한다. 연탄불에 설탕을 녹여 베이킹 소다 넣고 저으면 뽑기가 되고, 소다를 좀 더 넣으면 두툼하게 부풀어 오르는데 뒤엣것을 ‘소다빵’이라고 했다. 뽑기를 잘 뽑으면 하나 더 받을 수 있었고 소다빵은 그런 조건이 없었다. 드라마와는 달리 뽑기에서 바늘 쓰는 것은 반칙이었다. 누군가 몰래 바늘로 뽑기를 뽑아 오면, 뽑기 장수는 그런 아이를 기막히게 적발해 추가 증정 이벤트에서 제외했다.

 

초등학생 형은 동생에게 “너는 어차피 뽑기 못하니까 그냥 소다빵 먹어” 하고 기회를 차단하곤 했다. 동생이 덜 여문 손으로 서툴게 뽑기를 만지다 뚝 부러뜨리면 뒤통수를 때렸고, 울며 집에 돌아간 동생은 빗자루 들고 달려 나온 엄마로 바뀌기 마련이었다. 코흘리개 동생은 곧 빠질 앞니로 소다빵을 야금야금 먹으면서 형이 뽑기 뽑는 모습을 지켜봤다. 형도 코를 흘렸지만 가끔 오른쪽 소매로 능숙하게 콧물을 정리했다. 뽑기 풍경을 떠올리면 콧물이 아이들 소매에 얼어붙어 햇빛에 반들반들 빛나던 것이 생각난다. 아마도 이맘때 같은 계절이었던 모양이다.

 

설탕 녹인 물에 베이킹 소다 넣어 굳힌 것이니 좋은 음식은 아니지만 못 먹을 것도 아니었다. 엄마들이 뽑기를 못 사 먹게 했던 이유는 그 영양 성분이 불량해서라기 보다 뽑기 장수 주변에 아이들이 몰려 있는 불량한 환경 때문이었다. 그때 아이들은 학원도 가지 않았고 집에 있지도 않았다. 죄다 골목에 몰려 나와 해질 때까지 있었다. 나이와 성별과 덩치에 따라 제각각 그룹을 만들어 놀았다. 드라마에 나오는 놀이 대부분이 실제 그때 했던 것들이었다. 다만 ‘오징어’는 그때 ‘오징어 가이상’이라고 불렀는데 ‘가이상’은 ‘가이센(合戰)’이란 일본어가 변한 것이라고 한다.

 

골목마다 흩어져 놀던 아이들은 뽑기 장수가 오면 광장의 비둘기 떼처럼 한데 모였다. 덩치 큰 아이들이 꼬맹이들 뽑기나 소다빵을 빼앗아 먹기도 했고 남자애들이 여자애들 팔뚝을 툭 쳐서 뽑기를 망가뜨리기도 했다. 형들과 오빠들이 동생들 대신 싸웠고 집에서 뛰쳐나온 엄마들은 빗자루로 아이들 궁둥이를 몰아 집으로 데려가면서 나지막하고 단호하게 속삭였다. “엄마가 뽑기 하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그런 뽑기였다. 전통 음식도 아니고 한국의 맛도 아니다. 6·25 전쟁 때 미군 물자가 들어오던 부산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는 싸구려 설탕 과자일 뿐이다. 사탕도 초콜릿도 없던 시절에 전쟁과 가난을 잠시 잊게 해준 진통제가, 잘만 뽑으면 60억원 상금에 한 발 다가설 수 있는 세계인의 게임이 된 셈이다. 나는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느꼈던 이상한 기분이, 내 어릴 적 뽑기와 지금의 달고나가 충돌해 휘몰아치면서 생긴 현기증임을 깨달았다.

 

싸이의 ‘강남 스타일’은 전 세계에서 폭발적 인기를 얻었지만 이후 그가 세계를 겨냥해 내놓은 노래들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 나는 그 이유를 아직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어쩌면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과 영국 리얼리티 쇼 ‘오징어 게임’ 사이에 그 해답이 있는지도 모른다. 대중문화란 스포츠와 달라서, 과녁을 향해 쏜다고 엑스텐에 꽂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한현우 문화전문기자, 조선일보(23-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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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 속 보리차가 제아무리 시원해도... 짜릿한 사이다에 비할소냐

 

[김동규의 나는 꼰대로소이다] 

 

항간에 좋지 않은 식품이라는 말이 있는 줄 뻔히 알면서도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사람이 아직도 사시사철 단맛의 톡 쏘는 청량음료를 즐긴다. 술을 못하는 금주가에게 목이 탈 때 들이켜는 맥주 한 모금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면서 식도를 따끔거리게 하는 쾌감을 대신하고, 과식으로 배가 더부룩할 때 가스가 트림을 유도하니 체증이 가시면서 속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사실 공연한 핑계이고 솔직히 털어놓으면 코가 찡하면서 가슴이 시원한 맛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습관적으로 손이 가는 거다.

 

건강을 생각하라는 식구들 성화에 잠시 마음이 움츠러들어 아내에게 견물생심이니 앞으로는 절대 단 음료수를 사지 말라고 마음에도 없는 큰소리를 탕탕 치지만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음료수 칸이 텅 비어 있으면 적잖이 섭섭하다. “여보, 마실 게 다 떨어졌는데 어떻게 하지.” 하루가 멀다고 사내대장부의 변덕이 죽 끓듯 하니 무던한 아내도 남편의 속마음을 종잡을 수 없어 당황하곤 한다.

 

당분이 많이 들어 있다는 지적에 다이어트 음료를 마셔 보지만 기대한 맛이 아니고, 전해질을 보충해 준다는 스포츠음료는 맛이 찝찔해 취향에서 벗어나고, 설탕이 안 들어간 순수 탄산수는 담백해도 왠지 2 프로 부족한 느낌이다. 뿌루퉁해 있는 서방님의 불편한 심기를 눈치챈 안방마님은 다시 냉장고 안을 각종 음료수로 채우고 의지가 박약한 남편은 엷은 웃음을 실실 흘리며 다시금 병뚜껑을 따지 않을 재주가 없다. 여기저기 치아가 허물어져 수시로 치과 문턱을 넘나들고 아랫배는 슬슬 맹꽁이를 닮아가고 있으니 두말없이 단맛의 탄산음료를 멀리해야 마땅한데도 나이를 거꾸로 먹는지 오늘도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짜릿함을 끝내 이기지 못하고 있다.

 

아주 어려서 경험했던 ‘시날코’(독일이 원산지로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수입되어 판매된 탄산음료)가 기억에 어렴풋한데 본격적으로 탄산음료를 접한 건 초등학교 소풍 때 어머니께서 륙색에 넣어주시던 사이다였다. 배낭 속에 사이다가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뿌듯했는데 아까워서 차마 마시지 못하고 그대로 집으로 가져오기도 했다. 방에 숨어서 몰래 혼자 마시려고 병을 땄는데, 아뿔싸! 미처 손쓸 겨를 없이 거품이 용솟음쳐 사이다의 반 이상이 넘쳐 버렸을 때 코피를 쏟은 것보다 마음이 더 아팠었던 웃지 못할 추억도 있다.

 

초등학교 시절 하굣길에 가지각색 먹거리가 장사진을 치고 어린 학생들을 유혹했다.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구수한 번데기, 곧게 편 안전핀으로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해삼과 멍게, 포근하고 달콤한 핑크빛 솜사탕, 양은솥으로 한가득 삶아내는 비릿한 고둥, 달콤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달고나와 뽑기, 그때나 지금이나 항상 사랑받는 국민 음식 떡볶이 등이 호시탐탐 코 묻은 돈을 잔뜩 노리고 포진해 있었다. 초여름에 접어들면 형형색색의 색소를 뿌려 먹는 빙수, 나무통 속 얼음 소금물에 든 아이스케이크, 얼음덩어리가 둥둥 떠 있는 냉차가 대열에 가세했다.

 

어린 마음에 어찌 눈길이 가지 않을까마는 가진 돈이 없고 학교가 파하면 한눈팔지 말고 곧장 집으로 돌아오라는 어머니의 지엄한 명령을 거역할 배포가 부족했다. 더구나 길거리 불량식품을 먹으면 배탈이 난다고 못이 박히게 듣던 터였다.

 

꽤 더운 여름날 삼각 비닐봉지에 담긴 음료 때문에 어머니와의 약속이 깨지고 말았다. 다른 먹거리는 그런대로 참겠는데 왠지 모르게 새콤달콤해 보이는 주스가 정말 마시고 싶었다. 무엇에 홀린 듯 자신도 모르게 오렌지색 음료를 쭉쭉 빨아 먹었는데 뼛속까지 시원했던 당시의 경험은 황홀했다. 보지 않고도 귀신처럼 자식의 일탈을 집어내시는 어머니의 신통력에 짐짓 속이 켕겼으나 다행히(?) 알아차리지 못하셨고 엄중한 경고 말씀과 달리 설사도 하지 않았다.

 

만물을 다스리는 조물주의 계산된 의도인지 아니면 예기치 못한 실수인지 모르겠으나 대체로 사람들은 몸에 안 좋은 음식은 공연히 더 먹고 싶고, 건강에 좋다는 음식은 쉽게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더운 흰쌀밥은 밥만 먹어도 입속에 단맛이 도는데 거무튀튀한 잡곡밥을 씹으면 혀가 깔깔하다. 멸치 국물의 잔치국수나 수제비의 맛이 구수해도 치즈가 듬뿍 들어간 스파게티나 라면이 먼저 생각난다. 간식거리인 찐 옥수수나 감자, 고구마보다 달콤한 케이크나 초콜릿, 짭짤한 스낵에 눈길이 더 간다. 냉장고 속의 보리차가 제아무리 시원해도 탄산음료를 벌컥벌컥 들이켠 후 끄윽 하고 한바탕 긴 트림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

 

탄수화물, 동물성 기름이나 열량이 높은 먹거리를 줄여야 한다고 굳게 다짐하다가도 얼마나 오래 살겠다고 몇 남지 않은 낙(樂)인 식욕까지 억눌러야 하냐는 생각에 부아가 치밀기도 한다. 연륜이 쌓이면서 마음과 행동이 순리에 따라 거침이 없어야 하는데 오히려 사소한 것에 더 집착하게 되니 수양이 부족한 사람은 세월이 흘러도 소인의 굴레를 벗기 어려운 모양이다.

 

아내가 탄산음료 대신에 내놓는 시원한 생수를 마셔 보지만 원하는 맛이 아니다. 이번에는 또 뭐라고 그럴듯한 핑계를 대서 아내를 구워삶지? 이순(耳順)을 넘어 고희에 이른 나이의, 평생 남의 건강을 챙기던 의사가 자신의 건강 관리를 망각한 채 엉뚱한 꾀를 부리고 있다.

 

-김동규 서울대 신경외과학 명예교수 · '마음 놓고 뀌는 방귀' 저자, 조선일보(22-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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