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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파기 논란]

뚝섬 2022. 4. 2. 06:02

민주화 이후 정권 교체가 가능해지면서 문서 파기를 둘러싼 신구 정부 간의 갈등이 반복되고 있다. 여야 간 첫 수평적 정권교체가 된 김대중 정부 출범 직전이 가장 정도가 심했다. 당시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가 새 대통령 취임 전 2, 3개월 동안 문제가 될 만한 서류를 태우느라 국정원 청사 주변 하늘이 새까만 연기에 뒤덮였다는 풍문이 나돌기까지 했다.

▷윤석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지난달 29일 “전자·종이 문서와 보고서 등을 무단으로 파기하지 말라”는 취지의 공문을 국정원과 각 정부 부처, 위원회 등에 보냈다. 업무용 컴퓨터나 하드 교체, 자료 무단 삭제도 금지했고,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 온 정책과 관련한 방침 자료마저 지우지 말라고 했다. 인수위는 “적폐청산을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은 아니다”라고 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전형적인 점령군의 태도”라고 반발하고 있다.

▷요즘 정부 부처는 거의 100% 전자문서로 결재한다. 문서 파일과 작성 주체, 보고 라인, 파기 여부 등도 서버에 남는다. 그렇다고 문서 삭제가 불가능한 건 아니다. 월성 원자력발전소 조기 폐쇄에 대한 감사원 감사를 앞둔 2019년 12월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이 청와대(BH) 보고 문건을 덮어쓰기 형태로 삭제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서버를 통째로 바꾸거나 하드디스크를 교체하는 것도 전자문서를 파기하는 방법 중 하나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후 국정원 내부에선 정권교체 전에 내부 서버를 폐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고 한다. 국정원장이 결재를 하지 않아 이 계획은 없던 일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일주일 뒤인 같은 해 5월 16일 당시 조국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은 국정원 등과의 상견례 자리에서 ‘문서 무단 파쇄나 유출, 삭제 금지’를 지시했다. 곧 외부 인사가 참여한 국정원 적폐청산TF는 내부 서버에 있는 문서를 근거로 감찰을 했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서 작성한 문서를 캐비닛에서 찾았다며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 대통령기록물법이 제정돼 대통령의 정책 결정 과정을 알 수 있는 주요 기록물에 대한 공식 이관 절차가 생겼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노 정부가 남긴 자료 중에 쓸 만한 게 없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노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로 가져간 이지원(e-知園)을 회수해 갔고, 거기에 남아있던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의 내용을 놓고 신구 권력이 충돌했다. 후진적인 문서 파기 논란을 이제는 끝낼 때가 됐다. 어차피 복원될 문서를 어설프게 삭제하는 공무원이 더 나와선 안 될 것이다. 새 정부도 필요 이상으로 현 정부를 자극하지 말아야 한다.

 

-정원수 논설위원, 동아일보(22-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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