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결선투표

10일 치러진 대선 1차 투표 결과 중도파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극우파 마린 르펜이 각각 27.8%, 23.1%를 얻어 2주 뒤인 24일 2차 결선투표에서 맞붙게 됐다. 프랑스는 두 번 선거를 치러 대통령을 뽑는다.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1, 2위 후보가 양자 대결로 승부를 결정짓는다. 두 사람은 2017년 대선에 이어 재대결이다. 당시는 마크롱이 르펜을 따돌렸다.
▷극좌파 장뤼크 멜랑숑은 21.9%로 3위를 차지했다. 결국 멜랑숑의 지지자들이 결선투표에서 누구를 지지하느냐에 대선의 향방이 달렸다. 멜랑숑 자신은 르펜은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멜랑숑의 지지자들의 의견은 마크롱, 르펜, 지지 후보 없음 사이에서 갈리고 있다. 언론인 출신인 에리크 제무르는 7.0%의 득표로 4위를 차지했다. 제무르는 극우 성향으로 출마 초 큰 관심을 끌었으나 르펜의 아성을 뚫지 못해 르펜의 대체재가 되지 못함이 입증됐다.
▷프랑스의 전통적 우파인 공화당과 전통적 좌파인 사회당은 이번 대선에서 완전히 몰락했다. 공화당은 5년 전에만 해도 19.9%의 득표로 3위를 차지했으나 이번에는 고작 4.7%를 얻었다. 5% 미만인 정당은 최대 800만 유로(약 108억 원)까지 환급받는 선거비용도 돌려받지 못한다. 5년 전 이미 몰락을 경험한 사회당은 이번에는 1.7%를 얻어 꼴찌에 가까웠다. 공화당을 세운 샤를 드골과 사회당을 세운 프랑수아 미테랑이 지하에서 통곡할 일이다.
▷이번 대선 1차 투표는 공화당이 몰락한 자리에 극우파 르펜의 ‘국민전선’, 사회당이 몰락한 자리에 극좌파 멜랑숑의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가 들어서는 것으로 프랑스 정치판의 재편이 끝났음을 보여준다. 5년 전 중도파 정당인 ‘전진’을 창당한 마크롱은 그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르펜 대 멜랑숑, 즉 극우파 대 극좌파의 결선투표를 막은 것만으로 이미 큰일을 했다.
▷프랑스 결선투표는 다당제 상황에서 극단적 성향의 후보가 뽑히는 걸 막아왔다. 20년 전 마린 르펜의 아버지 장마리 르펜과 사회당 미테랑이 맞붙은 결선투표에서는 극우파에 도저히 표를 던질 수 없는 우파 유권자들까지 상대적으로 온건한 미테랑을 찍었다. 5년 전에는 마크롱을 찍었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고 보는 예상이 우세하다. 극우파와 달리 극좌파는 한 번도 결선투표에 진출하지 못했다. 이번에 멜랑숑이 조금만 더 지지를 얻었다면 르펜을 따돌리고 결선투표에 진출할 뻔했다. 극우파든 극좌파든 어느 쪽이 결선에 올라와도 결선투표는 정치의 극단화를 막는 기능을 꽤 잘하리라는 기대를 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송평인 논설위원, 동아일보(22-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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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호칭
조선 시대 궁궐엔 건물에도 품계가 있었다. 왕이 업무를 보던 전(殿), 왕족이나 정승이 쓰던 합(閤), 판서급이 쓰던 각(閣) 등이다. 임금이 묵던 전과 ‘그 아래 엎드려 아뢴다(下)’는 말을 합쳐 ‘전하(殿下)’라고 불렀다. 황제를 뜻하는 ‘폐하(陛下)’는 궁전 ‘섬돌(陛)’ 층계 아래에서 우러러 본다는 뜻이다. ‘합하(閤下)’는 왕족이나 정승을, ‘각하(閣下)’는 판서 이상 대신을 지칭했다.

▶일본 메이지 시대엔 고위급 군 장성을 각하라고 했다. 일제 때는 총독을 ‘갓카’라고 불렀다. 이승만 정부에선 대통령을 각하로 부르도록 했다. 한때 부통령, 총리, 고위 장성까지 각하로 불러 각하 호칭 폐지론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박정희 정부 들어 각하는 대통령만의 고유 존칭이 됐다.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은 박 전 대통령을 시해할 때도 “각하”라고 불렀다.
▶'보통 사람’을 강조한 노태우 정부는 각하를 가급적 쓰지 않도록 했다. 김영삼 정부는 공식 석상에서 금지했다. 그래도 청와대 내에서 자신들끼리는 모두 ‘각하’라고 했다. 김대중 정부는 ‘대통령님’으로 부르라고 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경호처장 등은 여전히 각하라고 불렀고, 박근혜 정부 총리 후보자는 공식 행사에서 ‘각하’를 세 차례 썼다. 시중에선 ‘가카’란 말로 비하하기도 했다. 1990년대 언론은 대통령 당선인을 ‘김영삼·김대중씨’라고 칭했다. 하지만 2002년 이후 ‘씨’는 사라지고 ‘당선인’으로 굳어졌다. 높임말인 ‘씨’가 시중에선 동료·부하를 부를 때 쓰인다는 이유에서다.
▶대통령 가족의 호칭도 변했다. 영부인(令夫人)은 원래 남의 아내를 높인 말이지만, 대통령 부인의 존칭이 됐다. 권위주의 논란이 일자 이명박·문재인 정부는 영부인 대신 ‘여사’로 불러달라고 했다. 일부 언론이 문 대통령 부인을 ‘김정숙씨’라고 했지만 지지층의 비판에 결국 여사로 바꿨다. 1990년대까지 대통령 아들과 딸도 ‘영식(令息)’ ‘영애(令愛)’라고 존칭했다. ‘영식님’이라고 불린 대통령 아들도 있었다.
▶MBC가 방송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박근혜씨’라고 불러 논란을 빚었다. 그러자 MBC 3노조가 내부 비판을 하기도 했다. 문 정부 청와대 수석도 작년 한때 ‘박근혜씨’라고 했었다. 탄핵 당했으니 예우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다. 하지만 ‘전 대통령’은 ‘각하’나 ‘영부인’ 같은 특별한 존칭이나 예우가 아니다. 굳이 ‘씨’라는 호칭을 쓰는 것은 깎아내리려는 의도일 것이다. 야박해 국민 정서에도 맞지 않을 것 같다.
-배성규 논설위원, 조선일보(22-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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