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험대 오른 한국 민주주의
[동아시론]
정치적 이익 위해 민주원칙 배반 민주당
한국 민주주의 앞날 위협 요소로 전락
냉철한 역사인식 바탕 자기혁신 해야 한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한국 민주주의는 다시 역사의 시험대에 오른다. 헌정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을 탄핵한 지 5년 만에 다시 맞이하는 순간이다. 전 세계 국가들의 민주주의를 480여 세부 항목을 통해 1900년부터 매년 측정하는 ‘민주주의의 다양성’ 지표만 놓고 보면, 지난 5년 한국 민주주의는 그 이전 시기보다 꽤 향상됐다고 평가받는다. 이는 정부와 의회를 구성하는 정치 엘리트와 정당들 덕분이라기보다 2016∼2017년 6개월 동안 광화문광장을 수놓은 수많은 ‘촛불 시민’이 만들어낸 성과에 기인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 시민들의 열망과 기대를 안고 출범한 문재인 정부 5년이 지나고 다시 새 정부 출범을 사흘 앞둔 지금,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보다는 걱정과 우려가 더 많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이런 심정이 드는 첫 번째 이유는 처음 맡은 선출직 공직이 어쩌다 대통령이 되어버린 ‘초짜 정치인’ 대통령은 대의 민주주의가 본질적으로 품고 있는 ‘주인과 대리인 문제’를 심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와 같은 대통령제 민주주의에서 특히 심각한 공통된 문제이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비롯해 중남미 국가들에서 빈번히 등장한 ‘초짜 정치인’ 대통령들은 국민의 주권을 잠시 이양 받은 충실한 대리인으로서 역할하기보다 나라의 새로운 주인이라도 된 듯 초법적 권력을 휘두르는 통치 행태를 보였다. 그런 대통령들이 통치한 국가들의 민주주의는 그 기간 눈에 띄게 쇠퇴한 것 또한 사실이다.
두 번째 이유는 새 정부가 발 딛게 될 정치적 토양 때문이다. 역대급 비호감 선거였음에도 77%를 넘는 높은 투표율과 0.73%포인트 차로 승패가 갈린 선거 결과는 보수와 진보를 표방하는 양대 진영으로 첨예하게 갈린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당파적 차원에서 양극화된 유권자 지형은 상대방에 대한 적대감과 혐오를 부추겨 정치적 이득 챙기기를 끊임없이 유혹한다. 이와 더불어 60% 가까운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거대 야당과 소수파 집권당으로 분점된 권력 지형은 양당 모두 당파적 적대감에 기대 정치적 지분을 유지하는 공생관계를 한층 더 강화하라고 속삭인다. 이러한 토양은 행정부와 의회, 여당과 야당, 그리고 각 당의 강성 지지자들 간 갈등과 정치적 교착 상태를 상시화하고 시민들의 삶의 문제를 정책적 우선순위의 뒷자리에 위치시킨다. 고단한 일상의 생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민주주의는 체제 자체에 대한 회의와 불신을 키워 서서히 죽어간다는 것이 최근 전 세계적 민주주의 퇴행의 위기가 던진 경고임을 떠올리게 한다.
한국 민주주의의 향후 5년이 출발점부터 불안해 보이는 또 다른 이유는 민주화 이후 가장 많은 의석을 보유한 거대 야당이라는 역사적 지위를 가지게 된 더불어민주당의 현재 모습이다. 대선이 끝난 지 두 달이 다 되도록 당 차원의 평가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를 언제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계획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일단 지방선거부터 치른 후 함께 평가하게 될 거라는 한 줄짜리 인터뷰만이 떠돌 뿐이다. 사실 지난 5년 동안 민주당이 주도해서 어떤 성과를 냈는지 떠올려 보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검수완박’으로 대표되는 검찰개혁 구호만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스스로 개정한 선거법을 무력화시킨 위성정당 창당과 폭등한 집값과 전셋값으로 대표되는 정치개혁과 민생개혁의 실패가 있다. 이는 민주당에 대해 너무 가혹한 평가라 볼멘소리를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더더욱 민주당의 대선 평가는 선거에 국한된 근시안적 평가가 아니라 지난 5년 집권당이자 의회 다수당으로서 민주당의 공과에 대한 종합적 평가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선거에 지고도 평가도 못 하고 있는 정당이라는 민주당의 현실은 평가 과정이 계파 간 책임 전가와 책임 회피의 이전투구로 전락할 수 있는 계파정치의 속내와 맞닿아 있음을 알기에 ‘과연 할 수 있을까?’라는 짙은 의구심으로 귀결된다.
민주당의 현재 모습은 한국 민주주의를 견인해 왔다고 자부하는 역사적 정통성과 정치적 정당성을 상실해 온 지난 5년의 궤적과 중첩된다. 평등, 공정, 정의를 내세워 집권했지만 그 가치들을 배반하며 살아온 정치 엘리트들을 앞세웠고 눈앞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민주적 원칙과 가치를 타협했다. 이제는 한국 민주주의의 앞날을 걱정하게 만드는 하나의 요인이 되어버린 민주당에 대한 우려를 기대로 바꾸기 위해서는 현재에 대한 역사 인식을 냉철히 하는 것부터 시작하길 권한다. 제대로 된 역사 인식이 있어야 제대로 된 평가와 성찰이 가능하고 제대로 된 자기 혁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재관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동아일보(22-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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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권은 순순히 물러나지 않는다
[강천석 칼럼]
대통령 집무실 내줘도 여의도 저항 더 험악해질 것
선거는 끝나도 선거운동은 끝나지 않는 나라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백서 발간 기념 국정과제위원회 초청 오찬에 앞서 조대엽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으로부터 백서를 전달받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민국은 현재의 정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눈에 띄게 줄었다. ‘안개 정국(政局)’이란 1980년대 유령(幽靈)이 스멀스멀 다시 피어나고 있다. 대선 전에도 이 정권이 선거에 패배하면 순순히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떠돌긴 했다. 다들 그런 이야기를 지나친 강박증(强迫症)이라며 귓전으로 흘리며 물리쳤다. 이제와 보니 ‘그럴 리가…’ 하던 사람만 순진한 사람이 돼버렸다.
1987년 헌법 체제가 들어선 이후 최초로 퇴임 대통령과 그의 정당이 선거 결과에 사실상 불복(不服)하며 조직적 저항을 벌이고 있다. 되돌아보면 수상쩍은 발자국이 여럿 찍혔다. 대통령은 선거가 끝난 후 기회 있을 때마다 ‘역대 가장 적은 표차(票差)로 당락이 결정됐다’는 말을 빠뜨리지 않았다. 순진한 측은 이번에도 ‘그래서 통합과 포용의 정치가 필요하다’는 뒷부분을 강조하기 위해서겠거니 하고 넘어갔다. 문재인 대통령이 ‘통합과 포용’이란 단어를 들먹이는 것은 면구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그게 복선(伏線)이었던 모양이다.
‘근소한 표차’라는 말은 선거 결과의 법적 효력과 아무 관계가 없다. 선거 결과에 담긴 정치적 의미를 새겨보라고 주문할 때 끌어다 쓰는 표현이다. ‘표차’와 ‘법적 효력’을 연결시키면 세상의 모든 민주주의가 무너진다. 미국 대선 경우만 해도 1960년 케네디-닉슨의 표차는 11만표였고 2000년 부시-고어, 2016년 트럼프-힐러리 대결에선 오히려 패자인 고어와 힐러리가 직접 투표에서 각각 53만표·290만표를 앞섰다. 그래도 미국식 선거 제도에 승복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언론에 직접 브리핑하겠다. 광화문 광장에서 대토론회를 열겠다’ 했지만 언론을 가장 기피했던 대통령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중 150번 언론 앞에 섰던 데 비해 문 대통령은 10번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던 대통령이 대선 이후 부쩍 얼굴을 자주 나타냈다. 마음에 드는 TV앵커를 불러 몇 시간씩 녹화(錄畫)를 하기도 했다. 자신에 대한 국민 평가와 역사의 평가가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짐승도 마지막 울음은 선(善)하다고 한다. 중소기업 과장도 후임자에게 유익한 교훈을 남겨주고 싶어 한다. 기운을 북돋는 덕담 한마디라도 건네려고 한다. 자신의 업적을 낮춰야 훗날 평가가 올라가는 행운도 누릴 수 있다. 대선 후 대통령의 언행(言行)은 이런 상식을 모조리 뒤집었다.
대통령은 후임자를 향해 ‘위험하다’ ‘걱정된다’ ' 마땅치 않다’ ‘잘 알지도 못하고 한다’는 표현을 예사로 날렸다. 역대 대통령 어느 누구도 이런 뒷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얼굴은 화장해도 뒤태는 꾸밀 수 없다. 이게 화장하지 않은 대통령 본래 얼굴인 듯하다.
대통령은 정권의 업적을 자랑하는 자료를 모으는 국정백서(白書) 편찬위원들 앞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훗날 역사가 알아줄 것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실제는 그 말대로 됐다(평가가 높아졌다)’고 했다.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평가도 그런 전례(前例)를 쫓을 것으로 기대한다면 접는 게 낫다. 노 대통령은 ‘우리 정권은 실패했다’고 했던 대통령이다. 자기 입으로 풍선을 불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 자신과 부하들을 지키기 위한 바리케이드 설치 작업에 몰두했다. 대통령과 민주당은 위장 탈당·국회 본회의 시간 당기기·국무회의 미루기 등 동원 가능한 모든 사술(詐術)을 동원해 ‘문재인 법원’이 돼버린 대법원까지 ‘위헌 가능성이 크다’했던 검수완박법을 의결·선포했다. 감옥행(行)이 내다보이던 군부 출신 대통령들이 자존심 때문에 차마 손대지 못했던 일이다.
이 정권은 순순히 물러나지 않는다. 대통령 집무실을 내줘도 여의도에서 저항은 계속된다. 정부군은 저항군에 비해 수적으로 열세(劣勢)다. 시가전(市街戰) 양상으로 진행되는 인사청문회는 예고편(豫告篇)이다.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서는 이보다 더 한 사태가 벌어질지 모른다. 2024년 4월 총선까지 이런 상태가 이어질 수도 있다. 한국은 선거는 끝나도 선거 운동은 끝나지 않는 나라가 돼버렸다.
여의도에 당선인 편이 늘어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국민 가운데서 편을 늘려야 한다. 당선인의 인사(人事) 방식과 내용이 마뜩지 않아도 당선된 것만으로도 첫 공(功)은 세운 거라며 입을 닫고 있는 국민들 말이다. 겸손해져야 한다. 국민에게 더 겸손하게 비치는 쪽이 최종 승자(勝者)다.
-강천석 고문, 조선일보(22-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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