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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앞서간 강수연] [영화배우 강수연] [안녕이라고 한 적 없는 것처럼]

뚝섬 2022. 5. 9. 06:21

너무 앞서간 강수연

 

여섯 개 보조개로 웃던 배우 강수연. 향년 56세로 7일 별세한 강수연은 아역 배우 출신이다. 모든 아역 배우들이 그러하듯 그에게도 연기 변신을 시도할 때가 왔고, 스무 살이던 1986년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에서 19금 연기에 도전한다. 이듬해 개봉하자 국내에선 ‘수위’에 관한 논란만 시끄러웠는데 뜻밖에 해외에서 뜨거운 반응이 전해졌다. 한국 최초의 ‘월드 스타’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강수연은 1987년 아시아 여배우로는 처음으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씨받이’의 옥녀 연기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주요 영화제 수상은 한국영화 68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당시 신예 여배우 투톱은 동갑내기 동명여고 출신인 조용원과 강수연. 임 감독은 옥녀 역할에 영화 ‘땡볕’으로 앞서 스타덤에 오른 조용원을 먼저 떠올렸지만 ‘암팡진 조선 미인’ 강수연을 선택했다. 그는 임 감독의 ‘아제 아제 바라아제’로 1989년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월드 스타 지위를 굳혔다.

▷강수연이 해외에서 연거푸 수상하던 시기는 경제 문화적으로 약진하던 동아시아 국가의 영화계가 작가주의 감독과 스타성 있는 여배우를 앞세워 세계 시장 공략에 나서던 때다. 중국 5세대 감독 장이머우에게 궁리, 홍콩 뉴웨이브 감독 왕자웨이에게 장만위가 있듯 임 감독의 페르소나는 강수연이었다. 강수연이 연기한 임 감독 특유의 한 서린 에로티시즘에서 서구 영화계는 이국적 미학을 발견했고, 둘은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문화적 자산이 됐다.

 

▷민주화 이후 새로운 영화 실험에 나서는 코리안뉴웨이브 감독들이 등장하는데 강수연은 이들 작품에서 전통적인 수동적 여성상을 벗고 현대 여성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준다. 장선우 감독의 ‘경마장 가는 길’, 박광수의 ‘베를린 리포트’, 이명세의 ‘지독한 사랑’, 임상수의 ‘처녀들의 저녁식사’가 이 시기 대표작들이다. 국내에선 호평받았지만 해외 평단은 냉담했다. 2000년대 이후 강수연은 ‘배우’보다는 ‘영화인’으로 바쁜 삶을 살게 된다.

▷영화계에선 그가 스물하나 너무 어린 나이에 월드 스타가 된 것이 배우로서는 독이 됐다고 아쉬워한다. 강수연에 이어 두 번째 해외 3대 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자(2007년 칸영화제 ‘밀양’의 전도연)가 나오기까지 20년이 걸렸으니 고인이 얼마나 앞서간 배우였는지 알 수 있다. 임 감독은 “요즘 같은 배우 관리 시스템만 있었다면 더 큰 배우가 됐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돈 때문에 ‘가오’를 버리는 법 없었던 영화배우 강수연의 눈부시게 아름답던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너무 앞서간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

-이진영 논설위원, 동아일보(22-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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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우 강수연 

 

이문열에 빠져 살던 대학 시절, 영화로 제작된 장편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를 보러 극장에 갔다. 한 남자를 사랑하면서도 그를 한사코 밀쳐내야 했던 여주인공 윤주의 내면을 강수연이 어떻게 표현했을지 궁금했다. 보는 내내 눈을 뗄 수 없었다. 파티장 장면은 지금도 생생하다. 강수연은 붉은 웃옷을 벗어 던지고 춤추며 미친 듯 웃었다. 연인을 떠나 여러 남자를 전전하던 윤주의 좌절을 그렇게 표현했다. 연인이 쏜 총에 최후를 맞는 순간보다 그 장면이 더 슬펐다.

 

▶강수연은 자타 공인 국민배우다. 연기 잘하고 인기 많은 배우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많은 이에게 삶을 함께한 배우다. 세 살에 데뷔한 강수연은 “내가 길거리 캐스팅의 원조”라고 말하곤 했다. 내 기억 속 가장 오래된 배우도 강수연이었다. 초등학생이던 1970년대 TBC 아동극 ‘소년 홍길동’에서 처음 그녀를 만났다. 청소년 시절엔 청춘 드라마 ‘고교생 일기’를 보며 가슴 뛰었다. 20대 땐 ‘추락하는…’에, 30대 땐 사극 ‘여인천하’에 매료됐다.

 

▶많은 아역 스타가 받아들인 단명의 한계를 강수연은 거부했다. 물불 가리지 않는 연기로 아역의 저주를 극복하며 ‘깡수연’으로 불렸다. 스물한 살이던 1987년, 임권택 감독 영화 ‘씨받이’에서 출산 장면 하나를 4박5일 걸쳐 찍었다. “나는 이렇게 처절하게 연기한다”고 외치는 듯했다. 2년 뒤 ‘아제 아제 바라아제’에선 “비구니 역이니 머리 깎는 것은 당연하다”며 아무렇지 않게 삭발을 단행했다. 파르스름한 민머리가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나 싶었다. ‘고래사냥2′에선 대역 쓰자는 권유를 물리치고 원효대교에서 한강에 뛰어드는 장면을 직접 찍었다. ‘고래사냥 1′의 여주인공 이미숙만 못하다는 평가를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강수연 연기는 세계 영화인과 팬들의 시선도 사로잡았다. 영화 제작자 이태원, 감독 임권택과 함께 세계로 나갔다. ‘씨받이’와 ‘아제 아제…’로 베네치아와 모스크바에서 잇달아 여우주연상을 거머쥐며 한류의 씨앗을 뿌렸다. 영화인들 가슴에 “우리도 가능하다”는 웅지를 심었다. 강수연 키즈들이 그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영화를 찍을 때마다 “제대로 못 해내면 다시 기회가 없을 것 같다” “절벽 끝에 서 있는 마음으로 연기한다”던 그녀가 갑작스레 우리 곁을 떠났다. 올 연말쯤 공개될 넷플릭스 영화 ‘정이’가 그녀의 마지막 작품이 됐다. “내 최종 목표는 연기 잘하는 할머니 되는 것”이란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아쉬움 속에 그녀를 보낸다. 영면을 빈다.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2-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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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이라고 한 적 없는 것처럼

 

[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Glenn Close ‘As If We Never Said Goodbye’(1994) 

 

Glen Close 'As If We Never Said Goodbye'

 

명장 빌리 와일더 감독의 1950년 영화 ‘선셋 대로(Sunset Boulevard)’는 이미 대중의 뇌리에서 사라지고 있는 무성영화 시대의 스타 여배우였지만 이제는 한물간 배우에 불과한 노마 데스먼드라는 인물을 통해 할리우드의 욕망의 이면을 치밀하게 그려낸 영화사의 걸작이다. 화려했던 과거에 집착하는 노마 역을 맡은 글로리아 스완슨의 명연기는 오랫동안 인구에 회자됐다(실제 무성영화 시절의 스타였던 그는 이 전설적인 연기로도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받지 못했다!).

 

짙은 음영의 흑백 화면은 허무하리만치 냉소적이다. 무성영화 스타일의 과장된 연극적 표현으로 현실과 환상을 혼동하는, 그래서 결국 광기로 이르는 여배우의 복잡한 내면이 섬세하게 펼쳐지는 이 영화는 40여 년 뒤인 1994년 뮤지컬의 제왕인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뮤지컬로도 만든다. 이때의 타이틀 롤은 영화배우로도 뛰어난 연기력을 인정받은 대배우 글렌 클로스가 맡아 이목을 집중시켰다. 글로리아 스완슨이 그랬던 것처럼 글렌 클로스 또한 일곱 번이나 오스카 후보에 올랐지만 남성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때론 악몽이 되는 것을 두려워 않는 그의 캐릭터 때문에 수상 소감을 발언하는 기회를 한 번도 가지지 못했다.

 

그러나 뮤지컬 무대 위의 그는 ‘레미제라블’ 영화판을 망쳐놓은 러셀 크로와는 완전 다르다. 그는 노래에 있어서도 발군의 가창력과 완벽한 무대 장악력을 단숨에 보여준다. 어제의 환상에 취해 부르는 ‘As If We Never Said Goodbye’는 한마디로 압권이다. “그래, 우린 한 번도 안녕이라고 한 적이 없는 것처럼 보여/ 우린 세상에 꿈꾸는 새로운 길을 가르쳐 주었지(Yes. Everything’s as if we never said goodbye/ We taught the world new ways to dream).”

 

한국 영화가 세계의 변방이던 그때, 1987년 베네치아 영화제와 1989년 모스크바 영화제의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던 배우 강수연이 훌쩍 세상을 떠났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이었다. 명복을 빈다.

 

-강헌 음악평론가, 조선일보(22-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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