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의 국익, 실용, 공정 그리고 상식
[김도연 칼럼]
공정과 상식, 국민이 변화 택한 중요 이유
나라 살림 큰 줄기가 실용임을 강조한 尹
실용 추구하되 명분에도 가치 둬야

김도연 객원논설위원·서울대 명예교수
새 정부가 돛을 올리고 본격적인 항해를 시작했다. 국민들이 투표로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해 국가 통치 권력을 위임한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정기적으로 미래를 다시 설계하며 새롭게 출발선에 서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민주주의의 핵심이며 가장 큰 장점이다. 특히 이번에는 권력을 지녔던 진보집단이 다른 의견의 보수집단으로 교체되었기에 국정은 크게 변화될 것으로 믿는다.
새 정부는 국정운영의 원칙으로 국익, 실용, 공정 그리고 상식이란 4개의 키워드를 제시했다. 국익은 좌우를 막론하고 어느 정부나 가장 먼저 꼽아야 할 원칙일 것이다. 아울러 공정과 상식은 지난번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이 큰 변화를 택한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과거 5년간의 권력 행사가 공정과 상식에서 많이 벗어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새 정부가 당연히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중요한 원칙이다.
“국정 과제 우선순위 선정의 가장 중요사항은 실용주의와 국민 이익이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인수위원회에서 한 말이다. 결국 나라 살림의 가장 큰 줄기가 실용임을 강조한 것이다. 실용은 실사구시를 통해 국민에게 실제적 이익을 가져오는 길이다. 국가 운영에 절대적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전통적으로 실용과 실리보다 지켜야 할 도덕상의 도리, 즉 명분(名分)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조선시대 효종이 죽은 뒤 서인(西人)과 남인(南人)이 벌였던 사활을 건 당쟁은 계모가 상복을 3년 입느냐 혹은 1년 입느냐 하는 문제였다. 실용과는 전혀 무관한 권력 다툼이었다.
오늘날에도 여당과 야당이 벌이고 있는 이런 유의 실속 없는 정쟁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같은 사안도 여야의 위치에 따라 주장했던 명분을 서로 바꾸고 있으니 우리 정치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듯싶다. 여야의 자리바꿈은 우리 헌정사에서 이미 네 번째이고 그만큼 서로 익숙한 일이다. 이제는 모두 역지사지로 명분보다 실용을 더 소중하게 여기면 좋겠다. 그러나 틀림없는 사실은 우리 정치 현실에서 명분이 아직도 큰 힘을 발휘한다는 점이다. 새 정부는 실용을 강조해 국가를 발전시키는 일과 동시에, 인사(人事)를 포함한 모든 국정운영에서 명분을 지켜야 한다. 명분을 잃으면 실용을 추구할 수 없다.
한편, 인류사에서 자연과학 지식은 100여 년 전에 급속도로 확장되었다. 물리학 분야에서는 X선, 방사선, 전자(電子) 등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이런 지식이 상품 개발로 실용화되면서 인류의 삶도 크게 변화했다. 자동차가 만들어졌고 전기가 생활에 들어온 것도 모두 이 무렵이다. 물리학에서 기계공학 그리고 전기공학 등으로 학문은 분화(分化)되었는데, 우리는 통상 물리학을 순수학문, 그리고 공학을 실용학문이라 부른다.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는 철학 등이 순수학문이며 경영학 등은 실용학문이다.
순수는 느낌이 매우 좋다. 이로부터 떠오르는 이미지는 잠든 아기의 평안한 얼굴 등이 아닐까? 단순하고 깨끗한 느낌을 주는 순수는 번잡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들 중 하나일 듯싶다. 반면, 실용이란 단어에서는 어쩐지 욕심의 냄새가 난다. 실용에서는 치열한 경쟁, 약삭빠름 등이 연상된다. 이렇게 실용이란 단어는 편하고 안전한 삶의 절대적 방편임에도 불구하고 순수 앞에서는 빛을 잃는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정치적으로 이념에 매몰되어 갈등하면서 보수와 진보는 각기 실용과 순수를 표방했다. 정치적 프로파간다 측면에서 진보가 우위를 차지했음은 물론이다. 자연 그대로의 상태 그리고 욕심 없는 마음 등 순수를 지향하는 것으로 알려졌던 진보집단이 ‘내로남불’로 스스로의 이익을 더욱 챙겼기에 국민들은 크게 실망한 것이다.
그런데 21세기 들어 새로운 지식가치는 순수학문과 실용학문이 어우러지면서 창출되고 있다. 나노테크놀로지는 물리학, 화학, 생물학에 전기, 기계 그리고 재료공학 등 여러 분야가 함께하는 융합 학문의 대표적인 예이다. 경제, 문화 등 다른 모든 분야에서도 발전을 위해 우리가 모색할 길은 조화와 융합이다. 특히 정치에서는 순수만 고집하거나 실용에 집착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실용과 실리를 추구함과 동시에 명분과 순수성에도 가치를 두어야 한다. 이를 통해 새 정부가 대한민국 도약의 계기를 마련하기 바란다.
-김도연 객원논설위원·서울대 명예교수, 동아일보(22-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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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물에 손 적시고 뜨거운 것 만져야
[이한우의 간신열전]
‘주역’은 일의 형세[事勢=命], ‘시경’은 일의 이치[事理=禮]에 관한 책이다. 그래서 공자는 아들 이(鯉)에게 “시를 공부했느냐”고 물었고 이가 “아직 못 했습니다”라고 하자 “시를 배우지 않으면 (다른 사람과 이치에 맞게) 말을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로서는 오히려 어려울 수 있는 ‘시경’이 옛날에는 공자 학문으로 들어가는 입문서였다. 일의 이치를 배운 다음에 일의 형세를 배우는 것이다. 나이 50에 공자가 이르렀다는 지천명(知天命)은 자기 팔자를 알게 됐다는 뜻이 아니라 일에 있어 이치를 넘어선 형세를 보는 눈이 생겼다는 뜻이다. 일의 이치 하나 배워보자. 상유(桑柔·부드러운 뽕나무)란 시다.
“그대에게 근심해야 할 일을 말해주고 그대에게 재주에 따라 벼슬을 내릴 것을 가르쳐 주노라. 누가 뜨거운 것을 쥐려 하면서 먼저 손을 찬물에 적시지 않으리오.”
이 시는 옛날에 정치를 잘해보려 다짐하는 임금들이 정작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를 밝힌 것이다. 뜻은 있지만 정작 그 방법을 얻지 못하는 임금을 풍자한 시라 하겠다. 시에서 그대란 바로 그런 임금을 가리키며 근심해야 할 일은 바로 다음 구절이 말하듯이 인사(人事)다.
윤석열 대통령을 만든 것은 누가 뭐래도 ‘공정과 상식’을 지켜줄 것이라는 국민들의 믿음이다. 그런데 공정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어떤 장관 후보자로 인해 공정이 시작부터 흔들리더니 이번에는 ‘성 비위 논란’으로 한 비서관이 그 상식에 대해 의문을 품게 만들고 있다. 특히 그 비서관이 지었다는 시 ‘전철 칸의 묘미’라는 시를 읽어보니 민망하다.
‘요즘은 여성전용칸이라는 법을 만들어 그런 남자아이의 자유도 박탈하여 버렸다나.’
요즘 사람 맞나? 술자리에서도 해서는 안 되는 말이다. 이런 사람이 무슨 능력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뜨거운 것을 쥐려 하면서 먼저 손을 찬물에 적시는 지혜가 담긴 인사였다고 하기는 어렵겠다.
-이한우 경제사회연구원 사회문화센터장, 조선일보(22-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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