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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우폴 함락] [나토 가입 선택한 핀란드 국민의 역사의식에서 배울 점]

뚝섬 2022. 5. 19. 07:42

마리우폴 함락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이 17일 러시아에 함락됐다. 마리우폴은 돈바스 지역 최남단에 위치해 크림반도로 연결되는 전략적 요충지다. 러시아는 자국에서 돈바스 지역을 거쳐 크림반도로 이어지는 육로를 확보함과 동시에 오데사와 몰도바 내 친러시아계 지역으로의 진격을 위한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러시아로서는 침공 이후 가장 큰 승리이고 우크라이나로서는 뼈아픈 패배다.

▷러시아로서는 승리이긴 하지만 너무 늦은 승리다. 러시아는 이미 한 달 전 마리우폴을 장악하고 최후통첩을 보냈다. 마리우폴의 우크라이나군은 소련 시대 때부터 거의 요새화된 아조우스탈 제철소 지하에 자리 잡고 결사적으로 항전했다. 결국 항복하긴 했지만 개전 이후 80여 일간 러시아군의 주요 전력을 이곳에 붙잡아뒀고 그것이 다른 곳의 우크라이나군이 선전한 한 원인이 됐다.

▷마리우폴 우크라이나군의 핵심 전력은 아조우연대다. 2014년 돈바스에서 친러시아 반군에 맞서기 위해 결성된 민병대지만 정규군보다 전투력이 더 강하다고 알려졌다. 아조우연대와 친러시아 반군은 서로 죽고 죽이는 과정에서 깊은 원한이 쌓였다. 아조우연대는 창설 당시 신나치 성향의 부대원들이 일부 있었으나 극단주의 성향은 현재 많이 희석됐다는 것이 서방 언론의 보도다. 그러나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나치를 쫓아내기 위한 특별 군사작전 ‘Z’를 수행한다며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러시아 쪽에서는 아조우스탈에 있다가 항복한 군인 중에 미군 특수전 사령관을 지낸 에릭 올슨 예비역 대장을 비롯해 서방 국가 군 고위 장교들이 있다는 소문을 흘리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군에 끌려가는 모습으로 알려진 인터넷 사진 속 인물은 올슨이 아닌 것으로 팩트체크 사이트에서 확인됐다. 전쟁 보도는 선전 활동과 섞여 있기 때문에 가려들어야 한다.

▷러시아 의회는 아조우연대는 테러리스트이며 테러리스트를 포로 교환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명분이 나치 테러리스트 퇴치이므로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포로 교환에 응한다면 거짓 명분을 내세운 것이 되고 포로 교환에 응하지 않으면 자국 군 포로 가족들이 분노할 것이다.

▷러시아는 마리우폴 장악에 만족하고 우크라이나와 새 협상을 시작할 것인가. 우크라이나는 마리우폴을 수복하기 위한 시도를 포기하고 협상에 응할 것인가. 핀란드와 스웨덴은 마리우폴 함락과 거의 동시에 나토 가입 신청을 했다. 러시아로서는 마리우폴을 얻은 대신 핀란드 쪽 국경의 안보가 취약해졌다. 미국과 유럽연합(EU)도 장기전으로 가는 건 부담스럽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


-송평인 논설위원, 동아일보(22-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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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토 가입 선택한 핀란드 국민의 역사의식에서 배울 점 

 

지난 17일 핀란드 의회는 총 200석 가운데 188표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정부의 나토(NATO) 가입 신청 결정을 승인했다. 러시아와 1300㎞ 국경을 맞대고 있는 핀란드가 1948년 이후 74년간 지켜온 중립국 지위를 포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만난 페카 멧초 주한 핀란드 대사에게 “러시아가 나토에 가입하겠다고 선언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듯이, 나토에 가입하려는 핀란드를 침공한다면 많은 핀란드 군인과 무고한 국민들이 목숨을 잃지 않겠는가”라고 우려하니 그의 대답은 단호했다. “전쟁에서 10만명이 희생되는 것이 두려워 러시아 눈치를 본다면, 550만 국민이 러시아의 지배 하에 더 큰 희생을 당할 것 아닌가.”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이 18일 브뤼셀에서 핀란드와 스웨덴이 제출한 나토 가입 신청서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AFP 연합뉴스

 

핀란드는 1945년까지만 해도 소련의 식민지였다. 핀란드는 1939년 독일의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하고 소련과 전쟁을 시작하면서 2차 대전을 일으켰을 때 독일 편에 가담해 소련과 전쟁을 벌였다. 핀란드는 당시 국민 400만 명의 5%가 넘는 22만1000명의 사상자를 낸 끝에 결국 전쟁에서 지고 말았다. 그러나 핀란드를 본격적으로 지배하러 온 소련은 당황했다. 핀란드 국민들이 모두 숲으로 들어가서 숨고, 도시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다. 속수무책이 된 소련 정부는 독립을 인정하는 대가로 전쟁배상금 3억달러를 요구했다. 농업 국가 핀란드는 이 배상금을 갚기 위해 제지·기계·조선 등 제조업을 키웠고, 8년에 걸쳐 배상금을 갚고 난 후 제조업을 통해 세계 10대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섰다.

 

반면 폴란드는 국민이 똘똘 뭉쳐 소련을 거부한 핀란드와는 달리 정치인들이 독일 편과 소련 편으로 나뉘었고, 이를 이용해 소련은 손쉽게 괴뢰정부를 만들었다. 이후 폴란드는 소련의 위성국가로 전락했다. 핀란드와 발틱해를 사이에 둔 에스토니아는 1940년 소련의 침략을 받았다. 이때 에스토니아가 선택한 길 역시 핀란드와 달랐다. 전면적인 독립전쟁을 벌이지도 않았고, 전쟁 배상금을 내지도 않았다. 그 결과는 혹독했다. 소련은 1944~1955년 에스토니아 국민 110만 명의 11%에 달하는 정치인들과 사회 지도자 12만4000명을 ‘인민의 적’으로 규정하고 시베리아로 추방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죽음을 맞이했다. 에스토니아는 전쟁을 회피하고 군인들을 아낀 대신 민간인들을 희생시킨 것이다.

 

핀란드, 폴란드, 에스토니아의 역사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교훈을 준다. 폴란드처럼 국민이 두 갈래로 분열되고 한쪽이 지배자의 통치 수단이 될 때 식민지가 된다는 것이다. 또 국가가 전쟁을 회피하고 군인이 목숨으로 국민을 지키지 않으면 국가가 무너지고 선량한 국민이 희생된다는 점이다. 이번에 핀란드 국민들은 러시아와의 전쟁을 회피하지 않고 확실하게 국가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나토에 가입하는 선택을 한 것이다.

 

위기관리의 핵심은 사전 준비와 예방이다. 우리나라는 우크라이나, 핀란드와 지정학적으로 비슷한 위치에 있다. 우리도 안보 위기가 발생하기 전에 준비할 일이 있다.

 

정치인들은 평소 여야로 나뉘어 대립하다가도 위기 시에는 국가 지도자를 중심으로 하나로 뭉쳐 외세에 맞서는 거국적 문화를 구축해야 한다. 군인들은 철저한 준비를 통해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전쟁에서 국가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 교육자들은 독립운동가와 군인들의 희생으로 이룩한 평화와 번영의 가치를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MZ세대들이 깨달을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조동성 핀란드 명예영사·서울대 명예교수, 조선일보(22-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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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핀란드, 미국·서유럽 중심 군사동맹 나토에 가입 신청서 제출. 바야흐로 세계적 흐름은 ‘중간 지대’ 소멸.

 

-팔면봉, 조선일보(22-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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