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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초년 尹, 대통령像 바꾸나] [참을 수 없이 ‘올드’한 청와대]

뚝섬 2022. 5. 30. 06:33

정치초년 尹, 대통령像 바꾸나

 

[박제균 칼럼]

尹 ‘먹방 행보’·출근길 문답·브리핑… 靑 개방 맞물려 달라진 집권자 모습
제왕적 대통령像 정상화해야… 內治분점·인사권下放·檢독립 필수

 

동아일보사가 청와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그런지, 가끔 가던 식당 중에 대통령이 다녀갔다는 곳들이 있다. 그런 식당들은 현직 대통령이 왔다는 데 남다른 자부심을 느끼지만, 그렇다고 꼭 잘되는 건 아니다. 정권의 부침(浮沈)이라는 거대한 파도의 끝자락은 때로 음식점 장사까지 때린다. 내가 애용하던 한두 집은 결국 문을 닫았다.

과거 대통령들은 외국에 나가지 않는 한 거의 청와대에서 밥을 먹었다. 장삼이사(張三李四)야 청와대 식사 한번 초대받길 고대하건만, 만날 먹어야 하는 대통령은 지겨울 법도 하다. 그래서 모처럼 ‘사제 식당’에 행차할라치면 경호 문제로 거의 007 작전이었다.

꼭 이래야 하나. 세계 최강 미국의 대통령들도 공개적으로 워싱턴DC의 식당에서 식사하고, 아이스크림을 들고 먹는다. 베이글을 테이크아웃하고, 단골 딤섬 식당을 찾는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즐겨 먹던 햄버거는 ‘오바마 버거’로 불린다. 경호를 이유로 대통령을 청와대에 가두는 것이야말로 제왕적 대통령의 출발점이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좀 다르다. 당선인 때도 여기저기 맛집 순례를 하더니, 대통령이 돼서도 냉면 빈대떡 잔치국수 따로국밥을 사먹고, 순대 떡볶이 만두 소보로빵 등을 사갔다. 경호 문제로 시민들을 불편하게 한다고? 대통령 경호에 빈틈이 있어서야 안 되겠지만, 대통령과 국민을 괴리시키는 경호는 경호라고 할 수도 없다.

음식남녀(飮食男女)라고 했다. 원래는 군자가 식(食)과 색(色)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였으나, 지금은 음식과 사랑이 삶의 기본이라는 긍정적인 뜻으로 많이 쓰인다. 대통령도 사람이다. 청와대, 아니 용산 집무실의 문턱을 넘어 저잣거리에서 사람들과 만나 먹고 마시고 떠드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윤 대통령의 먹방 행보가 임기 초 보여주기 쇼로 끝나지 않길 바란다. 그가 먹는 데 ‘진심인 편’인 듯하니. 기대를 걸어본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퇴근길 시장에서 시민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약속했다. 그 말을 의식한 듯 ‘퇴근길 국민과의 대화’라는 이름을 붙여 호프집 만남을 했으나 한 차례 보여주기에 그쳤다. 청와대에서 퇴근하지 않는 분의 퇴근길 대화라니…. 어색한 만남이었다.

 

그렇다. 윤 대통령의 먹방 행보는 청와대에서 나온 것과 관계 깊다. 청와대가 시내에 있지만 현실 세상과 격리된 듯한 데다 청와대의 ‘대(臺)’가 ‘흙이나 돌 따위로 높이 쌓아 올려 사방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든 곳’이란 뜻이다. 권력자가 높다란 대에서 내려오니 세상과 어울리는 게 수월해지는 것이다.

청와대 개방은 뜻밖의 효과도 거두고 있다. 심지어 “무섭다”고 한 관저의 80평 침실을 비롯해 대통령 삶의 속살을 보여준다. 그런 ‘시설’에 살아야 했던 대통령들도 쉽진 않았겠으나, 국민에게도 은연중에 대통령의 제왕적 삶에 대한 거부감을 키워준다. 이제 윤석열 이후 누가 대통령이 돼도 청와대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해졌다.

윤 대통령의 출근길 문답도 한국 대통령사(史)에서 특기할 만한 변화다. 출입 기자들이 대통령 얼굴 보는 게 연중행사나 다름없던 박근혜 문재인 때를 돌아보라. ‘국민희망대표’ 20명을 초청해 대통령이 직접 집무실 브리핑을 한 것도 달라진 대통령상(像)을 예고한다.

윤 대통령이 특출 나서 이런 변화가 만들어졌을까. 물론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대통령제가, 대통령상이, 대통령관(觀)이 달라진 세상에 따라가지 못하고 시대착오적이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그런 세상의 변화에 올라탔을 뿐이다. 그것이 정상화요, 정치보다 강한 일상(日常)의 힘이다.

그가 정치 초년생이라는 점도 선입견 없이 변화를 수용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했을 수 있다. 과거 대통령과 다른 윤석열 스타일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탈피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변화이기는 하다. 형식의 변화가 내용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더 중요한 건 내용의 변화다. 즉, 실제로 제왕적 권력을 내려놓느냐가 관건이다.

대통령의 권력 중 외교·안보는 나눌 수도 없고, 나눠서도 안 된다. 그러나 내치(內治)는 다르다. 대통령이 마음먹기 따라 충분히 분점과 권한 이양이 가능하다. 그러려면 인사권의 과감한 하방(下放)과 검찰권 독립이 필수다. 역대 대통령 누구도 못 한 일, 윤석열은 해낼 수 있을까.

-박제균 논설주간, 동아일보(22-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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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이 ‘올드’한 청와대

 

일반 개방에 앞서 지난 25일 언론에 공개된 청와대 본관 취재를 갔다가 충격을 받았다. 화려해서가 아니다. 너무 ‘올드’해서였다. 방송과 사진을 통해 볼 때는 중후해 보였던 붉은 카펫과 샹들리에, 오크색 난간과 기둥은 ‘사진발’이었다. 집무실과 회의 공간에 놓인 책상과 의자도 현대적인 것과 거리가 멀었다. 제3세계 대통령궁 같네.” 기자들 입에서 탄식이 흘렀다. 낡은 인테리어야 이해할 수 있다. 청와대 본관은 노태우 전 대통령 때인 1991년 준공됐다. 요즘 젊은이들은 질색하는 ‘체리색 몰딩’을 떠올리게 하는 천장도, 번쩍이는 샹들리에도, 로코코 양식을 어설프게 따라한 화장실 수납장도 당시엔 고급 인테리어로 여겨졌을 것이다. 이후 청와대에 입성한 대통령들이 인테리어를 바꾸고 싶었더라도 국민 세금 들이는 일이라 쉽지 않았을지 모른다.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본관 무궁화실이 언론에 공개되고 있다. /뉴스1

 

참을 수 없이 올드하다고 느낀 건 따로 있었다. 영부인 집무실 겸 접견실로 사용되던 ‘무궁화실’에 이르러서였다. 이승만 전 대통령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부터 문재인 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까지 역대 대통령 부인 11명의 초상 사진이 벽에 걸려 있었다. 왕의 아내가 ‘국모(國母)’로 불렸던 왕조시대도 아닌데 한 여성이 누군가의 아내라는 이유로 지위를 얻고, 그것이 사진으로 기록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진다는 사실이 기이하게 낡았다고 느껴졌다.

 

선대의 초상을 건다는 건 공과(功過)를 되새기기 위해서다. 사진 속 여성들의 업적을 생각해 보았지만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민주화 운동가였던 이희호 여사의 생애마저도 ‘영부인’이라는 칭호에 가려 퇴색된 것 같았다. 그 공간 자체가 “여성의 가장 큰 덕목은 내조”라 웅변하고 있었다. 40대인 기자 눈에도 이런데 페미니즘의 가치를 더 중히 여기는 2030 여성들은 어떨지 궁금했다.

 

미셸 오바마는 회고록 ‘비커밍’에서 백악관에 처음 들어가던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이렇게 썼다. “이 상황에서 중요한 진실은 나와 딸들이 조연일 뿐이라는 점이었다. 우리는 버락에게 주어지는 호화로운 혜택을 나눠 받는 수혜자에 불과했다. () 가끔은 집안의 모든 일이 남성 가장의 욕구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옛 시절로 회귀한 것 같은 느낌이었고, 딸들이 그런 상황을 정상으로 여기지 말아야 할 텐데 싶었다.” 미셸은 ‘오바마 부인’이라는 명칭에 커리어우먼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이 묻혀버렸다는 사실을 속상해 했다.

 

공간은 사고(思考)를 규정한다. 낡은 공간에 있으면 생각마저 낡아진다. 그런 면에서 청와대를 벗어나 영부인실을 없앤 새 정부의 결정은 ‘모던’하게 보인다. 대통령 부인이 집무를 보았다는 책상 앞에 푸른색 가죽 의자가 놓여있었다. 북유럽 유명 리클라이너 브랜드 제품이다. 이날 청와대에서 본 것 중 유일하게 ‘모던’했다. 기묘한 부조화였다.

 

-곽아람 기자, 조선일보(22-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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